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선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1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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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버먼(Sheri Berman)의 <정치가 우선한다 Primacy of Politics>를 읽으면서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와 카우츠키가 완성하여 각종 조직과 정당에 전파한 ’마르크스주의’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가 어떻게 다르고 마르크스가 수립한 철학과 방법론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내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비교하고 싶었다.
 
지난 2월 21일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노동자 등 민중들을 빈곤과 인간소외로 몰아갔던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지 163년이 되던 날이었다. 20세기 초 서구유럽과 전세계에 유령처럼 떠돌다가 20세기 후반 사라져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공산당 선언]으로 시작된 셈이다. 마르크스의 예언과 달리 자본주의체제는 아직도 살아남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탈을 쓰고 암세포처럼 전세계 구석구석을 잠식하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그 당시나 21세기인 지금도 ’민중의 빈곤과 인간소외’는 여전히 지구 대부분의 지역에서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만큼 자본주의의 은폐된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엄밀하게 비판한 사상도 드물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마르크스는 어떤 사상가보다도 예리한 현실 감각으로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자본의 논리로 야기되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이 책에는 이데올로기를 현실에 단순히 대립시키는 교저적인 태도를 경계하고,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원리를 현실 자체에서 도출해내려는 마르크스의 과학적 태도가 드러난다. 나아가 마르크스는 혁명에 대한 열정과 냉철한 현실 분석으로 인간 해방을 꿈꾼다. 어쩌면 마르크스 사후에 탄생한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진정한 문제의식과 인간해방의 꿈, 과학적 방법론과 혁명에 대한 열정 대신에 ’경전’과 ’교조’로서 변질되었는지도 모른다.
 
--------------------- [공산당 선언]이란 무엇인가? -----------------------
공산주의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하여 집필된 공산주의자들의 최초의 강령적 문헌으로, 1848년 2월 21일 첫 출판되었다. 19세기 중엽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무대에 등장한 프롤레타리아에게 그의 역사적 사명과 해방의 앞길을 밝혀 주고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지도적 지침을 확립한다는 목적의식 하에 1847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초안이 작성되었다. 1847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가입한 의인동맹(義人同盟, Bund der Gerechten)은 공산당선언을 동맹의 정책문서로 채택하였다. 그 해 여름 조직은 재정비되었고 1848년 공산주의자동맹으로 다시 태어났다. ------------------------------
 
이 책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83년에 작성한 <공산주의의 원칙>과 1884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 그리고 각국 언어의 번역본에 대한 서문, 마지막으로 이진우씨의 ’철학자 마르크스에 대한 해설’이 들어있다.
 
제1부. [공산당 선언] 
- 서문 :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문구로 유명하다.
- 1장.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서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발생 과정,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과 그 멸망의 불가피성을 설명한다.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에 기초한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의 계급 투쟁이 인류 역사의 기본 내용이며 사회발전의 추동력이라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가 이룬 막대한 업적을 역설적으로 찬양하였으나, 선언이 쓰여진 시점에서 부르주아는 "명계에서 불러낸 마물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와 같이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지배계급도 부르주아지가 아닌 새롭게 떠오른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역이 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 2장.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과업이 프롤레타리아의 목적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프롤레타리아 주도의 공산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든 공산주의자들의 최고목적이라고 밝힌다.
- 3장. [사회주의 문헌과 공산주의 문헌]에서는 기독교 사회주의, 봉건적 사회주의,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변적 사회주의 등의 기존 사이비 사회주의 조류들을 비판한다.
- 4장. [각종 반정부당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태도]에서는 각국 공산당들의 기본적인 혁명 전략을 다룬다. 선언은 국제적 단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것은 족쇄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단결하라!"라는 구호로 끝을 맺는다.
 
제2부. [공산주의의 원칙]은 1847년 공산주의자 동맹을 위한 강령의 초안을 나타낸다. 엥겔스는 당시 공산주의자 동맹의 런던 소재 중앙본부에서 작성한 공산주의 강령 초안을 매우 상세하게 비판하여 수정안을 교리문답식의 형식으로 작성하였다.
 
제3부. [해제 - 철학자 마르크스, 공산주의에서 공생주의]에서 역자(이진우)는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 반드시 예언의 지식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역자는 자신의 삶의 실존 근거가 자신에게 있지 않고 남에게 있거나, 돈과 같은 무형의 것에 있는 것은 ’노예적 삶’이라고 할 때, 현대인들은 과거의 노예들 만큼이나 노예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역자는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적 궤적을 자세하게 다루면서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 사상의 이중성 - 이데올로기와 철학 - 을 왜곡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가 혁명의 열정에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거나 아니면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단순한 방법론으로 경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 이론가, 단순한 사회과학자가 아니라 혁명적 사상가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예언이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무엇보다 ’인간해방의 문제를 철저하게 사유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역자는 마르크스의 철학적 방향을 ’현실 속에서 이념을 찾는 것’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그것을 그의 전 생애와 저서에서 관철시켰다고 말한다.
 
역자는 [공산당 선언]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몇 가지 명제, 즉 사적유물론과 계급투쟁, 사적 소유의 폐지에 대해 마르크스를 변호한다.
또한, 역자는 마르크스의 철학과 사회과학 방법론,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등장을 모더니즘으로 이해한다. 
 
 
 
---------- 칼 마르크스는 누구인가? -----------------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나 본 대학, 베를린 대학에서 법률·역사·철학을 공부한 뒤 예나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에 기초하여 근본적인 인간 해방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파리와 벨기에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결국 추방되어 사망할 때까지 영국에서 살았는데, 경제학 연구에 몰두했다. 주요 저서로는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을 비롯하여, <자본론>, <임금 노동과 자본> 등이 있다. ---------------------------------
 
-----------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누구인가? -------------------------
독일 라인 주 바르멘에서 방직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엥겔스는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브레멘 상사에서 일하면서도 ’독일통신’에 지배계급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듣기도 했던 그는 영국의 맨체스터로 건너가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를 깊이 연구하였고 차티스트 운동 관련자들과 연계를 맺었으며 영국의 출판물들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1844년 독일로 가던 중 파리에서 칼 마르크스를 만났으며, 이때부터 마르크스와 함께 혁명적 활동을 하게 된다. 마르크스 개인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돕는 한편 1846년에는 마르크스와 함께 제1인터내셔널을 창건에 가담하였으며, 마르크스가 죽은 후(1883년)에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이끌며 1889년에는 제2인터내셔널을 창건하였다. ------------------------------

 
25년 만에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었다. 25년 전 선언문을 읽었을 때 이해와 느낌이 당연히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당시에도 마르크스 저작을 충분히 많고, 심도있게 공부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내가 섣불리 그의 사상과 학문에 대해 평가를 하거나 판단하는데 있어서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는 것과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데 동의한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에서 사상적, 이념적 편향이 없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21세기에는 진정으로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성역 없이 보장되어야 하듯이, 사상과 학문의 자유 역시 예외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는 소크라테스, 라이프니치, 니체, 칸트, 헤겔 등 서양의 철학과 철학자에 대한 이해의 연장선에 존재한다. 정치적인 이유나,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역사와 학문을 배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뿐더러 국가적, 국민적인 권리와 이익에도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이는 반일 감정을 이유로 서울대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학이 정규 학과로 개설되지 않은 역사와도 동일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마르크스의 진정한 업적은 인류의 역사를 경제적, 물질적 관점에서 조명한 점,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억눌렀던 인류의 역사를 드러낸 점,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 고찰한 점, 사적소유와 자본주의 경제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인간소외를 비롯한 인간에 대한 애정, 인류 역사에서 피지배층과 무산층의 정치적 의지를 북돋운 점 등을 들 수 있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의 실험이 실패했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철학과 사회과학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중국과 인도의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쿠바는? 북한식 사회주의와 남한식 자본주의를 옳고 그름으로, 맞고 틀림으로, 선과 악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러한 마르크스의 업적은 그의 사후 100년 넘도록 동서양을 통틀어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문제제기와 미래에 대한 비전은 정치, 경제 영역 뿐 아니라 환경, 생태, 공동체 등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계승, 발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서구 지식세계와 철학에서 계속 보이는 이원론은 여전히 개운치가 않다.  
 
[ 2011년 5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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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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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일 파티와 축하노래 등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들은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나서 물었다.
'왜 그렇게 하죠? 축하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건데, 나이를 먹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를 먹는데는 아무런 노력이 들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저절로 먹는 겁니다.'
내가 물었다.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죠?'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나아지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수 있습니다.'라고..."

지구상 어떤 인간종족 집단 중에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그것도 지구 환경 중에서 가장 거칠고 험난한 사막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배우고 알았던 인류 역사와는 다른 전개과정, 다른 역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치 우주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다우주’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들이 살아온 지구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우주였다. 
 
이 책은 지난 7월에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에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오래된 미래>에 이어 네 번째로 읽은 책이다.  
 
책의 제목인 ’무탄트’는 원주민들이 저자를 부를 때 사용한 이름이었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이고 어떤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서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자연에 도전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과 조화되지 못하는 서구인들이 돌연변이일 수 밖에 없다.
 
책 속에 나와있는 참사람 부족의 생활, 그리고 저자의 경험은 일반적인 내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텔레파시, 음악치료, 후각과 청각, 점술가의 예언 등... 
그럼에도 단적으로 그럴 가능성마저 없다고 내치지는 못하겠다.
내가 그럴 정도로 강력하고 깊은 경험과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류의 진화과정에 따라 인간도 적지 않은 신체능력이 발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미국과 비슷한 호주라는 국가의 역사와 호주 주류인들에 대한 강한 편견도 생겼다.
영국에서 변화가 불가능한 죄수들과 교도관들이 정착한 땅...
그들은 수 만년 전부터 호주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살륙하고 학대하고 착취하면서 호주땅을 장악하여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이제 와서 그 원래 주인들을 살려보겠다고 개화시키겠다고 선심을 쓰고 있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오두막 편지>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생명의 잔치’에 동참하지 못하는 돌연변이 문명인의 삶을 이렇게 질타하셨다.
"문명인들이라고 자처하는 현재의 우리들 삶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자연의 방식이 아닌,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요즘 같은 지구 환경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올바른 이해는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얻어듣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온전한 삶은 방식이고, 우리 자신과 우리 둘레의 수많은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오만과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분수를 알지 않고는 인간은 지구 최후의 동물로서 스스로 멸종되고 말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이 드는 요즘의 현실이다."
  
어떤 기독교인은 자신의 서평 및 추천란에 쓴 글이 있다.
"이 부족들의 삶은 내 인식의 생각을 초월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그들은 우리보다 구원의 삶에 더 깊이 참여하고 조상 대대로 누리고 왔다는 느낌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보다 그들에게 구원이 더 가까이 더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신 분은 일단 일독을 권해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나누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목차와 각 챕터의 주제...
1. 초대받은 손님
  - 훗날에야 나는 물건이나 자신이 가진 관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 시험에 통과하다.
  - 모든 일은 필요한 때 일어나도록 되어 있다. 당신은 이 여행을 경험해야만 한다. 당신은 바로 이 일을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다.
3. 신발이 필요없는 사람들
  - 우린 지금 당신의 발한테 미한다하고 말하고 있다. 당신이 두 발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발에게 어서 빨리 나아서 튼튼해지라고 부탁하고 있다.
4. 지구 반대편으로의 여행
  -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은 운명적인 일이다. 이곳엔 당신가ㅗ 연결된 사람이 있다. 그 약속은 당신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루어졌다.
5. 원주민은 사람이 아니다.
  - 당신은 원주민들을 잘 모른다. 그들은 원시적이고 폭력적이고 미개인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개종시키려고 오랜 세월을 허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6. 사막에서 보낸 하루
  - 그들이 나를 부를 때 사용한 이름은 무탄트였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이고 어떤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서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7. 참사람 부족
  - 그들은 대자연을 향해 먹을 걸 요청했고 그것이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조금도 버리지 않았으며, 그러면 언제나 그것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그것을 받았다.
8.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 참사람 부족이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금이든 많이든 결코 남을 속이지 않았다.
9. 몸 청소
  - 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저마다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 일시적인 변덕이나 부적합한 일, 우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10. 보석의 가치
  - 저녁에 참사람 부족의 처녀는 꽃목걸이를 땅에 내려놓아 어머니 대지에게로 돌려보냈다. 꽃은 이미 자신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실현했던 것이다. 처녀는 꽃에 깊이 감사했고 그날 많은 사람들로붜 받은 찬사를 마음 깊이 간직했다.
11. 더 나아지는 걸 축하하는 사람들
  - 우리는 생일이 아니라 나아지는 걸 축하한다. 작년보다 올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이 알 수 있다.
12.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 그들의 배설물에선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나느 문명 세계에서 50년이나 음식을 먹고 살았기 때문에 몸을 해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13. 진정한 치료
  - 참사람 부족은 아무나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육체는 높은 차원의 의식이 개인의 의식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믿었다.
14. 배움을 주는 것들
  - 인간이 버림의 의미를 배우기라 무척 어려운 일이다. 새것을 받아들인 빈 공간이 없으면 새것이 들어올 수 없다.
15.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사람들
  - 참사람 부족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우주 만물을 이용하지마, 어느 것 하나 어지럽히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날 줄 알았다.
16. 세상이 중심
  -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이 존재의 어떤 차원에서 그것과 같은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단지 자기 수행과 표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17. 음악 치료
  - 그들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도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으며, 원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18. 꿈을 붙잡는 사람
  -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꿈의 세계에도 존재할 수있고 일어날 수 있다. 모든 해답은 거기에 있다.
19. 희한한 저녁 식사
  - 사냥꾼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낙타무리르 ㄹ관찰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형제로 여기는 딩고의 사냥 방법을 이용해 무리 중에서 가장 약한 녀석을 잡기로 결정했다.
20. 행복을 전하는 사람
  - 사람이 숨을 쉬고 있다고 해서 다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아직 땅에 묻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숨을 쉬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이 많다.
21. 길잡이가 되다.
  - 우리 모두가 하나이며,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고 그들이 말했지만 나는 관찰자일 뿐이었다. 나는 늘 나 자신을 그들과 따로 떼어 놓고 있었다.
22. 신성한 동굴에 들어가다.
  - 이것들은 신이 최초로 창조한 사람들이며 유일하게 진실한 참사람 부족이 지구상에 남긴 것이다. 우리 부족의 유물들은 무탄트들이 다 빼앗아 갔다.
23. 꿈의 시대
  - 신의 부족인 우리 참사람 부족은 곧 지구르 ㄹ떠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가장 젊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곧 부족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24. 그림으로 기록한 역사
  - 참사람 부족의 지혜는 나를 끊임없이 놀라게 했다. 만일 그들이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면, 우리의 인간 관계는 얼마나 많이 달라질 것인가!
25. 참사람 부족의 일원이 되다.
 -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참사람 부족은 무탄트들과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26. 생일이 아니면서도 행복한 날
  - 이곳에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나는 이들과 함께 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보낸 멋진 날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27. 모든 것이 비에 떠내려가다
  - 신이 보시기에 내가 아직도 물건에 지나친 애착을 갖고 그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주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져가 버렸다고 그들은 말했다. 나는 깨달았다. 소중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28. 내가 원하던 삶
 - 그날 밤, 캄캄한 사막에서 나는 세계가 살아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마침내 두려움을 이겼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원하던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29. 작별
  - 우리는 무탄트들이 너무 늦기 전에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그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서로 헤치는 것을 어서 빨리 중단하기 바란다.
30. 해피 엔딩
  - 시간이 시작된 이래, 참사람 부족은 자신들이 우주와 하나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는 진실하고, 정직하고, 평화로운 종족이었다.


 
저자와 같은 기회가 나에게 닥칠 경우, 또는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내가 그녀처럼 그런 기회를 받아들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 지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없다.(당시 그녀의 나이는 나보다 많은 50살이었다.)
물론, 닥쳐봐야 할겠지만...  

 * 책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과 오해와 저자의 입장
- 이 책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출판계와 언론에서 혼란이 조성되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다.
- 인터파크 서평 중에는 2007년 10월에 ’밝혀진 한 편의 사기극’이란 제목의 글이 아마존닷컴 독자코메트란을 인용하고 인터넷 주소와 함께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주장이 올라와 있다.
- 출판사인 ’정신세계사’ 자유게시판에는 2008년 중에 여러명의 독자들이 항간의 소문에 대해 해명하라는 게시글과 함게 2008년 6월 번역자인 류시화를 통해 저자 말로 모건이 밝인 입장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다.   

- 글 속에서 저자는 1996년 이후 지속적으로 그러한 모략과 협박을 받아왔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독자들께,
제 이름은 말로 모건입니다. 저는 호주 원주민들의 문화에 관한 책을 두 권 썼습니다. 제 두 번째 책 ‘Message From Forever’(한국판 제목 참사람 부족의 메시지)는 한 원주민 부족장인 부르남부르남과 일곱 명의 다른 부족 장로들의 요청에 의해 써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소위 ‘잃어버린 세대’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1920년에서 1940년 사이에 호주 백인들의 법에 따라 어릴 때 부모에게서 떨어져 수용시설에서 길러졌습니다. 이것은 두 쌍둥이의 이야기이고 등장인물들은 그룹멤버들이 공유했던 인생경험의 혼합물입니다. 나는 부르남부르남에게 내 도움을 받아 직접 책을 쓰라고 권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긴 하지만 그것이 저명한 저자가 쓴 것이 아니면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첫 번째 책 ‘Mutant Message from Downunder무탄트 메시지’ 덕분에 저명한 저자가 되어 있었지요.
이 첫 번째 책은 여러분도 인터넷을 통해 아시듯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 문제가 제기된지도 15년이 지났습니다. 인터넷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다른 대륙의 다른 나라 사이에서 일단 제시된 정보를 억지로 바로잡는다는 것은 법원의 명령에 의해서도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호주의 한 미술전시관 주인에게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원주민과 유럽인의 혼혈인 남자로서 그 어느 쪽 인종에도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아 보였는데 내가 그 책으로 1600만 달러를 받았다는 루머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 루머는 너무나 과장된 것이라서 어떤 출판사도 신참 작가에게 1600만은 고사하고 100만 달러도 주기가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연락해서 자신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내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나는 그런 적이 결코 없는데도 내가 그 책이 실화라는 말을 철회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넷에서 악의적인 공격을 하는 그룹의 이름은 둠바퉁 원주민 코퍼레이션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초기의 호주 정착민들이 원주민들의 전통적 점 그림(dot art)을 보고 바보 그림(DUMB ART THING)이라고 부를 때 쓰던 말입니다.
나의 책은 사막에서 이 영감적인 사람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을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한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리바이쓰 청바지를 입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백인들의 말을 쓰며 서양식으로 사는 도시의 원주민들과는 더 이상 공통점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3,4 세대 이전부터 연방정부로부터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과 믿음을 버리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자신을 참사람이라 부르는 내가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서 지금은 백인과 흑인들로 구성된 정부당국으로부터 피해 다닙니다. 정부는 모든 시민들에게 출생과 사망 신고를 하게하고 모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게 하고 믿을 수 없는 독한 예방주사를 맞게 하고 어머니인 땅을 파괴하고 더럽히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서 사회생활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나는 독자들이 개인적으로 저자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걱정을 오래 전에 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나에게 날아오는 글과 전화들은 긍정적인 코멘트가 부정적인 말보다 백대 일 정도로 압도적임을 보여줍니다. 나는 내가 쓴 낱낱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롭고 영적인 영혼들이 이 시대의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가 힘들다면 이 책을 그저 재미삼아 읽어보시라고 권하겠습니다. 부르남부르남은 죽던 날까지 나의 신실하고 참된 친구였습니다. 그는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어린 아들과 아내를 지키기 위해 나와 함께 강연여행 다니기를 포기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자기 부족의 오랜 영적 지혜를 퍼뜨리는 대사로서 세계를 여행할 것인지, 아니면 가족의 안전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을 때 가슴에 상처를 받아서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Dear Reader: My name is Marlo Morgan. I am the author of two books about Australian Aboriginal Culture. My second book entitled [Message From Forever] (HERE NAMU YOU MAY HAVE TO INSERT THE TITLE YOU GAVE THE BOOK IN KOREA) was written at the request of a Aboriginal Tribal Leader named Burnum Burnum and seven other Aboriginal elders, all of us about the same age. They were all members of what is referred to as the Lost Generation. All were taken from their parents as babies and raised in institutions as was the law of White Australia during the 1920’s thru the 1940’s. It is the story of twins, and the characters are a composite of the life experiences shared by the group members. I asked Burnum Burnum to write the book himself with my assistance but the group felt no one would buy it unless it had a well known author and they wanted their story told to the world. I am a well known author as a result of my first book, [Mutant Message from Downunder] (AGAIN NAMU I DON’T KNOW WHAT YOUR TITLE IS).
This first book came under attack as you will see on the Internet, with submissions now dated fifteen years ago. And any reader who knows about the Internet realizes it is impossible to force correction of information once submitted, even with a legal court order, when two different countries on two continents are involved. The problem started with the owner of an art gallery in Australia, a man part Aboriginal, part Caucasian, whom doesn’t seem to be happy with either race, and who believed a rumor that I had been paid sixteen million dollars for my book. The rumor is so exaggerated that any publishing company would pay a first time writer even one million, let alone sixteen million dollars, but he contacted me and said if I didn’t pay him the money he would make my life miserable. He also claims that I retracted my statement that the book is factual, which I have never done. The name that appears on the vicious attack Internet submission is Dumbartung Aboriginal Corp. It unfortunately is the word used by the early white settlers in Australia who looked at the traditional dot art painting of the Aboriginal people and referred to as the natives DUMB ART THING.
My book is as accurate as I could possible remember the details of the time I spent with this inspirational group of people in the desert. They no longer had anything in common with many of the Aboriginal people living in the urban cities, who have adapted the western wear called Levi’s, drink alcohol, smoke cigarettes and speak the white man’s tongue. People forced by the federal government to abandon their language and traditions and beliefs three to four generations ago. The humans I met who called themselves Real People, were outcasts in their own country, hiding from the authorities who are now both black and white skin people, who demanded all citizens register births and deaths, send every child to school, get questionable toxic health vaccines, and join acceptable society by living a life style that pollutes and destroys mother earth.
I long ago quit being concerned with what my readers think of me, the author, personally. However my daily correspondence shows me, the positive comments out weight the negative remarks, one hundred to one. I stand by every word I have written, but if someone finds it too difficult to believe such beautiful, peaceful, spiritual souls could possible exist on planet earth in our times, then I suggest you read this book as entertainment. Burnum Burnum remained a true and loyal friend to me until the day he died. He gave up traveling and lecturing with me to protect his wife and young son from serious threats. I personally believe he died of a broken heart when he was forced to choose between our Ambassador Tour around the world, promoting the ancient spiritual truths of his people and the safety of his family. "

  

[ 2010년 1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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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
노무현 지음 / 새터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5월 23일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하신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금도 나 뿐 아니라 많은 한국 사람들이 당시의 충격에서 모두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의 경우 2009년의 충격과 기억이 일상생활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것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함으로써 자신의 뜻과 희망을 펼친 것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일종의 ’트라우마’로서 무의식 속에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2009년 나 역시 그런 충격과 트라우마, 그리고 죄스러운 마음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작년 5월 초순 경에 김해 봉하마을에 직접 갔다 왔다. 노대통령의 생가도 둘러보고 부엉이 바위에도 올라가 한참을 봉하마을을 내려다 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기도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사모’에 가입해 활동하거나 노무현 후보의 선거운동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물론, 노대통령이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을 때 마음 속으로 기뻐했고 국정을 잘 운영하여 민주주의와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정운영 과정에서도 조금씩 느꼈지만 서거 이후에 뼈저리게 느낀 것은 대부분 지지자들의 ’수동적’이고 ’대리만족적’인 정치의식이 스스로를 방관자이자 구경꾼으로 만들었고 노전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채 방해만 했다는 점이다. 나 역시 노전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먹고살기에 치중했고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 깊숙하게 고민하기 보다 즉흥적인 감각과 판단, 주변 사람과 여론의 동향에만 의존했을 뿐이었다.
 

이 책은 노전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이하여 늦게나마 그 분의 인생역정과 생각, 철학, 정책을 알아보기 위함이고 참여정부에 대해 나 스스로 냉정하게 공과를 따져보기 위함이다. 그것은 다시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싶다는 내 마음 속의 이성과 감성이 작동한 것이라 받아들인다. 앞으로 이 책을 비롯하여 노전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책 몇 권과 그 분과 관련한 책 몇권을 연이어 읽어볼 계획이다.
 

<여보, 나 좀 도와줘>는 노전대통령이 정치계에 몸담은 지 7년 째, 1993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이후 지지자들과 국민들에게 자신을 남김 없이 있는 그대로 알려주기 위함이었고 대화를 시도한 책이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고집스럽게 세 번째로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하였고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고 193년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정치인 생활 7년 동안 자신이 "무엇 하나 제대로 생산해낸 것이 없어 보이는 듯한" 정치활동을 해왔고 그 기간에 대한 회고는 "항상 체증과도 같은 무언가의 답답함을 내 가슴 속에 남기기 일쑤"였다. 결국 노전대통령은 그 이후 "이대로 편안하게 주저앉아 있을 수 만은 없다는 생각에 펜을 들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물론, 한국 정치상황에서 낙선 정치인으로 정치자금을 모으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력’으로 자금을 벌어보겠다는 의지도 일부 작용했고...


정치인 노무현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이 책은 비록 대통령 당선 시점에서 8년이나 전에 발간된 것이지만, 그 힘의 ’맹아’를 보여주고 있다.


제1부. [여의도 부시맨]에서는 1988년부터 노전대통령이 의정활동을 진행한 4년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변호사는 본래 그렇게 먹고삽니까?" 그가 변호사 시절 변호사의 특권과 관행을 이용하여 어느 아주머니에게 비난을 받고 나중까지 고통으로 남아있던 일화에서 들은 이야기다. 그는 과거 자신이 잘못했던 그 사건을 밝히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글을 시작한다. 그 외에 1988년 청문회 전후의 상황과 자신의 생각, 1992년 낙선을 둘러싼 소회들, 1989년 의원직 사퇴 파동과 1990년 ’3당 합당’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제2부. [잃어버린 영웅]에서는 당시 한국 민간정치의 양대 산맥이었던 김영삼씨 및 김대중씨와 노전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과 노전대통령이 양 김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노전대통령은 김영삼씨를 ’탁월한 조직의 보스’, ’침묵으로 말하는 정치 9단’으로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김영삼씨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보여준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기회주의자’들에게 하나의 모델을 선사함으로써 정치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반에 심각한 폐해를 끼쳤음을 비판한다.
김대중씨에 대한 노전대통령의 평가는 ’아까운 존경스러운 지도자’이다. 하지만 1992년 대통령 선거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대중씨가 복귀할 경우 그런 지도자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한다.(결국 김대중씨는 1995년 7월 정계에 복귀했다.)
노전대통령 입장에서는 김영삼씨와 김대중씨 모두 한국 정치를 불신과 냉소, 기회주의와 결과주의를 낳은 원흉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제3부.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는 평범한 정치인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 아버지로서 자신이 느끼고 고민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4부. [내 마음의 풍차]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여러가지 일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노전대통령... 그는 ’어머니’ 노래 가사를 통해 자신이 이후에 핵심으로 삼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를 염원하는 뜻을 내비친다.

이 책 안에 나타나는 1994년의 노전대통령은 순수하고 원칙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인에 불과했다. 노동자와 서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이고 불의나 돈에 굴복하지 않는 그의 모습... 노전대통령의 이미지 그대로 소탈하고 소박한 얼굴이 책 장 속에서 느껴진다. 이런 그 의지와 생각을 1995년 이후에도 꾸준하게 유지해갔던 것이 국민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받은 풍차,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부족했던 결과를 잉태하고 있었을까?....

[ 2011년 5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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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와 반역의 천년제국 - 비잔틴 제국 타임라이프 세계사 10
타임라이프 북스 지음, 권경희 옮김 / 가람기획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비잔틴제국’에 대해 다루고 있다.
로마사 이후 ’로마제국’과 ’그리스 문화’,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뒤섞여 천년이라는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비잔틴 제국’을 알고 싶었다.
 
서기 476년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퇴위당하면서 서로마제국이 사라진 후, 살아남은 동로마 제국을 후세의 역사가들이 ’비잔틴 제국’이라 불렀다.
비잔틴 제국(the Byzantine Empire)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재위기간 서기 306~337년)가 비잔티움이라는 보스포로스 해엽의 소도시를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바꾼 후 제국의 수도로 정한 서기 330년부터 성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 비잔틴제국 당시의 지도 ]

[ 성모에게 콘스탄티노플을 바치는 콘스탄티누스와 하기아소피아 성당을 바치는 유스타니우스 황제 ]
 

이 책은 출판사가 [타임라이프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발간한 18권의 시리즈 중 10번째 책으로, 출판사는 "권위 있는 저자와 엄밀한 고증, 입체적인 구성, 풍부한 컬러 도판으로 당시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타임라이프 북스’에서 펴낸 이 시리즈는 1997년부터 3년에 걸쳐 완간했으며, 인류 문명의 탄생에서 성장까지 인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일종의 역사서라 설명한다.  
책 속에 칼라 도판이 여러 장 들어있어서 독서 완료 후 시각적인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서’라는 출판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역사 편집본’이 더 어울린다. 
’비잔틴 제국’에 대한 편년식 역사과정에 대한 서술도 없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제국의 모습을 담아내지도 못한다.
책의 제목처럼 출판사가 판단하기에 독자들이 ’비잔틴 제국’의 역사 중에서 호감이 갈 만한 사안(예를 들어 ’음모’와 ’배신’처럼...^^)을 모은 것처럼 보인다.
결국 칼라사진에 현혹된, 잘못된 선택이었고 제대로된 비잔틴 제국의 역사를 다룬 책을 고심 끝에 구입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장에서는 바실리우스의 치세부터 황제 자리를 놓고 벌이는 권력 다툼, 화려한 궁정 생활, 외교의 대가라고 불렸던 비잔틴 인들의 뛰어난 외교술을 살펴볼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의 황금시대를 연 바실리우스는 미카일 3세를 암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비단 바실리우스뿐만이 아니라 천년 세월 동안 비잔틴에서는 황제의 관을 쓰기 위한 사람들의 치밀한 계략과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황제는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지상 최고의 권력자이자 신성한 신의 은총과 허가를 받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비잔틴 제국을 군사력, 정치력 그리고 상업적인 힘의 측면에서 최강으로 만들어놓았던 황제들의 업적을 살펴본다. 
[ 하기아 소피아 성당 내부 ]

[ 테오도라 여제 ]




2장에서는 콘스탄티누스에게 최상의 교육을 받게 해주려고 했던 어머니 테오도라의 눈물겨운 헌신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꼼꼼히 살펴본다.
콘스탄티노플은 다양한 문화를 녹여내는 용광로이자 100만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로, 언제라도 72개국 언어를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렇듯 제국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은 동과 서의 무역 교차로였으며, 500개가 넘는 교회들 중에서도 단연 아름다운 교회인 하기아 소피아가 이곳에 있었고, 여기에서 종교생활과 의식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 화려한 성찬식 소품 ]

[ 화려한 장신구 ]

[ 화려한 향로 ]

[ 화려한 비단 ]


3장에서는 무솔리우스라는 병사를 등장시켜 비잔틴 제국의 군사력과 병사들의 생활상, 전쟁터에서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또 거대했던 비잔틴 제국이 몰락해가는 과정과 콘스탄티노플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지켜내려 했던 콘스탄티누스 11세의 힘겨운 싸움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비잔틴 제국은 황제 바실리우스 2세가 죽기가 무섭게 투르크 전사들에 의해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점령당한다.
결국 비잔티움은 십자군이 침략하면서 치명적으로 약화되었고,
그후 마지막 적 오스만투르크 인 들이 포위했을 때 더 이상 콘스탄티노플을 지켜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비록 비잔틴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그들의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전 세계에 수억만 명의 동방정교회 신도들이 있으며, 제국의 옛 영토의 수도원에서 이들의 예배는 계속되고 있다.  
[ 바살리우스 황제 ]

[ 오스만튀르크에 공격당하는 콘스탄티노플 ]

[ 카타리나 수도원 ]

[ 시모 페트레나 수도원 ]



아직, 천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비잔틴 제국의 성격과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 비잔틴 제국의 특징과 역사(위키백과 사전에서 추려냄)
 

- 여러 역사지도에서는 기원후 395년에서 610년까지 제국을 서술할 때는동로마 제국이라고 쓰는데, 610년에 헤라클레이오스 황제가 제국의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바꾸었기 때문이다.(당시 이미 인구 대다수가 그리스어를 썼다.)
그리고 기원 후 610이후의 지도에서는비잔티움 제국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인다.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용어는 역사가들이 지어낸 말로, 제국이 있던 당시에는 전혀 쓰이지 않는 말이었다.
 
-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자신을 로마의 통치자, 즉 옛 로마 황제의 후계자이자 상속자로 여겼다.
그 주민들은 인종적으로는 그리스인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스스로 그리스인(그리스어: Ἕλληνες, 헬레네스)이라고 하지 않고 로마인(그리스어: Ρωμαίοι, 로마이오이)이라고 불렀다.
 "비잔티움"이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천도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옛 이름인 비잔티움에서 나온 말이다. 이때부터 제국 수도의 옛 명칭은 역사서나 시문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 제국을 "비잔티움"이라고 칭하게 된 것은 1557년 서유럽에서 독일인 역사가 히에로니무스 볼프가 비잔티움 제국의 사료를 모은 비잔티움 역사집(Corpus Historiæ By­zantinæ)을 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 비잔티움 제국은 스스로를 ‘로마 제국’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은 ‘문명 세계 모두를 지배하는 대제국’이며 ‘하느님에 의한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되는, 지상의 마지막 제국’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고대 로마제국의 수준 높은 이념과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거기에 종교적 권위와 오리엔트적인 전제정치를 더하여 매우 엄격한 전제 군주적 황제권과 관료정치를 시행하였다.
  
- 비잔티움의 황제는 원로원, 시민, 군대에 의해 추대되어 지상을 책임지는 하느님의 대리자이고 제국은 천국의 예표이며, 최후의 심판이 때까지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도록 하느님이 임명한 하나의 후견인으로서 사도들과 대등한 종교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황제는 정치·군사·종교 등에 대해 무한적인 절대권력을 휘둘러 왔으며, 제국의 백성들은 스스로 황제의 노예임을 자청하며 오로지 그의 은혜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였다.
 
- 비잔티움 제국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전제 군주제 국가였으며, 한때 활발한 정복사업을 통해 로마제국의 고토를 거의 되찾아 광활한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여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심지어는 중동지역으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특히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아시아와 유럽, 흑해, 그리고 에게해의 무역로에 자리잡고 있어 제국의 경제는 세기 동안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다.
더불어 비잔티움 제국은 사산 왕조페르시아와 아랍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서 유럽과 기독교 문명세계를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까지 하였다.
그러나 점차 영토를 잃었으며, 12세기에 콤네노스 황조가 영토를 어느 정도 회복하였으나 제국은 오랜 쇠퇴기에 접어 들어 결국 15세기에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 2010년 1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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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근본주의와 종교분쟁
빌프리트 뢰리히 지음, 이혁배 옮김 / 바이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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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행동경제학>에 이어 두 번째 교재인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와 함께 다룬 보조교재였다.
독서 모임에 맞추어 읽지는 못했지만, 종교근본주의와 종교분쟁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여 나중에 구해서 읽었다.

기원 후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들의 원인은 상당수가 종교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팔레스타인 분쟁,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영유권 분쟁, 스리랑카의 내전 등은 모두 종교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집단 간에 벌어지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아무리 ’복수’나 ’대테러전쟁’이라고 주장할 지라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 또한 종교 전쟁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종교분쟁이나 테러를 통해 인간이 종교를 오용하고, 정치화시키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2001년 9·11테러(자작극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발 테러, 러시아의 베슬란 학교 인질극, 2005년 런던 지하철 폭발 테러 등은 정치화된 종교권력이 광신적 테러리즘의 형태로 표현된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1099년 7월 15일, 십자군 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비기독교인 학살 ]

[ 성 바르톨로뮤 대학살 ]

[ 911 테러 ]

[ 마드리드 폭탄 테러 ]

[ 러시아 베슬란 학교 인질극 ]

[ 2005년 런던 지하철 폭발 테러 ]


종교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러한 종교를 정치화시키고 종교전쟁을 불러일으키는 현상들을 ‘종교 근본주의’라고 정의하고 이 근본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대다수의 전쟁들은 대부분 인간의 욕심에 의해 생긴다. 
하지만 그 표면적 이유에는 항상 종교적 이념의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근거로 종교의 무용론과 폐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종교의 근본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화, 권력화가 되어가는 종교, 즉 종교 근본주의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들었던 시대에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사람들의 현실과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나누고 그어버린 조치들이 씨앗이 된 것이다.


저자는 세계 5대 종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의 근본주의와 각 종교 간의 분쟁 원인을 살펴보고 세계의 평화 정착을 위한 해결방안으로 종교 간의 대화를 제시하려 한다. 
각각의 종교에서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타종교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세계적 시각에서 종교를 바라보고, 각 종교들이 근본주의화 되는 과정을 짚어간다.
물론, 저자의 결론은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인류 공멸의 위험으로까지 치닫는 현 상황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교의 포기가 아니라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종교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각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를 제시한다. 
종교들이 지닌 일치점과 차이점을 지적함으로써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정치화된 종교들은 세계정치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세계는 테러리즘으로까지 발전한 정치화된 종교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종교들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가치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며 이를 위해 상호 대화를 통해 그 합의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각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단지 배타적 신앙을 가진 종교에 대한 비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함께 나누고, 타종교와 교류를 나눌 수 있도록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종교와 근본주의에 대한 통찰은 기존의 종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고, 앞으로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종교 근본주의의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애초에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하여 발간한 의도는 ’종교간의 대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발간 의도는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이론적 기초’를 발견할 수 없다. 각 종교의 교리와 해석, 종교지도자들의 움직임과 해석은 일반적인 개론 수준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각 종교의 교리를 파고들어 종교가 화합하고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를 마련해 보겠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일 수 있다.
이 책은 ’정언 명령’과 그에 대한 약간의 해설 수준이라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각 종교들이,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와 힌두교 등이 종교 근본주의에서 벗어나고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 역시 아직 뚜렷한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검토 가능한 사례를 언급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유럽의 30년 전쟁과 십자군 전쟁과 르네상스 시대의 도래에 대한 분석이다.
유럽의 중세시대는 종교가 모든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였고 그 결과 종교를 내건 수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종교전쟁의 이면에 숨어있는 정치적, 경제적 이유와 함께...)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고 그 결과는 당시의 일반 백성들이 중세를 장악하던 종교권력과 문화를 거부하고 ’인간성’을 중심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르네상스 시대를 연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역시 20세기 서유럽, 일본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종교 현실이다.
20세기 서유럽과 일본에 카톨릭과 기독교가 제대로 사람들 속에 파고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빵’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아시아(특히, 한국)와 아프리카에는 왜 점점 종교가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가?

그 역시 반대로 ’빵’과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종교분쟁과 종교근본주의의 위협에서 한국은 안전지대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 역시 종교 근본주의와 종교분쟁의 불씨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MB정권이 들어서면서 개신교 일부의 근본주의에 타종교에 대한 폭력, 종교의 정치화가 대중들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개신교는 종교라기 보다 정치경제집단으로 보인다.
종교든, 정치든 인류가 모여살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 존재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종교가 무엇이든, 철학이 무엇이든 자연과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가 없는 것은 인류에게도, 자연에게도, 심지어 그들의 신에게도 용서받지 못한다.
어떠한 이유라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은 종교의 이름을 내건 폭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 책 속의 문장

- 1917년 12월 예루살렘에 대한 영국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1917년 ’벨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후 시위와 테러, 맞테러, 보복이 진행되었다.
-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간의 상호 인준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오슬로협정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구성에 합의하여 1996년 2월에 아라파트가 대통령직에 오른다.
- 2003년 12월 제네바 협정에서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주권국가 수립, 1967년 설정된 경계의 회복,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이스라엘인 퇴거, 난민 문제 해결 등에 대해 합의했다.
-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 따르면 국가는 하느님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칼뱅에게 국가는 인간의 죄로 인해 성립된 것이며, 인간들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조건이 된다.
-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교도적 종교성으로부터 현대 자본주의의 형성에 기여하 특수한 합리적 생활방식이 도출되었음을 지적했다.
- ’사도 베드로로부터 직위를 물려받은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교회의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교리는 로마 카톨릭교에서 가장 중심적인 교리 중 하나다.
- 미국의 외교정책이 미국에 대한 종교전쟁을 수행한다고 믿는 중동의 광신자들과의 무력 대결에 관심을 갖는 정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인들의 가치와 이념을 정립하는 과정에 보수적인 개신교 지도자들이 그만큼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월터 미드, <권력, 테러, 평화 그리고 전쟁>) p.110
- 소승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은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서의 해탈, 해탈에 도달하게 하는 수단, 해탈에 도달해야 하는 이유로 구성되어 있다. p.193
- 이슬람교가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와 연결된다는 것은 쿠란(코란)이 아브라함과 아담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p.217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



[ 보스니아 내전 ]


[ 소말리아 내전 ]


[ 코소보 분쟁, 미국과 서구의 인종청소 방조 ]


[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


[ 이라크 전쟁 ]


[ 카슈미르 분쟁 ]



[ 2010년 11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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