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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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더스틴 밀러가 정말로 성폭행을 했다고 해도, 매슈가 그를 죽이고 트로피를 기념품으로 가져왔다는 뜻은 아니잖아.”
“그냥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야.”
“그렇다면 굉장한 우연의 일치로군.”
“뭐가 굉장한 우연의 일치야? 더스틴 밀러는 정말로 살해됐어.”
“그게 아니라 우리가 처음에는 피해자와 같은 길에 살다가 이번에는 범인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거 말이야.”    p.81

 

헨과 로이드는 동네 주민들을 위한 파티에서 옆집의 매슈와 미라 돌라모어 부부를 만난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아이가 없는 부부라는 공통점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 부부에게 저녁식사 초대를 받게 된다. 매슈는 사립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었고, 미라는 교육용 소프트웨어 영업 사원이었다.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을 구경하게 되는데, 전체적인 인테리어와는 동떨어진 매슈의 서재에서 헨은 기절할 듯한 충격을 받는다. 서재 벽난로 위에 놓인 펜싱 트로피가 오래 전 더스틴 밀러 살인 사건을 생각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다시 한번 제대로 트로피를 보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대고 옆집에 간 헨은 매슈가 트로피를 치워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한 의심이 커져간다. 매슈는 서식스 홀의 교사였고, 더스틴 밀러 역시 그 학교를 다녔기에 터무니없는 망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헨의 과거에 있었다. 그녀는 대학생때 조증으로 과도한 자신감과 심각한 불안감 사이를 미친 듯이 오갔던 적이 있었고, 당시에 한 여학생에게 집착해 경찰이 출동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것이다. 이후에 로이드와 결혼 후 조금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다가 3년 전, 새로운 정신 약리학자의 추천으로 다른 약을 먹었다 조울증이 왔고, 당시에 같은 동네 주민이었던 더스틴 밀러 살인 사건에 집착했던 이력이 있다. 그래서 매슈가 더스틴 밀러 살인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의심을 남편도, 경찰들도 믿지 못한다. 하지만 헨은 남몰래 매슈의 뒤를 밟으며 그를 지켜보았고, 의심음 점점 확인이 되어 간다. 그러다 그의 주변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날 매슈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증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이 이상한 여자. 그런데, 과연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

 

 

그 일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헨은 계속 매슈를 생각했다. 이제 그녀를 믿어주는 사람은 매슈뿐이었다. 기괴하면서도 웃기는 일이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그녀와 매슈뿐이라니. 매슈는 다른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테니까. 헨 역시 다른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고, 다들 그녀의 정신병이 도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p.247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소설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었던 피터 스완슨의 신작이다. 벌써 국내에 소개되는 그의 작품이 네 번째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매혹적인 작품 <죽여 마땅한 사람들>, 사랑의 다른 면을 통해 인간 내면의 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아낌없이 뺏는 사랑>, 낯선 공간이 주는 무서움과 불편함을 극대화시켜 색다른 공포를 자아냈던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까지 모두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번 신작 역시 궁금했었다. 'Her Every Fear'라는 제목을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라고 원제와 전혀 상관없는 제목을 붙였었는데, 이번 작품 역시 'Before She Knew Him'이라는 원제를 완전히 의역해서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라고 번역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왜 번역본 제목을 이렇게 했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문장 그 자체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 읽고 나면 이해가 되는 타이틀이라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굉장히 센스 있는 의역이 아닐까 싶다.

 

동네에 살인자임이 분명한 남자가 있고, 그의 바로 옆집에 살게 된다면 어떨까. 의심스러운 정황이 계속 쌓이고, 몇 번이나 경찰에 그가 범인이라고 증언하지만 자신의 과거 이력 때문에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 말이다. 거기다 문제는,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안다는 것을 살인자인 그 남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괴물 같은 아버지와 그 괴물의 희생양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 그 남자는 그녀에게서 아버지의 괴물 같은 면과 어머니의 나약함과 우아함,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동생의 모습도 본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그는 '특별한 관계'를 제시한다. 자신은 오직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들만 죽이기 때문에 당신은 절대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그저 당신과 애기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 이 작품은 살인마의 마음속 깊은 곳을 옆집에 사는 여성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다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과연 헨은 ‘죽어 마땅한 남자들’만 죽이는 이 살인자로부터 무사할 수 있을까? 과연 살인자와 증인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피터 스완슨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페이지 터너 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갈 때까지 결코 책을 놓을 수 없도록 만든다. 예상을 벗어나는 뜻밖의 전개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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