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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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모두는 과거의 강대국이 흐릿한 햇살 속에 폐허가 된 채로 누워 있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뉴욕 업타운의 고요한 교외 지대를 말을 타고 가로질러서, 아직도 위태롭게 걸려 있는 브루클린 브리지의 동체를 타고 롱아일랜드로 건너가, 창백한 허드슨강의 유령 너머로 저지시트를 건너다보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붕 없는 집들, 버려진 쇼핑몰과 모래로 뒤덮인 주차장만으로도 불편한 기분은 충분했다.    p.63

20세기 중반, 석유와 석탄과 천연가스의 소비 속도가 급증해 세계의 에너지 자원이 곧 고갈될 거라는 징조가 있었다. 결국 해결 방법이 없는 전 지구적 규모의 에너지 위기가 나타났고, 한때 번영을 누리던 국가들의 경제가 주저앉아 버렸다. 파국은 순식간에 찾아왔고 10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러다 교통이 완전히 정지해 버리고, 나라 전체가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숨통이 끊어져 가는 거대 도시에 만연한 폭력과 약탈을 피해 멀리 떨어진 소도시로, 안전한 농촌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도시는 차츰 텅 비어갔다. 미국인들은 마지못해 짐을 싸 들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2030년에 이르자 미국은 완전히 버려진 땅이 되고 만다. 한때 붐비던 도시들은 그렇게 고요한 폐허로 전락해버린다.

그리고 백년 뒤, 2114년 유럽에서 꾸려진 탐사대가 한 세기 전에 버림받은 대륙 아메리카로 출항한다. 아폴로호에는 선원들과 과학 탐사대 외에 몰래 밀항한 스물 한 살 청년 웨인도 있었다. 그는 제2의 아메리칸드림을 품에 안고 폐허가 된 미국을 재건해 자신이 새로운 통치자가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20년전 미국 원정대에 소속되어 일을 하다 행방 불명된 아버지를 찾고 싶기도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얼굴도 모르지만, 아메리카 어딘가에서 찾아내게 될 거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아메리카에 대한 환상을 바탕으로 꿈을 이루고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나름의 계획이었다.

 

“그래, 물론 지금 아주 치명적인 전염병이 다가오고 있긴 하단다. 아주 전염성이 높고 치료제도 존재하지 않는 질병이지.”

“박사님도 알고 계세요?”

“알다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질병이니 말이다. 그 질병은타인이라는 이름이지. 머지않아 이곳에 도달할 게야. 지금까지보다 훨씬 큰 원정대를 이루고, 이 땅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고 열의에 가득 차서……”    p.281

아폴로 원정대의 주목적은 최근 아메리카 대륙에서 검출된 방사능 수치 증가의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미국에 도착하면서 항구에 가라앉아 버린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 황금으로 가득한 뉴욕의 땅과 마주한다. 건물에서 쏟아진 금가루가 바다로 흘러 들고 있었고, 막대한 부에 대한 기대로 그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황금빛 해변과 달리 오랫동안 버려졌던 대륙에는 거대한 타워와 버려진 쇼핑몰, 지붕 없는 집들과 건물 사이 골짜기를 메운 모래 언덕들로 창백한 유령처럼 보인다. 과연 이들은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특별한 '아메리카'를 찾아낼 수 있을까? 웨인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되어 폐허가 된 미국을 재건시킬 수 있을까?

현대문학에서 시작하는 'JGB 걸작선' 그 첫 번째 책이자,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이 작품의 후기에서 자신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진짜 '아메리카'는 맨해튼이 나 시카고의 거리나 중서부의 농업도시가 아니라 할리우드와 대중매체가 빚어낸 가상의 공간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할리우드가 현실보다 훨씬 영향력이 강한 가상의 미국의 이미지를 널리 퍼트리고 있어, '미합중국'이 마치 24시간 내내 방영되는 가상현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환상으로부터 가상의 미국을 구축해, 아메리칸드림의 매력적인 껍질 아래 도사린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22세기 콜럼버스들의 두 번째 신대륙 발견 여정을 따라가면서 디스토피아 렌즈를 통해 미국 문화의 최악과 최고를 특유의 환각적인 내러티브로 보여 주고 있다. 디스토피아가 된 미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리들리 스콧 제작으로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기도 하다. 'JGB 걸작선' 그 다음 작품은 <콘크리트의 섬> <밀레니엄 피플>이 출간될 예정이다. 세계문학 단편선을 통해서만 만났던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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