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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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룰포를 회상하며'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작가의 작품이 3백 페이지도 되지 않지만 소포클레스의 작품처럼 광대하다고 말했다. 과감하게도 셰익스피어보다 훨씬 놀라운 작품 수를 자랑하는 작가로 자신의 비유를 완성한 것이다. 여기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작품의 광대함과 작품의 수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문학계의 오랜 진실을 지적했다. E.M.포스터도 T.S.엘리엇을 이런 식으로 언급했다. 윌리엄 포크너는 셔우드 앤더슨을, 아이작 싱어는 브루노 슐츠를, 존 업다이크는 보르헤스를 이렇게 언급했다.    p.34

전부터 위화 작가의 산문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궁금했었다. 기존에 에세이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강연을 바탕으로 엮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 출간되었었고, 이번 작품은 국내 출간되는 네 번째 에세이이다. <허삼관 매혈기>, <인생>, <7> 등 그의 소설들을 흥미롭게 읽어 왔기에 그러한 작품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산문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은 '문학과 음악을 넘나들며 자신에게 필요한 테크닉을 정신 없이 빨아들였던 청년기 위화를, 오랜 수업시대를 끝내고 이제 막 예술가로서의 자립을 성취한 30대 후반의 위화가 회고하고 있다. 아이작 싱어, 윌리엄 포크너, 루쉰, 카프카, 보르헤스 등 탁월한 작가는 물론, 말러, 차이콥스키, 브람스 등 위대한 작곡가까지, 위화 작가가 젊은 시절에 만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어 흡사 비평집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너새니얼 호손과 쇼스타코비치는 1804년부터 1864년까지 살았던 미국인과 1906년부터 1975년까지 살았던 러시아인으로, 한 명은 문학 작품을 쓰고 다른 한 명은 음악 작품을 썼다. 완전히 다른 시대에 판이하게 다른 운명을 살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거리는 그들 사이에 놓은 한 세기보다 더 멀다. 하지만 내면의 의지를 들여다보면 두 사람이 똑같이 고집스럽고 빈틈없다. 그런 영혼의 유사성 때문에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때때로 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너새니얼 호손과 쇼스타코비치는 신비한 동일성 덕분에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시간만큼 긴 서술에서 동일한 클라이맥스를 경험했다.    p.287

위화는 '윌리엄 포크너'에 대해서 '타인의 글쓰기에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라고 말한다. 마치 열여덟 편의 장편소설과 수많은 중단편소설을 단숨에 완성한 뒤 옥스퍼드나 멤피스에서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것 같다며, 기교 수준이 아니라 입신의 경지에 이른 서술의 능수능란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 작가의 창작이 다른 작가의 창작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 문학이 계승된다는 관점으로 읽어 낸다. 장 폴 사르트르가 카프카를 읽고, 보르헤스가 오스카 와일드를, 알베르 카뮈가 윌리엄 포크너를, 보들레르가 앨런 포를, 유진 오닐이 스트린드베리를, 서머싯 몸이 도스토옙스키를 읽었을 때 역시 문학에서 매우 감동적인 만남의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위화는 이 책의 서문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한꺼번에 연주되는 음표의 활기찬 움직임과 달리, 글자는 한 줄 한 줄 조용하게 배열돼 있어 잠에 빠진 듯 조용하다고. 그런데 독서는 겉으로만 조용해 보이지 사실은 거세게 일렁이는 물결과도 같다'고 말이다. 독자는 누구나 자기만의 경험과 느낌으로 책을 읽기에, 사실 독서란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책 속의 상황과 순간, 이야기를 소환하거나 예전에 다른 작품을 읽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위화는 바로 이것이 '독서의 화성'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풀고 남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이 책에서 자신은 비평가가 아니라 독자 혹은 청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생각할 것이다. 그가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수준은 웬만한 비평가 못지 않게, 날카롭고, 깊이가 있다고. 특히나 후반부에 나오는 음악과 문학의 만남에 이르면, 그야말로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그의 글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을 함께 읽어내는 대목은 정말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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