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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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조르주드디돈으로 얼른 돌아갈 생각이야. 당신은 내가 저지른 이 소박한 일탈을 이해할 수 없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조차도 잘 이해가 안 돼. 나중에 설명할게. 분명 정신적 스트레스 문제인 것 같아. 난 늘 필사적으로 싸워왔어. 그런데 대체 무얼 얻겠다고 이러는 걸까? (그는 줄을 그어 이 문장을 지웠다.) 올해는 특히 힘들었어, 전력투구했다고. 가끔은 우리가 모든 걸 다 내려놓고선 산에 올라가 채소를 기르고 양을 치며 살았으면 싶기도 해. 걱정 마, 그게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p.87

 

마흔이 채 되지 않은 사내, 조르주 제르포는 파리의 대기업 중간급 임원이다. 어느 날 새벽, 메르세데스를 타고 19번 국도를 달리는 중에 자동차 사고 현장을 목격한다. 그냥 지나치려던 그는 사고 차량 안에 사람이 있을지 모르고, 구조 의무를 등한시한 자신의 차 번호를 기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멈춰 선다. 그는 부상을 입은 남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수속을 밟으라는 간호사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바깥으로 나와 버린다. 아내인 베아는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와버리면 어쩌느냐고 제정신이냐며 그를 타박하지만, 그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게 싫었을 뿐이다. 며칠 뒤, 그들 가족은 여느 때처럼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명의 살인 청부업자들에게 살해당할 뻔한다. 그들은 바다 속에서 갑작스럽게 제르포를 가격했고, 겨우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온다. 제르포는 며칠 전 자신이 병원에 데려다 준 교통사고를 당한 남자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제거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분명한 건 두 남자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였다. 제르포는 아내와 아이들을 휴가지에 그대로 놔둔 채, 경찰에 알리지 않고 무턱대고 도망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뒤를 쫓기 시작한 살인 청부업자들에게 반격을 하다 그 중 한 사람이 죽게 된다. 이성을 잃고 화제 현장에서 달리던 제르포가 정신을 차려 보니 알프스 산맥을 횡단하는 화물열차 안이었고, 그때 만난 부랑자에게 수표책을 빼앗기고는 기차 밖으로 추락하고 만다. 죽어가던 낯선 남자에게 베푼 아주 약간의 선의 때문에, 안정적이고 평탄했던 제르포의 삶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평범한 중년 남자는 전문 암살자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며 몸을 다시 일으켰다. 진심으로 놀란 것은 아니었다. 안락한 유년기와 성공적인 사회적 신분 상승으로 점철된 청년기를 보낸 후 겪은 최근 사건들로 인해, 그는 자신이 무적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된 차였다. 하지만 위험천만한 우여곡절을 거쳐 간신히 도달한, 이 있음 직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에 깜짝 놀라는 것이 더 흥미롭고 어울려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 제르포가 생각하는 본인의 이미지는 10년 전에 읽은 추리소설, 그리고 작년 가을 올랭피크 영화관에서 본 짤막하고 형이상학적인 고전 웨스턴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p.114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장파트리크 망셰트는 '네오폴라르'라는 새로운 범죄소설 장르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이다. 1950~1960년대의 정형화된 추리 소설을 탈피해 사회 비판과 실존적 탐구의 장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기존의 범죄소설들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편이다. 우선 분량이 굉장히 컴팩트하다. 판형도 살짝 작은 편이고, 페이지도 이백 이십여 페이지로 대부분의 범죄 소설들에 비해 가볍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풍경을 담담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게리 멀리건, 지미 주프리, 버드 섕크, 치코 해밀턴의 웨스트코스트 스타일 재즈를 들으며 외곽순환도로를 달리는 조르주 제르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했던 작품은 그가 겪은 파란 만장한 피투성이 모험 이후 다시 같은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 여전히 시각은 새벽 두 시를 넘었고,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웨스트코스트 음악, 주로 블루스였으며, 메르세데스는 시속 145킬로미터로 달리는 중이다. 제르포가 일상에서 부재했던 기간이 열한 달이었지만, 그는 다시 회사의 임원직을 되찾을 수 있었고, 아내인 베아는 다시 나타난 남편을 너무도 소중히 대했다. 8월에 그들 가족은 전처럼 휴가를 떠났고, 그들은 무척 근사하고 편안한 숙소에서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겉으로 보기에 제르포의 일상은 전과 다름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념을 잠재우고 음악을 들으며 외곽순환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그의 삶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색다른 범죄소설을 만나보고 싶다면, '프랑스 누아르의 혁신'이라 불리는 장파트리크 망셰트의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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