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와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북이는 땅을 내려다보며 힘없이 말했다. "후회하고 있어."

"아악, 후회라니...." 달팽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건 서두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내가 떨고 있는 거 보이지?" 그는 부르르 떨었다. 그런 다음 말을 이었다. "나는 원래 절대 떨지 않아! 너의 후회 때문에 지금 이러는 거야. , 난 당장만큼이나 후회가 싫어."   p.40

<고슴도치의 소원>, <코끼리의 마음>에 이은 톤 텔레헨의 어른을 위한 소설 시리즈이다. 혼자 사는 외로운 고슴도치, 대책 없이 무모한 코끼리를 통해 작은 숲 속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했던 톤 텔레헨은 이번 작품에서는 언젠가 숲 속 일상을 떠나볼 생각을 품고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동물들이, 우리와 같은 일상의 고민들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어느 날 코끼리가 사막으로 떠나겠다고 다람쥐에게 선언한다. 언제 돌아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떠나는 이유도 모르겠지만, 여행을 떠나 보면 이유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코끼리는 광활하고 텅 빈 사막에 도착해 걷고 또 걷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기진맥진해진다. 그러다 숲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어디론가 영원히 떠나 버린 까치가 그리워진 개미는 심란해진다. 친구들 모두 까치를 찾아 나서고, 세상 곳곳이 까치를 찾아 헤매는 동물들로 가득해진다. 그러다 이제 그만 마음을 접어야겠다고 하는 순간, 까치가 다시 돌아온다. 개미와 다람쥐가 해변으로 떠나고, 달팽이와 거북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먼 곳이 너무 궁금했던 개구리는 길을 떠나지만, 사실 먼 곳은 실망스러웠다. 뭔가 특별한 걸 본 것도 아니었고, 사실 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먼 곳에 가 봤다는 것만으로도 개구리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다람쥐는 생각했다. 만약 그곳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여기가 전부라는 말이네. 그는 하늘과 평야, 멀리 있는 숲, 옆에 있는 개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야. 더 이상은 뭐가 없는 거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알아낸 것에 만족했다. 더 이상 뭔가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p.64

여행을 떠나야겠어. 라고 다짐했다가, 그냥 가지 말까.를 고민하는 다람쥐를 비롯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실행을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실망하고, 그저 가봤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도 하고, 끝내 떠난 여행에서 마주한 벽 앞에서 절망하기도 한다. 숲 밖의 여정이란 만만치 않다. 그냥 집에 있는 게 세상에서 가장 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이란 누구나 품어볼 수 있는 꿈같은 것 아닌가. 어쩌면 그저 떠나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내 일상이, 내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생이 있는 건 아닐까.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라면 내가 꿈꾸던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아. 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본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선물처럼 다가온다. 여행을 꿈꾸고, 망설이고, 떠나는 모든 이들에게 말이다.

 

톤 텔레헨의 작품들은 어른을 위한 동화 소설답게 사랑스러운 그림과 함께해서 더욱 좋다. 특히나 원서에는 없는 일러스트들이 국내 출간 버전에만 추가된 것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진지하지만 너무도 귀여운 동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잔잔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막상 낯선 곳에서 뭔가 잘 안 풀리면 다시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떠나려고 하니 이런 저런 걸리는 일들이 많아 망설이게 되는데, 떠나고 보니 내가 기대했던 그것과는 전혀 달라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톤 텔레헨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러한 마음 모두가 여행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사소한 순간들과 작은 마음들에 귀를 기울여주는 이야기라 뭔가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나 역시 매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일상을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