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이용한.한국고양이보호협회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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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 작가의 고양이 시리즈 책들을 읽으면서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이사 가기전 빌라 장독대로 놀러 오는 고양이 식구들을 발견하고서는 가끔 캔 간식을 놓고는 했었는데 그 행동에 책임이 필요 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알았다.

 

 

 

이용한 작가와 고양이보호협회와 함께 쓴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는 우리가 만나는 길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다. 혹은 길고양이들을 위해 캣 맘과 캣 대디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안내서가 되겠다. 혹은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길고양이들에 대한 안내서다.

 

 

 

주차된 자동차 밑이나 골목길, 혹은 낮은 담장위에서 만나게 되는 길고양이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들이 많다.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길고양이들을 오래전에는 '도둑고양이'라고 불렸었다. 담장을 넘어 먹을 것을 찾으러 와 몰래 가져가거나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먹고 가는 고양이들에게 '도둑'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었다. 그러다 '길고양이'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아직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골목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을 '도둑고양이'들이라고 부르기도 하신다. 그래서 일까? 유독 우리나라는 고양이에 대한 인심이 야박해 보인다.

 

 

 

터키로 여행을 갔을 때 느꼈던 것은 고양이들이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만났던 길고양이들은 사람이 가깝게 가기만 하면 도망가고 오지 않지만 그곳의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에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어보였다. 사람들의 손길을 즐기기도 하고 싫은 내색도 하면서 사람과 고양이와의 공존의 삶을 살아가고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터키만의 모습은 아니었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고양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우리와 많이 달랐다. 터키 에페소에서 유적지를 돌아보고 있던 도중 만난 고양이는 그 귀한 유적지 돌 위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관리인도 그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누구 하나 고양이를 쫓아 내지 않았다. 우리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터키 유적지의 고양이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 하고 있는 한 사람은 서울에서 유명한 숲에 있는 고양이 가족들에게 밥을 주고 있는 캣 맘이며 작가다. 그녀는 얼마 전에 울면서 사진을 올렸다. 숲 관리인이 그녀에게 더 이상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고양이들이 화단을 망쳐 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망쳐 놓은 화단을 정리하고 더 이상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변도 더 많이 신경 써서 청소도 해주고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겠다고 했지만, 관리인은 3월 29일까지 고양이들을 모두 떠나게 하라고 했다고 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길고양이들에 의해 시설이 망가지고 오염되면 안 된다면서. 어미와 자식들 셋은 늘 그녀가 가져다주는 밥을 먹으며 매일 그녀를 기다렸는데 이제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지 못하게 되었다. 금연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더 슬프고 화가 났다고 했다. 이제 그 고양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만다. 대체 그 숲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자라고 길에서 삶을 마감하는 길고양이의 수명은 평균 3년이라고 한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의 수명이 15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5배나 짧은 생이다. 그 짧은 생을 살아가는 동안도 고단하고 힘든 삶이다. 그 고단한 삶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곳까지 빼앗으려고 하니 참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다.

모두가 길고양이를 좋아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도가 넘는 해를 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밥을 먹고 있는 고양이를 들어 시멘트 바닥에 던져 두개골이 깨지며 죽는 고양이 영상을 본적이 있다. 아기 고양이를 죽여 사지를 나뭇가지에 묶어 놓은 사람도 있었다. 고양이 꼬리를 자르거나 귀를 잘라 놓은 사람들도 있었다. 고양이가, 당신에게 어떤 잘못을 했단 말인지, 고양이를 싫어 할 수도 있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 학대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밤이면 아이 울음소리로 들리는 고양이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한 가지로 얘기를 한다. 암컷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발정이 온다고 하는데 그때 수컷과 암컷의 소리들이 그렇게 들리곤 한다. 많은 개채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동물 단체에서는 중성화 수술, TNR을 하고 있다. 간혹 길고양이 귀의 끝이 살짝 잘려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 길고양이들은 중성화 수술을 했다는 표시다. 그들은 영역 싸움을 할 수는 있어도 발정이 와서 짝을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길고양이 학대 기사에 어떤 사람이 쓴 댓글에 나도 모르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길고양이들이 귀엽기 때문에 밥을 주고 보살피는 게 문제라고 했다. 만약 뱀이나 쥐가 귀여웠다면 길에다 다 풀어 놓고 키웠을 것이라고. 길고양이들 특이 어린 새끼 고양이들은 귀엽다. 그래서 간혹 어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어린 고양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한때를 보내고 나면 성묘가 된 고양이도 귀엽지만 어릴 때만큼 귀엽지 않고 고양이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사랑스러운 만큼 털이 빠져서 검정 옷을 입는 일이 줄어든다. 환절기에 특히 털이 많이 빠지는데 그냥 걸어만 다녀도 바닥에 털이 쌓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고양이들이 유기되기도 한다. 사람에게 길들여진 고양이들은 먹이를 찾아다니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 입양시에 많은 생각과 결심이 필요하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책임감은 결국 경제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면 사람 병원비보다 몇 배가 비싸고, 생각보다 관리 해 줄 것이 많다. 15년은 나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비용과 함께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몇 번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내일부터는 그곳에서 더 이상 먹이를 먹을 수 없는 숲의 그 고양이들을 생각하니 걱정이 된다.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이토록 힘든 길고양이들을 위해 함께 공존 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함께, 같이 살아가는 날들이 더 많아지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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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힘 -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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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방법들을 들여다 보기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몇 년 전에 축구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더 이상 운동을 못하고 혼자 공부를 해서 변호사가 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의 노력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 생각을 못하고 그저 그의 결과에만 부럽다,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그 책에서 그는 그가 가져야 했던 고독의 시간을 이야기 하며 혼자 있었던 시간의 소중함을 이야기 했다.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어서 사법고시에 합격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요즘 흔하게 혼밥을 먹으며 SNS에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도 많고 혼술을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들이 맞는 혼자 있는 시간과 자신을 찾기 위해 사람들과 관계에서 멀리 떨어진 혼자만의 시간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하나는 선택적인 혼자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하지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혼자가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선택적인 혼자의 시간이 아니라도 만약,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발전된 나를 만들 시간을 주면 된다고 한다. 물론, 말은 참 쉽다. 글은 읽으면 그만이다. 어떤 것이든 실행이 문제이고 자극이 되지 않는다면 책에서 주어진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쇠약할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선택적인 혼자가 되었을 때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분명 뭔가 명쾌한 대답을 해 줄 것 같지만 대부분이 그렇듯 책에서 제시한 대답에 의문을 갖게 되어 있고 실망을 하게 된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세 가지 기술을 알려 줬는데 그 세 가지는

1) 눈앞의 일에 집중한다.

2) 원서를 읽거나 번역을 해본다.

3) 독서에 몰입한다.

 

 

위 세 가지 방법으로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했던 방법이라는데, 정말 존경하고 싶다. 눈앞에 일에 집중 하고 싶어도 허전한 마음이 때로는 이유 없이 쏟아져 눈물이 차오를 때도 있고, 원서를 읽거나 번역을 하려고 하면 속이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 독서에 몰입을 해보려고 해도 간혹 나와 비슷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측은한 그 사람을 위로하고 싶어 또 울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방법이 모두 정적이 아니니 자신만의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것을 찾아보면 되겠다. 저자의 방법이 매우 도덕적이고 착해 보여서 일탈을 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도 몇 가지를 선택해서 그 외로움을 극복해 보자.

 

“혼자 있는 시간을 잘못 보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거나 배제하고 싶어 하는 상태를 말한다.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침잠하여 자아를 확립한 후에 다른 사람들과 유연하게 관계를 맺고 감정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사람’은 그저 취미가 맞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이다.” P190

 

 

저자는 침잠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물속 깊숙이 잠기면 무음의 세계를 떠도는 듯한 고요함, 그런 고요함 속에서 혼자 무언가에 몰두하는 상태에서 오는 자아의 성찰이야 말로 중요한 깨달음이라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그 ‘침잠’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지만 현실은 혼자 있으면 딴 짓 할 수 있는 여건이 많다. 그것을 피하고 극복한다면 분명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통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또 한 단계 성장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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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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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가족들이 풍년이구나. [사랑이 달리다 _ 심윤경]

 

[달의 제단]과 [나의 아름다운 정원], [이현의 연애]까지 읽으면서 작가 심윤경이 좋았다. 이런 깊이 있는 작품을 쓰는 그녀를 격려하며 더 좋은 소설을 써 줄 것을 기다렸다가 만난 그녀의 작품 [사랑이 달리다]는 당황스러웠다. 그간 읽었던 그녀의 소설은 늘 조용했었다. 작가가 내성 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나름의 추측도 해 보면서 그녀의 소설을 읽었는데 이 작품을 처음 만났다면 그녀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알 것 같다. 물론 소설을 쓰는 기법이 달라졌다고 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이것은 그간 내가 알던 심윤경이 아니었다.

 

 

졸부 집 딸로 표현하면 딱 좋은 김혜나는 그 나이대의 전형적인 여자가 아니다. 작가는 마흔이 가까워 오는 나이지만 매우 귀여운 매력을 갖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벼운 대사들, 생각들 그것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행동들은 철없는 부잣집 막내딸로 적당한 캐릭터다. 그녀가 끌고 가는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모두 그녀와 닮아 있다. 남편의 바람으로 황혼 이혼을 한 엄마와 돈 귀한지 모르고 살았던 습성으로 무작정 지르며 살다가 결국 감옥에 끌려가고 마는 작은 오빠와, 아버지의 돈을 타 쓰기 위해 자신보다 어린 새엄마에게도 예의를 지키며 모시고 있는 큰 오빠도 모두 아버지의 부로 인해 풍족한 생활을 해서 세상의 구김살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주인공 혜나도 39살까지 직장 생활이라곤 전혀 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성민이 회사에서 지방으로 좌천되면서 그녀의 생활이 달리기지 시작한다.

 

 

 

작은 오빠의 대학 선배였던 정욱연은 강남에서 잘나가는 산부인과 의사다. 그는 또 하필 캐나다에 부인과 아이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나 있는 기러기 아빠였고, 지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와중, 늘 후배의 여동생이 궁금했던 혜나를 만나게 됐다. 그녀는 아버지의 마법의 카드로 남편의 월급이 적어도 불편하지 않게 생활하면서 살았지만, 아버지의 재혼으로 마법의 카드는 더 이상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않게 됐다. 지방 발령까지 가버린 남편의 부재와 마법의 카드의 빈자리를 채울 무엇인가 필요했다. 그것이 정욱연이 되었고 그녀는 그를 가졌다.

 

 

그녀는 사랑받으면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녀의 생일이면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한복을 입고 하루 종일 춤을 추었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딸로, 오빠들의 사랑스러운 동생으로 자랐다. 그런 그녀의 해 맑음은 미치광이 세 명의 형에게 늘 시달렸던 정욱연에게 사이다 같은 존재였다. 그녀로 인해 그가 잠시나마 청량감 있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까.

 

 

모두에게 사랑받은 여자였기 때문일지라도 그녀는 결국 정욱연과 불륜 관계였지만 누구하나 그녀의 불륜을 질타하지 않는다. 작은 오빠는 정욱연의 쌓아 놓은 재산을 얘기하며 꼭 잡으라고 얘기한다. 강남의 유명한 산부인과 원장과 가족이 된다는 것에 오히려 더 감격을 하는 작은 오빠의 떨림에 이 소설의 맥락을 찾아보려 애를 썼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남편은 지방 발령으로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그녀는 남편을 따라가지 않았다. 혼자 스스로 선택하면서 자아를 찾아 가는 줄 알았던 그녀가 정욱연과 관계를 맺고 그와 사랑을 꿈꾸는 부분에서는 너무 도덕적인 것을 내가 주인공들에게 원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현실에서는 어떨지라도 소설 속에서의 불륜은 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꼭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주인공 혜나는 귀엽고 엉뚱한 부잣집 막내딸로 아무 생각 없는 여자로 밖에 안 보인다.

 

 

그녀의 사랑이 운명과 같다고 생각해 보다가도 왜 하필 회사에서 미움을 받아 좌천된 남편을 모른 척 하고, 돈 많은 강남 산부인과 원장을 택했을까? 돈 많은 남자가 아니었다면 정욱연을 택했을까? 인생을 걸고 몸을 내 던진 진짜 사랑이 왜 하필 그때였을까?

 

 

그녀는 이 작품의 내용이 부족했는지 1년 후 후속 [사랑이 채우다]를 썼다. 물론 심윤경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인 가독성이 좋은 문장력으로 인해 두 번째 작품도 읽었지만 오히려 두 번째 작품은 안 읽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그녀의 유쾌한 문장은 좋았다. 이편에선 사실 정욱연을 나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혜나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그녀의 남편 성민이가 너무 불쌍했으니까.

 

그래도 오랫동안 소설 작품을 내지 않는 그녀의 다음 책을 그래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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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가 집에 온지 4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폭풍 성장해서 애기, 애기 한 모습은 전혀 없고 성묘처럼 보인다. 아직은 애기 인데, 라고 생각은 오로지 나뿐이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1년 이상 된 고양이로 보고 있다.

 

 

 

아이 엄마들이 간혹 아이의 나이를 물어 볼 때 년이 아닌 개월 수로 물어 보듯이 나도 우리 루키를 몇 개월 밖에 안됐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가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고양이에게 개월 수가 중요 할까?

 

 

폭풍 성장한 루키는 점프력도 상승해서 어디든 올라 다닌다. 다행히 내가 아끼는 전시품들은 건들지 않고 조심히 다니는 걸 보면서 기특하다가도 뭔가 좋은 것이 나타나면 흥분해서 결국 도자기 하나를 깨고 말았다. 내가 느끼는 그 미안함이 정말 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 주변을 다니지 않고 있어 눈치는 있는 고양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막 기특해 하고 있다.

 

 

작업 좀 해야지, 컴퓨터를 켜고 앉으면 이제 잠시 자신의 분량을 챙기며 감상을 원한다. 유투브에 고양이 관련 영상이 있는데 새가 날아다니는 영상이다. 아무런 소리도 없고 오로지 새 소리 밖에 없다. 신기 하게도 영상을 보여 주는 동안 조용하다.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그 뒷모습이 웃기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다.

 

 

술 먹고 들어 온 날 잠을 자다가 기척이 나서 눈을 떴더니 루키가 내 얼굴 옆에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루키는 딱 삼 개월이 된 이후부터 혼자 잔다. 고양이들이 독립심이 생긴다던데 정말로 내가 그 자리에 놓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는걸 보면서 이걸 또 기특해 하고 있다) 내가 잠꼬대가 심했나, 코를 골았나? 루키가 나를 한참 보더니 솜방망이 발로 내 이마를 한 번 대보고 다시 나를 처다 본 후 자신의 집으로 가서 잠을 청하는 걸 보면서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흘렀다. 이것은 오로지 그냥 나 혼자 느끼는 감정이지만, 루키가 나를 걱정하며 한참을 보다가 갔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다. 매일 손 깨물어도 그래, 키운 보람이 있어....뭐 이런 기분이랄까.

 

 

 

사실 루키를 입양하고 한 달 동안은 루키의 입양을 후회했다. 너무 준비 없이 입양한 것을 후회 했고, 원 주인에게 다시 파양을 할 것인가 며칠을 고민했다. 그 고민을 하는 동안 루키는 감기로 약을 3개월 동안 먹고 있다. 이 감기만 다 나으면 다시 돌려보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감기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결국 루키는 집에 눌러 앉게 됐다. 집에 돌아오면 골골거리며 내 다리 사이를 오가는 루키 때문에 아직 매일 매일 행복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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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20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면서도 함께 사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나이와 수명 때문인 것 같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새끼를 좋아해서 나이 든 성묘 · 성견보다는 아기 고양이와 강아지를 입양하려고 해요. 나이 든 반려동물은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지기 때문에 주인 입장에서는 병든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것을 부담스러워 해요. 반려동물의 나이와 수명에 신경 쓰지 않고, 변함없는 애정을 주면서 함께 지낸다면 그 반려동물은 건강하게 오래 살 것입니다. ^^

오후즈음 2018-03-20 20:14   좋아요 1 | URL
사실 그 부분때문에 저도 입양을 오랫동안 생각했었어요. 몇달전 9년이나 키웠던 리트리버를 상자에 넣어 버린 주인도 그런 이유때문에 버렸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속상하더라구요. 개가 아픈게 너무 힘들어서 상자에 버렸다는 주인에게 화가 났다가도 그 이유를 생각하며 루키의 입양은 정말 오랫동안 고민이었습니다. 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은 결국 모두 키우기 힘든 환경이 되었다고 하지만 결국 보면 다 돈이더라구요. 아프면 돈이 정말 많이 들거든요...동물을 키우는 책임감은 어쩌면 경재력인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Breeze 2018-03-20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고양이 넘 예뻐요. 딸아이가 분양받아 온 고양이가 우리집에 온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가요.
오후즈음님 사진에서처럼 비닐 봉지에도 자주 들어가고, 거실에 놓아둔 스타치스 말린 꽃도 뜯어 먹느라 다 없앴답니다. 온 집안을 초토화시켜 놔서요. 고양이도 사람을 닮는지 딸아이 성격처럼 호기심 많은 고양이랍니다. ^^

오후즈음 2018-03-20 20:16   좋아요 1 | URL
루키가 잘 보면 쫌 못생겼는데 ㅋㅋ 찢어진 아몬드 눈도 그렇고..하지만 제 눈에는 한없이 예쁜.
저는 집에서 음식 못 해 먹은지 두달이 넘었어요. 싱크대 올라오면서 부터...제가 뭘하면 너무 궁금해서 칼질해도 옆에 앉아 있거든요. ㅠㅠ
고양이는 대부분 주인의 성향을 닮는다고 하더라구요. 호기심쟁이군요, 저희 집도 그래요~ ^^
 
복수의 심리학 - 우리는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가
스티븐 파인먼 지음, 이재경 옮김, 신동근 추천 / 반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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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와 용서 사이를 건너기 [복수의 심리학_ 스티븐 파인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방황하는 칼날]은 성폭행 당한 후 사체로 자신에게 온 딸을 죽인범인들을 죽이는 복수의 얘기다. 소년법으로 10대에게는 큰 형벌이 주어지지 않고, 딸을 죽인 범인들을 처리하기 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싸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부분 복수를 일으키는 것은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P233) 그 분노를 일으키는 감정들은 몇 가지 있다고 한다.

 

 

 

박탈감, 불평등, 불공평, 불공정, 배신감, 착취당한 느낌과 이용당한 느낌, 좌절감, 수치심, 시기와 질투들은 분노를 일으키고 이 감정은 복수라는 또 다른 감정을 만들어 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의 주인공은 소년법으로 인해 성폭행과 살인을 해 놓고도 법의 처벌이 너무 낮은 것에 분노를 느꼈으며 그들을 복수의 대상이 되었다. 그 복수가 올바른 선택이라고 하지 못하겠지만, 분노만은 충분히 공감 할 수밖에 없다. 내 가족을 해한 악당들을 처리하기 위한 복수극은 비단 이 소설뿐만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복수의 심리학>은 역사 속 인물부터 시대에 걸친 복수로 인한 사건들을 들려준다. 글을 쓰는 창작자들은 복수라는 테마를 가지고 많은 글들을 써 왔으며 그 근간은 어디서부터 왔는지 복수의 뿌리를 살핀다. 그 이야기는 공포 정치를 한 스탈린과 후세인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의 공포 정치는 모두 어린 시절과 콤플렉스로 만들어진 복수의 칼날에서 나왔다. 스탈린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부모와 관련된 소문에 강압적으로 주변 관리를 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날아 올 복수의 총구를 피하기 위해 안전 문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안전 문 때문에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아무도 그 문을 열지 못했고 사흘이나 지나서 그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하니 그는 결국 자신을 방어하다 스스로 죽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안전문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가 좀 더 일찍 발견 됐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그가 악인이 되지 않았다면, 그의 어린 시절이 조금 더 따뜻했다면 그가 그렇게 자랐을까?

 

 

 

“작가와 척지지 마라. 인쇄기로 찍어서 복수하는 자들이다.” P72

 

 

 

문학에서도 복수의 심리학을 찾아 볼 수 있다. 너무도 유명한 헤밍웨이 또한 자신의 전 부인과 이혼을 한 후 그녀에 대한 험담을 소설로 썼다. 작가 글로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고, 최대한 잔인하게 그를 묘사 할 수 있었다. 언젠가 <서울의 달>을 쓴 작가 김운경은 자신의 돈을 갚지 않고 도망간 친구의 이름을 주인공 이름으로 썼다고 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복수였다. 그 주인공은 깡패들에게 맞아 죽었다. 드라마 방영 당시 48.7%의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으니 그 ‘홍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의 죽음을 보지 않았을까? 사실 이런 복수라면 나도 여러 번 하고 싶다.

 

 

 

“그렇다면 복수는 부정적인 것이기만 할까? 사실 복수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복수는 때로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손상된 자존감과 명예를 세우는 것이며,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극적인 결말이 예상되는 복수를 권할 수는 없다. 많은 종교에서 복수 대신 용서를 권한다. 용서는 최고의 미덕이다. 하지만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용서하지 못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이 느끼는 분함과 억울함은 때론 자신의 삶을 포기할 만큼 강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만큼의 고통을 겪지 못한 사람이 섣불리 용서하라고 권하기 힘들다.”P236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 전도연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유괴로 잃고 말았다. 그녀의 아들을 유괴한 사람이 잡히고 그녀는 그를 용서하기 위해 많이 애를 썼다. 괴로운 날을 견디며 용서하기위해 그를 찾았다. 평온한 얼굴을 한 그는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에게 그렇게 어려웠던 용서가 하나님은 왜 그토록 쉽게 그를 용서 했는지 그녀는 분노했고 자해했다. 복수 대신 용서라는 관용을 베풀며 살아 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 훌륭한 미덕을 갖기가 쉽지 않다. 기독교에서는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한쪽을 대주라고 하지만 어찌 그렇게 쉽게 다른 한쪽을 댈 수 있을까.

 

 

 

책에서 제시한 현실적인 복수의 대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마음속으로의 복수를 꿈꿔 보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나쁜 기억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연습을 해보길 권한다. 넷째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다.

 

 

사실 이 현실적인 대안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똑같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고 싶지는 않다. 정치인들의 회고록에서처럼 그때 나는 언제나 옳았고 다른 이들이 항상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나도 그때 틀렸었다고 말 할 수 있는 반성이 있다면 분노의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을까. 분노도 마음이 다쳐 생기는 것이니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있다면 서로 총을 겨누는 일들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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