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자의 글쓰기 수업 -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영화 글쓰기 특강
주성철 지음 / 메이트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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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진심을 숨기고 직업적 글쓰기에 매진하는 순간에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어떤 영화에 대해 쓰는 행위 자체도 결국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항해여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 이 주인공을 통해 결국 나를 들여다봐야 하고, 그리하여 다른 사람도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글을 통해 영화와 관객 사이의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우리의 근본적인 목표다.   p.35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영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주성철 기자는 2000 4 1부터 35권의 <키노>, 155권의 <필름 2.0>, 571권의 <씨네21>을 만들고 있는, 그야말로 영화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거의 모든 영화 잡지를 거쳐온 인물이다. 20년 가까이 영화기자 생활을 해왔고,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화 종이잡지' <씨네 21>의 편집장이 들려주는 '영화 글쓰기'란 어떤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나도 한때 일주일에 영화를 6~7편씩 볼 정도로 영화광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잡지 <스크린> <로드쇼>, <키노> <프리미어> 그리고 <무비위크> <필름 2.0>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잡지를 매주, 매월 구독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책은 여타의 글쓰기, 작법에 관한 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움직이는 영화를 굳이 멈춰선 활자로 풀어 쓴다는 행위'는 문학적인 글쓰기와 태생부터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영화에 대해 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결핍을 안고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는 글쓰기의 글이란 그냥 블로그에 쓰는 에세이가 아니라, 특정 매체의 게재를 목적으로 한 청탁 받아 쓰는 '광의의 모든 영화글'이다. 영화기자나 영화평론가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그야말로 최고의 가이드가 되어 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혹은 대체 영화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던 사람들, 현재 유일하게 남은 23년 전통의 오프라인 영화잡지 <씨네21>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서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책이 될 것 이다.

 

영화와 다른 예술과의 가장 큰 차이점에 대해 '영화는 책갈피를 꽂아둘 수 없는 예술'이라고 말하곤 한다. 영화는 강물처럼 1초에 24프레임이 흘러가버리는 예술이기에 써야 할 장면이 기억나지 않으면 사실상 거기서 끝이다. '아는 만큼 쓸 수 있다'는 말을 바꿔서 영화글은 자기가 '기억하는 만큼' 쓸 수 있다.    p.215

지금은 사라져버린 한국 영화잡지의 역사들을 정리해둔 챕터에서는 오래 전 그 시절이 떠올라 추억에 젖어 보기도 하고, 영화기자의 치열한 일상에 대한 챕터를 읽으면서는 새삼스레 감탄하기도 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챕터는 <씨네21> 기자의 일주일, 그리고 1 365일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부분이었는데, 이 대목은 영화기자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그저 취미로 영화를 즐겨 보고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기자로서 써왔던 영화에 대한 글이나, 한국 영화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새삼스레 저자의 20년 내공이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리뷰를 쓰는 방법, 감독과 인터뷰하는 노하우 등도 매우 흥미진진했고, 그가 써온 글들과 취재의 배경과 뒷이야기 등도 담겨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관련된 챕터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문학적인 글쓰기와 차별화된 영화 글쓰기에 대한 팁과 노하우들이 굉장히 많이 담겨 있다. 영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억하는 만큼 쓸 수 있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일단 시작하면 자기 마음대로 감상을 중단할 수 없다. 내가 졸더라도 영화는 계속 흘러간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문학 비평이라 하면 써야 할 대목과 장면이 떠오르지 않으면, 책을 다시 보면 된다. 음악이나 미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반복해서, 혹은 찾아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영화관에서 최긴 개봉영화를 볼 때는 그럴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방법은 영화를 보면서 메모를 하거나,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글은 기억력과의 싸움이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과 그러한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할 때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그 어떤 글쓰기 관련 책에서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영화계에 있었고,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여전히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저자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노하우가 담겨 있기에 이 책이 더욱 특별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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