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리퀄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선 옮김 / 에이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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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일어나 앉았다. "왜 못 해요? 그러면 여왕이 될 텐데."

"나는 여왕이 되고 싶지 않아! 내가 되고 싶은 건... .나도 모르겠어. 결혼을 할 거라면, 나는 사랑과 로맨스와 열정이 있었으면 해. 사랑에 푹 빠지고 싶다고." 캐스는 찻잔에 차를 따랐다. 손이 떨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상기되었다. 왕 이야기와 재버워크의 습격 탓일 거야... 그렇지만 대체로는 꿈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p.9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에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던 인물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하트 여왕이 아닐까 싶다. 앨리스의 말대꾸에 분노로 얼굴이 벌게져 "저 아이의 목을 쳐라! 목을...." 이라고 소리부터 버럭지르던 하트 여황.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심기를 불편하게 해도,, 금세 불같이 화가 나서는 일분에 한 번꼴로 소리를 지른다. "이놈의 목을 쳐라!" "저 놈의 목을 쳐라!" :당장 목을 쳐라!" 오죽하면 그날 여왕을 처음 만난 앨리스가 여왕이 사람들의 목을 베는 걸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을까. 크건 작건 모든 골칫거리를 잠재우는 여왕의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당작 저자의 목을 쳐라!" 이 작품은 바로 그 하트 여왕의 소녀 시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하트 여왕이 어떻게 참수형을 즐기는 냉혹한 미치광이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프리퀄인 셈이다.

마리사 마이어는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로 만났던 작가인데, 시리즈 첫 편을 '신데렐라'로 시작해 두 번째 작품은 빨간 모자, 세 번째는 라푼젤을 모티브로 썼고, 마지막 작품은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그려진 이야기였다. 지구에서 달로 건너간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인 '루나', 그리고 오랜 세월 지구와 동떨어진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지구인과는 너무도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된 루나인들을 기본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였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를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으로 해석해 그려냈었다. 그래서 이번 신작 역시 굉장히 기대가 되었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과 수수께끼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내가 어떤 걸 만들 수 있는지 당신은 먹어봐서 알잖아요. 나를 향한 개인적 감정이야 어떻든 간에, 사업적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다른 데서는 먹을 수 없는 가장 풍미 넘치는 케이크, 가장 달콤한 파이, 가장 부드러운 빵을 찾아 사람들이 왕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들 거예요."

하타가 뜻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캐스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베이커리를 열 계획이로군요."    p.368~369

캐서린은 하트 왕국 최고의 제빵사이자 자신만의 베이커리 가게를 여는 게 꿈인 소녀이다. 그 날은 바위 바다거북 만의 후작과 후작부인인 부모와 함께 왕의 파티에 초대장을 받아 무도회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후작부인이 골라준 붉은 벨벳 드레스 차림의 캐서린은 무도회장이 온통 흑백의 바다이자 당황한다. 그날의 드레스 코드가 흑백이라는 것을 어머니가 몰랐을 리가 없고,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키가 작고, 우유부단하고, 그다지 영리하지 않은 왕이, 그날 캐서린에게 프로포즈를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캐서린은 왕과 결혼할 생각도, 여왕이 되고 싶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왕의 고백을 피해 정원으로 도망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데, 그녀를 깨운 건 새로온 궁정의 조커 제스트였다. 그렇게 고양이 체셔, 회중시계 토끼, 공작 부인, 바다거북, 모자장수 등 원작에서 만났던 익숙한 캐릭터들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캐서린은 조커 제스트에게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고, 하트 왕국은 재버워크의 습격으로 소란스러워진다. 과연 캐서린은 왕의 구애를 피해 운명적인 끌림이 이끄는 대로 갈 수 있을지, 그녀의 소원대로 하트 왕국 최고의 베이커리를 시작할 수 있을지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펼쳐진다.

제빵사를 꿈꾸던 사랑스러운 소녀는 어떻게 잔혹한 하트 여왕이 되었을까. 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원작에 등장했던 모든 수수께끼와 비밀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 모든 동화의 결말은 여지 없이 해피엔딩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래서 결국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끝이 나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우리의 주인공이 이렇게 고난과 역경을 거치고, 괴롭힘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다 잘 될 거야. 라는 식의 이상한 희망 같은 걸 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첫 페이지에서 달콤한 레몬 타르트를 보며 반짝반짝 기뻐하던 캐서린은 마지막 장에서 누군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저자의 목을 쳐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한다면, 슬프지만, 아름다운 하트 여왕의 이야기를 꼭 만나 보길.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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