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석은 말한다 - 화석이 말하는 진화와 창조론의 진실
도널드 R. 프로세로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24년 7월
평점 :
‘지구 격동의 이력서, 암석 25’를 쓴 고생물학자, 지질학자 도널드 프로세로의 신간(2024년 7월 번역 출간)이다. 원본이 나온 해는 2017년이다. 개인적으로 프로세로의 이 화석 책을 읽게 된 것은 윌리엄 스미스 전기(傳記)를 통해 화석에 대해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윌리엄 스미스는 화석을 중심으로 한 체계적 지질도를 그린 첫 지질학자다. 그를 주제로 쓴 전기 제목은 세계를 바꾼 지도다.) 스미스가 알아낸 사실이 흥미롭다. 거리와 상관없이 각 지질시대를 대표하는 화석들은 서로 일치했지만 암석층은 거리에 따라 달라졌다는 점이다. 프로세로의 책은 700 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인데 100 페이지 이상 과학의 특성, 과학과 창조론의 관계가 서술되었다.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저자가 진정한 과학자가 취해야 할 용기 있는 행동으로 한 과학자를 예로 든 부분이다. 저자는 진정한 과학자들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믿음에 반대되는 증거가 충분히 있다면 그 믿음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마셜 케이(Marshall Kay; 1904 - 1975)라는 지질학자를 예로 든다. 대륙은 이동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기초로 하여 지질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일로 평생을 보낸 마셜 케이는 판구조론과 대륙이동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쌓이자 온 마음을 다해 판구조론을 품에 받아들였다. 정년(停年)이 가까운 나이에도 마셜 케이는 평생 해왔던 일을 새로운 개념에 근거해 다시 짜기 시작했다. 저자 도널드 프로세로는 마셜 케이의 지성적 솔직함과 용기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1860년(다윈이 종의 기원을 쓴 직후)에는 당혹스러울 만큼 화석 기록이 빈약했다면 1960년대 들어서는 상당히 풍부한 화석 기록이 선보였다. 이는 수천 명의 헌신적인 고생물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이 애써 일한 덕분이다. 화석이 되는 것은 가능성이 아주 낮은 사건이다. 대부분의 생물이 가진 뼈와 껍질은 99퍼센트 파괴된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종의 1퍼센트 미만만 화석으로 보존된다. 그러고도 크게 운이 따라야 지난 200년 사이에 때마침 화석을 수집하러 밖으로 나온 고생물학자들의 눈에 띈다.
공룡을 예로 들어 보자. 1) 진흙에 발자국이 남는다. 2) 공룡이 쓰러져 죽는다. 3) 살은 썩어 없어지고 뼈만 남는다. 4) 수면이 상승하면서 퇴적물이 뼈와 발자국을 덮는다. 5) 뼈 위로 퇴적물이 켜켜이 두껍게 쌓이면서 뼈가 서서히 화석이 된다. 6) 뼈와 발자국이 들어 있는 지층이 침식작용을 받으면서 지표면에 노출된다.. 창조론자들은 화석 기록은 거의 완전에 가깝고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차근차근 진행된 무수히 많은 과도 단계들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유해가 더욱 깊이 묻히면 위를 덮은 퇴적물 더미에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이 화석을 변형시키거나 완전히 으깨버릴 수 있다.
깊인 묻힌 퇴적암 중에는 고온과 고압을 받아 변성암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처음에 있던 화석의 흔적들은 완전히 사라진다. 조가비나 뼈가 용해, 물질 교체, 변형, 압력, 변성 같은 온갖 시련을 피해가거나 견뎌냈다 하더라도 아직 위험이 더 기다리고 있다. 화석을 함유한 퇴적물이 지표면으로 융기되어 다시 노출되면 화석은 쉽게 침식된다. 때마침 고생물학자가 그곳을 지나칠 때 말고는 화석은 쉼 없는 풍화를 당해 언제라도 파괴되어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전 세계의 고생물학자는 몇 천 명 밖에 되지 않으며 화석을 수집하러 나갈 시간은 1년에 많아야 몇 주에서 몇 달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무슨 화석이라도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탄산칼슘이나 이산화규소로 이루어진 멋진 껍데기를 가진 몇몇 동물군은 화석이 매우 잘된다. 진화를 추적해나가기에는 화석 기록이 몹시 불완전하다는 통상적인 불평에 궁극적으로 답을 줄 수 있는 것이 미화석(微化石)이다. 동물군 천이의 원리는 생물층서학으로 자랐다. 생물층서학은 각 층에 함유된 화석의 분포를 이용해서 해당 지층의 나이를 규정한다. 이 학문을 이용해서 우리는 지구상의 암석 분포도를 그려낼 수 있다. 석유와 석탄 지질학자들이 그 소중한 자원을 찾아 구멍을 뚫으려는 암석들의 나이를 알아내고 암석끼리 상관시키는 일에 쓰는 주된 도구가 생물층서학이다. 이 학문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석유도 천연가스도 없었을 것이다.
책에는 흥미 있는 내용들이 많다. 방사성연대측정법이 그 중 하나다. 이 방법은 결정이 식은 뒤에 방사성 어미 원자들 속에 갇히게 된 때부터 흐른 시간을 측정하므로 녹은 상태였다가 식은 암석 즉 화성암에만 유효한 기법이다.(173 페이지) 창조론자들은 사암이라든가 여느 다른 퇴적암 결정의 연대를 직접적으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놓고 과학자들을 우습게 여긴다. 퇴적암의 결정은 더 오래된 암석의 결정이 재활용된 것이어서 퇴적물의 나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지질학자들은 연대 측정이 가능한 화산성 용암류나 화산재 퇴적층들 사이에 화석을 함유한 퇴적층이 끼어 있는 곳이나 퇴적암 속을 파고든 화강암질 마그마 덩어리가 해당 층의 최소 나이를 알려주는 곳들을 지구 곳곳에서 수백 군데 찾아내어 이 문제를 우회해서 풀어낸다.
시계 유비로 말하자면 방사성탄소는 굉장히 빠르게 똑딱거리고 굉장히 빠르게 죽는 시계와 같고 우라늄 - 납, 루비듐 - 스트론튬은 굉장히 느리게 똑딱거리고 매우 오랜 동안 죽지 않는 커다란 괘종시계와 같다. 지구를 기원전 4004년에 탄생한 것으로 발표한 어셔 대주교의 계산은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훨씬 후대에 이루어진 신학적 외삽(外揷; extrapolation)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도 그렇다. 찰스 라이엘의 가까운 친구이자 신봉자였던 찰스 다윈은 땅이 현재 일어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꼴바꿈을 해왔다는 라이엘의 접근법을 생물학에까지 확장하고자 했다.
진화에 관한 생각을 붙들기 시작했을 무렵 다윈에게는 점진적 변화 관념이 사고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윈의 친구이자 지지자였던 토머스 헨리 헉슬리는 다윈의 책을 평하면서 “선생님께서는 나투라 논 파키트 살툼(자연은 도약을 하지 않는다)란 구절을 불필요하게 너무 무조건 수용하는 곤경을 스스로 떠안으셨습니다.”란 말을 했다. 닐스 엘드리지와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說)을 제창했다. 굴드는 이런 말을 했다. “화석 기록에서 과도기 꼴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은 그동안 고생물학의 영업 비밀이었다. 우리 교과서를 장식하고 있는 진화의 나무에서 데이터가 있는 곳은 가지들의 끝과 마디일뿐이고 나머지 부분은 아무리 합당하게 보여도 화석 중거가 아니라 추론이다.”
창조론자들은 굴드와 엘드리지의 말을 그들이 과도기 화석은 없거나 화석 기록이 진화의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곡해했다. 저자는 “안정 상태를 이룬 일련의 화석 종들이 전반적으로 주요 군(群)과 군(群)을 잇는 경향을 보인다면 이 화석 중 하나하나가 과도기 꼴이다. 비록 그 종들 사이를 이어주는 과도 단계의 화석들을 모두 손에 넣는 일이 드물더라도 말이다.”란 말을 했다. 저자는 시조새에게는 현생 조류와 중생대 공룡 사이의 과도기적 특징들이 많이 있기에 시조새가 조류의 직계(直系) 조상은 아닐지라도 방계(傍系) 조상임이 분명하다는 말을 한다.
스켑틱의 창립자인 과학자 마이클 셔머가 이런 말을 했다. "창조론자들은 과도기 화석 하나만 내놓아 보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화석을 제시하면 그들은 두 화석 사이에 공백이 하나 있다고 주장하며 다시 둘 사이의 과도기 화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것을 제시하면 그들은 이제 그 화석 기록 사이에 두 개의 공백이 더 생겼다며 과도기 화석을 또 요구한다. 한도 끝도 없다.“ 우리는 다리의 한쪽 아래에서 강물이 흘러와 다른 한쪽으로 흘러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리에서 내려다보기만 해서는 두 쪽의 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실제로 볼 수 없다. 우리 마음이 대신해서 그 연관성을 그려내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물 하나하나가 흘러가는 모습 전체를 볼 수 없으면 다리의 한쪽 밑에서 흘러드는 물과 다른 한쪽 밑으로 흘러나가는 물을 이어주는 과도 단계의 물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262 페이지)
저자는 모자이크 진화 개념을 이야기한다. 어떤 부분은 상당히 고등한 반면 원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부분도 있다. 해면동물이나 산호가 보여주듯 5억년 동안이나 살아남았어도 그들은 여전히 원시적인 특징들을 간직하고 있다. 생물의 몸 전체는 모자이크처럼 수없이 많은 작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부분이 똑같지도 않고 똑같은 방식으로 변화하지도 않는다. 인간의 진화 자체가 바로 모자이크 모습을 띤다. 두발 보행은 매우 일찍 일어났으며 큰 뇌라든가 도구 사용 같은 특징들은 훨씬 뒤늦게 나타났다. 화석은 말한다의 1부는 진화와 화석 기록, 2부는 화석은 진화를 말한다이다.
창조론자들은 캄브리아기 폭발을 좋아한다. 특별 창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저자는 캄브리아기 폭발을 캄브리아기 느린 도화(導火; slow fuse)로 바꿔놓은 수많은 최근 연구 성과를 언급한다. 저자에 의하면 삼엽충보다 이른 시기의 화석도 많이 있으나 다만 그 화석을 보려면 현미경이 있어야 하고 일정 환경에서만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321 페이지) 전세계적으로 35억 ~ 17억 5000만 살 사이의 나이를 가진 암석에서 미화석이 발굴된 곳들이 수백 곳에 이른다. 초저속진화란 말이 있다. hypobradytely란 영어 단어를 번역한 말이다. 느린 진화란 말인 bradytely 앞에 hypo를 붙인 것이다.
캄브리아기 초기보다 오래된(5억 4500만 년 전보다 이전인) 암석에는 화석이 풍부하다. 이 화석 가운데에는 연대가 6억 년 전의 것들도 있다. 이것들을 에디아카라 동물상이라 한다. 에디아카라 동물상은 1946년 레그 스프리그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에디아카라 구릉지대에 있는 론슬리 규암(quartzite)에서 처음 발견했고 지금은 중국, 러시아, 시베리아, 나미비아, 잉글랜드, 스칸디나비아, 캐나다의 유콘과 뉴펀블랜드에 있는 수많은 장엄한 화석 유적지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널리 발견되고 있다. 이 화석들은 대부분 골격이 없이 부드러운 몸을 가진 생물들의 인상(印象) 화석이어서 후대 화석 기록의 대부분을 이루는 단단한 부분들이 전혀 없다.
생명이 광물로 껍질을 만들 능력을 개발하기까지 거의 30억 년이 걸렸다니 놀랍다. 프로세로의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탄산칼슘이란 말은 들어보았으나 인산칼슘(calcium phosphate)이란 말은 처음 들은 것은 단적인 예다. 캄브리아기 최초 퇴적층에는 굴 흔적이 많이 있다. 이는 몸이 부드럽고 몸속에 체액이 들어찬 진정한 의미의 체강을 가진 수많은 형태의 곤충들이 당시에 틀림없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는 캄브리아의 최초기는 다양성이 폭발한 게 아니라 에디아카라기부터 서서히 증가했다는 증거가 된다.
8000만년(6억년전 ~5억 2천만년전)이라는 시간은 아무리 상상력을 늘려 펼쳐도 폭발적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아니다. 에디아카라 동물들은 몸집이 더 크고 다세포로 이루어졌지만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미화석 세계란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해령과 해저 대지에서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퇴적이 일어난다. 입자들의 비가 바다 바닥으로 쉬지 않고 쏟아지는 이런 지역들은 지구에서 지질학적으로 가장 고적(孤寂)한 장소다. 그 결과 퇴적물은 꾸준히 누적된다. 해당 퇴적물을 주로 이루는 것들은 유공충(foraminifera), 방산충(radiolarian), 규조류(diatom), 코코리토포레(cocolithophore) 같은 미세 플랑크톤의 껍질이다.(340 페이지) 코코리토포레가 퇴적되어 산출되는 것이 백악(白堊; chalk)이다. 유공충, 방산충 등은 탄산칼슘이나 이산화규소로 이루어진 멋진 껍데기를 가지고 있어서 화석이 매우 잘 된다.(132 페이지)
공룡이나 인간의 진화가 훨씬 매혹적인 주제이지만 지금까지 가장 좋은 화석 기록은 단세포 생물들이 깊은 바닷속에 남긴 미세한 화석들에서 찾을 수 있다. 드넓은 바다에는 이 원생생물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수심 3000미터 미만의 트인 해저는 대부분 미화석의 탄산칼슘 골격들로 이루어진 석회 흙(calcareous ooze)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다. 저자는 미화석이야말로 화석 기록에서 진화를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실험동물 또는 초파리라고 평한다. 진화의 관점에서 본 화석이란 글의 필자인 조지 네빌의 말대로 이제 더는 화석 기록이 부족하다고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다. 어떤 면에서 화석 기록은 주체가 안 될 만큼 풍부해졌고 발견 속도가 집대성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
척추동물의 기원에서 월터 개스켈은 우리는 언제든지 똑같은 법칙에 따라 포유류에서 인류의 진화, 파충류에서 포유류의 진화, 양서류에서 파충류의 진화, 어류에서 양서류의 진화, 절지동물에서 어류의 진화, 환형동물에서 절지동물의 진화를 단절 없이 추적할 수 있기에 그것과 똑같은 법칙을 쓰면 동물계에 있는 모든 군을 질서정연하게 배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도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화석은 말한다는 원제가 진화(Evolution)이다. 진화가 화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바 진화, 발생 등 생물학 전반에 두루 정통하지 못하면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메시지가 선명하고 확고한 문제의식으로 쓴 책이기에 정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4살 때 공룡에 푹 빠진(I got hooked on dinosaurs at age 4) 이래 고생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아 고생물학자, 지질학자가 된(National Park Service 사이트 참고) 프로세로는 공룡 이후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공룡도 요소 요소에 과도기 형태의 화석이 있음을 선언한다. 저자는 ‘새 = 공룡’ 가설은 내내 인기 없는 가설로 남아 있다가 저자의 친구인 고생물학자 존 오스트롬이 유럽에 있는 표본들을 다시 살피면서 정황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위의 가설을 둘러싸고 논란이 극심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쌓이면서 논란은 해소되었다.(475 페이지)
수각류 공룡이 해부학적 구조에서만이 아니라 습성에서도 새와 비슷했음을 더욱 확실히 해주는 새로운 발견들이 이어졌다. 알을 품는 자세의 세세한 면모를 비롯해서 그 모습이 화석으로 보존된 방식을 보면 많은 수각류 공룡이 파충류보다 조류에 더 가깝게 행동했음을 알 수 있다. 중생대 즉 공룡의 시대에 산 생명을 감안하면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으니 포유류는 아직 진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최초기 포유류는 최초기 공룡이 진화한 때와 똑같은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키노돈트류로부터 진화했다. 그러나 곧이어 그 다음 1억 3000만년 동안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그 동안 포유류는 계속 몸집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집 고양이보다 큰 포유류는 없었다.
챕터의 끝 부분에 더 읽을 거리가 제시되는데 저자의 '공룡 이후'도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저자에 의하면 창조론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특별히 창조된 존재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유인원인지일뿐이다. 저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과의 화석 기록은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말한다.(588 페이지) 저자는 핵심은 과학은 스스로를 바로잡아간다는 것이라 말한다. 과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편견으로 인해 그릇될 수도 있으나 학계에는 그런 걸 두고 못 보는 회의적인 과학 비평가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런 실수는 금방 잡아내 고친다.(590 페이지)
진정으로 우리와 다른 최초의 정식 사람족 화석은 외젠 뒤부아가 발견한 호모 에렉투스 표본인 유명한 자바원인으로 원래 1896년에는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라는 이름으로 서술되었다. 저자는 우리 인류의 진화를 입증해주는 화석들, 그러니 창조론자들이라면 그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화석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고 말한다.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화석들이 수없이 많다. 이제까지 알려진 사람 종과 속은 수십 개에 이르고 거의 700만년 세월에 걸쳐 진화해오면서 풍성한 덤불 형태의 계통수를 형성하고 있다. 진정으로 우리 사람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표본이 발견되어 서술된 때는 불과 몇 년 전이다. 발견자가 투마이라는 별칭으로 부른 이 표본의 정식 학명은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구분되는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는 호두까기 사람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사기질이 두껍게 덮인 커다란 어금니, 강건한 턱, 넓게 벌어진 광대뼈, 머리 마루에 난 강인한 능선을 보건대 견과류나 열매씨앗이나 뼈를 깨먹었을 것이라 추정되기 때문이다.(603 페이지) 메리 리키가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했다. 인류 진화의 화석 기록만으로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여긴다면 여러분의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에서 결정타가 되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1960년대에 유인원, 원숭이, 사람에게서 추출한 분자들을 처음 비교해나가기 시작하던 분자생물학자들은 깜짝 놀랄 만한 것을 발견했다. 분자 수준에서 보면 우리는 침팬지, 고릴라와 지극히 비슷하다.
DNA-DNA 분자교잡법이란 것이 있다. 침팬지와 사람의 DNA를 추출하여 용액 속에 열을 가하여 가닥을 떼어 놓는데 짝이 풀린 DNA 낱가닥들은 용액이 식으면 다시 이어지는바 이때 침팬지의 DNA 가닥과 사람의 DNA 가닥이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형성된 잡(雜) DNA를 다시 가열하면 가닥이 풀려 떼어진다.(610 페이지) 두 가닥에 공통된 유전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가닥을 풀어내기가 어렵다. DNA 가닥 분리 온도는 공통 유전자 수에 정비례한다. 사람과 침팬지 DNA의 97.6 퍼센트가 똑같다. 이는 사람과 침팬지가 두 종의 쥐나 두 종의 개구리 사이보다 더 가깝다는 의미다.
저자는 자신은 창조론자들이 얼마나 판에 박힌 모습으로 증거를 왜곡하고 부정하며 맥락을 무시하고 글을 인용하며 수많은 부정직하고 비윤리적인 일들을 자행하는지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다. 창조론자들이 내린 결론은 미리 정해둔 것이고 시험이나 반증에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창조과학이라고 부른들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칼 세이건은 미국민의 95퍼센트가 과학맹이라고 말했다. 미국민이 그처럼 과학에 맹목적인 것은 모든 선진국 중에서 유독 미국에서만 창조론이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로 인한 불안 때문에 소련과 우주경쟁을 뒤늦게 벌이던 늦은 1950년대와 이른 1960년대에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뒤쳐졌는지 알고 충격을 받아 다시 엄격하게 과학 교육에 몰두했다. 그러나 결국은 창조론이 교과서를 좀먹어 들어가고 수학능력평가 때문에 시험을 보는 과목들에만 시간을 할애하면서 과학은 결국 찬밥 신세가 되고 만 참담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1984년 이런 일이 있었다. 아기 패이(Baby Fae)가 가진 결함 있는 심장을 개코원숭이 심장으로 대체하는 수술이 있었다. 그 아이는 면역 거부 반응으로 얼마 뒤 사망하고 말았다. 집도의인 외과 의사 레널드 베일리 박사는 개코원숭이 대신 침팬지처럼 우리와 더 가까운 친척 영장류를 쓰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 란 인터뷰 질문에 ”어, 대답하기 곤란하군요. 뭐랄까, 전 진화를 믿지 않거든요.“란 답을 했다.
저자는 어떤 형태의 이념이든 신봉자들이 정치적 수단을 써서 과학을 억압하도록 허용한다면 사회에도 치명적인 해가 될 것이라 말한다. 예언의 여신 카산드라가 트로이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기를 원치 않는 말을 했을 때 그들은 카산드라의 말을 무시했고 결국 멸망했다고 말하며 저자는 우리가 동물계로부터 진화했다고 또는 우리가 쓰는 모든 약들에 미생물들이 내성을 진화시키고 있다고 또는 자원을 마구 낭비하는 우리 사회가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고 과학이 우리에게 말해주면 그 말을 전하는 자를 죽이기보다는 그 말을 귀담아 듣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말한다.(643 페이지)
지질학자,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가 다윈에게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선물함으로써 다윈으로 하여금 영국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를 타게 해 진화론을 발표하게 한 선장 피츠 로이는 진보적 과학자였음에도 창조론을 믿는 사람으로서 진화론으로 인간의 지위가 격하된 것을 자책하다가 자살한 사건을 예로 들며 마음 아프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이 생각난다. 저자도 비슷한 말을 한다. 학자로서 경력을 이어온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창조론과 싸워왔지만 바뀐 것도, 나아진 것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절망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처음에 생명의 숨이 여러 능력과 함께 몇 가지 꼴 또는 한 가지 꼴에 깃들었으며 이 행성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돌고 도는 동안 그처럼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지극히 아름답고 경이롭게 무수한 꼴들로 진화해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이 생명관에는 장엄미가 있다.“ 이는 분자 생물학자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의 마지막에서 한 말보다 훨씬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모노는 이런 말을 했다. ”옛날의 결속은 깨어졌다. 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그가 이 우주 속에서 순전히 우연에 의해 생겨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