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파서블 포트리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14살짜리 소년이 되기까지는 몇 번은 두들겨 맞기 마련이다. 나는 탈의실에서도 사정없이 맞아봤고, 학교 복도에서 아이들이 발을 걸어서 넘어지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다 누가 밀어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릎도 까지고, 발목도 삐고 코피도 났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건 그 모든 일들을 합친 것보다 더 참혹하게 느껴졌다. 이건 도저히 멈추지 않는 그런 아픔이었고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다.   p.217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14살 소년 빌리는 단짝 친구인 알프, 클라프와 함께 매일 밤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얼마 전부터 엄마가 푸드 월드에서 야간 근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몇 시간씩 텔레비전을 보고, 어마어마한 양의 밀크셰이크를 만들어서는 싹 비우고, 속이 느글느글해질 때까지 팝 타르트와 베이글 피자를 먹어 치웠으며, 며칠 동안 끝도 없이 게임을 하고, 음악과 영화에 대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매일 밤이 친구 집에서 하는 밤샘 파티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때 마침 <플레이보이>에 당시에 가장 인기있었던 바나 화이트의 누드 사진이 실렸고, 그들은 그건 대박 뉴스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 결코 <플레이보이>를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합법적으로 <플레이보이>를 사려면 18살은 돼야 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에 그들은 그걸 사줄 수 있는 누군가를 고용하기로 했지만, 자신들을 도와줄 것처럼 보였던 젊은 남자는 그들의 돈을 모조리 들고 사라져 버린다. 결국 그들은 직접 동네 사무용품점에 들어가 그 전설적인 잡지를 구해보기로 했는데, 빌리가 그곳에서 사장의 딸인 컴퓨터 천재 매리를 만나게 되면서 그 계획 또한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직 집에 컴퓨터가 없던 시절, 빌리는 엄마가 은행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부상으로 코모도어 64를 한 대 받아오는 덕분에 컴퓨터로 게임을 만드는 데 푹 빠져 있었다. 교실 뒤쪽에서 몰래 프로그래머 참고서를 읽었고, 컴퓨터 잡지들을 구독했으며, 새벽까지 프로그램을 입력하곤 했다. 학교에도 제대로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선생님은 하나도 없었고, 컴퓨터란 타자를 치거나, 단어 암기 연습을 하는 데 쓰는 정도로만 이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빌리가 자신처럼 프로그래머인 매리를 만났을 때 놀랍고 반가웠을 수밖에 없다. 빌리는 자신이 만든 게임인 '임파서블 포트리스'를 보여주고 싶었고, 매리는 이번 달에 18살 미만은 누구든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위한 대회에 대해 알려 준다.

 

 

10대 아들이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일들은 아주 많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감춘다. 말하기 너무 어렵거나 설명하기엔 너무 창피한 일들을.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현실을 직시해보면 우리가 하는 생각 대부분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p.287

 

이야기의 배경은 컴퓨터 게임들이 이제 막 가정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1987년이다. U2는 아직 히트곡이 하나밖에 없는 별 볼일 없는 밴드였고, 실베스타 스탤론의 '록키'와 제인 폰다의 에어로빅 비디오, 맥가이버 등이 인기있던 시절이었다. 이메일 한 통을 보내면 4시간 후에나 확인이 가능했고, 컴퓨터 잡지에는 독자들이 직접 자신의 컴퓨터에 타자로 입력할 수 있는 베이직 코드들이 가득 실렸던 시절이었다. 주요 플롯은 빌리와 친구들이 <플레이보이>를 구하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과정에서 빌리가 가게 사장 딸인 매리와 함께 프로그램과 기계어에 대해 공부를 하고, 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임파서블 포트리스 게임의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10대 소년들이 열광하는 <플레이보이>를 갖기 위한 프로젝트도 흥미롭지만, 컴퓨터 천재 소녀가 등장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198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있는 배경 자체가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하고, 전화기에는 선이 달려 있고, <플레이보이>가 야한 책의 최고봉이었던 그 시절은 촌스럽지만 어딘가 낭만적이고, 우스꽝스럽지만 유쾌하고, 시종일관 밝은 에너지가 넘쳐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마법을 발휘한다. 14살 소년, 소녀들의 모험을 그리고 있는 성장 소설로도 매력적이고, 8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한 복고풍 스타일로 향수에 젖게 만드는 이야기로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컴퓨터의 초기 모델과 프로그래밍에 대한 디테일적인 묘사가 뛰어나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도 굉장히 영리한 작품이다. 80년대를 겪어 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80년을 통과한 이들이라면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해줄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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