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그릇에도 - 설우특선 2
미우라 아야꼬 지음 / 설우사 / 197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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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미우라 아야꼬는 크리스챤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생활수필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게으름뱅이에 의지박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하고도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그러니까. 

하지만 이 사람의 글을 읽고 있으면 '호기심 천국'을 보는 것 같다. 집 지을 땅을 구하고, 은행에서 융자를 내고, 살던 집을 떠나 새집을 지을 때까지 잠시 목사관에서 지내던 일, 소설을 쓰기까지의 과정 등이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것이 마치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느 엉뚱한 과학자의 실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그런 것에 특별한 어려움 없어 보인다. 질투나리만큼 복 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남편 미우라와 결혼해서의 일상의 모습과 그에 대한 단상들을 기록한 책이다. 나는 가끔, 남들이 흔히 말하는 그 '혼기(婚期)'에 적당한 짝을 만나 남들 사는 것만큼 살면 얼마나 재미없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남들 사는 것만큼 사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또 남들 사는 것만큼 사는 것도, 다 그렇고 그건 틀에 박힌 삶이 아닐까?

그러나 어찌보면 필자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고방식이 특출난 것도 아니고, 사상이 심오한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을 얻었고, 긴 투병생활 끝에 서른 일곱이란 늦은 나이에 그것도 2살 연하의 남성과 결혼을 했다. 더구나 남자는 그녀의 병이 낫기까지 무려 5년을 기다렸다 결혼을 했다. 그러니 이 어찌 결혼 후의 삶이 평범한 이들의 삶과 같을 수 있을까? 건강을 잃어 본 사람만이 건강을 되찾은 후에 그 삶이 소중하듯, 그녀의 삶은 애틋하고 애정 가득한 삶이었으리라.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란 어떻겠는가? 그녀의 복이라는 건, 부자가 되어서 명예가 생겨서가 아니다. 그냥 살아있는 것 자체가 복임을 하루 하루 실감하며 사는 삶인 것이다.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

나도 이 질문에 오래도록 답을 달지 못했다. 결혼을 안 해 본 사람으로써 이 질문에 답을 달기는 더 막막하다. 또한 실제로 우리 부모님을 봐도 그렇고, 주위의 결혼했다는 아는 친구들, 친지들을 봐도 그렇고 그들은 나에게 결혼에 대한 이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결혼의  실상을 다룬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봐도 다 고만 고만하다. 결혼에 대해 다룰 것이 이것 밖에 없을까?

얼마 전 뉴스 보도에 따르면, 카드빚을 청산하기 위해 결혼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고 한다. 공급이 있으면 수효가 있다고, 실제로 상대가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그 액수가 크지 않고 조건만 웬만치 맞으면 선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과연 이들이 만약 결혼을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나라가 경제적으로 이상징후를 보이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이 가정인 것 같다. 지난 IMF 이후 얼마나 많은 가장이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을 많이했던가? 이렇게 돈 때문에 결혼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란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달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건 '성(性)'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답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일간지에선 일주일에 한번씩, 어느 처녀 비뇨기과 의사의 '성 칼럼'을 실어었다. 그것이 얼마나 적나라했던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꼭 부부관계에 있어서 꼭 저렇게 해야하나 거부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물론 다행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그 칼럼은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있다. 부부관계의 문제를 지나치게 성으로만 규정하고 몰아가는 세태가 문제라고. 부부관계란 동물처럼 교미의 관계로만 파악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부부문제가 이토록 해결이 안되고 불륜이 여전히 난무한단 말인가?

흔히들 결혼은 홀로있는 것이 두려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고독의 문제를 피해 갈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다음의 말을 음미해 보라. '고독이 두렵거든 결혼하지 말아라.' 체홉의 말이다.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의 사랑하고자 하는 또는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를 무참히 짓밟는다면 그 얼마나 이기적인가.

남들이 말하는 그 '때가되면 인연도 만나지게 된다'는 그 운명론 같은 '만남'도 어떤 사람에겐 더디 오기만 하고, 어떤 사람에겐 아예 오지 않는다. 이에 대해 미우라 아야꼬는, "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대개는 일생의 초년기가 아니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의 바탕이 정해졌을 때, 그런 삶의 방식에 동조하는 상대가 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나의 삶의 뿌리가 단단해지고 준비되지 않으면 한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일게다.

결혼을 안 해 본 사람은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그 조건이 인간 외적인 경우가 종종 많이 있다. 상대의 학력은 어떻고, 뭐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연봉은 얼마며, 성격은 어때야 하느니...하는 것들. 설사 그런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서 결혼하면 그것으로 다 인가? 그러면서도 운명적인 사랑은 그것 대로 꿈꾼다. 인간이란 얼마나 모순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 그리고 그런 사람 내편으로 만들기가 관심을 끈다. 사람은 그렇게 유치한 존재가 아니다. 결혼은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 서로를 도우며, 배우며, 성숙으로 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나는 결혼도 안 했으면서, 친구로부터 결혼생활의 어려움, 부조리한 하소연들을 많이 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들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젠 그 말에 놀라고,  속으로 '어머, 그렇게 어려운 결혼을 왜 하는 거지?' 의문을 품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그래도 결혼 안 했을 때 보다 결혼하고나서가 더 좋아 보이기도 하거니와, 하나님은 결혼을 가리켜 '이 비밀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결혼 얘기는 많이 들어서 이론적으론 많이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해 보지도 않은 결혼을 뭐라고 판단하는 건 확실히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 나도 결혼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여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것만큼 상대가 원하는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면 별로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결국 미우라 아야꼬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했던 것처럼(그녀는 나이도 먾고, 몸도 약해 아이도 낳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기독교에선 '은혜'라고 하는데,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그 비밀이 얼마나 귀하고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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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박사 2004-05-25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번에 제가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깜박했습니다. 이 글을 보니 생각이 나는군요. 저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은 별로 안해봤습니다. 나름대로 생각만 조금 해봤구요. 결혼하면 어떤 면에서는 삶이 좀 더 복잡해지고 피곤해지는게 사실인 듯 합니다. 아직 결론내리기에는 이르지만요.. 사랑이라는 마약을 맞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stella.K 2004-05-2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은 그럴지 몰라도 인류애에 많은 공헌을 하는 것 같아요. 결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을 비교해 볼 때, 물론 꼭 그렇지는 않아도 대체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마음 씀씀이가 좀 다르더라구요. 좀 넓다고나 할까? 전, 지구상에서 <결혼>과 <가정>이란 말이 사라지거나 파괴됐을 때 가져 올 인류의 엄청난 파탄을 상상해 보곤 하죠.
그런 의미에서 설박사님을 비롯한 가정을 건재하게 이끌어 가시는 분들, 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Hanna 2004-05-2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삶의 바탕이 단단해진 후에 그 삶에 동조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말, 너무 멋지네요. 정말, 그런것 같아요! 그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사회의 어떤 편견에도 흔들리지 말고, 차근차근 내 삶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저도 합니다. 삶에 정답이란 없잖아요!

stella.K 2004-05-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브리즈 2004-05-2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지내다가 보면, "혼자"가 어려울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혼자"가 "같이"보다 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가끔씩 드는 생각은 고독도 친구, 행복도 친구라는 평범한 진리인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을 알아가는 데 있어 허영이랄까 욕심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같아요..

stella.K 2004-05-27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옴표 안의 말에 브리즈님 말씀이 함축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혼자 있는 고독도 벗하고, 혼자 있는 편안함도 벗하며, 같이 있는 즐거움도 벗하고, 같이 있는 불편함도 벗하며 사는 것.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이를테면 중용의 도. 뭐 그런 거 아닐까 합니다. ㅎㅎ.

카를 2004-06-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독신도 결혼도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혼을 꼭 해야한다는건 어쩌면 우리 자신의 집착인지도 모르죠....어느날 제가 [원하시면 독신의 은사라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지금의 배우자가 나타났다면 믿으시겠어요?

stella.K 2004-06-0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카를님, 정말 신실하시군요!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도하셨을 때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셨다면 독신의 은사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떻게 배우자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 자신을 생각해 보면 전, 독신의 은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남들도 그렇게 말하구요. 단지 전 결혼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용기도 없이 어정쩡한 독신을 유지해왔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독신보다 결혼하는 것이 몇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언듯 드네요. 이것도 위에 계신 분이 정하신 뜻이라면 순명으로 받아 들이고 그 길을 가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가능하다면 카를님과 이런 얘기 더 나누고 싶은데 어렵겠지요. 제가 아는 카를님은 필요 이상의 말씀은 안 하시는 분 같아요.

카를 2004-06-0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은 배우자와 자녀를 위해 더 많이 섬기도록 부르시는 것이고, 독신은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도록 부르시는 것이겠지요.

stella.K 2004-06-0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요. 독신하는 사람은 실상 자기 밖에 모르고, 결혼한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안다구요. 이를테면 부모된 마음도 알고 자녀 사랑하는 마음도 알고. 하지만 결혼한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우는, 자기 자녀만 아는 거라고도 보여집니다.
그래요. 결혼을 하든, 독신을 하든 그 모든 것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면 카를님 말씀처럼 섬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확장에 이르는 것이 될거구요.
전 자꾸만 위에 계신 분을 축소시키고 나에게 맞게 제단하려고 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네요.

2021-04-13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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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하긴 변했나 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나는, 무슨 짝사랑의 대상을 만났을 때의 첫느낌을 고백한 그런 책인 줄 알았다.  그리고 왜 덥석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했울까? 전에는 연애에 관한 책들은 별로 마음에 안 갔더랬다. 그런데 빗나가긴 했지만 어쨌든 난 그런 종류의 글인 줄 알고 첫장을 펼쳐 든 것이다.

처음엔 약간 후회도 했다. 책값에 비해 글자가 너무 듬성 듬성 박혀서 '아, 이런 책이라면 좀 나중에 읽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문장 하나 하나에 깊은 울림이 있었고 애정이 갔다. 

물론 딱히 이 책을 뭐라 규정하기가 어렵다. 시집도 아니고, 수필집도 아니고 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삶의 단상 내지는 저자가 문학에 대해서 또는 예술에 대해서, 나아서는 종교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를 그냥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담담하게 때로 시처럼, 잡문처럼 쓴 글이었다.  그리고 상당부분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저자는 <문학에 대한 절대적 의식 전환>에서 

   제가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이 저를 빌어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126p)

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문학을 선택하지 않고 문학이 자신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작가란 문학을 통해 조화로운 세상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만이 문학의 참된 가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작가 이외수는 그 범상치 않은 외모에서, 솔직히 그의 책들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도인 같은 이미지라 그는 문학을 통해 이상한 '썰'을 풀어대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 말씀에도 있는 듯,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건 정말 안 좋은 습성이다.

그의 글은 상당히 사고가 건전(?)하고 독설 같기도 하지만 치우침이 없다. 특히 기독교인이 아닐 텐데도 <성경 속의 한 구절에 관한 견해>  란글에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가 웬만한 기독교인 보다 낫다는 생각도 해 보게한다.

나는 여기까지 쓰는데도 감성보다는 이성에 입각해서 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많은 서술이 필요하다. 여간 잘 씌여진 문장이 아니면 나도 서술적 문장은 안 좋아하는 편인데, 욕하면서 닮는다고 그게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감성을 적절히 조화시키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함축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배워나갈텐데 아직도 나에겐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는 뭔가의 사고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는 잘 안 와닿고 낙서같은 글은 좀 경히 여기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사춘기 이후 전작주의 독서는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이외수...이 사람의 책이 뭐가 있지?' 라며 알라딘에서 <제목+ 저자> 의 창에서 이외수를 치게되고 그의 책 리스트를 꿸 수가 있었다. '자, 다음엔 그의 무슨 책을 읽을까? 외뿔? 벽오금학도? 칼...?'

젠장, 하지만 지금 읽을려고 쌓아둔 책이나 우선 다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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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5-08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중 <칼>이 가장 좋더군요.
시중에는 <그 푸르른 내 나이 스무살에는> 이 좋고요.

stella.K 2004-05-0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겠습니다. 참고하죠. 감사!^^
 
길은 여기에 설우특선 1
미우라 아야꼬 지음 / 설우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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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 용어 중에 '소명의식'이란 말이 있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용어 풀이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소명의식'이란 자신의 탈란트(재주)를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쓰며 이를 통해 자신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뭔가의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더 나아가 좋은 일, 이를테면 사람을 살리는 일. 사람으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하는 일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  

미우라 아야꼬는 작가다. 그러나 크리스찬 작가이다.  그녀는 한번도 자신의 문학사상을 주장한바 없으며 그녀의 글쓰는 재주는 온전히 하나님을 아는 것에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 이상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럴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자신과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 되겠지. 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얼핏 허구를 생산해 내는 것 같지만 허구 그 자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미우라 아야꼬는 그 어떠한 경우에서도 시종 작가적 시선을 놓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작가답다. 작가답게 의심하고, 회의하고,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바를 담담히 써 내려간다.

신앙에 있어서도 그 누구에게 주입시키고 설득하기 위해 장황한 미사여구를 쓰지 않는다. 그녀는 오로지 그가 알고 믿는 것에 대해서만 썼다. 그녀의 신앙은 의심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는 게 가능할까?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 그건 미신에 불과하다. 그것을 온전히 몸소 보여줬던 사람이 바로 미우라 아야꼬다. 이 책은 그런 그녀의 자서전이다.

 몇차례의 죽을고비를 넘기고 그 투병중에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애인을 잃어야 했으며,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랑을 이루기 까지의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그와중에도 그녀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독백처럼 흐른다.  그런 그의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신앙으로 이끌었으며 소망을 갖게했는지. 작가는 모름지기 이래야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갖게하는 작가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어떤 작가는 독자를 죽음으로 이끄는 작가도 있다. 내가 만일 작가가 된다면 내 글을 읽고 그런 독자가 생긴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어떤이는 그럼 작가는 늘 옳은 것만을 말하는 또하나의 설교자요 도덕군자가 되야하느냐 반박할 사람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 그 무엇이 되기 이전에 그의 사고 패턴은 과학자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철저하게 의심하고 회의하고 답을 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작가가 되면 어떤 작가가 될것인가에 많은 도전을 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자서전을 쓴다면 어떤 자서전을 쓸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의 또하나의 묘미는, 일본인들이 신앙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가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느껴졌다.  그렇게도 절도있고 철저함이 신앙적인 면에서도 관철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런데비해 우리나리 1/4이 기독교인임에도 왜 이 모양인가 탄식하게 되는 건 다 국민성과도 연관이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묘미는 단가(短歌)를 읽는 즐거움이다. 우리나라 서정시처럼 정제되지도 않았다. 그냥 순간 순간 터져 나오는 감정들, 느낌들에 충실해서 한 두 문장으로 압축시키는 그 순발력(?)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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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5-0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님의 글 읽고 길은 여기에 다시 읽어 보려구요...넘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도 안 나거든요.

stella.K 2004-05-03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더불어숲 - 합본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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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난 이 책을 서점에서 처음 봤을 때, 두께에 일단 마음이 갔다. 예전 같았으면 두꺼운 책은 좀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완독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두꺼운 책에도 마음이 갔다. 그것은 우선 책값이 장난이 아닌 관계로, 나 같이 책을 느리게 읽는 사람에겐 마냥 읽기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난 이 책을 아주 천천히 읽어 나갔다.

원래 책 읽는 것에 속도감이 없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웬지 난  빨리 읽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두꺼워도 마음 먹기에 따라선 빨리 읽을 수도 있는 책이었다. 문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글자도 큼직한데다, 중간중간에 저자가 직접 그렸다는 그림도 삽화처럼 끼어 있어서(그림은 또 왜 그리 잘 그리는지?) 읽기에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래도 빨리 읽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은 알려진 대로 저자의 기행문이다. 그냥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저자는 몸소 그곳을 가보고, 부딪혀 보고, 느껴보고, 거기서 얻은 통찰과 직관을 가지고 글을 썼다. 이런 글은 오래도록 음미하며 읽어야 재맛이 난다. 그래서 정말 밑줄 긋고 싶은 글도 많았고, 미처 개념 정리가 안돼있던 부분도 이 책을 통해 정리가 되기도 했다. 게다기 이 책은 정말 문장이 좋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기 사상을 주입하려 하지 않고, 독자들로 하여금 깨어있으라고 독려한다. 이 얼마나 고마운 책인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타성에 젖고, 내 방식을 고집하고, 시야가 자꾸만 좁아지려한다. 이럴 때 이런 잘 쓴 기행문 하나 옆에 딱 꿰차고 어느 조용한 숲속에 자리잡고 앉아 읽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여행이야 직접 갈수만 있다면 좋은 것이지만, 마음 먹으면 어디든 갈수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신 이런 책으로 대리만족 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성 싶다. 그리고 이건 사족이긴 하지만 정말 저자 같이 돌아 다닐려면 체력은 좋아야겠다는 당연한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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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4-12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그 동안 페이퍼에 올리신 '더불어 숲'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보관함에 쏘옥 넣고 말았군요. 저도 한번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볼 생각입니다. 조용한 숲속은 아닐지라도...

stella.K 2004-04-1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여행을 좋아하시는 잉크님한테 잘 어울릴 책 같군요.^^

icaru 2004-04-2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더불어숲을 샀어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타성에 젖고, 내 방식을 고집하고, 시야가 자꾸만 좁아지려한다. 이럴 때 이런 잘 쓴 기행문 하나 옆에 딱 꿰차고 어느 조용한 숲속에 자리잡고 앉아 읽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님의 이 말에 공감해요....



잉크냄새 2004-04-24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주에 주문해서 받았는데...
복순이 언니님의 리뷰가 기대되네요...
전 아무래도 저의 책읽기 습관상 채터별로 읽으면 3주정도 예상됩니다...

stella.K 2004-04-2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뻐요. ^^ 저도 두분 리뷰 기대할게요.

겨울 2004-04-2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에게 빌려 읽고 돌려주기 싫었던 책인데, 역시 책값이 만만치가 않아서... 이 분의 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가장 좋았어요. 최근에 나온 '엽서'라는 책도 너무 비싸서 참았다 일년 후에 사기로 했다는^^

waho 2004-04-2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편해지는 책이었는데...이 분의 책은 읽을 때 느낌이 좋아요.
 
현대 명작 단막극 선집 - 국내외 단막극 16편과 해설
김성희 엮음 / 연극과인간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좀 부끄러운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작품을 많이 보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많이 읽는 것(희곡을)이 좋은가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작가에게나 연출가에게나 또는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독자)에게나 희곡은 많이 읽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을 역은 김성희 씨도 이 책의 머릿말에서, "희곡의 독서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으면 문화산업으로서의 드라마가 발전하기 힘들다."라고 그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그는 헤겔의 말을 인용해, 희곡이 시와 소설의 특성을 다 갖춘 변증법적 형식이라 하여 가장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사실 몇몇 작품은 좀 얼른 와 닿지는 않았다. 몇몇 작품이 나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건, 일상어가 아닌 시어에 가깝고 초현실적인 감이 없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예를들면, 장정일의<어머니>나 오태석의 <교행>등. 

하지만 이근삼의 <막차탄 동기동창>이나 머레이 쉬스갈의 <타이피스트> 같은 경우는 여운이 꽤 오래 남았고, 나 개인적으로 단연 압권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은 뒤렌마트의 <황혼녘에 생긴 일>이란 작품이 좋았다. 작품이 갖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면도 인상적이거니와 탐정소설의 구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작가와 독자의 존재 양식을 너무나 섬뜩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작품의 탁월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아가서 과연 이 사람이 누구며 이 밖에 어떤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의 장점은 16 작품에 대해 작품 하나가 끝날 때마다 저자의 꼼꼼한 해설과 깊이 보기를 위해 몇가지 질문 사항을 써 놨다는 것일게다. 그러므로서 작품을 더 상세히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연극의 흐름에 맥을 짚어 볼 수가 있어 좋은 독서 체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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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04-03-19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게 읽었습니다. 연극과 인간에서 나오는 희곡집들이 꽤 괜찮은 편이에요.
저도 희곡읽기와 연극보기 모두를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연극을 보러가기가 무척힘들답니다. 직장인이며 지방에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