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 어른인 척 말고 진짜 느낌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기
박산호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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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또 넘어질 것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넘어져도 될 순간과 안 될 순간을 구분하는 지혜를 기르고, 그렇게 넘어지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지니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이를 먹어가고 어른이 되는 묘미란 걸 요즘은 조금 알 것 같다.    p.50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어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외로운 분투를 응원하며, 라는 문구때문에 뭉클해졌다. 사실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라는 명사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그 책임이라는 것의 무게가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아서 그것에 따른 제대로 된 어른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저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거나,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긴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이에 가까운,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라고. 왜냐하면 다들 나이 드는 건 처음이니까. 다들 사는 게 처음이니까, 세상에는 처음인 것 투성이니 말이다.

박산호라는 번역가의 이름을 처음으로 머리에 새긴 건은 톱 롭 스미스의 걸작 <차일드 44>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이후로 존 하트,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로렌스 블록, 제이슨 매튜스, 존 코널리 등의 작품을 거쳐 최근 돈 윈슬로의 <더 포스>에 이르기까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작가들의 작품에 항상 이름을 같이 하는 믿고 보는 번역가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어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인 경우에도 옮긴이가 박산호라는 걸 알게 되면, 어쩐지 작품이 궁금해져서 찾아서 일게 되곤 한다. 그런 그녀가 써낸 에세이라고 해서 이번 작품은 정말 기대가 되었다. 영어나 번역에 대한 글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과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어른'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고 하니,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했다.

 

 

준비하다 탕 소리가 나자마자 달리는 경주 같은 인생에서 경주마처럼 눈이 가려진 채 헉헉거리며 달리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끝나버리는 인생이라면 너무 허망하다. 그보다는 이번 도쿄 여행에서 호텔을 찾아가다 길을 잃고 우연히 들어간 골목에서 담장 너머로 보이는 우아한 정원에 넋을 잃은 것처럼 인생에서 만난 우연한 순간에 감탄하고 싶다. 목적지로 최대한 빨리 직진하는 것보다 그 여정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참 맛이란 걸 느끼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알알이 느끼며 살고 싶다.    p.189~190

통역가를 꿈꾸다 읽고 쓰는 게 좋아 번역가가 된 후 16년 넘게 번역을 하고 있는, 이제는 베테랑 번역가로 이름만 들어도 믿고 지지하는 독자가 있는 위치에 있는 저자는, 여전히 자신이 진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지, 자각도 자격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결혼과 출산 후에 찾아온 우울증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고, 이혼 후 아이와 함께 건너간 영국에서의 삶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고 한다. 번역가로서 일을 하면서도 프리랜서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그 모든 날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깨닫는다. 인생이란 완벽하지 않으며,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어른이라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겨도 멈칫하지 않으며, 인생이란 선의를 주고받으며 서로 돕고 사는 걸 이제는 알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몸과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까지 무리해서 아둥바둥할 필요는 없다고도 말한다. 무엇보다 내 몸을 아끼고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지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배우는 것이 분명 있고, 넘어지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런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실패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있을 거라는 말에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만하면 괜찮아. 이만하면 아주 잘했어. 라며 나를 다독여주고, 나이를 먹어서 서글퍼지는 게 아니라 나이가 주는 위안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 괜찮은 어른, 느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어른이 되는 건 어렵다. 그러니  어른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당신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다. 사는 게 마음 같진 않지만 분명 인생이 다정해지는 시기가 온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 보자. 분명 내일이 되면 또 다른 희망이 당신을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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