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없어도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여기 있는 출전자들은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갖고 있다. 세상에는 돌연히 발작을 일으키거나 치매를 앓는 등 눈에 띄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다. 아니, 애초에 육체와 정신 모두가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누구나 장애는 있다. 눈에 보이고 안 보이고의 차이일 뿐이다.    p.179~180

사라는 육상 실업팀에 입단해 오전에는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오후부터는 땀 흘려 연습하는 생활을 2년째 하고 있다. 선수권대회가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고, 자신의 최고기록을 경신하며 순조롭게 연습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회 당일에 최고 기록을 이끌어 내면 상위 입상도 노려볼 만했고, 1위로 입상하면 올림픽 참가 자격도 노려볼 수 있는 기회라 사라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이 모든 꿈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게 된다. 사고를 낸 것은 옆집에 사는 소꿉친구인 다이스케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자살 이후로 완전히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버렸고, 이후로는 그녀와도 전혀 교류가 없는 상태였다. 다이스케의 부주의한 운전으로 인한 결과는 참혹했다. 사고로 인해 사라가 왼쪽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하게 된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고 세계를 겨냥하던 사람이 한순간 갑자기 장애인이 되었을 때의 당혹과 절망이라니.. 아마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녀에게 다리는 그저 걷기 위한 부위가 아니었으니, 달릴 수 없는 그녀에게 다리를 빼앗기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다이스케와 그의 엄마는 사과는커녕 보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가 작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던 터라 위험운전으로 입증할 길이 없어 단순한 인신사고로 처리될 지경이었다. 사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은 가해자에게 증오의 감정이 솟구쳤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두 달 뒤, 다이스케가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상태로 발견된다. 담당 형사인 이누카이는 신체에 장애를 가진 자는 범행이 불가능하다는 동료들의 생각과 달리, 어쩐지 사라를 용의자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싶지가 않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라와 그녀의 부모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망한 다이스케의 교통 사고 관련 변호를 맡았던 인물로 악덕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가 등장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이누카이 형사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의 대결이 보여지는 살인사건 수사를 한 축으로, 사라가 의족을 착용하고 장애인 육상경기에 도전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라 씨랑 저는 같은 또래이니 공감대가 있을 거예요. 우리 세대는 툭하면 '너희는 한 명 한 명이 다 특별한 온리 원이야'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왔잖아요. 선생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녀석도 있긴 한데 똑똑한 녀석은 진작부터 그게 말도 안 된다는 소리라는 걸 알아차리고 적당히 수긍하는 척만 했죠. 도대체가 넘버원을 지향하지 않는 사람이 온리 원이 될 수 잇을 리가 없잖아요. 사람이든 조직이든 경쟁이 있어서 향상되는 거고요."   p.258

나카야마 시리치의 '감성 미스터리'는 사실 '미스터리' 보다는 '감성 드라마'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 같다. 미코시바 레이지가 등장한다고 해서 상당히 기대했는데, 사실 그가 플롯에서 맡은 역할은 미비한 편이고, 이누카이 형사와 그의 대결 구도도 그다지 비중이 큰 편이 아니다. 애초에 작가의 의도가 '젊은 여성이 치열한 투쟁 끝에 뭔가를 얻어내는 속 시원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사라가 사고로 다리를 잃고 나서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장애인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의족과 경기용 의족의 차이점, 그리고 의족을 했을 때의 착용감부터 육상 선수였던 사람이 장애인 스포츠로 방향을 바꾸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장애인의 능력을 초월하는 의족이라는 스포츠와 과학이 접목된 아이디어가 등장하는데, 그 자체로도 매우 흥미진진한 소재로 이야기에 흡입력을 더해주고 있다. 물론 감동적인 스포츠 드라마라는 플롯이 커다란 줄기를 이루고 있지만, 살인 사건의 범인에 대한 미스터리는 거의 후반부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나간다. 과연 사라는 부러진 날개로 다시 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미코시바 레이지가 가지고 있는 비밀은 무엇이며,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이 작품은 기존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들에 비하면 미스터리 적인 요소나 반전 등의 요소가 다소 약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가독성만큼은 여전히 뛰어나다. 그리고 스포츠 드라마라는 장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따뜻한 감성과 뭉클한 드라마도 좋았다. 비장애인의 삶을 살다가 의도치 않게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된 사라가 일상에서 겪게 되는 감정들을 통해 장애인들의 현실적인 난관과 사회적인 시선들이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어 시사성을 던져주고 있기도 하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48세에 늦깎이로 등단해서, 그 후 7년간 작품을 28편이나 써내는 왕성한 집필 속도를 자랑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국내에도 꽤나 많은 작품이 소개되고 있는데, 1월에만 무려 세 편의 작품이 나온다. 블루홀6 <날개가 없어도>를 시작으로 북플라자에서 <보호 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왔고, 이어 북로드에서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도 출간될 예정이다. 그리고 절판된 <안녕, 드뷔시>도 블루홀6에서 새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피아니스트 탐정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는 그 뒤로 <잘 자여, 라흐마니노프>, <언제까지나 쇼팽>, <어디선가 베토벤>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출간을 시작으로 해당 시리즈도 모두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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