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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단호해지는 심리 수업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한윤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소냐와 프랑크의 이야기이다. 모든 남녀, 또는 어릴적 상처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남자 잘못만나 인생망친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우연처럼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든 결과에는 모든 원인이 있다.
어쩌면 그 원인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유아기적 상처를 치유받지 못해 생긴 일일 수도 있다.
특히 남녀간의 사랑은 그런 경향이 많음을 저자는 두 남녀의 사랑이 파괴적으로 변화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야기 한다.
소냐와 프랑크는 열렬히 사랑했다. 하지만 소냐는 프랑크와 지낼수록 자신의 삶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프랑크는 나르시시스트이면서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냐는 프랑크를 만날때 전남편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전 남편 헤르베르트는 돈만 벌어다 주면 자기의 책임을 다했다고 믿는 가부장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리하여 소냐를 외롭게 했고 그런 그에게 마음을 전할때 마다 .
라는 말을 던지면서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았다. 점점 여성으로 삶을 잃어가고 있던 어느날 인터넷 매칭사이트로 알게된 프랑크는 전남편과 너무 달랐고 소냐를 섹시하고 여성적인 사람으로 대했다 . 항상 이런 문자를 보내면서
꽃봉오리를 활짝 피우는 꽃처럼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을 펼칩니다.
내가 당신의 장미이자 , 튤립이자,카네이션이고
당신을 위한 커다란 꽃다발입니다.
사랑합니다. 몽 트레조로 (내 보물 )
프랑크와의 연애를 통해 생의 활력을 찾고 전남편의 관계도 정리하고 , 새 삶을 찾았다고 여기던 그 시작은 다시 더한 절망의 시작이었음을 소냐는 곧 알게 된다.
이처럼 이책은 사랑하면서 다치는 남녀간의 심리에 대한 심리학책인데, 다른 심리학 책과 달리 , 프랑크와 소냐라는 인물을 내세운 소설 사이사이 , 소냐의 독백형식에 심리학자가 그녀의 상황과 심리를 설명하면서 왜 그녀가 그렇게 했는지, 사랑은 사람에게 어떤 감정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소냐의 상황에 맞게 제시한다.
먼저 소냐의 첫번째 결혼의 실패는 어릴적 엄마의 죽음이후 아버지의 부족했던 사랑, 새엄마의 학대,할아버지의 성추행 으로 인한 치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 그녀의 엄마가 죽으면서 한 유언마저도 소냐에게 책임감이라는 무게 때문에 이라고 말한다.
소냐의 치유되지 않은 어릴적 상황이 아래와 같은 성향에 놓여있게 만들었다.
소냐의 정서적 상황
-사랑과 인정에 목말라 한다.
-타인을 위해 희생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별로 챙기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체감하려면 항상 타인이 필요하다.
-애정을 얻기위해 어느 선까지는 이용당해도 묵인한다.
하지만 첫남편 헤르베르트도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스타일이었다.
어릴때 애정과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배우자를 고를 때 결국 부모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는 보편적인 가설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마마보이를 피하려다 사이코를 만난 것처럼 , 프랑크는 나르시시트였다.
다음은 책에서 말하는 " 그는 나르시시스트일까 " 를 통해 특징이 소개되어있다.
나르시스트유형
상대가 항상 내말에 동의하기를 바란다.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지나치게 질투한다.
어떤 행동을 하든 질책한다.
시기하고 통제한다.
내주위에도 많은 나르시시스트와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들은 소냐처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남자들을 다시 용서하고 받아들였다가 이별하고 다시 용서하는 답답한 나날들을 보낸다.
그들이 이남자들을 참아내는 이유는 모두 일맥상통한다. 아이때문에 아니면 경제적 현실때문이다.
그런 말을 하는 그녀들에게 , 선뜻 방법을 제시할 수도 없다. 그게 현실이니까 .
그래도 오랜 세월 그상태로 사는 그녀들을 보면 답답하고 슬프다. 걱정이 된다.
그런 내맘처럼 작가는 소냐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 그 과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자세히 말해준다.
단순히 누군가와 단절할수 있는 상태라면 , 것은 고통이 아닌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고통이 되려면 시간이라는 것, 그 시간을 지나 본인이 헤쳐나갈 용기까지 걸리는 상당한 시간을 지나야 함을 소냐의 7년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남자와의 끔찍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되돌아보니 그 관계는 정말 지옥같았다.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먼 길이었다는 걸 받아들이려면 우선 바닥으로 추락해야 한다. 그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일종의 게임처럼 날 가지고 놀았고, 그는 내 영혼을 파괴했다.
그는 날 뻔뻔하게 속이고 , 조롱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남자였다.
난 다시는 이런 나르시시스트와 그 어떤 관계도 ...
하지만 저자는 뒤틀린 관계속에서 용기를 내지 않는 것도 , 그상황에 이어가려는 것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매일을 자책과 희생속에서 눈물지으면서 보내는 것보다는 용기를 내어서 움직이라고 조언한다.
이런 흑백논리는 현실과 다르다.
두 사람 모두 이 파괴적인 관계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있었고 두사람 모두
뒤틀린 관계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스스로 남성의 곁에 남았다면 두사람은 다를 바가 별로 없다.
간혹 자식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혼하면 아이들이 상처 받을까 ? 두렵다고 , 내 지인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사랑없는 부모 밑에서 사는 아이들의 상황 (내경험도) 은 그녀가 원했던 아이의 성장에 오히려 안좋은 해를 끼친다는 것을 , 몇번이고 이야기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연기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는 논리로 말이다. 연기는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이것 또한 부모적 나르시즘이라고 말한다.
자식이 항상 행복해야 하고 , 매번 성공해야 하며 아무런 문제없이 살기만을 바란다면 그건 부모가 나르시시즘에 빠진 것이다.
자식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이가 일을 스스로 해내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자란 아이에게 남는 건 열등감 뿐이다.
어쩌면 수많은 나르시시즘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유아기적 상황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 한자녀를 둔 가정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인것 같다. 내주위에도 부모들을 만나면 , 남의 자식에게 그 부모들이 하는 과보호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자신이 자신의 아이에게 행하는 행동은 과보호가 아닌 정당함이라고 말한다. 집앞 5분거리 학교도 차로 태워주고 , 10분거리 학원도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 특히 셔틀버스가 있어도 자기의 자녀들을 태우지 않고 직접 실어나른다.
너무 과한 애정도 , 너무 과한 엄격함도 모두 안좋은 결과를 낳는 다는 것을 이작가는 소냐와 프랑크의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 애정과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잘 설명해준다.
요즘처럼 데이트 폭력과 이혼후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의 원인 깊은 곳에 어쩌면 유아기적 상태에서 성장을 멈춘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책은 남녀문제가 아닌 근원적인 양육의 문제가 더크다는 것을 보여주기때문에 , 오히려 젊은 엄마들이 읽었으면 한다. 그녀들이 하는 잘못된 행동들이 미래의 나르시시트를 양성하고 있음을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두 사람의 성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에 빠졌어도 우린 때때로 숨 돌릴 여유가 있어야 하고
각자 편하게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사랑에서 공감은 매우 중요하지만 독립성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독립성이 보장 되지 않으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계속 책임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