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마당에서 승용차로 10분만 더 들어가면 되는 천리포 수목원, 그동안은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서 못 가봤다. 국립공원 지역이라서 언제든 남편 빽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내가 누구한테 신세 지는 걸 싫어하는지라... 이번에 가서도 입장료(성수기 어른 8천원, 동반 어린이는 무료) 다 내고 들어갔다. 동네 사람은 무료라고 했더니 친정엄마께서 자주 와야겠단다.

요즘 완도 수목원에서 숲해설 강의를 듣다 보니 관심도 더 생겼지만 천리포 수목원에 대한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서 꼭 가 보고 싶었다. 수목원이 아니라 수목원을 만든 칼 밀러(한국 이름은 민병갈) 이야기라고 해야 맞으려나. 

외국인을 보기 힘들었던 당시 그 외진 시골에 정착해서 사는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 거리였다. 주한 미군이었던 밀러는 1962년 만리포 해수욕장에 놀러왔다가 인연을 맺어 천리포에 땅을 사고 수목원을 꾸리게 되었다고 한다. 남자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귀화한 사람이기도 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수목원 꾸미는 일에 인생을 바치다 2002년에 돌아가셨다.  

또 그에 관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그 동네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 하나를 양자삼아 서울대를 보내고 변호사를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늘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더라는...


늦은 아침을 먹고 친정엄마랑 아버지도 함께 나섰다. 가까운데 있어도 두 분 역시 누가 모시고 가지 않았으니 초행길이었다. 엄마는 좋아라 하셨지만 친정아버지는 할 일도 많은데 그런 데는 왜 가느냐고 핀잔을 하면서도 따라나서고...  살짝 등이 굽은 엄마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가슴이 찡해진다.


나무가 꼭 텐트를 쳐놓은 것처럼 가지가 아래로 축축 늘어져 있다. 나무 그늘 아래 앉을 수 있도록 해놓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우리 아들은 실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서 외할아버지랑 이야기중이다. 할아버지는 밑도 끝도 없이 질문을 해대는 아들 녀석의 말에 귀를 귀울여주고 정성껏 대답을 해주셨다.


딸아이가 찍은 사진인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 멋진 것을 넘어 화려하기까지 하다. 가을에 단풍이 아름답게 드는 니샤나무란다. 나무 이름 표기를 영어로 해놓은 게 많아서 우리나라 이름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더라. 그리고 주인이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외국에서 들여온 수종도 상당히 많았다.


산책할 수 있는 많은 길들이 있었는데 개방한지 얼마 안 된 수목원이라서 그런지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같은 게 많지 않았다.  


숲 사이로 보이는 천리포 해변. 기름 유출로 몸살을 앓았던 해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수목원 곳곳에 이런 한옥이 여섯 채가 있다. 미리 예약을 하면 숙박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다정큼나무집.


가운데 부분은 원래 논이었다고 한다. 수목원을 꾸미고 나무에 필요한 물을 주기 위해 연못으로 만들었는데 아직 네 마지기의 논이 남아 있어 봄이면 수목원 직원들이 직접 모를 심는다고 한다. 


녹음이 너무 우거져서 온통 초록빛이었다. 특히 목련나무들이 많아 봄에 찾아가면 화사한 꽃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년 봄에 부모님 모시고 꼭 꽃구경을 가야겠다.


친정아버지와 엄마가 '나 찾아봐라' 놀이를 하고 계시는 중. 내년이면 칠순인 친정아버지의 장난끼가 난 너무 좋다. 친정에 자주 갈 형편이 못 되다 보니 부모님이랑 놀러 다녀본 기억도 없다. 어쩌다 집에 가도 항상 농사일에 바쁘시니 놀러 나갈 생각도 안 했는데 이번 천리포 수목원 나들이는 친정엄마랑 아버지랑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다. 50대 초반에 허리 수술을 하신 이후 약간 구부정해진 엄마의 허리가 자꾸만 눈에 밟히네그랴.


수련이 있는 작은 연못.   










봄만큼 꽃이 많지는 않았는데 가끔 눈에 띄는 꽃의 자태가 아주 화려했다.  

워낙 넓고 수종도 많은 완도 수목원에 자주 가다 보니 천리포 수목원은 아주 넓은 개인 정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목원 전체 면적이 2만 평이 넘는다는데 비공개하는 부분도 너무 많은 것 같고...   

완도 수목원이 더 좋은 걸 보니 자주 보고 애정을 줘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친정에 갈 때마다 찾아가서 변화하는 천리포 수목원의 계절을 느껴볼까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