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이 시아버지 제사라서 아이들 방학하자마자 제주 시댁에 다녀왔다.

제주는 한 달 넘게 비 한 방울 안 내려서 온 세상이 바삭바삭 말라가는 모습을 보고 왔는데

육지에서는 여전히 비난리가 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나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지막 권이라서 감회가 깊다.

 

 

 

 

 

 

 

 

 

 

 

 

 

 

 

6월에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완간 기념 원고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아 쓴 글이 있어서 올린다.

 

우리 가족은 역사 드라마를 즐겨 보는데 조선왕조실록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역사 드라마 덕분이다. 흥미를 위주로 하는 역사 드라마는 정사와 야사 혹은 왜곡된 부분에 대한 구분이 잘 안 되어 잘못된 부분까지 그대로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드라마와 관련된 시대의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드라마의 허구와 진짜 역사를 구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역사 드라마와는 단짝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드라마 장옥정과 숙종실록을 보며 드라마에서 왜곡한 부분을 바로잡느라 바쁘다.

 

그동안 박시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이하 조조록)을 서너 번은 읽었다. 몇 년 전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 한두 권씩 빌려오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은 물론 만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까지도 홀딱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좋은 책을 보면 당연 사고 싶어지는데 시리즈가 길다 보니 망설여야만 했다. 저자가 20권까지 집필할 예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 사야 할 테니... 하지만 결국 1권부터 시작해서 그때까지 나온 책을 모두 사들이고 말았다. 한 권이라도 읽게 되면 중독되고 중독되면 사게 되는 게 조조록의 단점 아닌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겨울 방학은 네 식구가 조조록을 읽고 조선의 왕들을 맘껏 씹으며(?) 따뜻하게 보냈다.

 

그리고 한 해에 한 권씩 나오는 조조록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올 여름 드디어 20권이 완간되었다. 책꽂이에 개국 편부터 고종순종실록까지 20권의 조조록이 꽂혀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작가님이 10년 동안 만화를 그리고 써낸 조조록을 난 며칠 동안 단숨에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작가는 실록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여 담담하게 그려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박시백의 조조록은 만화책이기는 하지만 하루에 두세 권 이상 읽기가 힘들 정도로 글내용이 많다. 그래서 처음 잡았을 때는 좀 힘든 감도 있었다. 하지만 두어 번 읽다 보면 역사 속의 많은 이야기들이 더 생생해지고 어느 장면에서는 내가 조선의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실 조선왕조실록을 끝까지 다 읽는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박시백의 조조록을 읽기 전에도 어린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다른 책을 뒤적여본 적이 있긴 한데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어린이용은 내용이 엉성했고 또 다른 조선왕조실록은 딱딱하고 지루했다. 하지만 박시백의 조조록은 딱딱하지도 지루하지도 엉성하지도 않았다. 바로 요거다 싶을 정도로 역사를 읽는 재미를 흠뻑 느끼게 해주었다. 만화라서 가볍게 집어들 수 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얘기다. 역사를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역사 상식들을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왕과 신하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인물들의 캐릭터를 그림에 잘 녹여내서 만화를 보는 재미를 키워주기도 하고, 중간 중간 들어간 코믹한 그림과 유머는 개콘의 풍자를 보는 듯 빵 터지게 만든다. 그리고 조선과 현대 정치사를 넘나드는 작가의 역사 해석이 날카롭다 보니 조선의 역사가 지금 나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 조선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표현 면에서 전혀 예스럽지가 않아 한두 권만 읽어도 박시백 작가의 팬이 되고 만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역사책 읽기를 즐기는 우리 아이들은 역사 공부는 공짜 같다고 말한 다. 그런데 얼마 전 중학생 딸아이에게 친구들이 역사를 수학보다 더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역사는 연대 등 외워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결국 멀리하고 싶어진다는 얘기였다. 흐름이나 맥락을 모른 채 시험을 위해 무조건 외우는 것은 역사를 재미없게 만드는 지름길인 것 같다. 먼저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흐름을 알고 나면 외우는 것도 그다지 힘들지 않을 텐데 시험 위주의 잘못된 역사 교육이 안타깝기만 하다. 더구나 고등학교에서는 역사가 선택 과목이라고 한다. 자신의 역사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역사를 배우는 건 선택이라니 정말 기가 막힌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역사는 필수로 배우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작가도 역사 속 선조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고 했다. 배우기 싫어도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게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통해 잘 배워야 미래도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1권부터 차례로 읽다 보면 조선의 흐름이 보이고 유교의 통치 이념 아래에서 밀고 당기는 왕과 신하들의 모습이 아슬아슬 흥미진진하다. 나라를 망쳐먹은 위험한 왕도 여럿 있었는데 500년이나 이어오면서 조선왕조실록을 남긴 조선이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세계기록유산이다. 만화가 아니라면 엄두도 못 냈을 세계문화유산을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해준 작가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초등학생은 5학년 때, 중학생은 2학년부터 역사를 배우는데 그 시작을 박시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박시백의 조조록은 역사를 공부로 생각하지 않고 즐길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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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7-2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17권까지 구입했으니 나머지 3권만 더 사면 되겠네요.
오~소나무집님 글이 책에 실리는 거에요? @@
책의 장점과 단점(^^)을 잘 짚어 솔직하고 시원하게 잘 쓰셨네요.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나라, 숨기고 싶은 치부가 많은 집권자들이라 역사교육도 하고 싶지 않은가봐요.
부끄러운 역사도 당당하게 가르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후세를 키워야 하거늘 안타까운 일입니다.ㅠㅠ

소나무집 2013-07-24 09:21   좋아요 0 | URL
저도 마지막 권을 주문했어요.
출판사에서 완간 기념 신문을 만드는데 거기에...
이 책은 역사에 흥미를 불러일으켜주는 점이 좋아요.^^

잎싹 2013-07-2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막내는 역사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만화로 되어있으니 왠지 좋아할 것 같아요.
이 글 보니 저도 궁금한 생각이 들어 빨리 보고 싶어요~~

소나무집 2013-07-24 09:23   좋아요 0 | URL
우리 아이들은 아주 좋아하더라구요.
실록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 믿을 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