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50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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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매사에 대응하는 것이 느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느려지고 있다는 의미는 식사하거나 걷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로부터 업무처리방식도 변해서 눈앞에 닥친 일을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던 젊은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외국인들까지도 “빨리, 빨리”라는 한국말을 익숙하게 사용할 정도로 성격 급하고 바쁘게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슬로우 시티가 지정될 정도로 느리게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야 책꽂이 한 귀퉁이에 오랫동안 숨어있던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눈길이 가게 된 것은 아마도 일상이 느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쌍소는 ‘느림’“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여진다.(10쪽)”고 고백하고 “나만의 리듬에 맞추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팔자가 내게 운명지어 준 리듬에 맞추어 조용히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어 달라고 감히 그들에게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17쪽)”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자들은 그들만의 에고이즘에 갇혀서, 느림보들에 대한 배려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고, 그들의 특기는 느림보들을 완전히 녹아웃시킨 뒤 문 밖으로 몰아내고 만다.(22쪽)”고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저 또한 삶을 바쁘게 살아낼 때는 타인을 배려하는 생각은 정말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요즘 세상에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고 살다보면 왕따 당하기 십상이지만 나름대로의 스타일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한국에서 오셔서 같은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자주 모여 세상사는 일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삶의 여유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어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모임에는 불러주시곤 해서 왕따까지는 아니라고 위안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모임에서 빠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던 분도 계셨던 것 같습니다.

쌍소는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한가로이 거닐기, 듣기, 권태,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 글쓰기, 포도주 등을 주제로 삼아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의 주제 가운데 가장 끌리는 부분은 ‘한가로이 거닐기’입니다. “그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게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41쪽)”라고 한가로이 거니는 것을 정의하고 있는 쌍소처럼 한가롭게 걷는 것은 생각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원고청탁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제가 정해지는 경우는 글 전체의 윤곽을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만, 주제의 범위가 커지면 글머리를 잡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게 됩니다. 그럴 때면 양재천 산책에 나서서 평소보다 느리게 걸으면서 써야 할 글에 담아야 할 내용을 다듬어나갑니다. 하지만 저는 쌍소처럼 소설의 주인공과 함께 산책을 하는 능력까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쌍소의 독특한 시각에도 마음이 끌립니다.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죽음 이외에 무엇을 기다릴 수 있을까? (…) 깊이 살펴본 죽음이 결코 불청객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남은 생에 대한 유일한 행복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면 (…) 죽음 앞에 선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신의 은총뿐이다. 이유도 없이 우리 안에 확신으로 자리잡아 온 그 소망만이 우리를 죽음이 가져온 두려움과 낙담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88쪽)” 하지만 이러한 은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스스로 구하려는 노력을 쏟은 사람에게 분명 기회가 더 많을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공통된 운명이라고 한다면 그 죽음마저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포도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정말 배워야 하겠습니다. “포도주는 때로 우리의 모든 기능을 약하게 만드는 효과도 지니고 있다. 취기가 살짝 돌면 우선 흥분을 일으키게 되고, 그 다음엔 점점 마비 상태에 이르게 된다. 진짜 술꾼은 순식간에 벌컥벌컥 마시는 법이 없다. 조금씩 그 멍한 상태에 빠져드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만일 너무 급하게 마시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기능이 점차 마비 상태로 빠져드는 감각을 좀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120쪽)” 천천히 우리의 신체가 술에 의해서 지배되는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경지, 누군가 이야기한 주신(酒神)의 경지가 이런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제가 즐기는 단숨에 술잔비우는 버릇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주신(酒神)께서 제게 할당한 양의 술을 이미 초과해서 마셔왔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이젠 술을 더 이상 마시면 주신(酒神)에 대한 반역이라는 생각이 들어 술을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쌍소는 느린 삶의 중요한 요소를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큰 제목 아래 작은 제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과정, 유토피아와 충고’라는 제목에서는 느린 삶의 문화 사회학적 접근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두 개의 큰 주제 사이에 ‘리듬의 교체’라는 막간의 시간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옛날 극단에서 무대를 정리하기 위한 막간시간을 지루해할 수도 있는 관객들의 관심을 잡아두기 위한 막간극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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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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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은 예스24 블로그 이웃이신 슬로우 리더/라이터님의 이벤트를 통해서 받게 된 책입니다. 몇 가지 책들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지만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에 끌리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죽음을 철학적으로 완성한 그는 진정한 구원자>라는 리뷰 제목을 달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공감하고 싶어 하셨을 것 같던 슬로우 리더/라이터님의 뜻이 담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누군가 생면부지의 사람이 와서 고인에 대하여 “그 분은 누구에게 사랑받았습니까?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가 그 분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습니까? 그분이 누구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그 사람이 당신의 설명을 듣고 독특한 자세를 취하면서 고인에 대한 애도의 말을 전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습니까? 혹시 맛이 살짝 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다음 국어사전에 따르면 애도(哀悼)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 마련입니다. 한편 자신과 직접 인연은 없었지만 주위 사람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다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위로의 이야기를 건네기 마련입니다. 명복(冥福)이란 말 그대로 ‘죽은 이가 사후에 받게 될 복덕’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와서 명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애도한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애도하는 사람” 사카쓰키 시즈토는 텐도 아라타가 세상에 내놓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시시껄렁한 삼류잡지 기자인 마키노 고타로와 시즈토의 어머니 사카쓰키 준코, 그리고 남편을 살해한 여인 나키 유키요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세 사람을 통해서 평범한 회사원이던 시즈토가 죽은 이를 찾아 애도하는 구도의 여행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면 시점에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혹은 가까이 있던 사람이 어느날 곁에서 떠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렸을 적부터 시작되는 일일지 모릅니다. 제 경우는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께서 간암으로 고등학교 때는 동급생이 사고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증조할머님께서 치매로, 대학에 들어가서는 외할머니께서 중풍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교통사고의 현장을 목격한 적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렸을 적에 만난 죽음이 특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즈토 역시 어렸을 적에 근친의 죽음을 만나게 되고 창밖에 서있는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었던 직박구리 새끼의 죽음을 만나면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특히 직박구리 새끼의 죽음을 마음에 담겠다는 뜻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면서 그의 애도의식의 전형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른손을 둥지가 있는 하늘을 향하고 왼손은 새끼가 떨어졌던 땅을 향한 다음, 두 손을 가슴 앞에 가져와 심장으로 밀어 넣듯 포개는... “여기에 넣어둘 거야 … 잊지 않도록, 이 아이, 여기에, 넣어둘 거야.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살았다는 걸 … 내 안에 넣어둘 거야.(124쪽)”

영화 ‘금지된 장난’이나 ‘여행자’를 통해서 섬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아이들이 죽음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근친의 죽음은 아이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이기 때문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고 다만 시간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절절하게 설명하여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고인을 잊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다만, 고인의 생각에 집착하도록 하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즈토에게도 어렸을 적에 만났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성년이 되어 병원 소아과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어린환자들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친한 친구의 기일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에 담아두려는 개인적인 노력이 확대되어 구도의 길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누군가가 와서 고인에 대하여 질문할 적에 어떤 기분이 드실 것 같으냐는 질문을 드렸습니다만, 시즈토 역시 종교단체의 포교활동, 혹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 등으로 오해를 받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순수함을 깨닫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역시 애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고인에 대한 그의 애도를 특별하게 부탁하는 가족도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시즈토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텐토 아라타는 세상사람들이 애도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마키노 고타로가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 얻은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당신이 태어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당신이 ‘애도하는 사람’이 된데는 가족과 환경, 인생의 상처 등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당신도 분명 모른다. 그렇게 보였다.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은 이를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세상에 만연한 이런 부담감이 쌓여서, 그리고 그것이 차고 넘쳐서 어떤 이를, 즉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432쪽)”

텐토 아라타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나기 유키요에게 살해당한 남편 사쿠야의 설명으로 완결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애도하고 있어요 … 죽는 순간, 그저 숫자가, 유령이 되어버리고 … 가까운 사람을 제외하면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는지 잊어버리는데 … 이 남자는 죽은 자가 지나온 삶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습니다. 그 인물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소박하게나마 기리고 있습니다.(566쪽)” 그리고 보면 우리네 장삼이사도 세상에서 기억되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저 소박하게 가까운 사람들만이 기억해주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텐토 아라타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배려도 피해자를 세 번 애도하면 가해자 역시 애도할 수 있다는 시즈토의 애도철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일 것 같기도 합니다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남편 사쿠야를 살해하게 되는 나기 유키요에게도 자신이 진정 사쿠야를 사랑했다면 아무리 그가 강압적으로 요구했다고 하더라도 그를 죽여서는 안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했다면 아무리 싫어하고 아무리 미워해도 죽여서는 안됐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주길 바라야 했어요.(587쪽)”

마지막으로 제 개인적인 관심입니다. 시즈토의 애도철학을 설명하는 세 사람의 화자 가운데 어머니 사카쓰키 준코는 말기 위암을 앓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혼전임신한 딸이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그리고 아들 시즈토가 돌아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으면 하는 희망으로 생명의 끈을 놓치 않고 버텨나가는 그녀의 죽음을 만나는 방식은 분명 참조할만합니다. 대체적으로 죽음을 맞기 몇 개월 동안 생애동안 쓰는 의료비의 상당부분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으면서 죽음을 맞지 않고 가정에서 재택치료를 받으면서 가족들과 같이 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려가는 그녀의 방식은 독특합니다. 특히 죽음을 맞는 순간 불필요한 생명유지를 위한 처치를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담은 사전유언(Living will)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하는 등의 죽음맞이는 분명 우리가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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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완성 - 하버드대학교 ‘인생성장 보고서’ 그 두 번째 이야기
조지 베일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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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비율이 과거에 비하여 훨씬 적어졌다고들 합니다.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중산층이 엷어진 탓도 있겠지만, 옛날 같으면 자신을 비교할 대상을 주변에서 찾던 것과는 달리 대중매체를 통하여 과장되게 전달되고 있는 상류층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은 행복한가에 대한 답변은 눈높이를 어디에 두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의 완성>은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의 거의 생애에 걸친 행복에 대한 탐구생활의 완성판이라 할만합니다. 그 이유는 아직 실험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1937년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성인발달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성인의 발달과 성장에 관한 전향적 종단연구가 벌써 74년에 달하고 있고, 베일런트박사는 지금까지 43년 동안이나 이끌어오고 있어 어느 정도는 마무리단계에 들어가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성인발달연구는 1937년에 시작하였는데,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 어떤 법칙에 의하여 결정되는가를 조사하기 위하여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을 지속적으로 추적하여 왔는데, 최근 들어 50대 이전에 행복의 조건 7가지를 얼마나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그 내용을 <행복의 조건>에 담았다고 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인데 처음 하버드대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하였다가 일반인 남성 456명과 천재여성 90명을 추가로 연구대상으로 포함시켜 총 814명의 삶을 꾸준히 쫓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를 회상하여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바로바로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행복의 조건은 1. 자기 방어 기제, 2. 교육, 3. 금연, 4. 금주 또는 적정소량의 음주생활, 5. 안정적인 가정생활, 6. 규칙적인 운동과 레포츠활동 마지막으로 7. 적정한 체중 등이라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방어기제인데,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항상 즐겁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사업실패와 같은 삶의 심각한 위기가 닥쳤을 때 스스로 이를 극복하려는 심리적 특성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행복의 완성>에서 베일런트교수는 행복을 완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이 책의 제1부 행복은 긍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제목 아래 모아둔 사랑, 희망, 기쁨, 용서, 연민, 믿음의 여섯 가지 감정입니다. 이들 요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긍정적인 사고를 함으로써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뇌졸중을 앓았던 하버드대학의 질 봍트 테일러 교수의 <긍정의 뇌; http://blog.yes24.com/document/2962895,http://blog.joinsmsn.com/yang412/12000747>를 보더라도 하버드대학의 분위기는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베일런트교수가 글을 통하여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긍정의 힘은 이 책을 추천하신 문용린박사의 추천사에서 읽혀집니다. “책 전체를 일관하는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 도전적이고 희망적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음침하고 어둡고 이기적으로 가정해온 기성의 이론들에 도전장을 내민다. 죄의식, 이기심, 공격, 욕망, 경쟁, 분노, 폭력성 등을 중심으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려 한 마르크시즘, 정신분석학, 사회생물학에 반기를 든다.(9쪽)” 문교수님의 추천사때문인지 역자후기에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라고 했던 마르크스의 발언에 대하여 종교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기 보다는 대중이 삶의 고통을 아편으로 달래는 현실을 가감없이 묘사하는 은유였다는 해석을 인용한 것이 조금 옹색해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을 이끄는 중요한 인자를 설명한 1부에 이어 제2부에서는 ‘인간의 감정은 진화하면서 완성된다’는 제목으로 긍정적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규정하고, 이어서 이성과 감정, 그리고 감정이 어떻게 진화하는지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작 <행복의 조건>에서 제시하였던 인간의 영성에 대하여 진일보한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역자의 요약에 따르면 영성-여기에서 말하는 영성은 종교와는 다르다는 것이 베일런트교수의 주장입니다-이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묶어주고 우리가 ‘신을 어떻게 이해하든 우리를 신에 대한 경험과 결부시키며, 나보다 우리에 주목하게 하는 긍정적 감정들의 혼합체이다. 이 영성의 기초를 이루는 긍정적 감정들, 즉 사랑, 희망, 기쁨, 용서, 연민, 믿음, 경외, 감사는 하나의 생물종인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고, 그래서 인간의 뇌에 고정 배선되어 있다. 긍정적 감정의 생존가치는 치유와 공동체의식이라는 두 개의 가치로 압축된다.”고 합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일생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처럼 인간은 역사를 통하여 성장해왔다는 것인데 이를 진화라는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신체적인 조건만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역시 꾸준하게 진화해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생명체에 상하를 정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 생각합니다만, 인간이 아닌 동물들이 가지는 본능적 욕구와는 달리 인간은 이타적 사고를 비롯하여 신체적 취약점을 보완하는 공동체적 사고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신이 진화해왔다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지구와 인간의 미래에 대하여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우려합니다. 긍정적 사고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베일런트교수의 긍정의 힘이 인류의 미래에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족일 것 같습니다만, 한 가지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베일런트교수는 인류의 문화적 진화사례를 인용하는 가운데 “그리고 560년 전에 유럽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발명했다.”라고 인용한 점은 분명 인류최초의 금속활자는 고려시대에 직지심결요체를 찍은 금속활자로 구텐베르크보다 138년이나 앞섰다는 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음을 탓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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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유발자, 마음 - 수술로도 못 고친 통증을 해결하는 심신의학
존 사노 지음, 승영조.최우석 옮김 / 승산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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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재활의학과의 존 사노 박사가 지은 <통증유발자, 마음>입니다. <The Divided mind; The Psychology of Psychosomatic disorders>라고 되어있는 원제보다는 책에 담긴 내용을 제목으로 뽑은 것으로 보입니다. 존 사노박사가 지었다고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만, 저자가 5개의 장을 집필하였고, 6명의 저자가 한 장씩 맡아 집필을 하였으니 존 사노박사는 저자라기보다 편저자가 맞을 것 같습니다.

좋은 질의 종이를 사용하여 읽기에 눈이 참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표지가 너무 얇아 손에 들기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는 소제목의 활자와 타원형의 리드가 너무 커서 공연히 눈길을 빼앗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책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저자들은 심인성 혹은 심신성 통증이라는 매우 생소한 질환을 들고 나온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제목처럼 마음으로부터 생긴 통증을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노박사는 이 질환이 과거 만성 소화성궤양 등처럼 유행병이 되고 있어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긴장근육염증후군을 들고 있습니다. 통증이 생긴 부위의 근육이나 힘줄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이 일시적으로 좁아지는 바람에 조직이 손상을 입어서 통증이 생기는 것인데, 혈관이 좁아지는 것은 우리 몸을 관장하는 뇌의 특정부위가 작용을 할 것(추측의 의미를 담은 이유는 아직까지는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입니다) 이라는 주장입니다.

사노박사는 긴장근육염증후군을 포함하는 심신의학의 개념과 역사, 치료 등에 대하여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무언가 머릿속에 정리되는 내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행하는 정신장애의 진단코드집에서 심신이라는 용어자체를 빼버린 것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과거에 사용해오던 심신장애라는 두루뭉술하게 사용되어오던 심신질환이라는 진단을 더 이상 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신장애가 분열된 무의식과 의식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비롯하였다는 주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심신질환의 진단은 상당히 주관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제3장의 ‘심신장애의 심리학’편에서 무의식적인 마음에 감추어진 어린 시절의 격노, 마음아픔, 슬픔에 긴장근육염증상을 가져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이러한 정신적 충격은 열등감으로 인한 자기압박이나 완벽과 선행에 공포, 죄책감, 수치심, 통제력상실, 삶의 압박, 일, 가족, 나이듦, 사망과 같은 살면서 부딪히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 통증을 유발하게 되는데 이는 의식적으로 통증을 정신적 고통으로부터의 도피처로 만든 결과라는 것 같습니다. 더 요약해보면, 깊은 열등감, 자기애, 강렬한 의존욕구의 세 가지 강력한 무의식적 실체가 심신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지적했습니다만 질병의 정의가 뚜렷하지 않고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애매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치료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저자들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치료를 할 수 있지만, 저자들이 운용하고 있는 강의프로그램에 출석하고 지속적으로 접촉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한마디로 엄청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약 20%의 환자들은 치료프로그램만으로는 완치되지 않아 정신요법을 받아야 하는데 보험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지 않은 치료비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부분에서 마음이 살짝 접힙니다.

고혈압과 긴장근육염증후군, 류마티스병 등의 영역에서의 심신성장애의 진단과 치료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글내용 역시 치료에 성공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진단 치료가 성공적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글러스 호프만박사가 집필한 “구조적 통증인가? 심신성 통증인가?” 편을 읽으면 이 책에서 얻어야 할 내용이 잘 정리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만성 통증을 이들 방식으로 치료해보겠다는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통증을 치료하기 위한 전략을 잘 정리한 마크 소퍼박사의 “가정의의 심신의학 임상 경험”편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번역은 깔끔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최신판 의학용어집을 참조한 탓인지 예전에 공부하던 용어와 차이가 많아 오히려 헷갈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자들이 비유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는데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만일 하늘의 건축가가 인간에게서 속임약 효과를 없애버린다면 특히 미국경제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성공을 거두고 있는 치료는 다분히 속임약 효과 덕분이기 때문이다.(55쪽)”와 같은 경우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최근 들어 오른쪽 어깨관절 부위를 누르면 은근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데 일상에는 불편함이 없어 병원에 가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치료방식을 한번 적용해볼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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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 고형욱의 영화음악 오디세이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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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좋아하지만 극장에서 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극장까지 나가는 것이 번잡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종합예술이라고 하는 영화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영욱님의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에서는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가운에 특히 영화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시시콜콜한 구석까지 챙겨 읽을 수 있습니다. “위대한 고전영화 50편에 담긴 영화음악의 뒷이야기”라고 한 줄로 요약한 것처럼 1950년대 이전영화로부터 1990년대 이후에 이르는 49편의 외국영화를 시대별로 나누어 영화음악이 변해온 경향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영화 <별들의 고향>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50편의 영화 가운데 극장에서 본 영화로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졸업> 정도 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KBS에서 일요일 밤에 방영하던 명화극장은 시험 중이라도 빼놓지 않고 시청할 정도였기 때문에 TV를 통해서 본 영화도 상당수이기 때문에 고영욱님의 영화음악에 대한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게 됩니다. 명화극장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의과대학 시험이 빡세기 때문에 시험기간 중에는 TV시청을 금하던 매형도 명화극장만큼은 허락을 한 배경에는 명화극장에서 방영되는 외화에 목소리를 입히는 더빙성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종로5가에 있는 기독방송 녹음실에서 더빙을 하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고영욱님의 글을 읽다보면 영화의 장면이 고스란히 떠오를 정도로 세세한 점까지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볼 때는 놓쳤던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제니와 올리버가 하얀 눈밭에서 눈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연주회장으로 장면이 넘어가면서 음악도 ‘눈장난’에서 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3번D장조’로 넘어가는 것은 음악감독 프란시스 레이가 ‘두 사람의 사랑의 감정이 충만한 순간을 정서적으로 끌어올린 것’이라는 고영욱님의 해설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영화음악 뿐 아니라 제니가 백혈병으로 죽고난 다음 병원을 찾아온 아버지가 올리버에게 사과를 하자 올리버가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라는 제니의 대사를 인용하는 장면을 배치한 것도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라는 점도 말입니다.

사실 요즘에는 LP판을 돌릴 수 있는 오디오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부모님을 졸라 전축을 사고서는 인상받은 영화의 OST판을 사서 정말 바늘이 튈 때까지 듣던 시절도 있습니다. 그때 열심히 듣던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를 음악으로 담은 영화 <졸업>도 아직까지 장면들이 기억날 정도로 열심히 따라 부르던 기억도 납니다. 그 LP에서는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도 좋았지만, <Sound of Silence> 그리고 <The Boxer>에 특히 심취했던 것은 공부 때문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하숙할 때 고단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러브 스토리>이야기를 하다보니 백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러브 스토리>가 나올 무렵 백혈병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로 써먹는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촛불이 타들어가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에 한발자국이 가까워가는 불치의 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강력한 항암제들이 개발되어 불치의 병에서 만성병으로 그리고 완치가능한 병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주인공이 걸리는 병이라는 목록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와 질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영화에 환자가 등장하는 경우 증상이라든가 치료방법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상황도 많고 때로는 작가나 감독이 질병의 특성을 잘 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알면 영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점을 정리해서 제 블로그(http://blog.joinsmsn.com/yang412)에 있는 <영화속의 의학>이라는 폴더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는 50편 가운데 다시 엄선한 16곡의 영화음악을 담은 CD를 붙였습니다. 그 첫 번째 음악은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주제가로 쓰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도입부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가 듣는 이를 영화관으로 옮겨주는 느낌입니다. 책읽기를 마치고 조금 아쉽다면 영화 <미션>에 쓰인 ‘가브리엘 오보에’를 들을 수 없는 점입니다. 지난 해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불렀고, 그 전에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연주되었던 ‘넬라 판타지아’로 기억에도 새로운 곡인데 말이죠.

고형욱님은 지난번 예스24 파워문화블로거 2기 네트워크데이 행사에 오셔서 영화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4263225). 말씀이 끝나고 퀴즈를 맞춘 참석자 10명에게 상품으로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에 친히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저에게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제가 맞힌 문제는 리노 로타가 음악을 담당한 영화 이름을 두개 맞히기 였습니다. 고형욱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온 덕분에 <태양은 가득히>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맞힐 수 있었습니다.

명화에 담긴 음악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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