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 - 시시한 행복이 체질이다 보니
김유래 지음 / 레드박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모든 환상을 사랑한다. 확실히 나는 발리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줄 것 같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가 되게 해줄 것 같은 환상. 동화 속 어린 아이처럼 유치함도 부끄러움도 모른 채 분홍빛 풍선껌 처럼 퓨우우웅 부풀어가는 환상이 이루어지길 전심을 다해 바란다.  p.110

풀빌라, 수영장, 울창한 숲이 있는 작은 마을, 힐링과 휴식 떠올리면 아마도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여행지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온갖 숲의 정령이 살고 있는 마법의 섬 발리의 우붓. 저자는 너무도 지쳐 있었던 어느 날 출근길에 길바닥에 주저앉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갑상생 호르몬 수치가 일반인에 비해 여덟 배나 높다는 진단을 받고는 회사에 사표를 낸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 있는 우붓으로 떠난다. 뭘 하든 걱정이 앞서고 긴장하는 소심한 성격에 서른 살 넘도록 혼자서는 잠을 못 자는 겁 많은 여자가 혼자 우붓으로 떠나 한 달을 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그녀가 우붓에서 어떻게 몸과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되는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요가하고 명상하는 하루가 당연한 곳, 명품 가방에 높은 구두를 신으면 오히려 부끄러워질 수 있는 곳, 휴대전화보다는 노트와 펜, 요가매트가 더 어울리는 곳, 그렇게 그 동안 소유하고 집착해왔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게 하는 곳.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그곳. 우붓은 울창한 숲과 야성미가 흐르는 강을 끼고 있어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불리는 작은 마을이다. 명상과 요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사랑 받는 곳이며 발리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정말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뭔가 치유가 될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라는 단어는 나를 묘하게 설레게 한다. ''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두 단어가 합쳐진 '여름밤'은 그 합만큼 더 설렌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여름날의 밤이면 뭔가 신나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p.233

사실 낯가리고, 겁 많고, 길눈 어두운 사람이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언젠가 나도 그녀처럼 혼자 한번 떠나보고 싶다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 같은 것이 생겼다. 그녀의 말처럼 '다녀온다고 인생이 바뀌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 소소하고, 누군가에는 시시해 보이는 행복이라도, 그 작은 것으로 하루를 또 버티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는 해외 여행을 주로 도심으로만 다닌 편이었는데, 이런 곳이라면 그 동안의 여행과는 또 다른 에너지를 내게 줄 수 있을 것 같아 발리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그럴 것이다. 시작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대체 이토록 쉬운 거였는데 왜 그리 어려웠을까 싶으니 말이다. 저자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던 일들을 하면서, 그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나쁜 것과 아픈 것들을 날려버린다. 자유라는 것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토록 쉬운 거였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소풍 가는 것처럼, 혹은 여행처럼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 인생은 원치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내몰고는 한다. 원하지 않아도,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삶이다. 그렇게 수많은 현실적 제약과, 반복되는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가끔은 머리보다 마음의 편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바로 이 책 속 그녀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