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로 사는 나로서는 집이라는 게 그저 잠만 자는 숙소의 개념에 가까운 게 사실이지만 요즘 나는 집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나의 숙소는 씻고, 잠자고, TV를 보며 잠시 쉬는 등 집으로서의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요리라고 해봐야 나는 기껏해야 출출할 때 허기를 달랠 목적으로 라면이나 끓여 먹는 정도이니 집은 그저 휴식과 위생의 목적만 충족하면 족했다.

 

그러던 것이 내가 사는 아파트의 바로 위층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오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그 전에는 연로하신 노부부 두 분만 살았기 때문에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면 절간처럼 아주 조용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위층의 소음은 내가 사는 아래층으로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이따금 베란다의 낡은 세탁기로부터 울려퍼지는 탁한 소음만이 위층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일깨워주곤 했다. 그런데 위층에 새로 이사를 왔다며 젊은 새댁이 떡 한 접시를 들고 나타난 건 불과 한 달 전 어느 날 저녁이었고, 그때부터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참고로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20년도 넘은 소형 아파트이다. 물론 나처럼 혼자 살기에는 다소 넓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래된 아파트의 층간 두께가 얇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위층에 워낙 조용한 사람들이 살았던 까닭에 나는 그 사실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었다. 그런데 웬걸, 젊은 부부의 소곤대는 말소리며, 삐걱 하고 방문 여는 소리며, 화장실 샤워기의 물 떨어지는 소리며, 변기 내리는 소리며, 온갖 소음이 마치 확성기를 통하여 내 귀에 전달되는 것처럼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오죽하면 나는 위층과 우리집 사이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닌가 의심하여 방이란 방의 천장을 모두 샅샅이 살펴봤었다. 그러나 멀쩡했던 천장에 갑자기 구멍이 뚫린다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일, 집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문제는 생활소음이 아니었다. 늦은 밤에나 귀가하는지라 생활 소음은 오히려 문제 될 게 없었다. 집에 들어가자 마자 간단히 씻고 잘 준비를 한 후 침대에 누워 책을 보다가 졸리면 시도 때도 없이 자는 까닭에 그 이후의 시간이 문제였다. 위층에서는 내가 막 잠들었거나 기상 알람이 울리기 한 시간쯤 전의 고요한 시간을 골라 나의 수면을 방해했다.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침대의 삐걱거림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샤워기의 물소리... 나는 어둠 속에서 괜히 부끄러워지는 그 소리를 견디느라 잠을 설치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는데 애국 부부의 노고(?)에 대해 격려는 못할지언정 항의는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나는 매일 잇속만 차린 건축업자의 실수(?)를 탓하고 있다. 나는 요즘 신혼을 앓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북프리쿠키 2016-12-0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의 회춘에 박수를 보냅니다^^;

꼼쥐 2016-12-08 16:51   좋아요 0 | URL
회춘은 안 되면서 매일매일의 피곤함만 늘어난 것 같아요. 이걸 누구에게 하소연도 할 수 없고 말이죠.

syo 2016-12-0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생활소음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야말로 ˝생활˝소음이군요.^^

꼼쥐 2016-12-08 16: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그야말로 ˝생활˝소음인 셈이죠. 관리실에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오거서 2016-12-06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군요. ㅎㅎ 젊은 부부가 이런 상황을 알까요, 모를까요… 그것도 궁금합니다. ^^

꼼쥐 2016-12-08 16:54   좋아요 0 | URL
아마 모를 거예요. 제가 유난히 잠귀가 밝아서일 수도 있고, 혼자 사는 집이라 적막해서 더 크게 들릴 수도 있고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