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사람은 그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잘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 P5
같은 집이지만 사용자에 따라 다른 집이 된다. 건축물의 의미는 사용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그 건축물을 이해하거나 평가하기는 어렵다. 사람과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다. - P6
이는 마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전에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다른 별개의 무엇이라고 생각했다가 상대성이론 이후에는 시간과 공간이 연결된 ‘시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과 비슷하다. 이제 시간과 공간은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어려운 하나로 연결된 개념이다. 건축과 사람도 마찬가지다. 건축과 사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의미를 규정한다. - P6
오랜시간 건축물을 지으면서 한곳에서 생활하려면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원시적인 형태의 농업이 시작됐다는 가설 - P8
농업으로 건축이 시작된 게 아니라, 건축을 하기 위해 농업을 시작한 것으로 시각이 바뀌었다. 즉 인간이 사후세계를 믿기 시작하자 의식을 치르기 위해 괴베클리 테페 같은 신전을 건축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농업이 시작된 것이다. 종교적 신화를 공통으로 믿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설명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 P8
건축은 인류 문명의 효시인 농업보다도 먼저 시작된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든 본능적 행위다. - P8
고대의 역사를 더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오래된 역사일수록 인간의 본능과 본질에 더 가까운 사실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 P9
건축은 의식주라는 인간의 3대 기본 본능적 행위 중 하나다. 따라서 건축은 인간의 본질을 반영하는 행위이자 결과물이다. - P10
하지만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이 도시에 모여들면서 생각의 교류가 많아졌고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로 혁신적인 발명과 발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 P11
창조는 다른 생각들이 만났을 때 스파크처럼 일어난다. 도시는 그런 우연한 만남을 가능케 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 P11
도시는 다양한 생각의 융합을 만들어 내는 용광로다. - P11
세계사를 살펴보면 한시대를 이끌었던 국가들에는 항상 세계적인 도시가 있었다. 로마제국에는 로마, 프랑스에는 파리, 영국에는 런던, 미국에는 뉴욕이 있다. 국가가 융성하려면 대도시는 필수 요소다. 이 도시들은 고밀화 도시를 만드는 기술을 발명했다. 로마의 상수도, 파리의 하수도, 뉴욕의 엘리베이터는 이들 도시가 대도시가 되는 바탕이 되었다. - P11
현대 도시에서는 소통이 줄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이웃들이 골목길에서 만났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소통이 사라졌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복도는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될 수 없다. - P11
도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실생활 공간에서 상업 시설이 줄어들면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인 다양하고 우연한 만남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 P12
SNS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인다. - P12
지금은 자신의 SNS에 ‘좋아요‘를 눌러 주는 사람들끼리만 모인다.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간단한 클릭 한 번만으로 친구 관계를 끊어 버린다. - P13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다 보니 그 생각이 전체의 의견일 거라고 착각한다. 같은 당원끼리만 소통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이 ‘국민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파트 단지‘별로 주민들이 나뉘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끼리끼리만 모이는 ‘SNS 단지‘에 갇혀서 바깥세상과 소통을 못하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다고 느낀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자신과 조금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맹공격을 퍼붓고, 이런 폭력적 행위는 생각의 다양성을 죽이고 양극화 현상을 만들고 있다. - P13
학교에서 생겨나는 ‘왕따‘ 현상의 원인을 심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누군가가 한 사람을 왕따시키고 공격하면 중립적인 위치에 있던 사람들도 자신이 왕따의 대상이 될 것이 두려워 함께 왕따 공격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단면이 그렇다. 누군가가 극단적인 성향을 띠면 중간층의 사람들은 눈치를 보게 된다. - P13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성은 인간의 숨어 있던 폭력성을 극대화시켰고 이는 갈등과 반목을 양산했다. 인터넷상의 댓글은 상호 대화라기보다는 혼자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뱉고 도망치는 것과 같다. 인터넷에서는 정상적인 쌍방향의 대화가 어렵다. 다양한 생각의 교류를 만드는 데 인터넷은 실패했다. - P13
국제 분야 전문 언론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늦어서 고마워》에서 SNS가 기존의 체제를 파괴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사회적 건설에는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 P13
결국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류하는 전통적인 방법밖에 없다 - P14
소통의 단절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도시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 P14
과거 그리스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의견을 나누던 아고라와 원형극장이라는 건축양식을 만들어서 창의적인 사회의 꽃을 피웠다. 시장 바닥 같던 아고라가 없었다면 고대 그리스는 없었다. 우리는 지금 다양한 생각이 만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21세기형 아고라와 원형극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한다. - P14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축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건축은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축 공간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 P14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성향을 띠는 데는 학교 건축이 큰 역할을 한다. 어린이가 집을 떠나서 첫 12년 동안 경험하는 공간이 학교다. 그런데 학교 교실과 건물은 건국 이래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는 수십 개의 똑같은 상자형 교실을 모아 놓은 하나의 네모난 교사동과 하나의 운동장으로 구성되어있다. - P26
한국에서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자면 두 가지가 있다. 학교와 교도소다. 둘 다 담을 넘으면 큰일 난다. - P26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교도소 혹은 연병장과 막사의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12년 동안 생활한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교실로 구성된 대형 교사에서 12년 동안 키워지는 아이들을 보면 닭장 안에 갇혀 지내는 양계장 닭이 떠오른다. 남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실에서 자라난 사람은 똑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 P28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식판에 똑같은 밥을 배급받아 먹는 곳은 교도소와 군대와 학교밖에 없다. 학교는 점점 교도소와 비슷해져 가고있는 것이다. 그나마 군대는 2년이면 제대하지만 학교는 12년을 다녀야 한다. 공간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는 12년 동안 아이들을 수감 상태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고등학교 졸업생에게 꽃다발을 주기보다는 두부를 먹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 P28
양계장 같은 학교에서 12년 동안 커 온 아이들에게 졸업한 다음에 창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 P28
지금의 학교건축은 다양성을 두려워하는 어른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건축의 변화가 시급하다. - P29
수렵 채집이나 농경사회에서는 바이오리듬에 맞추어 생활했다. 수렵 채집의 시대에는 먹을 것이 떨어져서 배가 고프면 사냥을 나가고, 농경 사회에서는 해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쉬고, 여름에는 일하고 겨울에는 쉰다. - P29
우리나라도 70년대까지만 해도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있었다. 30분 정도 늦게 약속 장소에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 역시 농경 사회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사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과거에 ‘자시‘, ‘축시‘, ‘묘시‘ 식으로 두 시간 단위로 나누어전 시간표에 맞춰 살았다. 해시계도 구경하기 힘들던 시대에 30분 정도는 오차 한계에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오랫동안 30분 지각은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 P30
서구의 산업혁명 시기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었다. 산업혁명 이전에 바이오리듬에 맞춰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9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당연히 어려웠고 적응이 쉽지 않았다. 결석과 조퇴가 허다했다. 그래서 9시까지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을 길러 내기 위해 어려서부터 교육할 필요가 생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초등학교‘다. - P30
초등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9시까지 등교‘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12년 동안 9시 등교를 훈련받고 받아들이게 되고,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9시까지 출근하는 사람이 된다. - P30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실은 9시까지 출근해서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생활 리듬이라고 봐야 한다.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학교교육을 의무로 만들고 시민들을 교육시켜 직업을 가지게 했다. 동시에 낮 시간에 학생들을 학교에서 지내게 함으로써 부모들이 일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학교는 사회 유지를 위한 장치다. - P31
근대화 및 산업화와 함께 사람들은 시계에 맞춰 살아야 했다. 당시 일반인들은 고가의 시계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친절하게 높은 건물인 시청이나 의회당, 학교, 기차역에 시계를 높게 달아 놓았다. - P31
"지식은 책에서 배우고, 지혜는 자연에서 배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자연을 만날 기회가 없다. 지혜를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의 삶에 필요한 것은 자연이다. - P33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10분 쉬는 시간 동안 잠깐만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면서 하늘을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학교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최근 들어 기회가 생겼다. 학생 수가 줄면서 빈 교실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럴 때 빈 교실을 다른 용도로 쓸 것이 아니라 교실을 부수어 테라스라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10분 쉬는 시간에 잠깐씩 자연을 접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 P35
옥상이라도 개방해야 한다. 회사원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중요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항상 옥상이다. 그곳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어서 그렇다. - P35
필자는 전작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현대인들이 TV를 많이 보는 이유가 마당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마당에서는 사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하고 시시각각 다른 태양빛이 들지만 거실에는 변화가 없다. 변함없는 벽지와 항상 똑같은 형광등 조명뿐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유일하게 화면이 변하는 TV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게임에 빠진다. - P36
우리 아이들의 생활에는 외부 공간이 없다. 그 말은 자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1년 열두 달, 12년 동안 실내 공간에서만 지낸다고 생각해 보라. 항상 똑같은 교실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수렵 채집의 시기와농업시대를 거치면서 항상 자연에서 생활해 왔기 때문이다. - P36
우리 유전자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반응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자연의 변화에 잘 적응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예가 우리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는 변화하는 환경인 ‘자연‘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환경과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이들을 실내공간에 가두다 보니 그들이 갈 수 있는 변화의 공간은 게임 같은 사이버공간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사냥꾼의 후예인 남학생들이 그런 경향을 더 많이 띤다. - P36
필자는 게임을 하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 아이가 나뭇가지 사이로 들이치는 빛이나 바람의 변화, 계절의 다채로움을 느끼지 못해서 계속해서 움직이는 컬러 모니터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슬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자연을 돌려줘야 한다. - P37
학교 건물은 주택만 한 크기로 분절되어야 한다. 과거 아파트와 주택에서 몇 번 번갈아 가면서 살아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추억은 모두 주택에 있을 때의 기억뿐이다. - P39
아파트는 내 집 같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파트 건물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수십 채의 집이 모여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아파트는 나의 감정과 연동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택은 마당에서 여러가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과하지 않은 크기의 건물이기에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 P41
우리 아이들이 같은 반 친구를 왕따시키고, 폭력적으로 바뀌는 것은 학교 공간이 교도소와 비슷해서다. 학생들에게 생겨나는 병리적인 사회현상은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사람은 건축 공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학교에는 다양한 건물군과 다양한 모양의 마당이 있어야 한다. 몇 발자국만 옮겨도 변화하는 마을 같은 풍경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나게 해 주어야 한다. - P42
건축과 관련된 사회학을 연구한 로버트 거트만에 의하면 ‘1, 2층 저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은 고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보다 친구가 세 배 많다‘고 한다. - P42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똑같은 미국 사회인데 유독 혁신 기업들은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만 나온다. 애플과 구글도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어졌다. 동부에서 혁신적인 기업이 나온 사례는 드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앞선 연구 결과를 근거로 유추해 본다면 캘리포니아는 지진때문에 고층 건물이 적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건물이 저층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친구는 세 배 많아지고, 세 배나 더 많은 생각의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 P42
만약에 어느 회사가 동부 맨해튼에 사옥을 짓는다고 하면 30층짜리 사옥을 지을 것이다. 회사가 30등분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에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경우는 적다. 하지만 만약에 그 회사가 캘리포니아에 사옥을 짓는다면 애플 사옥처럼 4층짜리 건물을 지을 것이다. 회사는 4등분밖에 안 되니 더 많은 친구가 생겨나고 더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P43
지진이라는 현상은 저층형 건물을 만들고 더 많은 생각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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