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이야기도 계급적 – 맞는 표현인지 모르지만 – 으로 접근할 수 있고 흥미 위주로 접근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녹지(綠地)가 주는 혜택에서조차 소외된다는 기사와,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비극이라는 주장을 하는 책(뉴욕대 사회학과 교수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폭염사회’)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한 것과 별개로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며 흥미를 느꼈다.

저자에 의하면 유럽의 도시들은 자동차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만들어진 까닭에 사람보다 조금 더 빠른 마차의 속도에 맞춰 거리가 만들어져 (자동차에 맞게 도시가 만들어진 미국의 도시들에 비해) 도시의 도로망이 짧은 단위로 나누어짐으로써 사람들에게 거리의 다양성과 도로의 공간감을 더 잘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흥미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1995년 7월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올라 일주일간 700여명이 사망한 시카고를 예로 들며 그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치, 사회적 실패라고 규정한다.

700여명의 대부분은 노인, 빈곤층,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폭염사회’는 의미가 깊은 만큼 시선을 잡아끄는 흡인력도 대단한 놀라운 책이다.
자꾸 우리의 현실을 비춰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책이기도 하다.

지금 폭염을 겪는 현실보다 한번 상승한 온도는 되돌려지지 않는다는 말이 더 힘을 빠지게 하는 이때 클라이넨버그의 책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꼭 읽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정조(正租) 교양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 해 1화성(華城),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란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의 저자인 김준혁 교수가 한신대 정조(正租) 교양학과 교수이다.

 

한신대에 언제부터 이 과가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단 김 교수가 2014년부터 재직했다니 정조의 호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 연구로 박사가 된 김 교수와 더불어 과가 생겼으리라 생각된다.

 

김준혁 교수가 진행하는 동작(銅雀) 도서관에서의 정조의 능행길을 따라 가다란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829일부터 928일까지 6회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한 차례(921)의 수원 화성 및 융건릉(隆健陵) 탐방 순서도 포함되어 있다.

 

동기들 톡방에 프로그램 소식을 알렸더니 무려 세 사람이 신청했다. 정조의 인기를 실감했다. 이틀만에 신청(30)이 마감(에버러닝)된 것도 그렇다.

 

비교의 대상이 될지 모르겠으나 대학원에 진학하면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사를 전공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 혼자 정조를 연구해보겠다고 해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김준혁 교수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당시 일반에서 정조는 어떤 존재로 여겨졌을까? 정조와 그 이후 시기를 총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미니즘 영화인문학 산책!(페미니즘과 영화와 인문학과 산책이라는 선호하는 네 개념이 다 들어 있는)..가보고 싶은데 슬프게도 멀고 먼 전남 광주에서 열리네요..(8월 28일 - 9월 12일) ㅜㅜ 이화경 작가가 설명과 함께 감상하게 되는 영화 ‘실비아‘의 주인공인 시인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 - 1963)의 말을 음미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요..

‘나에게 언제나 착하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지 마시길..나에게도 냉정하고 생각없고(부주의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으니 말이예요‘라는..

일찍 죽은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 하며 격렬한 죽음 충동에 시달리는 한편 죽음 너머에서까지 자신을 지배, 조종하는 폭력적 아버지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한(김승희 지음 ‘남자들은 모른다‘ 38 페이지) 시인 실비아 플라스.

이화경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에서 ˝여자로 태어난 게 나의 끔찍스러운 비극˝이라는 실비아의 통곡을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하필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을 세 가지 한이라 말한 허난설헌과 함께 논합니다.

마포의 한국영상자료원에 가서 ‘실비아‘를 감상하고 와야겠습니다.

˝과대망상적인 욕망과 수동적이고 쓸모 없는 존재라는 느낌 사이에서 분열˝(‘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91 페이지)된 실비아를 보아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군 연천에 고종 황제의 영손(令孫) 이근이 종묘 제례를 관장했던 종로 고택 염근당(念芹堂)을 그대로 옮긴 한옥 호텔 조선 왕가가 있다.

염근당은 혼탁한 물 속에서 추운 겨울을 이기고 자라는 미나리의 기상을 생각하는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재인폭포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이 곳은 해설사 되기 전 일 때문에 고문리에 가며 가끔 보던 곳이다.

물론 당시에는 의미를 몰랐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행 글쓰기 과정(6회)에서 여행기 작성 과제를 위해 둘러볼 곳을 찾다가 이 곳도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정릉(貞陵)과 그 능의 원찰(願刹)인 봉국사로 목적지를 정했다. 참고한 책은 ‘점심 시간엔 산사에 간다‘란 책이다.

9월 21일 해설사 동기 세 사람과 함께 수원 화성과 융건릉을 탐사하기로 일정이 잡힌 나는 아쉬움을 느낀다.

여행 글쓰기 일정이 수원 화성 및 융건릉 탐사 이후에 잡혔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다.

네 차례의 강의(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 정조대 문예부흥과 개혁정치/다산 정약용, 화성을 설계하다/ 정조의 화성행차와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함께 잡힌 이 탐사는 정조에 대한 입체적 시각을 갖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갈 곳도 많고 들을 강의(장석원 교수의 ‘김수영 시의 난해와 감동‘을 비롯)도 많고 읽을 책도 많고 강의와 해설 준비도 해야 하고 바쁘다. 감사하고 다행스런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wine 포스팅을 보고 ‘in vino veritas.. 저는 vino(wine) 대신 vinegar입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요즘 마시는 와송 식초는 발효주 같다. 술 분위기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이 말을 한 것은 식초를 만들려면 우선 술부터 만들어야 하기에 술과 식초는 하나로 이어진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알콜 도수 12도 이하의 술을 오래 보관하면 식초가 된다.: 구관모 지음 ‘내 몸을 살리는 천연 식초’ 40 페이지)

술 속에 진리가 있다고 알고 있었던 저 말을 내가 처음 안 것은 작고한 경제학자 정운영 선생의 책에서였다.

새삼 그 분이 생각난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산책’, ‘노동가치이론 연구’ 등 가지고 있었던 책들도 생각난다.

지금 그 책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관심을 두는 분야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는 바이지만 술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보다 술을 마시면(취하면) 진담을 발설하게 된다는 의미가 더 타당할 것이라 보인다.

이는 전이(轉移)에 관한 이야기에도 적용할 말이 아닌가 싶다.

즉 전이라는 착각이 진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기보다 사실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바슐라르는 말을 운반하는 매개체인 술을 불의 물(뜨거운 물)이라 불렀다.

에덴 동산에 둘러쳐진 불 모양의 칼(라하트 하헤렙) 즉 화염검(火焰劍)을 칼 모양의 불이라 불렀던 습으로 보면 술을 물의 불이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고종석은 ‘기자들’이란 소설에서 “..그 공유된 과거가 우리를 술자리로, (그리고 바슐라르가 주장하는 호프만 콤플렉스에 의해) 수다로 이끌었다...”는 말을 했다.(고종석 작가가 ‘기자들’에서 묘사한 김현 선생 생각도 난다.)

호프만 콤플렉스는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불의 물이란 말은 절묘하다. 불과 물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불은 집중하고 파고들고 무엇보다 수직으로 자신을 태우며 상승하고 물은 흐르고 고이며 비추기 때문이다.

“..독한 술잔에 기울은/ 도시의 지붕 위에/ 바람에 너펄거리는 철조망/ 철조망 같은 상처/ 그 자국마다에/ 어느 보초의 칼 끝 같은/ 노여움이 내린다..”(박이문 시 ‘상처’ 중에서)란 구절을 음미한다.

모두 술처럼 술술 풀리는 날들을 맞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