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장례식 제제의 그림책
마리에 오스카손.지바 라구나트 지음, 로스 키네어드 그림, 김경희 옮김 / 제제의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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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길에서 지렁이를 발견한다. 움직이지 않는 지렁이를 보고 아이들은 죽었다고 생각해 장례식을 치러 주기로 한다.

 

노래는 내가 부를게! 나도 할래. 아냐, 내가 할 거야. 내 목소리가 더 커!
좋아, 그럼 다 같이 부르자.

 

겨우 노래 부르는 것부터 서로 자기가 부르겠다고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은 과연 지렁이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러줄 수 있을까.

 

 

각자 지렁이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도 제각각, 지렁이를 나뭇잎 위에 올려두다가 떨어뜨리기도 하고, 땅을 파는 것도 익숙지가 않다. 엄숙하고 슬픈 장례식이 아니라, 그저 재미있고 색다른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장례식이라는 절차가 이제 다시는 상대를 볼 수 없게 되는 거라는 걸 아이들이 인지하고 있어, 지렁이를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각자 지렁이를 위해 한마디씩 남기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 책은 '죽음'이라는 것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경쾌하고 발랄하게 다루고 있다. 아이들 버전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인 셈이다. 아이들은 땅 속에 묻힌 지렁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한다.

 

그럼 이제 뼈만 남는 거야?
내일 가서 파 보면 알겠지, 뭐!

 

아이다운 순수함이 잘 드러나 있는 장면이라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사실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 궁금한 건 어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해 일곱 살이 된 아이가 어느 날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극중 캐릭터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이도 벌써 '죽음'이라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읽기에 전혀 슬프거나 어두운 내용 없이 밝게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말이다. 게다가 마지막에 깜찍한 반전도 숨겨져 있어 아이들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강렬하고 선명한 색감과 단순한 그림체 속에서 개성 있고 장난기 넘치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친근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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