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Gift Edition) (유시민 친필 인쇄 문구가 담긴 청춘의 노트 포함)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소설가라면 장편소설을 하나 쓸 것 같다. 제정러시아 시인의 작품 하나가 어찌어찌하여 식민지 조선에 날아들어 민들레 홀씨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퍼져나가고, 해방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거친 오늘까지 우리의 마음을 울리게 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무수한 필사, 해적판 인쇄, 번역을 거치며 내려오는 동안, 이발소 액자를 만든 사람, 조잡한 그림을 그려 넣은 사람, 나무판에 그것을 조각해 넣은 사람, 그것을 보고 감동과 위로를 받은 사람, 켜켜이 쌓인 그들의 마음을 그려 보고 싶다. 이런 것이 바로 시의 힘, 문학의 힘이 아닐까.   p.97

살다 보면 누구나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려오다 보니 곁에 있던 사람들과 다른 길을 선택해 멀어져 가기도 하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길이 사실은 막다른 골목이나 낭떠러지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길을 잃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지나온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혹시 지난 시기의 내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를 차분히 되짚어본다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이 어렴풋이 보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해서 쓰여졌다.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이 청년 시절 품었던 의문들, 그리고 오늘날 젊은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뜨거운 질문에세상을 바꾼 14권의 고전으로 답한 책이다. 한때 몸담았던 공직을 떠난 후 인생의 중턱에서 갈림길과 마주했을 때, 그는 청춘을 함께했던 책들을 다시 집어 들었다. 삶에서 이정표가 되어준 책들,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도움 받았던오래된 지도를 펼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에 깊고 뚜렷한 흔적을 남겼던 책들이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처음 만났을 당시와는 무척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독자도 같은 책을 두 번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처음 읽었던 책과 두 번째 읽은 책이 다를 것이고, 내가 오래 전 읽었던 책과 지금 읽는 책이 다르게 와 닿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E.H. 카 선생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50년을 살면서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 것이다. 그는 내게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안의 기적을 일으켰고, 어느 정도 내 삶을 바꾸어놓았다. 다른 삶을 살았더라도 가치 있는 삶일 수 있었겠지만, 그의 영향을 받았던 실제의 내 삶에 나는 불만이 없다.   P.319

이 책은 < 청춘의 독서> 30만 부 돌파 기념으로 만들어진 특별 한정판이다. Gift Edition은 모던한 디자인의 멋진 케이스 안에 담겨 있다. 상자 안에는 유시민 작가의 친필 인쇄 문구가 담긴 다이어리 북 <청춘의 노트>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나 노트에는 작가가 직접 손으로 쓴 문장이 수록되어 있어, 기존에 이 책을 읽었던 이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도 제격이다. 책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고급스러운 케이스에 노트와 함께 담겨 있어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에디션이니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 문고판 책이 많았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그는 이 소설 도입부의 문장 하나에 그대로 꽂혀버려서 책을 중간에 덮을 수가 없었다고, 결국 다음 날 오후까지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상하 두 권을 다 읽었다고 한다. 유신 정권의 학생운동 탄압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절, 침침한 스탠드 불빛 아래 엎드려 숨소리도 내지 않고 밤새도록 읽었던 <공산당 선언>, 돌이켜 보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목숨 걸고 읽었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온몸이 울렁거리는 기분으로 읽어 내려갔던 책이었다. 그리고 연애소설로 위장한 역사소설이며 정치소설이라고 생각하는 푸시킨의 <대위의 딸>,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압축한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최인훈의 <광장>, 영등포 구치소의 0.7평짜리 독방에서 읽었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군에서 막 제대하고, 학교에서는 제적당했는데 어디 오라는 데도 없고 특별히 갈 곳도 없던 시절에 읽었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등등... 그가 다시 꺼내든 책들은 모두 긴 세월 축적된 생각의 역사 그 자체이자 청년 유시민을 만든 원천이었다.

학창시절 읽었던 책을 10년 뒤에, 혹은 20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 여전히 그 작품이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란 거의 없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또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학창시절에는 어렵게 느껴지거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작품인데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고 보니, 쉽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바뀌어 읽히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말이다. 작품은 그대로지만 시간을 지나면서 책을 읽는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긴 세월이 지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과거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이 책은 그런 점 때문에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저자의 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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