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신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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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편함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 써야 한다면 우리는 왜 그간 우리의 세계관을 담지 못하는 그 많은 표현들을 새로고침해 왔을까? 우리는 그렇게 배웠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기 위해 잠시의 불편함을 감내했던 우리의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우리가 지양하는 세계관에서 벗어나 우리가 지향하는 세계관이 반영된 표현으로 고쳐가기 위해 우리는 그간 많은 표현들을 바꿔왔다.       p.154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이 옷은 신상품이세요, 사장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자리에 앉으실게요. 진료실로 들어오실게요.. 등등 무언가 어색한데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자주 듣는 말들이 있다. 계산대에서, 회사에서, 식당에서 이처럼 어색하고 문법에 맞지 않은 언어 표현들을 자주 듣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한 번쯤 품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이 가려운 곳을 속 시원하게 긁어줄 것 같다. 지난 20년 동안 언어 탐험을 통해 인간을 이해해온 언어학자 신지영은 나이, 성별, 위계에 따른 차별과 편견의 언어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진단한다. 그리고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안일하게 써온 말들을 10가지 주제로 설명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구입하면 본인의 언어 표현에 대한 민감도를 측정할 수 있는 '언어 모의고사지'를 받을 수 있다. 총 10문제로 진짜 시험지 형태로 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책을 읽고 나면 문제에 대한 힌트가 있을 것 같아, 책을 읽기 전에 문제지부터 먼저 풀어 보았다. 사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고, 평소에 언어 표현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이 정도는 가뿐하게 다 맞힐 수 있지 않을까 자신했다. 결과는.. 두 문제나 틀렸다. 각 문제 별로 점수가 있어 합산한 결과는 '언어 감수성 최고!' 라고 나오긴 했지만 아쉬웠다. 하지만 덕분에 평상시에 무심코 흘려 들었던 언어 표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언어 모의고사 덕분에 책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어의 탓이 아니다. 언어 사용자들의 탓이다. 언어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지만, 언어 사용자들 사이에는 우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한 언어권 내의 언어 사용자들도 그렇지만 언어권 사이에도 그렇다. 해당 언어 사용자들이 그 언어를 가지고 얼마나 다양한 표현을 해 보았는가에 따라서 언어의 표현력은 달라진다... 따라서 한국어가 어떤 분야에 대해 표현력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한국어 탓이 아니라 한국어 사용자들의 탓이다.      p.240~241

 

이 책은 언어 감수성 향상을 위한 총 열 번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나이가 권력인 한국어 높임법의 작동 원리로 시작해 곱씹을수록 불편해지는 단어들, 공손성의 요구 뒤에 숨은 일상의 갑질, 우리 사회가 불러온 '여성'의 변모, 가족 호칭에 숨은 불편한 진실, 코로나19 시대의 언어 풍경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언어 감수성을 높여서 익숙한 표현이 담고 있는 다수자의 횡포를 지적하고 소수자의 관점이 소외되어 있음을 자각하려는 것이 저자의 주요 관심사이기에, 일상에서 쉽게 깨닫지 못하고 있던 문제점들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들이 공감도 되고, 이해도 되었다. 물론 저자의 지적들을 읽다 보면 '이 말도 안 된다고 하고, 저 말도 틀렸다고 하면 도대체 어떤 말을 쓰라는 거야!'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우리가 바꾼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그 부적절한 표현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수많은 단어들이 새롭게 생겨나 사용되고 있는 요즘이다. 우한 폐렴, 코로나19, 비말, 코흐트 격리, 음압 병실, 포스트 코로나, 언택트, 웨비나 등등... 감염병이 아니었다면 전혀 접하지 못했을 어렵고 이상한 말들이다. 비일상적이던 언어가 일상의 언어가 되었으니, 언어가 지닌 권력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를 위한 언어인지, 언어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권력관계와 소외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에 민감해지고 스스로 언어감수성을 높여 ‘언어의 높이뛰기’를 시도'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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