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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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하나 상자 속 나라에는 손을 댈 수 없다. 상자 밖은 무방비다. '죽음'도 존재한다 어린 시절, 아득히 멀리에 있던 그것은 점점 가까워진다.

삼촌이 세상을 떠나고 이불 속 유해를 마주했을 때, 한순간 무서웠다. 그러나 깨끗이 닦고 관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가 훅하고 바뀌었다.

유해는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두려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안도였다.   p.46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는 안다.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아있게 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어떤 날이라는 것을. 그저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수많은 날들 중에 어느 한 순간이 오래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 수록 조금씩 더 좋아지는 것이 바로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다. 사실 마스다 미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에 굉장히 특별한 사건이나, 엄청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만드는 일들은 없다. 그녀는 그저 지극히 평범하고도 사소한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시간들 속에서 위로 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당신의 하루 또한 절대 별 볼 일 없지 않다고, 일상의 수많은 그 순간들이 쌓여 당신이라는 세계를 만들어 간다고, 그러니 당신의 오늘은 너무도 소중한 시간들이라고 말이다.

그녀의 만화를 읽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오늘의 인생>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원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시선을 사로 잡는 표지처럼 따뜻하고 활기차고 기분좋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작품이 나온 그 즈음에 나는 아버지의 완전한 부재라는 상실을 겪고 있었고, 마스다 미리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일상을 보내는 에피소드가 짧게 나마 등장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하나의 에피소드 때문에 그만 감정의 둑이 툭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슬픈 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밤에 눈이 퉁퉁 부어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마스다 미리 특유의 담백한 그림과 대사가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슬픔을 강조하지 않고, 억지로 감정을 짜내려고 하지 않기에 그 뒤에 숨어 있는 마음들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번 작품 <영원한 외출>에서는 본격적으로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들과 죽음 이후 슬픔과 상실감을 보여 준다. 하지만 역시나 '신파'가 아니라 작가 특유의 덤덤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라 더욱 애틋하고 뭉클하다.

 

 

같이 가주었더라면 좋았을걸.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때 같이 가고 싶지 않았던 내가 아버지의 딸이다.

정말로 가고 싶으면 혼자라도 갔을 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어주길 바란 게 아닐까. 그러나 "아빠, 다녀오시죠? 혼자 가볍게." 하고, 두 번 다시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쓸쓸한 일이었다.   p.94

이야기는 삼촌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삼촌이 세상을 떠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진다. 구급차에 실려가 병원에서 암선고를 받고, 남은 시간이 대략 6개월이라는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아버지는 퇴원한다. 검사고 치료고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던 아버지는 어째선지 목소리에 생기도 돌고,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마스다 미리는 그렇게 아버지와의 소소한 일상을 이어간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 듣게 되는 그 시절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 온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든, 사고를 당하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든, 전혀 예상하지 못했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가족을 떠나 보내고, 장례를 치르고, 여러 가지 행정 절차를 해야 하고, 일상이 다시 이어진다. 누군가 죽는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살아 있는 이들은 또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아무렇지 않게, 가끔은 웃고, 가끔은 후회하고, 또 가끔은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마스다 미리처럼 아버지와는 유독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나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성격이었고, 성미가 급해서 자주 발끈하셨고, 애정 표현에 서툴었고, 바로 그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식 걱정 많은 아버지였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늘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하는 아버지였다. 사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는 독립해서 따로 살았기 때문에 본가를 떠난 지 꽤 오래 되었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연락하거나 명절 때마다 찾아가는 자주 미루던 딸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 동안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실감이 나지 않은 채 일상을 보냈다. 아이와 일상을 전쟁처럼 보내느라 늘 녹초였고, 바빴고, 피곤했다. 그러다 가끔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보게 되면 시간이 멈추곤 했다. , 이제 아버지는 더 이상 이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구나.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스다 미리의 말처럼 '소중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잃었다고 해도 있었던 것을 내가 알고 있으니 그걸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는 나는 이렇게 살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지만, 그것이 어쩌면 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분인지도 모르겠다는 그녀의 말이 너무도 따스한 위로 같았다.

 

마스다 미리는 말했다. 인생은 계속 이어진다고. 오늘의 인생을 넘기면, 그 다음의 오늘의 인생이 있고, 내일의 내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내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가까운 이의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 이후의 삶에 더 포커스를 맞춰 아버지의 딸의 삶을 그리고 있어 더 공감되었고,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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