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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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됐을 때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말이 많아 지겨운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한스 피터는 자신의 행동으로 정체가 노출될 때 사람들이 보이는 혐오감과 공포 반응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아주 고통스런 순간이 닥치면 어서 빨리 죽여달라고 애걸하는 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한편, 그의 정체를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들도 있다. 카리는 말없이 한스 피터를 빤히 바라봤다.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서 영민함이 엿보였다.   p.28

스릴러의 교과서라 불리는 《양들의 침묵》을 통해 미국 출판 사상초판 최고 판매부수’, ‘최고 계약금’, ‘최대 판권료라는 3대 기록을 갱신하며 스릴러 문학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작가 토머스 해리스의 신작이다. 13년의 칩거와 공백을 깨고 발표한 신작이라 무려 1,000만 달러가 넘는 선인세를 기록해 출간 전부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를 통해 세상에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대악을 창조한 토머스 해리스는 이번 작품에서 엽기적 살인마이자 장기 밀매업자인 한스 피터라는 악인을 창조해냈다. 강도, 강간, 살인, 장기 밀매를 하는 그는 여성을 납치해 장사를 하고, 더 이상 팔아먹을 수 없게 되면 신체를 훼손해 그것 또한 고객들의 변태적 취향을 충족시키는 일에 사용했다. 요즘 그는 액화 화장 기계를 사용하곤 했는데, 이 기계를 사용해 시신을 처리하게 되면 탄소 발자국은 물론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액체는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동기나 이유도 없이 평생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온 그는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소유로 알려진 대저택에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금을 찾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 비밀스러운 대저택을 관리하는 것은 스물다섯의 젊은 여성 카리 모라였다.

그는 마음이 잠들 수 있도록 오래된 기억의 방들을 헤매고 다니다, 마침내 어렸을 때 파라과이 집에 있었던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대형 냉동고 앞에 도착했다. 그는 냉동고 앞에 있었고, 냉동고 문 사이로 부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냉동고 문을 열고 나올 수 없었다. 슈나이더가 완벽한 사슬 매듭 기법을 써서 냉장고 문을 체인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매듭을 흔들어서 사슬의 연결 고리들이 모두 맞물리도록 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p.189

카리 모라는 어릴 때 전쟁터에 끌려가 콜롬비아의 내전을 겪었고, 현재는 TPS(임시보호상태)라는 불안한 신분으로 미국에서 9년째 살고 있다. 어릴 적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낮에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새와 작은 동물들을 재활 치료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밤에는 저택 관리사로 일하며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곳은 한때 마약왕에 살인자이며 피에 얼룩진 갑부로 콜롬비아의 한 건물 옥상에서 경찰에게 사살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소유였던 집이었다.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영화 촬영 장소로 임대를 하고 있는데, 촬영 팀이 그곳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녀가 저택에서 이런 저런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미국 정부로부터 추방당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관리하는 저택에 어떤 비밀이 있고, 그것 때문에 이 저택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한니발 렉터를 넘어서는 괴물이 탄생했다'든지, '클라리스 스탈링처럼 인상적인 주인공'이라는 평가에 대해서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작가가 워낙 오랜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스릴러, 장편소설이라는 장르에 비해서는 페이지 수가 많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는 작품이긴 했다. 어쩌면 <양들의 침묵>이라는 엄청난 작품에서 비롯된 기대치 때문일 수도 있고, 작가가 기존의 작품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추구했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절대적 악인이라는 캐릭터와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여성 캐릭터가 인상적이긴 했다. 과연 토머스 해리스가 이들을 주인공으로 다른 작품을 더 만들어낼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30주년 기념 특별 에디션으로 <양들의 침묵> 3부작도 새롭게 출간되었다. 심플한 표지로 새 옷을 입고, 새로운 번역을 통해 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출간되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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