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의 유령 에프 그래픽 컬렉션
베라 브로스골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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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기 얼마나 있었어?

나도 모르겠어. 지금이 몇 년도야?

2019.

어디 보자, 100?    p.21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지만 여전히 사회 주류는 백인 이고 수없이 많은 차별과 혐오가 작동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소위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인종·계층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사회 곳곳에서 차별로써 존재하고 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러시아 이민자 출신 고등학생 아냐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고작 다섯 살이었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괴롭힘을 당했었다. 아냐는 뚱뚱했고, 옷도 중고 매장에서 사 입었고, 러시아 억양도 남아 있었으니 누가 봐도 그들과는 '달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고, 지금은 좀 더 좋은 옷을 입고, 억양을 고쳤고,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미국 학생처럼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아냐는 여전히 친구가 별로 없었고, 살 빼고 예뻐져서 잘나가는 애들이랑 어울리고 싶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냐는 딴 생각에 잠겨 걷다 숲 속에 있는 우물에 빠지게 되고, 그 안에서 외로운 유령을 만나게 된다. 유령은 우물 안에서 100년 동안 갇혀 있었고,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아냐의 등장을 굉장히 반가워한다. 아냐는 유령의 도움으로 지나가던 사람에게 도움 요청을 해서 그곳을 벗어나게 되고 학교 화장실에서 유령을 다시 만나게 된다. 자신의 뼈가 있는 곳을 떠날 수 없다던 유령은 아냐의 가방에 잘못 담긴 뼈 한 조각 덕분에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유령은 아냐가 시험 문제를 푸는 것을 몰래 도와주고, 관심 있는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등 아냐가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도와 준다.

 

 

 

에밀리.... , 진작에 물었어야 했는데, 그 우물에는 어떻게 빠지게 된 거야?

난 살해당했어.    p.89

아냐는 유령인 에밀리의 말대로 하니 진짜 성적도 오르고, 예쁘단 소리도 듣고, 짝사랑하던 남자에게도 관심을 받기 시작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 그렇게 아냐는 에밀리와 친구가 되어 오래 전 그 우물에 어떻게 빠지게 된 건지 묻는데, 에밀리는 자신이 살해당했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 살인자는 에밀리의 부모 두 분 역시 살해했고, 이후 사람들에게 발각되지도 않은 것 같다고. 안타까운 마음에 아냐는 당시의 살인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해보고, 범인이 어떻게 됐는지 자신이 알아내 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100년 살인 사건의 진상은 아냐가 알고 있던 그것과 전혀 달랐다. 그리고 어리버리하고, 순진해 보였던 유령 에밀리는 점점 더 낯선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과연 에밀리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며, 아냐의 학교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베라 브로스골은 우물과 유령이라는 소재로 성장기에 누구나 느낄 법한 열등감과 불안감을 깊이 있게 표현해 내고 있다. 평범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던 소재였는데, 생각보다 흥미진진했고, 나름의 반전도 있었고,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흐름과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성장기 소녀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유수의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그래픽노블 부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아이스너 상까지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만화라고도 불리는 그래픽 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띠며, 보통 보통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그래픽노블이 예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문맥적으로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이미지들이 너무 상징적이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누구라도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고 명징하게 전개되는 점이 장점이다. 성장소설로 시작해 미스터리로 흘러 가다 중반 이후에는 공포물처럼 오싹한 단계를 거쳐 다시 성장소설로 마무리되는 구성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도 이 작품만의 장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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