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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 길 위에서 배운 말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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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단순히 놀이나 유희가 아닌 단지 효용의 차원에서만 바라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독서에 대한 흥미는 반쯤 잃게 된다. 내가 지금보다 더 젊거나 어렸던 시절에 독서는 그저 생활의 일부라고 여겼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거나 외롭다거나 이유도 없이 슬프다거나 할 때 책은 말없는 위로였고, 가까운 친구였고, 때로는 기분전환의 놀이가 되기도 했다. 어떤 책을 읽어야지 작정하지 않았고 읽을 책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곤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비스듬한 사면을 따라 빠르게 구르는 동안 나는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내 손에 쥐어졌던 행복한 기억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여행작가 변종모의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를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서 느꼈던 단편적인 생각들과 지나치게 감상적인 여행자의 애수 또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조각조각 이어 붙인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과거의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서도 가끔씩 등장하는 멋진 문장에 감탄하거나 때로는 애수어린 문장에 찔끔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그만큼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이었다.

 

"생략과 축축한 침묵. 그 안에 나머지를 남기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제 모든 걸 담아두는 사람이 있다. 타인에 의해 눈물 흘리는가? 타인을 위해 눈물 흘리는가? 자신에 의해 눈물 흘리는가? 자신을 위해 눈물 흘리는가? 눈물은 너의 마지막 언어. 말로는 위로할 수 없는 모스부호. 너를 위해 밖으로 울고 나를 위해 안으로 운다." (p.172)

 

도무지 쓸모가 떠오르지 않는 책은 읽는 데 오래 걸린다. 기준이 하나여서 그렇다. 여러 갈래의 시골길을 오랜 세월 잊고 지낸 까닭이지만 옆 시선을 가린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인다. 삶은 셀 수도 없이 다양하고 이따금 누군가에게 곁을 내주어야 하겠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꾸역꾸역 읽고 있다. 이렇게 힘든 책은(책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읽어내지 못하는 내가 문제이겠지만) 하나하나의 낱글자도 마치 여행서적의 화려한 풍경처럼 하나의 정지된 화면, 쉽게 잊혀지는 풍경처럼 읽힌다.

 

읽는 속도에 시간을 맞추기라도 하려는 듯 머릿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지우개가 기억의 옅은 흔적들을 지우고 있다. 말끔하게. 그럼에도 작가는 내 마음을 조금만 알아달라는 듯 열심히 말을 건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길 위에서 만난 말들', '내 안의 말들', '길 위에 두고 온 말들'이 그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가슴 속에 켜켜이 쌓아 둔 말들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말을 공감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원이 아니다. 다만 말하고 싶었을 뿐.

 

"나를 먼저 속이고 네가 내게 속아주길 바라는 일은 양심을 따지기 이전에 죄책감부터 드는 일이었다. 한 번 쏟은 물을 다시 담는 일과 한 번 날아간 화살을 되돌리는 일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한 것처럼 내가 나를 속이는 일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을 겨안은 기분이기도 하다. 부풀 대로 부풀고 불 대로 불어버린 왜곡과 거나해질 대로 거나해져 과장된 말들은 너와 나 사이에 벽을 치고 그 벽 앞에 다시 금을 긋는 일이었다." (p.325)

 

무더위에 지친 어느 여름날 그저 스쳐가는 바람도 마냥 반갑듯이 사람은 때로 내 가슴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도 반가울 때가 있다. 내 말이 누군가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지 않은들 또 어떤가. 바람처럼 네 가슴을 비껴간들 네 우울과 슬픔을 조금쯤 걷어낼 수만 있다면... 결국에는 잊혀질 말들도 지금 이 순간 네 가슴을 적실 수만 있다면 가슴에 남는 의미가 없다 한들 또 어떠랴.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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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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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6: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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