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의 두 얼굴'을 읽고 있습니다. 조윤민 단독 저자가 왕릉, 궁궐, 성곽과 읍치, 성균관, 향교, 서원, 사찰 등에 대해 쓴 책입니다. 우리 논의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니 책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문화재에 관한 책이어서 사진이 많은 게 눈에 띕니다. 저자도 실력과 명성을 갖춘 분이고 출판사도 대형 출판사인데 사진이 전부 흑백이네요. 출판 연도를 보니 20198월이네요.. 이런 경우도 있네요. 긍정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사진이 컬러라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371페이지에 가격은 16,000원입니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론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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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고원에서 나온 김욱의 '책혐시대의 책읽기''왜 책 낭비만은 피하려 하는가'란 챕터가 있다. 낮에 알라딘 종로점에서 보고 살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나왔다. 충분히 읽지 않아 저자가 어떤 답을 제시했는지 모른다.

 

내가 저자라면 사람들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탄탄한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필요한 지식을 기능적으로 얻으려 하기에 굳이 책을 사서 옆에 두고 수시로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썼을 것이다. 책을 그렇게 대하기에 책이 비싸게 느껴지고 그래서 구입을 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자가 파악하는 우리 시대는 책을 혐오하는 책혐(冊嫌)시대다. 앞 부분에서 내가 말한 풍경은 책을 통해 단편적이고 즉자적인 지식을 얻으려는 시대이기에 일정 정도 차이가 있다. 저자의 진단에 공감한다.

 

여기서 잠시 우에노 치즈코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남자들이 갖는 여성 혐오의 내용을 이렇게 파악했다. 자신이 성적으로 남성인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여자라는 시시하고 불결하며 이해 불가능한 생물에게 욕망의 충족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여성 혐오의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시하고 불결하다는 말은 클라우스 테베라이트가 아우슈비츠의 군인들이 유태인을 표현할 때 더러운, 흐르는, 점액질의, 붉은, 집어삼키는, 몰려드는, 내뱉는 등의 수식어 내지 동사들을 사용하여 피억압자들의 몸을 여성의 몸처럼 흐르고 물렁물렁한 것으로 표현했다는 글(김혜순 지음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203 페이지)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나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모자란 남자들을 읽어볼 것을 주문한다. 분자생물학자의 말이기에 편향된 면이 있겠지만 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모자란 여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남자는 수명이 짧고 쉽게 질병에 걸리며 정신적으로도 약하다는 것이다.

 

신이치는 남자가 여자를 섬기는 이유도 제시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간략하게 말하면 남자가 자신을 압도하는 여성의 능력을 보고 섬길 수도 있고 그런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면 혐오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에노 치즈코와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각에는 접점이 있다.(참고로 말하면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 사회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남성 분자생물학자다. 두 사람 다 일본인이다.)

 

치즈코의 논의에는 일리가 충분하다. 다시 책 이야기를 하면 남성이 여성에 의존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 분노하고 원한을 갖듯 적극적으로 지식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의 높고 견고한 성채 앞에서 원한감정을 갖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김욱 저자를 이야기하자면 그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 책읽기라는 수고를 하는 독자라면 각 분야 저자가 도달한 뛰어난 생각의 결과물보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하찮은 생각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 분야 저자가 만들어낸 뛰어난 생각의 결과물을 발판으로 그럴듯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내기가 만만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책을 외면하는 것이리라. 김욱 저자는 진지한 독자는 결국 책과 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책만 보는 바보가 아니라 책에 담긴 지식을 지배하고 자신의 지혜를 성장시키는 독자가 되어야 하기 떄문이다.

 

그것을 위해 저자는 비판적인 책읽기와 글쓰기를 제안한다. 저자는 책을 만나면 책을 죽이고 넘어서야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과 헤어져야 한다는 말은 부처가 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는 말을 생각하게 하고 책을 만나면 책을 죽이고 넘어서야 한다는 말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임제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

 

후쿠오카 신이치와 우에노 치즈코의 생각이 만나듯 부처와 임제의 말 역시 만난다. 비판적으로 책을 읽고 비판적으로 쓰자. 그것은 자기 생각의 집짓기를 하는 과정이다.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이다. 오래 읽고 써왔지만 느슨해지고 상투적으로 변질되려는 나를 채찍질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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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경복궁의 역사코너에 ’1915년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 조선총독부 박물관 건물 준공란 소개 글이 있다. 시정은 시정(施政)이니 1915년은 일본이 1910년 한일 병탄(倂呑)을 통해 우리에게 정치라는 시혜를 베푼 지 5년이라는 의미이다. 일본의 논리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니 문제다. 일본의 논리를 인용한 것이라면 따옴표를 하든지... (합방을 병탄으로, 조약을 늑약으로 바꾼 것을 보라.)

 

모 신문 기사도 문제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넓은 행정 청사가 필요해진 조선총독부는 신청사 터를 물색했다.”는 기사다. 경복궁 사이트의 소개 글이 일본의 논리를 따라서 문제라면 이 신문의 기사는 조선총독부라는 주어를 사용했으면 그들을 주어로 하는 조선 병합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데 경술국치라는 말을 썼다. 경술국치는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뜻이다. 즉 주체가 우리다.

 

어떻든 일본은 1910년 조선을 병합한 후 경복궁에 넓은 신청사 터를 잡았다. 일제는 1914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연다며 흥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지은 데 이어 총독부 청사를 가린다는 이유로 1927년 광화문을 해체, 동쪽으로 이전했다.

 

근정문 너머로 보였던 조선총독부 건물 축은 경복궁의 중심축과 어긋나 있었다. 일제가 자신들이 지은 남산 조선신궁의 축에 맞추기 위해 조선총독부 건물의 각도를 3.75도 비틀었기 때문이다. 흥례문이 돌아온 것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단행한 구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을 헐어버린 뒤였다.

 

광화문은 한국 전쟁기에 훼손되었고 1968년 복원되었다. 그러나 사라진 목조 부분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한 것이었고 위치도 원래 있던 곳에서 북쪽으로 11.2, 동쪽으로 13.5떨어진 곳이었으며 각도도 경복궁 중심축을 기준으로 3.75˚틀어진 채였다. 2010년 광화문은 원래 위치와 모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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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適者) 생존이 아니라 적소(適所) 생존이다.“... 환경생태학자 박지형의 스피노자의 거미의 결론이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생각한 것은 풍수다. 잘 모르지만 풍수는 명당을 찾는 풍수가 있고 아픈 몸에 뜸을 뜨거나 침을 놓듯 명당이 아닌 곳에 숲을 조성하거나 절을 세워 좋은 땅을 만드는 비보(裨補) 풍수가 있다.

 

명당을 찾는 풍수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산송(山訟)이 빈번했던 조선이 대표적이다.(산송은 분묘: 墳墓나 그 주변의 산지를 놓고 벌이는 소송을 말한다.) 조상을 좋은 곳에 모셔 복을 받으려는 후손들 사이에서 좋은 묘자리를 놓고 다툼이 심했다. 영조는 요즘 상소의 십중팔구는 산송이라는 탄식을 했을 정도다.

 

좋은 묘자리에 대한 욕심은 사대부들과 일반 백성들 뿐 아니라 왕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인 세종을 좋은 자리로 천장(遷葬)하기 위해 우의정을 지낸 이인손의 큰아들을 불러 묘자리를 양보하라고 우회적으로 압력을 가한 예종(睿宗)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박지형은 서로 다른 부리를 가지고 갈라파고스 섬에 공존하는 여러 종의 핀치 새들, 각기 다른 계절에 꽃을 피우며 어울려 사는 식물들을 공존의 예로 제시한다. 박지형은 생태학이 생물과 환경에 대한 탐구라면 스피노자는 그런 생태적 관계를 제대로 인식한 뛰어난 생태학자라고 말한다.

 

박지형은 들뢰즈가 스피노자가 파리를 잡아먹는 거미를 보며 죽음이라는 환원 불가능한 외재성에 대해 사색했을 거라 추측했다고 말한다.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이를 죽이게 되지만, 사는 동안에 포식자와 피식자 간에 어떤 억압적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지영은 들뢰즈가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 언급한 거미에 대해 설명한다. 들뢰즈는 거미가 가장 철학적인 동물이라고 말했다. 들뢰즈에 의하면 우리가 발견해야 할 진실은 오로지 비자발적으로만 우리에게 찾아온다.

 

우리는 거미처럼 사유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보지도 자각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자처럼, 우리가 발견해야 할 진실에 대해 아무것도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계획을 세울 수도 없는 자처럼, 그리하여 사소하게 던져진 기호를 유일한 단서로 삼아 온몸을 던져 해독(解讀)해야만 하는 자처럼, 스파이처럼, 경찰처럼, 질투에 빠진 연인처럼, 미친 사람처럼...그러한 자의 신체를 기관 없는 신체라 부른 것이다.(신지영 지음 내재성이란 무엇인가‘ 5 7 페이지)

 

내게 생태학은 낯설지 않다. 아니 낯설지 않은 정도여서는 안 되고 정통해야 하는 학문이다. 신승철은 스피노자가 거머리나 벌레가 서로 엉켜 싸우는 장면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동물은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지금 여기의 무의식 밖에 없다. 신승철은 스피노자는 어떤 점에서 역사의 흐름과 같은 장기기억이 아닌 동물과 같은 단기 기억을 가진 존재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해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의식이 욕망과 사랑의 흐름을 타고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가가 더 중요하기에 스피노자의 구도에서는 역사적 무의식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역사적 무의식은 욕망의 방향성이기 때문이다.(’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88, 89 페이지) 신승철은 근대의 사상에 기반을 둔 지구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인간이든 모두가 고통의 질서를 지나 치료의 수술대에 올라가 있다고 말한다.(‘에코소피’ 317 페이지)

 

습지 해설사 수업(受業)을 앞두고 있는 나는 지질학의 고위평탄면과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마음의 생태학'에 나오는 고원(高原; plateau)을 하나로 꿰는 작업을 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다. 먼저 생태학의 일선에 선 책들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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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낯선 시선‘... 내가 읽었고 현재 가지고 있는 정희진 님의 책이다. 이 분의 논리와 설득력에 매료된 것을 감안하면 아주 적은 수다. 정희진 님 외의 페미니즘 책들 중 내가 읽었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이현재 님의 여성 혐오, 그 후‘, 백소영 님의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우에노 치즈코 님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윤보라 님 외 지음 그럼에도 페미니즘등이다.

 

어제 알라딘 종로점에서 정희진 님과 여러 저자가 함께 쓴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가난한 탓에 우선 순위로 설정한 1. 역사, 2. 철학, 3. 과학 분야의 책을 사고 정희진 님의 책은 다음 기회에 사기로 했다.

 

낯선 시선의 뒷 표지에 상투성, 진부함, 통념을 단칼에 베는 비수 같은 언어란 소개 글이 쓰인 것이 눈에 띈다. 정희진 님의 책을 읽는 것은 페미니즘의 옳음을 확인하고 그에 나를 맞추는 길이지만 상투성과 진부함, 통념에 빠질 수 있는 나를 일깨우는 길이기도 하다.

 

덧붙이면 정희진 님, 그리고 다른 읽을 만한 페미니즘 책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부지불식간에 반여성적 언행을 보일 수도 있음을 감안하면 스스로를 비춰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존재들이다. 전기한 책 외에 정희진처럼 읽기‘, ’혼자서 본 영화‘, ’여성 혐오가 어쩄다구?“ 등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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