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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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리스도 선생도 지적했다시피 우리 가운데 죄가 없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에 돌이키고 싶은 일, 후회하는 일을 저지른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우리 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어떤 사람이 끔찍한 짓을 한 번 저질렀다고 해서 그가 지금까지 쌓은 선한 업적이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떤 선행으로도 벌충이 되지 않을 만큼 나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p.211

평화로운 작은 마을 앤더베리의 인적 드문 숲 속에서 한 소녀의 머리가 황갈색 낙역 더미 위에 놓여 있다. 시신의 나머지 부분은 손이 닿지 않는 숲 속의 다른 은밀한 곳에 여기저기 숨겨져 있었고, 누군가 다가와 소녀의 머리를 들고는 분필 조각이 몇 개 들어 있는 배낭 안에 조심스럽게 넣는다. 그렇게 소녀의 머리는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 끔찍한 사건의 목격자는 열두살 소년들이었다. 그곳의 나무에는 분필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시신의 나머지 부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그날 이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이 된 마흔 두 살 에디는 초크맨의 표식이 담긴 편지를 받게 된다. 까만 아스팔트와 하얀 분필의 선명한 대조.. 그는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린다. 글씨 없이 막대행맨이 목에 올가미를 두르고 있는 편지와 함께 흰색 분필 조각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렇게 사건은 다시 시작된다.

이야기는 2016년 현재와 1986년 과거를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30년 전에 살인 사건이 있었고, 에디와 친구들이 시신을 목격했다는 것은 초반에 드러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꽤 이야기가 진행될 때까지 알 수 없다. 아직 고향에 남아 있는 에디와 개브, 호포는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있지만 예전만큼의 관계는 아니다. 그리고 오랜 만에 에디를 만나러 온 미키는 자신이 그녀를 살해한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는 사라지고, 이후 시신으로 발견된다. 대체 미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리고 에디가 악몽을 꾼 다음 날 집에서 하얀색 초크맨 그림이 수십 개 그려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과연 초크맨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일까.

 

어른이 된다는 건 환상이다. 따지고 보면 실제로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냥 키가 커지고 털이 많아질 뿐이다. 나는 나에게 운전면허가 주어졌고 술집에서 술을 마셔도 잡혀가지 않는다는 데 지금도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어른이라는 허울을 걷으면, 한 해, 두 해가 태연하게 흘러가는 동안 켜켜이 쌓인 경험을 헤치면 까진 무릎으로 코를 흘리며 엄마, 아빠를 찾는..... 그리고 친구를 찾는 어린애가 숨어 있다.   p.260

오래 전 그들이 열두 살 이었던 시절, 에디 먼스터, 뚱뚱이 개브, 메탈 미키, 호포 그리고 니키. 이렇게 다섯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해마다 강가의 공원에서 열렸던 축제에서 우연히 놀이기구가 부러지는 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에디는 새로 학교에 부임한 선생님 헬로런 씨와 함께 다친 소녀를 도와 영웅이 되고, 댄싱 걸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에디는 이후 숲으로 가는 길에 공원에 있던 헬로런 선생님을 만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그는 어린 시절 분필로 그림을 그렸던 이야기를 해준다. 아이들은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장난에 빠져들어, 친구에게 보내는 비밀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고, 이렇게 초크맨이 등장할 때마다 섬뜩한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한 구성과 예리한 문장, 그리고 독창적인 플롯과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솜씨까지 너무도 완벽한 작품이었다. 사실 과거에 있었던 살인 사건의 목격자들에게 범인처럼 보이는 이의 경고 편지가 도착했다고 하면, 그들이 한 명씩 모두 죽겠구나, 혹은 억울한 누군가가 남겨진 이들에게 복수를 하겠구나, 그것도 아니면 이제부터 연쇄 살인 사건이 이어진다는 경고이겠구나. 싶은 생각부터 바로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다섯 명의 친구와 그들의 부모, 이웃과 선생님들을 비롯해 작은 마을에 사는 이들의 관계와 일상을 치밀하게 묘사하면서 드라마를 구축하고,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면서 아주 조금씩 숨겨져 있는 비밀을 풀어내고 있다. 굉장히 치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그러면서도 오싹하고 으스스하게 말이다. 그래서 재미와 공포 면에서 감히 스티븐 킹의 작품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머리칼이 쭈뼛 서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집착, 욕망, 폭력이 교차하고, 우정과 상실 등 인간의 나약한 마음과 십대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을 둘러싼 이야기가 그야말로 빈틈없이 공고하게 만들어져 있고, 그 속에서 어린 시절에의 향수까지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절대 예단하지 말 것.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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