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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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에 당신은 담요를 다시 갖다 놓지만 장난감 권총은 챙긴다. 그날 밤에 어디서 자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그게 쓸모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일주일 동안 계속된다. 당신은 그 심정이 어떨지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당신도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인생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몰랐는데.' 그러면 덜컥 겁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에 당신은 극단적인 짓을 저지른다. 아, 물론 당신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분명 다른 대안을 강구했을 것이다.       p.97

 

어느 날 아침, 그다지 넓지도 않고 주목할 만하지도 않은 도시에 사는 39세의 주민이 권총을 손에 쥐고 집을 나선다. 강도는 은행에 침입해 6천5백 크로나를 요구하지만, 그곳은 하필 현금 없는 은행이었다. 당황한 강도는 경찰이 출동하자 겁에 질려서 길을 건넜고 맨 처음 눈에 들어온 문을 열고 도망친다. 구체적인 도주 계획도 없었던 강도는 우연히 아파트 매매 현장인 오픈하우스로 달아나게 됐고, 아파트를 구경하러 온 잠재 고객들은 인질이 되고 온다. 은행 강도라 할 수 없는 사건이 갑작스레 인질극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잠재 고객 일곱 명과 부동산 중개업자 한 명으로 여덟 명이 인질이 된다.

 

인질극은 정석대로 흘러간다. 경찰이 건물을 에워쌌고 기자들이 출동했고 사건이 TV에 보도된다. 이런 상황이 몇 시간 계속되자 은행 강도는 항복했고, 인질들이 모두 풀려나고 나서 곧 경찰이 아파트를 습격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은행 강도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은행 강도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은행 강도와 인질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흔히 인간의 성격은 경험의 총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과거가 모든 것을 규정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절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제 저지른 실수들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선택, 다가올 미래도 우리의 전부라고 말이다.... 예전에 엄마가 그녀의 귀에 대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성격은 경험의 총합일 뿐이야. 남들이 뭐라하건 귀담아 듣지 마. 그러니까 걱정 마, 우리 공주님. 너는 망가진 가정 출신이라 심장이 망가질 일은 없을 거야. 너는 낭만주의자로 자랄 일도 없을 거야, 망가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으니까."      p.462~463

 

<오베라는 남자>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다. <오베라는 남자>가 나왔던 것이 2015년 이었는데 그 이후로 꽤 많은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들을 읽어 왔다. <브릿마리 여기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베어타운>, <우리와 당신들> 등 다양한 작품들이 모두 기본 이상의 재미를 안겨 주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입에 척척 달라붙는 음식처럼 눈에 쏙쏙 들어오는 묘사들,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노련한 구성과 스토리, 그리고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까지.. 언제나 유쾌하고도 다뜻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번 작품 역시 겁 많고 마음 약한 강도와 위급한 상황에서 한마디도 지지 않는 인질들의 한바탕 소동극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상처와 어리석음, 실수, 오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은행 강도, 아파트 오픈하우스, 인질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가의 말대로) 그보다는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어른들이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하기 싫어도 참으며 일을 하며 돈을 벌고, 필요한 경우에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같이 전쟁 같은 일상을 견디어 낸다. 가끔은 정말 형편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더라도, 어른들의 실수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참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것, 그게 누군가에게는 미련하고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하루를 살고, 내일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어떻게든 더 잘해보려고 애쓴 몸부림이 오해와 거짓말을 불러오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마음이 바보 같은 실수가 되어 버리고, 때로는 모르는 걸 아는 척해야 하고, 무섭지만 겁나지 않은 척도 하고, 불평불만이 턱 끝까지 차 올라도 아무렇지 않게 만족하는 척 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다들 잘 살고 있는데 나 혼자만 그 모양인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바로 이렇게 불안에 시달리는, 그럼에도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엉뚱하고, 끝없이 웃게 만들지만 결국엔 뭉클하게 만드는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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