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만 헤어져요 - 이혼 변호사 최변 일기
최유나 지음, 김현원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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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일을 하면서 나중에 내 아이가 크면 한 가지 해주고 싶은 말은 생겼다. 바로, "잘 싸우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것. 안 싸우는 사람은 무조건 참기만 하는 사람이라 오히려 좋지 않다. 싸울 때 상대방에게 현명하게 주장을 전달하고 서로 원하는 것을 잘 조율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뭐든 잘 해낼 사람이다...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도 그걸 나쁜 방식으로 표출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결혼 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필요한지 자주 느낀다. 잘 싸우는 것, 정말 중요하다.    p.117

“수십 년을 맞고 살았는데그 인간이 나보고 몸만 나가라네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이가 내 친자식이 아니래요.”

"저도 일하느라 힘든데, 집안일까지 전부 제 책임이라뇨!"

“시어머니가 부부 관계까지 간섭하세요.”

“제 와이프랑 제 친구 남편이 바람이 났어요.”

 

이 무슨 막장 드라마 속 이야기냐 싶겠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현직 9년 차 이혼 전문 변호사인 최유나 변호사, 일명 최변의 인스타툰 <메리지 레드>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그녀가 직접 다뤘던 사건, 법정에서 방청했던 사건, 다른 이에게 전해 들은 사건 들을 조금씩 각색해 최대한 실화에 가깝게 재구성한 것들이다. <메리지 레드>는 작년 9월 연재를 시작해 순식간에 16만 팔로워를 모으며 인스타툰 최고의 화제작이었고, 이번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1심에서 피고의 유책 사유가 인정되어 이혼이 된 것이어서, 2심에서 이혼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피고는 오랜만에 만난 원고에게 눈물을 흘리며 제발 심사숙고해달라고 매달렸다. 많이 늦었다는 것을 피고도 알고 있었다. 1시간의 조정 끝에 피고도 이혼을 받아들였다. 모두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피고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불러봐도 될까, 여보. 나랑 사느라 고생 많았어."

1심부터 2심까지 오직 이혼만을 외치던 원고가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네."    p.268~269

한때 황혼 이혼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뉴스 보도가 많았다. 주로 자식이 성인이 되고 나서 혹은 자녀들을 결혼시킨 뒤에 이혼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에게는 결혼 생활이 어느 순간부터 자식을 키워내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숙제였던 것이다.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정작 자기 삶은 제대로 돌볼 시간조차 없었던 부모님 세대들의 이야기가 와 닿고, 이해되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은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최변 역시 변호사가 되고 나서야 요즘 젊은 세대들 대부분은 상상도 못 할 심각한 폭행이나 상습적 외도 등을 모두 자식의 안위를 위해 견디고 덮고 그냥 살아오신 분들이 실제로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이혼을 결심하게 된 많은 이들이 갈등의 원인을 "먹고 사느라 바빠서"라고 하는 것도 매우 공감이 되었다. 결혼 전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전부가 아니었지만, 부부가 되고 아이가 생겨 가족이라는 것을 만들고 보니 사랑 같은 감정 따위보다는 오직 서로에 대한 책임감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이혼 상담을 위해 변호사를 찾는 이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한 번쯤 또는 지속적으로 겪는 문제일 것이다.

'둘이 되어 사는 결혼, 그리고 다시 하나가 되는 이혼, 그 이혼을 돕기도, 막기도 하는 변호사의 이야기는 미혼에게도, 기혼에게도 삶을 헤쳐 나가는 나가는 법을 알려 주고 있다. 다소 자극적이고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결코 웃음을 놓치지 않는 특유의 재치와 귀여운 그림체가 심각한 내용조차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작품이었다. 인스타툰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미공개 에피소드 5편과 좀 더 깊은 속마음을 드러낸 에세이 17편을 추가로 수록하고 있으니, <메리지 레드>의 팬이었다면 단행본으로도 만나보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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