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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는 게 뭘까?', 혼자 고민할 때가 있다. 누구도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 대답할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나라고 무슨 정답을 내놓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사는 건 말이지, 삶에서 쌓은 기억들을 조금씩 나누어 주는 일이야.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일 수도 있고, 만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길가의 나무일 수도 있고, 문득 바라본 하늘일 수도 있고, 꼬물거리며 기어 가는 개미일 수도 있겠지. 그마저도 없다면 그냥 텅 빈 장소일 수도 있겠지. 언젠가 그 장소에 다시 가보면 그때 두고 떠났던 기억이 반갑게 나를 맞을 테니까.' 혼자 속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사람은 어떨지 궁금하기는 하다.

 

김혜남 작가의 수필집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읽었다. 왠지 낯이 익은 제목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혹시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위지안 교수의 유작이 새로 나왔나 생각했었다. 유방암 4기의 몸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그녀의 병상기록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읽고 정말이지 나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더랬다. 읽는 내내 먹먹해진 마음에 몇 번씩이나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의 저자는 유감스럽게도 위지안 교수가 아니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혜남 교수가 이 책의 저자라는 사실에 나는 조금 놀랐다. 책의 제목을 갖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왜 이런 제목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펼쳐 들고 조금만 읽어 보아도 저자가 왜 위지안의 책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와 비슷한 제목을 골랐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짐작하겠지만 김혜남 작가도 환자의 몸이다. 그것도 파킨슨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15년째 앓고 있단다. 이제 그녀는 잘 나가는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보잘 것 없는 환자일 뿐이다. 나는 위지안 교수의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도대체 왜 그 책에 열광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의 과거 경력이 화려해서? 아니다. 글솜씨가 뛰어나서? 그것도 아니다. 공자나 노자처럼 학문의 깊이가 있어서? 그건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때 내가 그 책에 빠져들었던 일차적인 이유는 저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람도 사는데..., 하는 심리,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한결 편안해질 수 있었고, 살아갈 날이 나에 비하면 턱없이 짧을 것이라는 이유로 작가를 동정했었다. 말이나 글에서 느끼는 우리의 공감은 적어도 비교우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감동하지는 않는다. 위지안 교수는 적어도 자신의 아집이나 에고를 모두 내려놓은 듯 편안해 보였었다.

 

"나는 내가 불치병 환자가 되어 의사로부터 몇 년 안 남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남들과 다른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그래도 의사니까 이성적으로 판단해 현실을 빨리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울고불고 원망한다 해도 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병에 걸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무섭고 끔찍했으며,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p.19)

 

책의 내용은 작가의 경험으로 채워져 있다. 자신의 병 때문에 발생한 일이며, 병에 걸린 이후에 사람들과의 관계며,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며, 스스로 깨달았던 삶의 노하우들을 꼼꼼히 적고 있다. 'chapter 1.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chapter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내딛는다는 것, chapter 3. 오늘 내가 재미있게 사는 이유, chapter 4.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chapter 5. 삶과 연애하라' 의 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나는 작가의 '버킷 리스트 10' 이 인상 깊었다. 1.그림 그리기, 2.우리나라 바다 한 바퀴 돌기, 3.다른 나라 언어 배우기, 4.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하기, 5.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욕 실컷 하기, 6.세상의 모든 책 읽어 보기, 7.책 한 권 쓰기, 8.남편과 무인도에 들어가 일주일 지내기, 9.가족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기, 10.조용히 온 데로 다시 가기. 나는 마지막 10번째 버킷 리스트를 읽으며 짠해지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했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답게 자신의 문제는 아주 조금 풀어 놓았을 뿐 정신과 의사로서의 당부와 조언이 비교적 많았다. 작가의 몸은 점점 더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살아가는 이유, 아니 그 고통을 이기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독자들은 궁금하리라.

 

"그러나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삶을 살아 보면,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면,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당신이 그 세상을 보고 감탄한다면 무의미한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287)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삶이란 경험으로 축적된 내 기억을 어떤 대상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평탄하게 산 까닭에 아무것도 들려줄 게 없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내 인생은 다른 어떤 인생보다 더 드라마틱해야 한다.누구나 내 마지막 순간에 내 머릿속 기억을 서로 차지하려고 안달한다면 나로서는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 삶의 기억이 소진되어, 어딘가에 뿔뿔이 흩어지기를 소망한다. 예컨대 홈쇼핑에서 삶의 기억도 판매된다면 내 삶의 기억이 순식간에 완판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작가가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하루하루 재미있게 사는 까닭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순간에 완판을 꿈꾸면서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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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5-05-14 15:56   좋아요 0 | URL
저자도 환자였군요.. 참으로 위대한 분입니다.

꼼쥐 2015-05-14 16:01   좋아요 0 | URL
네, 정신과 의사로서 바쁘게 살던 분이 15년전 어느 날 파킨슨병 확진을 받았나 봅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사는 걸 보면 대단한 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