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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이중생활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삶의 구조는 반복된 일상에서의 일탈이다. 일탈은 갈등을 만들고 갈등은 추억을 만들며 추억은 인생을 만들어간다. 사람들이 원하는 혁명은 개인의 변화일 수도 혹은 지루함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일상에서의 탈출일 수도 있다. 그 들의 삶은 아쉽게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진화 되어 있음을 몸소 힘듦을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의 이중생활]은 혁명이라는 거대한 구조에서 개인의 삶의 단편을 보여주면서 세상의 살아가는 일상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다. 그 질문의 대상은 자기 스스로임을 암시하듯 권민우에게는 칸트를 스스로의 대화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허무하게 세상을 등지듯 살아가는 김철수에게는 자신 속의 벌레를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기억의 조각 속에서 일상의 기억의 혼돈을 가져온 권율에게는 단어의 혼돈을 주어 작가는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찾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욕망과 의문을 칸트와 벌레를 통하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마치 스스로 던진 질문이 꼭 상대가 있는 의미인양 객관화 시켜서 문장을 표현한다.
권태로운 일상, 그리고 치명적인 오해 속에서 방황과 일탈은 하나의 회귀점이 되어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죄책감이 존재하는 일상 속으로 돌아온다. 일상은 생각 했던 것만큼 짜릿하지도 쾌감이나 일탈이 가져다주는 두근거림도 없지만 일상은 삶과 죽음의 연장선에서 가족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이고 태어나는 순간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를 함께하는 가족이 있어, 지루하지만 돌아보면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소설은 권율의 죽음을 맞이하는 가족의 모습에서 먼저 간 딸에 대한 그리움이 손녀에게 전사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어찌 보면 일상적인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모습, 아버지에게 대드는 아들, 방황하는 아들의 일탈, 권태기에 접어든 중년 부부의 불륜, 어린시절 만난 여인에 대한 회상과 죄책감, 소설은 이 이야기를 가지고 구성이 되어 있다. 혁명과는 전혀 상관없을 듯한 이 소재는 개인이 가지고 싶어 하는 혁명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 후반부에 작품해설과는 조금 다는 부분으로 보는 관점도 있겠지만, 나는 이 글에서 작가는 개인의 지루함과 무료함 그리고 짜증나는 일상을 벗어나려는 주인공들의 일상에 대한 혁명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누구도 현재를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 것을 벗어나기 위한 혁명은 그리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는 힘든 모양이다. 혁명이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기에 그 들은 잠시 일탈과 방황을 경험하였을 뿐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길, 그 길에서 그들은 행복을 찾고 일상과 씨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모두 행복하지는 않은 듯 하다.
“사람은 평등하지 않아요. 전에도 말했지만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는 거, 맞아요. 옛날엔 그나마 시간 앞에서, 그러니까 죽음 앞에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시간을 먹는 속도도 달라요” - Page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