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듬을 허락한 시간의 경과다. 젖어들고자 함은 이 시간이 쌓아온 수고로움을 바탕으로 받아들임인 것이다. 젖어듬으로 인해 둘은 하나로 이어져 비로소 붉은 꿈을 꾼다.

밤사이 이슬이 내려 꽃잎을 적시는 것은 이슬의 수고로움뿐 아니라 꽃잎의 노고 역시 함께한 결과다. 하여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꽃이 아름다운건 이렇게 교감하는 대상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꽃으로 핀다.

시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유되는 모든 것은 서로를 향한 열린 가슴이기에 가능했다. 그대와 나, 마음이 젖어들지 않고서 어찌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서로를 향한 감정과 의지가 향기로 담겨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음은 바로 그대 덕인 까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매화

계절마다 피는 그 많은 꽃들 중에 놓치지 않고 꼭 눈맞춤하고 싶은 꽃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라지기에 눈맞춤에 대한 갈망도 다르지만 꽃을 보고자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 한자리를 차지하는 꽃이 이 물매화다.

춥고 긴 겨울을 기다려 이른 봄을 맞이하는 마음에 매화가 있다면 봄과 여름 동안 꽃과 눈맞춤으로 풍성했던 마음자리에 오롯이 키워낸 꽃마음이 꼭 이래야 한다며 가을에는 물매화가 있다.

누군가는 벗을, 누군가는 그리운 연인을, 누군가는 살뜰한 부인을 누군가는 아씨를 떠올린다. 유독 사랑받는 꽃이기에 수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때를 놓치지 않고 피어 눈맞춤할 기회를 준다.

사진으로만 봤던 그 물매화를 보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렸고 다시 먼길을 나섰다. 첫만남으로는 과분할 정도로 많은 꽃을 볼 수 있음도 감사하다.

꽃에 투영된 이미지 역시 제 각각이다. 내게 이 꽃은 계절이 네번 바뀌는 동안 오매불망 다섯번의 청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흥쾌히 자리를 마련해준 이의 눈망울로 기억될 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막바지 가을걷이에 땀방울 흘리는 농부의 이마에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있어 더욱 여유롭다. 다소 더운듯도 하지만 이 귀한 볕이 있어 하늘은 더 푸르고 단풍은 더 곱고 석양은 더 붉으리라.

머리 위의 해가 나무 등치에 잠시 기대어 숨고르기를 한다. 푸른 하늘 품에 서둘러 나온 달이 환한 웃음을 채워가는 동안 해는 서산을 넘기 위해 꽃단장을 한다. 그러고도 남는 넉넉한 햇빛은 푸르고 깊은 밤을 밝혀줄 것은 달의 몫이다.

하루의 절반을 넘어선 햇살이 곱다. 그 볕으로 인해 지친 시간을 건너온 이들은 잠시 쉼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이처럼 계절이 건네는 풍요로움은 볕을 나눠가지는 모든 생명이 누리는 축복이다. 그 풍요로움 속에 그대도 나도 깃들어 있다.

노을도 그 노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도 빛으로 오롯이 붉어질 순간을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도송이풀
닮은꼴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도수정초,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처럼 '나도'나 '너도'를 이름에 포함하고 있는 식물들은 원래는 완전히 다른 분류군이지만 비슷하게 생긴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렇게 식물 이름 앞에 붙는 접두사로 나도, 너도를 비롯해서 참, 개, 물, 갯, 섬, 구름, 두메, 섬, 돌, 바위, 며느리 등 다양하며 식물의 특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연한 홍자색 꽃이 줄기 윗부분 잎자루의 아래에서부터 위쪽으로 올라가며 핀다. 커다랗게 벌린 입 모양으로 다소 사납게 보이기도 한다.

송이풀은 이 풀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송이를 따기 시작한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 송이풀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이풀보다 늦게 피고 전체적인 크기도 작다.

마을 뒷산에 골프장이 생기고 사라진 것들이 많다. 숫잔대, 닭의난초를 비롯해 나도송이풀도 포함된다. 사라진 식물들 대신 무엇을 보게 될지 모르지만 그 숲으로 가는 길이 사라지고 발길을 끊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패랭이꽃

교태를 모르는 강인한 생명

石竹花 석죽화

世愛牧丹紅 세애목단홍

裁培萬院中 재배만원중

誰知荒草野 수지황초야

亦有好花叢 역유호화총

色透村塘月 색투촌당월

香傳隴樹風 향전롱수풍

地偏公子少 지편공자소

嬌態屬田翁 교태속전옹

패랭이꽃

세상 사람들은 붉은 모란꽃만 좋아하여

뜰 안 가득 심고서 가꾼다네.

누가 알까. 이 거친 들판에

또한 예쁜 꽃떨기 있는 줄을.

빛깔은 마을 연못에 잠긴 달에 어리비치고

향기는 언덕 나무를 스치는 바람에 전해 오네.

땅이 외져 찾는 공자 드무니

아리따운 자태를 촌로에게나 부치네.

-정습명. 동문선 권9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서른 아홉 번째로 등장하는 정습명(鄭襲明, 1096~1151)의 시 "石竹花 석죽화"다.

패랭이꽃은 전국의 산기슭의 풀밭, 냇가의 모래땅 등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분홍색 꽃이 줄기 끝에서 하나씩 핀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꽃잎이 술처럼 갈라지는 것을 술패랭이꽃이라고 한다.

패랭이꽃이라는 이름은 꽃 모양이 옛날 낮은 신분의 역졸이나 보부상 등이 쓰던 패랭이와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어로는 석죽화, 지여죽이라고 하는데 바위틈에서도 잘자라며 줄기가 대나무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옛사람들의 시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김홍도나 강세황 등이 그린 초충도에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만큼 친숙한 꽃이었다는 반증이리라.

사진 속 패랭이꽃은 술패랭이꽃이다. 예전에 찍어둔 사진을 찾지 못하여 올해 초가을에 찍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