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산당선언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1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셰리 버먼(Sheri Berman)의 <정치가 우선한다 Primacy of Politics>를 읽으면서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와 카우츠키가 완성하여 각종 조직과 정당에 전파한 ’마르크스주의’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가 어떻게 다르고 마르크스가 수립한 철학과 방법론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내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비교하고 싶었다.
지난 2월 21일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노동자 등 민중들을 빈곤과 인간소외로 몰아갔던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지 163년이 되던 날이었다. 20세기 초 서구유럽과 전세계에 유령처럼 떠돌다가 20세기 후반 사라져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공산당 선언]으로 시작된 셈이다. 마르크스의 예언과 달리 자본주의체제는 아직도 살아남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탈을 쓰고 암세포처럼 전세계 구석구석을 잠식하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그 당시나 21세기인 지금도 ’민중의 빈곤과 인간소외’는 여전히 지구 대부분의 지역에서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만큼 자본주의의 은폐된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엄밀하게 비판한 사상도 드물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마르크스는 어떤 사상가보다도 예리한 현실 감각으로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자본의 논리로 야기되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이 책에는 이데올로기를 현실에 단순히 대립시키는 교저적인 태도를 경계하고,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원리를 현실 자체에서 도출해내려는 마르크스의 과학적 태도가 드러난다. 나아가 마르크스는 혁명에 대한 열정과 냉철한 현실 분석으로 인간 해방을 꿈꾼다. 어쩌면 마르크스 사후에 탄생한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진정한 문제의식과 인간해방의 꿈, 과학적 방법론과 혁명에 대한 열정 대신에 ’경전’과 ’교조’로서 변질되었는지도 모른다.
--------------------- [공산당 선언]이란 무엇인가? -----------------------
공산주의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하여 집필된 공산주의자들의 최초의 강령적 문헌으로, 1848년 2월 21일 첫 출판되었다. 19세기 중엽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무대에 등장한 프롤레타리아에게 그의 역사적 사명과 해방의 앞길을 밝혀 주고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지도적 지침을 확립한다는 목적의식 하에 1847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초안이 작성되었다. 1847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가입한 의인동맹(義人同盟, Bund der Gerechten)은 공산당선언을 동맹의 정책문서로 채택하였다. 그 해 여름 조직은 재정비되었고 1848년 공산주의자동맹으로 다시 태어났다. ------------------------------
이 책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83년에 작성한 <공산주의의 원칙>과 1884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 그리고 각국 언어의 번역본에 대한 서문, 마지막으로 이진우씨의 ’철학자 마르크스에 대한 해설’이 들어있다.
제1부. [공산당 선언]
- 서문 :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문구로 유명하다.
- 1장.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서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발생 과정,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과 그 멸망의 불가피성을 설명한다.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에 기초한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의 계급 투쟁이 인류 역사의 기본 내용이며 사회발전의 추동력이라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가 이룬 막대한 업적을 역설적으로 찬양하였으나, 선언이 쓰여진 시점에서 부르주아는 "명계에서 불러낸 마물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와 같이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지배계급도 부르주아지가 아닌 새롭게 떠오른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역이 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 2장.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과업이 프롤레타리아의 목적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프롤레타리아 주도의 공산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든 공산주의자들의 최고목적이라고 밝힌다.
- 3장. [사회주의 문헌과 공산주의 문헌]에서는 기독교 사회주의, 봉건적 사회주의,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변적 사회주의 등의 기존 사이비 사회주의 조류들을 비판한다.
- 4장. [각종 반정부당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태도]에서는 각국 공산당들의 기본적인 혁명 전략을 다룬다. 선언은 국제적 단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것은 족쇄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단결하라!"라는 구호로 끝을 맺는다.
제2부. [공산주의의 원칙]은 1847년 공산주의자 동맹을 위한 강령의 초안을 나타낸다. 엥겔스는 당시 공산주의자 동맹의 런던 소재 중앙본부에서 작성한 공산주의 강령 초안을 매우 상세하게 비판하여 수정안을 교리문답식의 형식으로 작성하였다.
제3부. [해제 - 철학자 마르크스, 공산주의에서 공생주의]에서 역자(이진우)는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 반드시 예언의 지식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역자는 자신의 삶의 실존 근거가 자신에게 있지 않고 남에게 있거나, 돈과 같은 무형의 것에 있는 것은 ’노예적 삶’이라고 할 때, 현대인들은 과거의 노예들 만큼이나 노예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역자는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적 궤적을 자세하게 다루면서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 사상의 이중성 - 이데올로기와 철학 - 을 왜곡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가 혁명의 열정에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거나 아니면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단순한 방법론으로 경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 이론가, 단순한 사회과학자가 아니라 혁명적 사상가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예언이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무엇보다 ’인간해방의 문제를 철저하게 사유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역자는 마르크스의 철학적 방향을 ’현실 속에서 이념을 찾는 것’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그것을 그의 전 생애와 저서에서 관철시켰다고 말한다.
역자는 [공산당 선언]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몇 가지 명제, 즉 사적유물론과 계급투쟁, 사적 소유의 폐지에 대해 마르크스를 변호한다.
또한, 역자는 마르크스의 철학과 사회과학 방법론,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등장을 모더니즘으로 이해한다.
---------- 칼 마르크스는 누구인가? -----------------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나 본 대학, 베를린 대학에서 법률·역사·철학을 공부한 뒤 예나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에 기초하여 근본적인 인간 해방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파리와 벨기에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결국 추방되어 사망할 때까지 영국에서 살았는데, 경제학 연구에 몰두했다. 주요 저서로는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을 비롯하여, <자본론>, <임금 노동과 자본> 등이 있다. ---------------------------------
-----------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누구인가? -------------------------
독일 라인 주 바르멘에서 방직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엥겔스는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브레멘 상사에서 일하면서도 ’독일통신’에 지배계급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듣기도 했던 그는 영국의 맨체스터로 건너가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를 깊이 연구하였고 차티스트 운동 관련자들과 연계를 맺었으며 영국의 출판물들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1844년 독일로 가던 중 파리에서 칼 마르크스를 만났으며, 이때부터 마르크스와 함께 혁명적 활동을 하게 된다. 마르크스 개인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돕는 한편 1846년에는 마르크스와 함께 제1인터내셔널을 창건에 가담하였으며, 마르크스가 죽은 후(1883년)에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이끌며 1889년에는 제2인터내셔널을 창건하였다. ------------------------------
25년 만에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었다. 25년 전 선언문을 읽었을 때 이해와 느낌이 당연히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당시에도 마르크스 저작을 충분히 많고, 심도있게 공부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내가 섣불리 그의 사상과 학문에 대해 평가를 하거나 판단하는데 있어서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는 것과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데 동의한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에서 사상적, 이념적 편향이 없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21세기에는 진정으로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성역 없이 보장되어야 하듯이, 사상과 학문의 자유 역시 예외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는 소크라테스, 라이프니치, 니체, 칸트, 헤겔 등 서양의 철학과 철학자에 대한 이해의 연장선에 존재한다. 정치적인 이유나,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역사와 학문을 배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뿐더러 국가적, 국민적인 권리와 이익에도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이는 반일 감정을 이유로 서울대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학이 정규 학과로 개설되지 않은 역사와도 동일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마르크스의 진정한 업적은 인류의 역사를 경제적, 물질적 관점에서 조명한 점,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억눌렀던 인류의 역사를 드러낸 점,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 고찰한 점, 사적소유와 자본주의 경제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인간소외를 비롯한 인간에 대한 애정, 인류 역사에서 피지배층과 무산층의 정치적 의지를 북돋운 점 등을 들 수 있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의 실험이 실패했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철학과 사회과학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중국과 인도의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쿠바는? 북한식 사회주의와 남한식 자본주의를 옳고 그름으로, 맞고 틀림으로, 선과 악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러한 마르크스의 업적은 그의 사후 100년 넘도록 동서양을 통틀어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문제제기와 미래에 대한 비전은 정치, 경제 영역 뿐 아니라 환경, 생태, 공동체 등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계승, 발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서구 지식세계와 철학에서 계속 보이는 이원론은 여전히 개운치가 않다.
[ 2011년 5월 2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