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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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창작, 작법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읽었던 편이기에, 당연이 이 책도 읽었다고 생각했다.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이 오래 전에 출간되었던 <글쓰기 수업>의 개정판이라고 해서 책장을 살펴봤는데,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의 종류만 수십 권이 넘게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책들을 읽어놓고서 하필 이 책을 놓치고 안 읽었다는 걸 알고는, 부랴부랴 개정판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대체 이런 책을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는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수십 권의 관련 책들 중에 단연코 베스트 5로 손꼽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었던 것이다. 왜 이 책을 미국의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인생 책으로 손꼽는지, 왜 글쓰기의 고전으로 지난 25년간 한결같이 사랑 받아온 건지 저절로 납득이 되는 그런 책이었다.

 

 

그냥 그 모든 것을 종이에 적기만 하라. 당신이 보다 이성적이고 성숙한 상태에서라면 절대 쓰지 않았을 그 미친 여섯 페이지에 어쩌면 정말 대단한 어던 것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6페이지 맨 마지막 문단의 맥 마지막 줄에 당신 맘에 꼭 드는 내용이 있는데, 그게 너무나 아름답거나 멋져서 그제야 무엇을 써야 할지 또는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할지 감을 잡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앞의 다섯 페이지 반을 쓰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다.   p.68

대부분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글을 써보기 전에 뭔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종 글쓰기, 작법에 관한 실용서들, 유명 소설가의 작법서는 항상 스테디셀러가 된다. 하지만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 머리로만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몸이 움직이면 머리는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글쓰기가 육체적인 노동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글쓰기란 너무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글쓰기란 생각하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손을 계속 움직여 써 내려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만으로는 아무런 결과물도 생산할 수 없다. 그래서 글쓰기 훈련이 필요한 것이고 말이다. 폴 오스터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쓰기는 자신에게 육체적인 일이라고, 자신은 단어들이 늘 정신이 아니라 육체에서 나온다고 느낀다고 말이다. 물론 그가 초보 작가이던 시절 글쓰기가 그에게 생존의 문제였던 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글쓰기가 시간과 체력의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일단 엉덩이를 붙이고, 정해놓은 시간에 적합한 장소에 앉아서, 정해진 분량을 써야 하는 인내가 기본이니까 말이다.

,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너무도 바쁜 일상 속에서 애당초 글 쓸 시간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 매일같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해야 할 일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앤 라모트의 이 책은 그에 대한 거의 완벽한 해답을 들려 준다.

 

 

이것은 '작가라면 진정 어떤 식으로 진실을 말해야 옳은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역설적으로 말해, 작가는 궁극적인 진실을 찾아가는 사람이지만 그 길의 모든 단계에서 거짓말을 한다. 당신이 어떤 것을 꾸며 낸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진실의 이름으로 꾸며 낸다면, 그때는 진심을 다해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면 된다. 당신은 일부는 경험으로부터, 일부는 약간의 무의식으로부터 당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당신은 그들에 관해 정확한 진실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비록 그들이 당신이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p.108

이 책은 미국에서 창작 워크숍이나 학교 수업에서 교재로 널리 활용되는 글쓰기 고전이자, 1994년 출간된 이래 25년째 변함없이 아마존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전 세계 16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앤 라모트는 오랫동안 글쓰기 수업을 진행해왔고, 이 책 속에서 수업 당시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그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글쓰기에 관해 경험으로 터득한 모든 노하우와 함께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실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글 쓰는 삶' 자체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잘 쓰지 못할까 봐 두렵다는 이유로 글을 쓰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자신감이야말로 글쓰기의 원천이라고, 빈 문서를 앞에 두고 좌절과 외로움에 세차게 고개 저을 때에도, 앤 라모트는 아직은 책상을 떠나지 말라고 외친다. 그리하여 매일 일정 시간 책상 앞에 버티고 앉으면 뭐라도 쓰게 마련이고, 쓰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나아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하루 종일 쓴 것이 읽고 보니 엉망진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그러면 어떤가. 그냥 하던 대로 계속 밀어붙이고, 커다란 실수와 시행착오를 범하고, 많은 종이를 다 써버리라는 거다.

이렇게 실제로 글을 쓰는 방법과 스킬, 방법과 태도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앤 라모트만이 말해줄 수 있는 삶을 사랑하는 기술도 인상적이었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하는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주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라는 그녀의 말처럼 앤 라모트에게 글쓰기론이란 인생론이기도 하다. 진짜 잘 쓴 소설을 손에 쥐었을 때 우리는 첫 페이지 다섯 단어만 읽고도 이미 자신이 지면에 인쇄된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는지, 점심때가 되었는지 일할 시간이 되었는지 따위는 잊고 몽상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다.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 역시 독자들에게 그러한 경험을 안겨준다. 빈 종이를 앞에 두고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던 당신이라도, 이 책을 만난다면 뭐라도 쓰게 될테니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우리 감성에 맞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필요한 모든 요소는 이미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그러니 이 책의 원제(Bird by Bird)처럼,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차근차근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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