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건축가다 - 자연에서 발견한 가장 지적이고 우아한 건축 이야기
차이진원 지음, 박소정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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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새에게 누가 이런 천부적인 재능을 준 것일까? 재봉새가 지은 둥우리를 보지 않는다면, 둥우리 건축에 있어서 조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특히 더 우수하다고는 절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고 깜찍한 재봉사들은 거미줄이나 나방의 실을 이용하며, 자신의 날카로운 부리를 바늘 삼아 잎을 한 땀 한 땀 꿰매어 가장 편안한 아기 방을 만든다.     P.35

 

전 세계에는 9천여 종의 조류가 있다. 이들은 알 하나하나에 생명의 에너지를 담아 대를 잇는다. 새가 둥우리를 짓고, 둥우리가 알을 담고, 알이 새가 되는 대자연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연구자이자 생태 화가인 차이진원이 대자연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조류가 어떻게 온기 가득한 집을 짓는지 관찰하고 이를 섬세한 손길로 그려낸 것이다. 새 둥우리를 통해서 자연의 신비를 발견하고, 자연 속에서 건축의 원리를 읽어 낸다니 낯설지만, 그만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도심에서는 새 둥우리를 볼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자세히 지켜보면 집 근처나 거리에 있는 나무 꼭대기에 지어진 둥우리를 만날 수도 있다. 보통은 커다란 나무의 꼭대기에 자리한 경우가 많아서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더라도, 형태가 어떤지, 얼마나 수많은 나뭇가지들로 탄탄하게 둥우리를 지었는지는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새 둥우리 하면 나뭇가지가 얼기설기 얽힌 접시 모양만 생각했다. 그런데 새 둥우리가 참으로 각양각색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저자는 새들의 다양한 둥우리 만들기 방식을 설명할 때 재봉사, 편직 장인, 미장이, 동굴 파기 전문가, 짐꾼 등으로 새들을 묘사하며 각기 새들이 어떤 방식으로 집을 짓는지를 알려 준다.

 

 

굴뚝새는 '벌판의 가왕'이라고 불린다. 체형은 작고 아담하지만 힘이 넘친다. 번식철이면 예쁜 목소리로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새 둥우리를 여러 개 지어내는데, 지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둥우리를 다 지어도 힘이 남아 돌아서, 남의 알을 부리로 쪼거나 새끼를 죽이는 등 다른 조류와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족끼리도 서로 죽이는데, 외형만 보거나 아름다운 노랫소리만 들어서는 굴뚝새의 이런 잔인함과 난폭성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p.121

 

가장 인상적이었던 새는 바로 '재봉새'였다. 작고 아담한 체구의 재봉새는 바늘과 실을 이용한 재봉술로 둥우리를 짓는다. 뾰족한 부리를 바늘 삼아 잎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고, 식물섬유와 거미줄을 구멍 사이로 통과시킨 뒤, 실 끝부분을 공 모양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머니 모양으로 꿰맨 후, 그 안에 가느다란 풀과 솜털을 채워 넣으면 완성이다. 책에 수록되어 있는 섬세한 일러스트를 보자면, 재봉새가 만든 둥우리는 정말 실과 바늘로 만들어낸 것처럼 보여 신기했다. 그 외에도 새들에 관한 흥미로운 정보들과 새 둥우리를 분류하고 측량하는 방법 및 새 둥우리 관찰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어 매우 유익한 책이었다.

 

 

당연하게도, 종류가 다른 새는 짓는 둥우리도 다르다. 저마다의 깃털처럼 각자 특생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둥우리를 자연 속에서 발견했을 때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간단한 분류법과 관찰법을 익혀 둔다면, 새 둥우리를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조류는 대개 봄에 짝을 찾고 둥우리를 짓는다고 한다. 보통 고지대 조류는 3~5월, 저지대 조류는 4~6월이 번식 절정기라, 이 짧은 4개월 동안이 조류가 둥우리를 짓고 번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적기인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조류의 삶에서 가장 감명 깊은 장면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새들과 신기한 형태의 새 둥우리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자연과학 도서이자, 실제 사진보다 더 리얼하고 아름다운 생태 화가의 매혹적인 그림들을 만날 수 있는 관찰 도감이다. 조류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공룡부터 까치, 제비 등 익숙한 새는 물론, 둥우리를 바느질하는 새, 자동차만한 둥우리를 짓는 새, ‘깃털 달린 피카소’라 불리는 새까지 신기하고 놀라운 새들의 건축 이야기와 생활상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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