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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집으로 - 삶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닐 도날드 월쉬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목적지는 모두가 같다. 우리 모두는 집으로 가는 길이고, 그곳에 도착하는 데 실패는 없을 것이다. 신의 의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세 문장이 이 책 전체의 메시지다.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내 경우에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땐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읽고 있어도 뭔 내용인지 모르겠고 4분의 1정도를 읽어도 뭔 내용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내 마음이 차분해진 날 밤에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벽이나 아침 일찍 조금씩 천천히 읽어나갔다.
그제서야 책의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다시 읽지 않고 앞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더라도 읽고 표시해 놓았던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자신을 어떤 식으로 체험하고 싶은지를 규정하는 건 자유의지의 선택이며 어떻게 보고 싶은지에 대한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시각의 전환이 내게 돌아왔던 모양이다.
신에게 저자가 묻고 신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가르침은 진리가 말으로 표현해내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새로운 단어를 지어내고 의미를 담아서까지 진리에 가장 가까운 참뜻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더욱 감탄하고 놀랍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때문에 읽기 힘겨운 부분도 있다.
믿는 것을 보는 것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대해 설명해 놓은 부분이 흥미롭다. 그리고 다행히 앞에서 언급된 부분이 뒤에서도 다시 더 심층적으로 언급되기 때문에 내가 앞에서 집중적으로 읽지 못해 기억속에 없는 내용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만일 너희가 신 없이 살거나 죽는다고 생각하면, 너희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체험할 것이라고.'
'너희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오래 이 체험을 가질 수 있고 원할 때면 언제든 이 체험을 끝낼 수 있다고.'
신의 말씀 중 일부의 내용을 보면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말한 부분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 선택하고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저승으로 가며 지옥과 천국은 우리가 원하는 것에 따라 보느냐, 보지 않느냐로 결정된다고 한다.
어떤 말에서는 완전 긍정이 아니라 일부분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논리적으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 반박을 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신은 네가 직접 체험하지 못한 일들에도 언제나 네 마음을 열어두라고 말씀하셨다.
이야기들이 매우 형이상학적이라 바로 이해가 가지 않고 고씹어 생각해야 할 때가 많아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어구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희망은 믿음으로 가는 길목이고, 믿음은 앎으로 가는 길목이며, 앎은 창조로 가는 길목이다. 그리고 창조는 체험으로 가는 길목이다. 체험은 표현으로 가는 길목이고, 표현은 됨becoming으로 가는 길목이며, 됨은 삶의 활동 전체이고 신의 유일한 역할이다."
"너희는 결국 자신이 희망하는 바를 믿을 것이고, 너희는 결국 자신이 믿는 바를 알 것이며, 너희는 결국 자신이 아는 바를 창조할 것이고, 너희는 결국 자신이 창조하는 바를 체험할 것이며, 너희는 결국 자신이 체험하는 바를 표현할 것이고, 너희는 결국 자신이 표현하는 바가 될 것이다."
이것이 모든 삶을 위한 공식이다. 선각자들이 하는 일은 네 삶의 방으로 들어가 네가 거기 없다고 맹세했던 그걸 보는 사람이다. 마술사들이 그 원리들을 이해했고 신비가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었던 사람들이다.
이야기는 다시, 시간에 대한 새로운 관념에 대해 설명한다.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그대로 있고 우리가 시간터널을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시간터널을 지나가는 것은 우리가 빨리 가느냐 느리게 가느냐에 달렸지 시간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 터널을 시간 회랑으로 다시 바꿔서 생각해보면, 시간회랑을 나선으로 통과할 때, 시선이 예전에 봤던 그 '벽화'부위를 잠깐 훑고 지나가는 일은 아주 흔하다. 그러면 너희는 "나 예전에 여기 와봤어! 그때하고 모든 것이 똑같군"하고 말할 때가 있다. 그것이 데자뷰다.
그런데 '시간 터널'을 둘러보며 여행할 때 이따금 '메시지'를 받거나 '지시'를 받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그건 경고일 수 있다. .. "그런 식으로 가지 마. 벽화의 그 부분에 주목하지 마"라는. 아니면 초대일 수도 있고.. "벽화의 이 부분을 봐. 여기 와서 이 그름을 보라구" 하는
이것은 '기미'라거나 '예감' 또는 '영감' 혹은 '여자의 직감'이라고 부르는 형태로 나타나는 이런 '지시들'을 보내는 단일체의 개별자이다.
즉 내 '미래 자아'가 '현재 자아'에게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죽음에도 적용되는데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저 세상'에 이르기 위해서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건 물질계와 영계 사이의 길목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목이기도 하며 창조의 길목이다. 그리고 열세 번째 '죽음과 삶은 같은 것이다'라는 신의 말씀의 명제가 주어진다.
영원처럼 여겨지는 시간 동안 명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외부 현실에서는 겨우 몇 초가 지났을 뿐임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잠깐 기도나 고요한 묵상에 들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시계를 쳐다보면 한 시간 이상이 훌쩍 지난 걸 알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것이 바로 시간 회랑을 좀더 천천히 지나거나 좀더 빨리 지나는 것의 예이다.
자칫 엉뚱하게 이해하거나 잘못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무종교인인 나에게도 참진리를 일깨워줄 수 있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태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시각확장과 전환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월트 켈리의 멋진 만화 속 등장인물인 포가가 내뱉은 "우리는 적을 만났다. 그 적은 바로 우리였다."는 말을 보면서 나 자신과 우리 모두와 세상 자체를 다른 시각으로 볼 줄 아는 시각도 가지기 위해 돈키호테가 우리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다고 해서 그를 비웃지 말자.
혹시 그는 선각자였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게다가 그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기억속에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가 어리석었다고 비웃음을 흘릴 사람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그런 점이 좋았다.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영화를 보고 감명 받아 이 책에 흥미를 느꼈었는데 영화와는 또 다른 글의 진리에 흠뻑 젖어보길 바란다.
번역체라 그런지 약간 필치의 맛이 떨어지긴 했지만 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충분히 깊은 진리의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