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매탐정 조즈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5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이 뒤집혀버리는 순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고게쓰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작 한 마디로 나라는 인간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은 단지 그런 불운을 맞닥뜨리지 않았을 뿐, 거기에 특별한 차이는 없을지도 몰라요." 고게쓰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누구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사람을 죽입니다. 그걸 경험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건, 그저 행운일 뿐이겠죠. 우리는 그런 차이만으로 살아 있는 건지도 몰라요."     p.199~200

 

영능력이니, 심령현상이니, 오컬트 같은 것에 관심이 있거나 믿지는 않는다고 해도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바라고 있지 않을까. 설명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이 세상에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사후 세계가 있기를 바란다거나, 억울하게 죽은 이의 영혼이 가해자를 찾아내도록 도와 준거나 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스스로를 '경찰도 탐정도 아닌, 그저 보잘것없는 글쟁이'라고 소개하는 고게쓰 시로는 조즈카 히스이라는 젊은 영매와 함께 온갖 사건을 해결해왔다. 영매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다니,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거나, 영시로 범인을 특정한 다음 그 정보를 토대로 분석해 과학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논리를 이끌어내거나 법적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 진다. 사실 범인을 특정할 수 있다고 한들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체포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영매탐정 조즈카가 사건 현장을 둘러본 뒤 영시를 통해 누가 범인인지 알아 내면, 추리소설가 고게쓰가 논리적인 사고로 물적 증거를 찾아내고, 범행 과정을 추론해낸다. 영능력으로 범인을 밝혀내고, 그것을 단서 삼아 물적 증거를 찾아낸다면 그야말로 범죄자가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어떤 트릭과 꼼수도 현실을 넘어서는 영능력 앞에서는 헛수고가 될테니 말이다.

 

 

 

"우리 일상에 탐정은 없어요. 저건 이상하다, 이걸 생각해야 한다, 그게 수상하다, 앞장서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없죠. 우리는 일상 속에서 뭘 생각해야 하는지, 뭘 눈여겨봐야 하는지,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해요. 뭐가 이상한지 모른다? 너무 사소한 문제라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럴 가치가 없다? 정말로?"
빙글빙글 머리카락을 감던 손가락이 멈췄다.... "탐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더라도, 우리는 명탐정의 시선을 가져야 해요."      p.388~389

 

하얀 프릴로 장식한 블라우스, 가느다란 허릿매를 강조하는 하이웨이스트 스커트, 완만한 웨이브를 그리는 긴 흑발 머리, 앳된 얼굴의 정교한 서양 인형처럼 아름다운 여성이 바로 조즈카 히스이라는 인물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데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 와서 친구도 거의 없고, 나이대에 맞는 일반적인 경험도 부족해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소녀의 전형처럼 보인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부터 전형적인 라이트 노벨 작품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는 정말 제대로 된 본격 미스터리 장르에 맞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어 캐릭터와 서사의 부조화에서 오는 독특함이 오히려 신선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작품이었다.

 

2020 본격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202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1위!에 빛나며 전례 없는 미스터리 차트 5관왕의 신화를 기록한 작품이다. 아이자와 사코는 주로 라이트 노벨 작품들을 써온 걸로 아는데, 이번에 만난 이 작품은 본격 미스터리 장르이다. 표지에서 보여지듯이 미소녀 영매가 주인공이지만, 결코 표지만 보고 섣불리 이 작품에 대해서 판단하면 안 된다. 죽은 사람을 불러내서 범인을 지목하는 영매탐정과 추리소설가이자 경찰의 자문탐정이 그에 대한 근거를 찾아내서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의 연작 단편집은 촘촘하게 짜여진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재미도 있지만, 특히나 후반부를 강타하는 반전이 역대급이다. 단순히 독자들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의 깜짝쇼가 아니라, 반전에 이르기까지의 서사가 굉장히 흥미롭고 잘 짜여 있어서 그 충격은 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 게다가 시종일관 본격 미스터리와 라이트 노벨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로 독자들과 밀당을 하고 있는 작품이라, 지루할 틈 없이 두툼한 페이지가 금방 넘어간다. 현지에서는 7월에 속편인 <조즈카 도서집>이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너무 궁금하다. 국내에서도 영매탐정 조즈카의 다음 이야기를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