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다니던 시골 장로교회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자기 교단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교회의 신자들이 느는 것에만 집중하는 교회였다는 점이다. 교파를 떠나 그리고 신앙적 인도를 위한 가르침을 잠시 에포케하고(내려놓고) 문화사적 또는 역사적 의미로 여러 신학을 자유롭게 가르쳐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다른 교단도 크게 다르지 않는 현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희준의 ‘기독교 교파 한눈에 보기’에서 비슷한 사연을 만났다. 장로교회에서 감리교에 가까운 신앙을 보이자 이단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한 신자의 사연이 소개된 것이다. 감리교를 이단이라 하다니,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그러니 당연히 저런 교회는 물건 팔 듯 설교를 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말을 음미한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 사랑을.”.. 교파를 제대로 알면 자신이 속한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고 더 건전하고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본문에는 장로교가 하나님의 주권을 더 강조하기에 인간의 책임을 더 강조하는 교파들을 공부하면 개혁주의 신학의 잘못된 적용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 감리교회의 경우 1800년대 중반 노예 문제로 북감리교회와 남감리교회로 분열되었다. 장로교는 하나의 교단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종교 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을 거부하고 개혁주의 신학을 받아들여 개혁에 동참한 이들이 세운 여러 교회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장로교회의 체계가 형성, 발전했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는 1054년 공식 분열되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교류했지만 1054년 완전히 갈라섰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동방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과 파괴를 일삼은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1965년 1054년의 파문(서로 파문)이 철회되었다. 로마 가톨릭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임신을 받아들인다. 동방정교회는 원죄 없는 임신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마리아에게 특별한 지위(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를 부여한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 해석의 권위가 교황에게, 동방정교회는 공의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시온은 열등한 구약의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사도신경이 생겨났다. 한 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음을 선언한 것이다.
영은 순수하고 거룩하지만 물질 세계는 더럽고 죄악에 물들었다고 믿는 이원론 신앙에 대처하기 위해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 처형, 부활 등을 언급한 것이다. 기독교 공인 이후 모든 교회가 모여서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만들었다. 성자가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아리우스주의(성자는 피조물이라고 봄)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동방정교회는 성령이 아버지에게서만 나온다고 믿고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은 아버지와 아들(필리오케)에게서도 나온다고 믿는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헤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장 18절) 이 말씀과 관련해 다른 교파에서는 헬라어로 베드로는 남성 단수 명사이지만 반석은 여성 단수 명사이기 때문에 같이 취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로마 가톨릭은 예수님이 실제로 사용하신 언어는 아람어였고 아람어에는 두 단어간의 성 구별이 없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개신교는 첫 번째 해석을 더 강조하고 동방정교회는 두 번째 해석을 더 강조한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원래 루터란이란 표현은 로마 가톨릭이 루터를 따르는 놈들이라는 조롱의 의미로 붙인 이름이었다. 장로교를 칼뱅주의 대신 개혁주의라 부른다. 개혁주의는 칼뱅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 다수 개혁가들의 공통된 사상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수의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목사 임직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를 받아들인다는 선서를 한다. 중용의 신앙은 성공회의 주요 특징이다.
다양한 성향의 신앙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준은 램버스 4개조다. 감리교회의 기원은 기도, 금식, 성경 공부, 선행 등의 방법들을 규칙적으로 실행하며 신앙생활을 한 옥스퍼드 대학교 학생들 모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홀리 클럽, 규칙주의자, 방법주의자(Methodist) 등으로 불렸는데 후자의 이름이 감리교회의 이름이 되었다. 이 클럽의 일원이었던 존 웨슬리는 1728년 영국 성굥회에서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미국 조지아로 선교하러 가다가 죽음의 위험을 겪으면서 자신에세 구원의 확신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회심을 올더스게이트 회심이라 한다. 거리의 신도회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웨슬리는 조지 화이트필드와 함께 당시 영국 교회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노동자들을 위해 야외에서 설교했다. 수많은 사람이 회심한 가운데 웨슬리는 새 교회를 세울 마음이 전혀 없었으나 기존 교회와의 갈등이 계속되자 교단을 설립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감리교 선교사는 일본 주재 선교사였던 로버트새뮤얼 맥클레이다. 맥클레이는 1884년 6월에 내한해 고종에게 학교, 병원 사업에 한하여 선교사업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1885년 4월 아펜젤러 부부가 입국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감리교 선교가 시작되었다. 존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는 존이 교단 설립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찰스는 영국 국교회 교회 마당에 묻혔고 존은 감리교 예배당 옆에 묻혔다.
우리나라 성결교회는 19세기 성결운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자생 교단이다. 운동의 이론적 토대는 웨슬리의 완전 성화론이다. 우리나라 성결교회는 4중 복음을 강조한다. 중생(重生), 성결(聖潔), 신유(神癒), 재림(再臨) 등이다. 앞의 두 가지는 웨슬리 신학을 계승한 것이고 뒤의 두 가지는 19세기 성결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성결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으로 거듭난 후에 믿음으로 순간적으로 받는 것이라고 한다. 신유는 신자가 하나님의 보호로 항상 건강하게 지내는 것, 아플 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나음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성결교회는 병을 낫기 위하여 기도, 안수 하는 것을 당연한 특권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의약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순절 교회 범주에 속하는 교회들은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들은 성령 세례에 대한 이해를 공유한다. 오순절 교회와 비교 대상이 있다면 바로 성결운동이다. 성결 운동은 성령 세례가 내적인 성결을 가져온다는 점을 강조한 반면 오순절 운동은 성령 세례의 1차적 증거는 방언이라고 주장한다. 순복음교회가 속한 하나님의 성회가 오순절 운동의 기치 아래 형성된 교단이다. 오순절은 부활절(復活節) 후 50일째 되는,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루터교회도 개혁주의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인간의 공로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가르친 중세 교회를 비판하면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섯 개의 ‘오직’을 따른다.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등이다. 체코의 얀 후스, 이탈리아의 지롤라모 사보나톨라, 프랑스의 피터 발도, 영국의 존 위클리프 등을 종교 개혁 이전의 개혁가들이라 부른다.
웨슬리가 개혁주의와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은 예정론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개인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도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웨슬리를 따르는 교파로 감리교회 외에 성결교회, 오순절 교회, 구세군 등을 들 수 있다. 웨슬리주의를 이해하려면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목사인 야코뷔스 아르미니우스의 사상에서 유래한 사상 체계인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아르미니우스주의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과 각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선한 것에 대한 출발이자 지속이며 성취이지만 불가항력적인 것은 아니다.
루터교와 장로교회는 이 세상에서 완전한 성화(聖化)는 불가능하다고 믿는 반면 감리교회에서는 완전 성화를 믿는다. 물론 감리교회에서 믿는 완전 성화는 절대적 의미의 거룩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정도의 상대적 완전함을 의미하지만 장로교회나 루터교회와 크게 차이나는 지점이다. 네덜란드의 칼뱅파와 항변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1618년 11월부터 1619년 네덜란드 도르트에서 교회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개혁주의자들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정죄하고 칼뱅주의 5대 교리로 알려진 도르트 신조를 발표했다.
당시 정죄된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오늘날 감리교 신학을 이루는 웨슬리안 아르미니우스주의는 다르다. 전자는 사람의 본성이 완전히 부패했다는 점을 부정하고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은 반면 후자는 사람의 완전한 타락을 인정하고 본성상 사람의 의지는 악을 행하는 일에만 자유롭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구원론의 관점에서 일반 침례교회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특수 침례교회는 개혁주의를 받아들였다.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한 두 파는 웨슬리의 부흥 운동에 자극을 받아 결국 신학적 차이를 극복하고 1891년에 통합을 이루었다.
성례 즉 성만찬과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예식으로 내적이고 영적인 은혜의 외적이고 가시적인 표지를 의미한다. 모든 교파에서 성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며 성례가 주는 특별한 유익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례의 구체적 내용에서는 견해가 다양하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는 표지 자체가 의미라 말한다. 즉 성례 자체로부터 은혜가 전달된다고 믿는다는 의미다. 침례교회에서는 외적 의식은 상징일 뿐이라고 믿는다.
구세군은 외적인 형태의 성례를 거부한다.(구세군을 창시한 윌리엄 부스는 감리교회 목사였기에 웨슬리의 성례관을 대체로 받아들였다.) 웨슬리가 감리교회의 종교 강령을 제정할 때 39개 신조 중 14개를 삭제했는데 성례 조항은 유지했다. 루터는 세례가 생명을 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물은 절대 그런 일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물과 함께 그리고 그 곁에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리고 신자는 바로 그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물 가운데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례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몸 전체를 담그는 침수례(浸水禮), 물을 머리에 찍는 점수례(點水禮), 물을 머리에 뿌리는 살수례(撒水禮), 물을 머리에 붓는 주수례(注水禮) 또는 관수례(灌水禮) 등이다. 세례 의식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과 부활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결을 나타내는 것이다. 침례교회는 수세자(受洗者)가 물에 잠기는 의식 즉 침수례만을 인정한다. 침수례 때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완전히 잠기는 것은 장사지냄을, 물에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초기 한국 성결 교회는 침수례를 강조했지만 현재는 침수례를 권유하기는 해도 수세 방법을 한정하지는 않는다. 침례교회에서는 모태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유아 세례도 거부한다. 어린 아이는 믿음을 스스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결교회도 이런 입장을 따른다. 우리나라는 초기 교회의 경우 세례를 주기 전에 엄격하게 교육하고 철저히 점검했다. 세례 전에 대개 1에서 2년 동안 복음서, 기본 교리서, 교회 생활 안내서로 교육하는 학습 제도를 채택했다.
학습인은 책 내용을 암기하고 우상숭배, 귀신 숭배, 조상 제사를 버리고 주일을 지키며 바른 직업을 가지고 나쁜 습관을 버리고 믿음의 열매로 두 명 이상을 전도해야 하며 교리 질문에 바르게 답하고 직접 입으로 신앙을 고백해야 했다. 1907년 새문안 교회 당회록에 의하면 여섯 명 중 한 명만 문답을 통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교회는 몇 번의 교육만으로 세례 준비 과정을 마친다. 그리고 지식만 전달하고 삶을 점검하는 시스템은 거의 시행하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은 화체설을 주장한다. 성찬식을 집례하는 사제가 축성(祝聖;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도)할 때 떡과 포도주의 본질에 실제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동방 정교회도 사제가 축성할 때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지만 인간의 지성으로는 변화의 방식을 설명할 수 없다고 믿는다. 루터의 성찬 이해는 공재설(共在說) 또는 공존설(共存說)이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실제 떡과 포도주 안에, 그것들과 함께, 그리고 그것들 아래에 임재한다고 믿는다.
루터교에서는 실재설이라는 용어를 쓴다. 침례교회는 상징설을 유지한다. 떡과 포도주는 단지 상징일 뿐이라는 의미다. 상징설은 떡이 자신의 몸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떡이 내 몸을 의미한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1529년 10월 1일 독일과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들이 마르크부르크에서 모였다. 하지만 이들은 성찬의 의미를 놓고 심각한 이견을 보인 끝에 적대적 언사를 주고받고 말았다. 개혁교회 연합이 무산된 순간이다. 감리교회, 장로교회 등은 영적 임재설을 믿는다.
칼뱅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성찬에 임재하지 않고 하늘에 임재할지라도 신자가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받을 때 생명을 주는 감화를 그에게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교회 정치체제는 감독 정치(로마 가톨릭, 감리교회, 구세군, 성공회), 회중 정치(침례교회), 장로 정치(장로교회, 성결교회)로 나뉜다. 우리나라 감리교회에는 장로 직분이 있다. 감리교회에서는 원래 목회자를 부르는 호칭이었으나 1949년 교리와 장정을 개정해 평신도 직제로서 장로를 공식화하면서 우리나라 감리교회에만 장로 직분이 생기게 되었다. 장로교회에서는 목사를 가르치는 장로로 칭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