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의 생물학 여행 - 지구의 생명 속으로 떠나는 영국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
헬렌 스케일스 지음, 이충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첫 번째 강연의 스타는 태어난 지 여덟 달밖에 안 된 새끼 사자 맥스입니다. 영국 신문들은 이 특이한 초대 손님을 다루면서 이 새끼 사자는 자신에게 집중된 청중의 관심과 조명이 매우 불편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1937 12 29일자 <데일리 텔레그래프> "어린이들은 숨을 죽이고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라고 묘사했지요. 헉슬리는 사전에 청중에게 박수를 삼가라고 경고했습니다. "맥스는 다소 신경질적이거든요." 라고 덧붙이면서요.   p.63

런던 중심부의 분주한 거리에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주 잘 아는 방이 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해마다 이 방에서, 유명한 과학자가 왕립연구소 크리스마스 강연을 듣기 위해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1966년부터는 텔레비전으로 이 강연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과거와 현재의 강연들을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 이 크리스마스 강연을 창시한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오늘날까지도 이 강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강연을 듣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분명 크게 놀랄 것이다.

영국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은 대중에게 유익하고 흥미로울 만한 한 가지 과학 주제를 정해 그 분야 최고의 석학이 강의하고, 이를 연말에 BBC에서 연속 특집 방송하는 세계적인 행사이다. 1825년 런던에서 시작된 이 행사는, 현재 전 세계의 과학 팬들이 해마다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되었다. 200년 역사의 강연 중에서 시공간과 천문학을 주제로 한 우주과학 강연 13편을 묶었던 <열세 번의 시공간 여행>이 먼저 출간되었었고, 이번에는 생물학을 주제로 한 최고의 강연 11편을 선정하여 엮은 책이 출간되었다. 리처드 도킨스, 데즈먼드 모리스, 줄리언 헉슬리 등 유명한 강연자들이 연단에 섰고, 털로 덮인 포유동물과 화려한 식물, 꽥꽥거리는 새,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곤충과 그 밖의 많은 동물도 강연에 함께 등장했다. 이들은 지구에 사는 생물의 비밀 중 많은 것을 푸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경이로운 생명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주기 위해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를 데리고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산'의 기슭으로 하이킹을 떠납니다. 크리스마스 강연에서 진화라는 주제를 직접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도킨스는 언제나처럼 뜨거운 논란을 초래하는 위험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도킨스는 식물과 동물이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더 높은 차원의 지적 존재가 이들을 만들어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우주와 지구에 사는 생명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성장하는지 보여줍니다.  p.130

여러 가지 어린 동물을 강당으로 데려와 어린 동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청중에게 보여주었던 피터 차머스 미첼의 강의는 어린 시절의 동물 세계를 여행할 수 있도록 했고, 생물의 서식지에 대해 강의했던 존 아서 톰슨은 당시(100년 전)만 해도 생물이 전혀 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아주 깊은 바닷속 심해의 불가사의를 다루기도 했다. 희귀한 동물과 야생 동물의 멸종에 대한 강의를 한 줄리언 헉슬리는 새끼 사자를 강당에 데려와 배에 있는 얼룩 무늬를 청중들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동물의 움직임에 대해 강의했던 제임스 그레이는 영국박물관에서 빌려온 앤티크 장난감 차들과 박제한 치타를 청중에게 보여주며 살아 있는 동물은 모두 자동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걸 설명하기도 했다.  사라진 동물들이 남긴 흔적과 유해를 해독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 지구의 끝 남극의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생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로이드 펙의 강연도 있었고, 크리스마스 강연에서 진화라는 주제를 처음으로 직접 다룬 리처드 도킨스의 강연도 있었다.

원래 각각의 강연들은 축제 기간 중 며칠에 걸쳐 3~6시간 동안 진행된 것인데, 이 책에서는 각각의 강연자가 다룬 가장 흥미진진한 발견과 개념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나 이 책이 매력적인 부분은 전설적인 과학자들의 강연을 마치 강연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기적인 유전자>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강의에서는 중간에 깜짝 손님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쓴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였다. 그는 동물이 순전히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간 중심적 견해를 전개하는 부분을 청중에게 읽어 주었고, 이후 도킨스와 애덤스는 좋은 친구 사이로 우정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러한 크리스마스 강연은 당시의 여러 사회 문제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과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우리가 전설적인 과학자들의 연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놀라운 여행의 여정이면서, 다음 세대의 어린 과학자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이자, 우리가 처한 기후 변화 및 멸종 위기 생물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물론 세계적인 석학들의 흥미진진한 생물학 강연을 안방에서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니, 지구와 생명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고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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