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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위에 새긴 생각
정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0월
평점 :
전각에 담긴 문장의 행간을 읽다
옛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글과 현대인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사용하는 문자가 달라지면서 글에 담긴 뜻을 헤아리기에는 쉽사리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는 분이 정민, 안대회, 강명관, 심경호 등 여러 명이 있다. 그 중에서도 한시 미학 산책, 우리 선시 삼백수, 다산의 재발견, 비슷한 것은 가짜다, 미쳐야 미친다, 일침, 조심, 와당의 표정 등으로 일찍이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 분이 정민 선생이다.
'돌 위에 새긴 생각'은 명나라 말엽 장호張灝가 엮은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의 내용을 정민 교수가 간추려 소개하며 그에 짧은 풀이를 덧붙여 엮은 책이다. 장호의 ‘학산당인보’는 옛글에서 좋은 글귀를 간추려 당대의 대표적 전각가들에게 새기게 해 엮은 책이다. "전각은 서예와 조각, 회화와 구성을 포괄하는 종합예술이다. 돌 하나하나의 구성과 포치도 그렇지만, 그 행간에 옛사람의 숨결이 뜨겁게 담겨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민 교수가 ‘학산당인보’를 주목한 이유 중 하나다.
이 ‘학산당인보’에 관심을 가진 이가 조선시대를 살았던 청장관 이덕무로 그가 필사한 책 서문을 초정 박제가가 지었다. 이 모두가 다 시대를 초월하여 관심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 점도 또 다른 이유가 된다. ‘학산당인보’ 풀이글에 붙인 서문에 박제가는 “글은 짧지만 의미는 길고, 널리 채집했어도 담긴 뜻은 엄정하다.”며 “뒤집어 말한 것은 사람을 격동시키기 쉽고, 곧장 말한 것은 사람에게 깊이 파고든다. 글은 짧지만 의미는 길고, 널리 채집했어도 담긴 뜻은 엄정하다.”라며 전각으로 옮겨진 글의 가치를 언급하고 있다.
“夕佳軒 / 저녁이 아름다운 집 /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한다. 젊은 날의 명성을 뒤로하고 늙어 추한 그 모습은 보는 이를 민망하게 한다.”
위의 예와 같이 전각과 문장 그리고 풀이가 하나의 다른 문장을 구성하듯 페이지마다 담긴 뜻이 흥미롭다. 지극히 짧은 문장 속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지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자리, 선비의 삶과 도를 향한 마음, 학문하는 자세 등 옛글에 담긴 깊은 속내를 끄집어 내 현실의 삶과 연결 짓는 정민 선생의 풀이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적절한 매개를 제시하고 있어 옛글과 현대인을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하게 한다.
“지금 막막하고 앞이 캄캄하면 안 보이는 앞으로 더 나갈 게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것이 맞다. 거기에 답이 있고 미래가 있으니까. 옛날이 답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묵직한 말씀의 힘은 시간을 뛰어넘는다.인간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므로 그때 유효한 말은 지금도 위력적이다.”
옛글에 주목하는 정민 선생의 이야기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특히, “인간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므로 그때 유효한 말은 지금도 위력적이다”는 문장은 오랜 의문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여전히 내개 숙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