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고백록 현대지성 클래식 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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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잠잘 수는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한, 그런 것들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게 삶은 없었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꼭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원하는 어떤 것이 있어도, 내가 그것을 이루든 못 이루든 그 결과는 무의미할 것임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p.28

톨스토이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안나 카레니나>는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쓰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된다. <안나 카레니나>는 가장 완벽한 작품이자, 근대소설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지만, 작가에게는 그 한계를 깨닫게 해준 작품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톨스토이가 모든 예술을 부정하며, 예술작품으로서의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통렬한 심정으로 참회록을 쓰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 <톨스토이 고백록>이다. 이 작품을 집필 하고 나서 톨스토이는 위대한 작가에서 전 인류에게 훈계하는 계몽주의적 스승으로 극적인 변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나의 삶은 정지되어 버렸다'라고 말을 할만큼 톨스토이는 사는 게 두려웠고, 삶에서 도피하고자 했다. 자살 충동까지 느껴야 했던 세계적인 대문호의 솔직한 고백이라니.. 어쩐지 엄숙한 기분마저 든다. 톨스토이의 정신적 위기는 51세때 절정에 이르렀고, 자살을 생각해야 했던 그 시점에서 쓴 책이 <고백록>이다. 그리고 이 <고백록>을 계기로 톨스토이의 생애와 작품은 완전히 달라진다. 왜냐하면 <고백록>이 그의 사상과 삶의 전환점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오류를 범해 왔던 것은 내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삶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눈이 멀어서 진리를 볼 수 없었던 것은 나의 잘못된 생각 때문이 아니라,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삶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춰 놓고서 나의 욕망을 만족시키며 살아온 나의 삶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87

인생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간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누구나 살다보면 그런 순간을 맞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삶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누군가는 절망에 빠질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서 당황할 것이며,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에게는 그것이 어느 한 지점에 계속해서 뚝뚝 떨어진 잉크 방울처럼 마음속에서 크고 시커먼 반점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삶의 문제는 죽음의 문제가 되어 갔다.

내가 오늘 하고 있는 일이나 하게 될 일의 결국은 무엇인가? 내 인생 전체의 결국은 무엇인가? 왜 나는 살아가는 것인가? 왜 나는 어떤 것을 원하거나 행하는 것인가? 내 인생 속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드시 내게 찾아올 죽음으로도 파괴되거나 사라지지 않는 어떤 의미가 존재하는가?

 

그렇게 톨스토이는 삶의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과학, 역사,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탐독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학문에서는 별 도움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그 답을 찾게 된다. 이 작품은 그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다. <고백록>이후 톨스토이는 술과 담배를 끊었고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며 소박한 농부의 옷을 입고 다녔다. 이상적이고도 순수한 절제의 삶을 지향해 아내와의 육체적인 관계도 절제하기 시작했고, 박애주의 운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가 원한 절제하고 금욕하는 구도자의 삶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작품은 <고백록>을 중심으로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반기의 대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후반기의 대표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부활>, <하지 무라트> 등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그의 사상과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고백록>도 꼭 읽어 보길 바란다. 그의 자전적인 작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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