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 정호승 시인의 또 다른 작품인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읽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읽다 말았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 - 전해 내려오는 명언이나 명구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한 권의 책으로 엮은-에 약간의 거부반응이 있다.  어찌 보면 가장 편하고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말이다.

 

여기에는 책에 대한 나의 편견이 한몫 하고 있다.  책이란 모름지기 기억에 오래 남아야 하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의 효용성 내지는 실용성 중심의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이런 종류의 책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 머릿속에 남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몇몇 문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는 술술 읽히지만 읽고 난 후에 남는 것이 없거나 빈약하다면 도대체 뭐하러 책을 읽을 것이며, 흘려 보낸그 시간이 마냥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겠는가.

 

독서의 효용을 지극히 중시했던 이러한 태도는 내 삶의 전반을 지배한 듯하다.  어떤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 하거나 그 사실만을 도드라지게 보이려 했던 나의 태도는 지금에 와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읽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강박은 그 시작이 지적 허세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결국에는 책의 내용이 내 몸에 체화되지 못한 채 겉돌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공부를 해도 공부한 바 없는 듯이, 우물 속에 내린 눈이 스스로 녹아 없어지듯이 겸손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는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럼으로써 인간이라는 나 자신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한다는 것입니다."    (p.85 - 86)

 

정호승 시인은 공부를 '담설전정(擔雪塡井)' 하듯이 하라고 하였다.  '무엇을 하더라도 눈을 짊어지고 우물을 메우는 것처럼 하라'는 뜻이다.  공부가 자신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공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내가 퍼다 날른 눈이 우물물에 스르르 녹듯이 드러내거나 많이 아는 듯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동안 나 스스로를 경쟁이라는 거대한 줄에 줄을 세운 격이었다.

 

며칠 전에도 대구의 한 고등학생이 투신 자살을 했다.  이제는 하도 만성이 되어 특별한 소식으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인터넷의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몇몇의 젊은이들이 동반 자살을 했다는 소식도 잊을 만하면 들려오곤 한다.  때로는 경제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는 중년의 가장이나 삶을 비관하여 아이들과 함께 투신하는 어머니도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자살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과 위안을 안겨주는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자신의 삶을 그처럼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까?   

 

“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지 않는다. 봄날에 피는 꽃을 한번 보십시오. 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지 않습니다. 꽃을 피우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꽃을 피우고, 피어난 꽃은 그대로 방황하지 않고 열심히 삽니다. 누가 보든 말든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하늘을 향해 피어 있다가 때가 되면 시들어 열매를 맺습니다.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은 한 송이 꽃은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오직 꽃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의 존재 또한 그가 만일 진정한 인간이라면 온 세상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P183)

 

누구의 삶인들 고비가 없었을까?  그것이 작든 크든 우리는 그 고비를 만날 때마다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먼 훗날 그때의 추억을 거리낌 없이 말하곤 한다.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조차 되지 못하는 문학의 무용론, 그 가운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 아니었을까?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먹먹해집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마치 '오늘도 내가 자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그들의 자살을 통해 내 생명의 무게나 가치조차 가볍고 무가치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결코 그럴 리 없겠지만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지면 나도 그들처럼 자살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p.461)

 

시인은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아픈 이들을 향해, 벼랑 끝에 선 모든 위태로운 사람들을 향해 가슴을 열고 자신의 체온을 나눠주려는 듯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가슴에는 촉촉히 비가 내리고 꽃샘 바람도 부드럽게 흐르는 듯 느꼈다.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고 외치는 시인의 목소리가 허망하게 들릴지라도 삶의 고통을 꿋꿋이 참으며 살아가는 생존의 현장을 보면 우리는 한번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그 곁에서 등이라도 토닥이며 '다 괜찮아'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삶의 계절은 언제나 봄날일 것이다.  생명이 가득한.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