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발걸음 창비청소년문학 35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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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이 작은 발걸음(Small Steps)이다. 사방에서 큰 꿈을 가지라고 부추기고, 심지어는 마트에서도 통큰 상품을 성공의 미끼로 내세우는 크~은 세상에 작은 발걸음이라는 말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도대체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큰 꿈에만 의미를 두고 그 큰 꿈들을 향해 맹목적으로, 벌떼처럼 달려가는 듯한 세상에 작은 경고를 하는 듯하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발걸음이 왜 소중한지 몇 안 되는 등장 인물을 통해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참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작은 발걸음>은 폭력 전과로 초록호수라는 소년원에 가서 1년 동안 구덩이만 팠던 겨드랑이가 사회로 돌아와 적응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주인공은 시어도어라는 본명이 있지만 전작인 <구덩이>에서 붙은 겨드랑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특히 초록호수에서 만났던 엑스레이라는 친구 때문에 과거를 숨길 수도 없다. 결국 엑스레이 때문에 또 암표 사건에 휘말리게 되기도 하고.

겨드랑이는 흑인이다. 거기다가 소년원에 다녀온 전과자라서 부모마저도 불신하지만 사회 적응 프로그램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닌다. 그러다가 앞집으로 이사 온 뇌성마비를 앓는 지니라는 백인 소녀를 만난다. 지니는 초등학생인데 겨드랑이를 흑인이라거나 전과자라는 편견 없이 순수하게 옆집 오빠로 받아들인다. 겨드랑이도 지니에게 장애인이라서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도움을 주고 싶어할 뿐이다. 둘이서 주고받는 솔직한 대화들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편견과 좋은 관계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드랑이와 지니가 카이라라는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 가게 되었을 때 이 둘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아직도 얼마나 흑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깜짝 놀라게 만든다. 다행스럽게 겨드랑이가 시장님과 콘서트의 주인공인 카이라의 눈에 띄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겨드랑이로서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겨드랑이는 지니 덕분에 미국 최고의 아이돌 가수인 카이라를 만나고, 믿을 수 없게도 카이라가 겨드랑이에게 솔직한 편지를 보내면서 둘의 관계가 발전하게 된다. 서로 너무 다른 세계에 로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며 살 수 없었던 카이라는 겨드랑이에게는 자신의 연출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한 삶 속에 가려진 카이라의 외로운 내면은 연예계 스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어이없게도 카이라와 겨드랑이를 이용하려는 어른들 때문에 둘의 관계도 끝이 나고 말지만 경호원을 따돌리거나 후드티를 사는 장면, 둘이서 어설프게 사랑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영화처럼 스윽스윽 지나간다. 진짜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거리와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많다.  

살인의 피해자가 될 뻔했던 큰 사건을 뒤로 하고 카이라도 겨드랑이와의 대화에서 얻은 힌트로 노래를 만들어 재개를 한다.<작은 발걸음>은 통 크게 살려다 수갑을 차고 마는 어른들에게 날리는 시원한 펀치다. 작은 발걸음이 중요한 건 작은 발걸음을 따라가다가 발견한 실마리 하나하나나를 쌓아올렸을 때 더 탄탄한 행복이 따라오기 때문은 아닐까?  중요한 건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주 조금밖에없어요..... 

하지만 나는 작은 발걸음으로 걸어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나는 작은 발걸음으로 걸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요.
나 자신을 추스르며 내딛는
작은 발걸음.
어쩌면 길을 따라 가다가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몰라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티고 상처를 받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선 같아요.
운동복에 뿌려진 커피 얼룩처럼
정해진 패턴은 없어요.
모든 것이 불확실해요.
버텨내기가 힘들어요..... 

그러나 작은 발걸음으로 걸어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나는 작은 발걸음으로 걸어요.
노는 법도 잊어버렸지만요.
나 자신을 추스르며 내딛는
작은 발걸음.
어쩌면 따라 가다가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몰라요....(카이라가 부른 노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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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11-04-08 10:15   좋아요 0 | URL
정신 연령이 청소년이 되려면 아직도 머나먼 아들 말만 듣고 재미없는 줄 알았다가 재미나게 읽은 책이에요.

2011-04-08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