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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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이 작품을 읽게 된 건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는 걸 알고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오히려 하루키를 좋아하는 작가가 쓴 에세이를 여러 권 읽은 것으로 하루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할까. 이 작품 세트를 19년에 구입하고 묵혔다가 작년 8월부터 읽다가 쉬다가 이제야 1권을 읽었다. 소설은 몰입해서 읽어야지 이렇게 읽으면 안 된다


 화자인 오카다 도오루는 법률사무소를 다니다 그만두고 요리와 청소를 하며 음악을 들으며 소박한 일상을 보낸다. 음악 애호가라고 할 수 있는 하루키답게 소설 속에는 음악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야기 도입부에도 로시니의 도둑 까치서곡을 들으며 스파게티를 삶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유튜브를 검색해서 들어보았다. 역시 하루키의 말처럼 스파게티를 삶을 때 들으면 딱 좋은 음악으로 느껴졌다. 이때 모르는 여자로부터 10분의 시간을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는 상대를 모르는데 그 여자는 가 실업 중이며 나이가 서른이라는 것 등 모두 알고 있다. 또 아내 구미코의 오빠 와타야 노보루와 같은 이름을 붙여준 키우던 고양이가 사라졌다. 고양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이웃집 소녀 가사하라 메이를 만나는 등 알 수 없는 기묘한 사람들과 얽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 가노 마르타를 만나게 된다. 특히 가노 마르타는 뭔가 꿰뚫어보는 염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신은 점쟁이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앞으로 한동안 여러 가지 일이 생길 거라면서 고양이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도오루는 불안해지긴 하지만 특유의 침착함은 잃지 않는 모습이다.

 

 노몬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혼다 씨와 가노 마르타가 모두 물을 주의하라고 했기에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나 들리던 태엽 감는 새의 모습도 사라졌다. 이어서 가노 마르타의 동생 가노 크레타가 등장한다. 가노 마르타가 대신 보낸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도 모두 사라진 고양이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고를 하며 고통 때문에 죽기로 결심했던 지난날의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어서 마미야 중위가 등장한다. 구미코와 결혼 후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다가 중단되었던 혼다  씨가 죽고 나서 오카다에게 유품을 남겼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앞서 가노 크레타보다 더 길고 긴 중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참 지루하게 긴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그 나른함을 단번에 깨주는 대목을 만났다.

 

우리는 도적 때 사냥, 패잔병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죄 업는 무수한 사람을 죽였고, 식량을 약탈했습니다.(중략) 난징에서도 몹쓸 짓을 참 많이 했습니다. 우리 부대도 마찬가지였어요. 수십 명을 우물에 던져 넣고, 위에서 수류탄 몇 발을 던집니다. 그 외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짓을 했어요. 소위님, 이 전쟁에 대의 따위는 없습니다. 이건 그저 살육이에요. 그리고 짓밟히고 죽는 것은 결국 가난한 농민들입니다.(중략) 그런 사람들을 아무 의미 없이 죽이는 게 일본을 위한 일이 되겠느냐고요.’(P295)

 

 혼다 씨와 생사를 같이 했던 노몬한 전투(1939년 만주와 몽골의 국경지대인 노몬한에서 일어난  일본군과 몽골·소련군 간의 대규모 충돌사건.) 이야기를 마미야 중위의 입을 통해서 듣는다. 지휘관인 야마모토가 산 채로 가죽를 벗겨지는 모습을 그대로 목도 해야 했던 마미야 중위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도 산 인생이 아닌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소박한 일상에 하나둘씩 기묘한 일을 겪던 가오루의 이야기에서 역사의 만행 이야기로 흘러가는 설정이 의아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하루키는 1970년대 이후 정신적 기둥이 없는 시간을 살아왔다는 걸 깨닫고 역사로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이 작품에 2차 대전 중의 중국 이야기를 넣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면서 전혀 의도치 않은 일을 마주하기도 한다.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같은 인간끼리 극악무도한 일을 벌였어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흘러가고 곧 잊히고 만다. 작가의 역할이란 관찰자로서 독자에게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하루키는 2004파리 리뷰인터뷰에서 이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 곳인지에 대해 정직한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단다.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를 통해서 도오루는 무엇을 깨닫게 되었을까. 그리고 혼다 씨의 유품으로 받은 꾸러미는 텅 빈 상자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라진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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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6 2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는 하루키가 딱히 좋지는 않은데 또 그러면서 웃기는게 자꾸 읽게는 되더라구요. ㅎㅎ 이 책은 아직 안봤는데 볼까 말까 고민이 되네요. 모나리자님 나머지 권도 읽고 리뷰올리시면 보고 판단해볼게요. ^^

모나리자 2021-03-06 23: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권을 워낙 띄엄띄엄 읽어서요. 오하려 후반에 와서 몰입이 되더군요. ㅎ 뒷편이 궁금해요. 어떻게 이어갈지..
특유의 유머가 있어서 재밌긴 해요.
편안한 밤 되세요. 바람돌이님.^^!

scott 2021-03-07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모나리지남 전 지금 하루키옹이 진행하는 라디오 듣고 있는데 태엽감는새 모나리자님 리뷰 읽으니 뭔가 연결이 된듯한! 이책 모나리자님은 원서로 읽으실수 있을것 같은데요 첫장부터 김남주 번역이 엉망이라서,,,,,

모나리자 2021-03-07 22:29   좋아요 1 | URL
와~영어 방송인가요, 일본어 방송인가요? 대단대단!!
하루키 옹이 라디오도 진행하는군요.ㅎ
글쎄 기회가 되면 원서로 읽어보고 싶네요. 하루키의 원서는 <1Q84>세트만 가지고 있는데 꽤 두꺼워서 언제 읽을지 모르겠네요. 아직 실력을 한참 키워야 해서요.ㅋ

편안한 저녁 되시고 새 한주도 화이팅입니다. 스콧님.^^

새파랑 2021-03-07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끼의 ˝문˝ 을 읽어봐야 겠네요 ㅎ 리뷰 보니까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가사하라 메이가 정말 좋고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ㅋ 2권 리뷰도 기대합니다^^

모나리자 2021-03-07 22:34   좋아요 1 | URL
네, <문>은 다른 작품에 비해 부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지요. 좀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나름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의 제목은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아무데나 펼쳐서 눈에 띈 글자로 제목을 지었다죠.ㅎ
편안한 저녁 되세요.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열일곱, 괴테처럼 - 스스로를 천재로 만든 하연이의 르네상스식 공부법
임하연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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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기에 공부법에 관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나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책으로 만나는 공부의 대가들을 만나면 언제나 주눅이 든다. 그럼에도 계속 찾아서 읽는 이유는? 아무리 공부를 좋아한다고 해도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슬슬 꾀가 생기면서 이 공부를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서 첫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도 몰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명약이 필요한 시간이 왔구나, 힘을 얻어야 해, 하면서 다시 공부법에 대한 책을 찾게 되는 것이다. 공부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겐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하다.

  


 이 책은 스스로를 천재로 만든 하연이의 르네상스식 공부법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워낙 유복한 집안에 태어난 저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예술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고 전국 미술 대회에서 다수의 상을 받기도 하고 오페라를 좋아해서 2009년 프라하 국립음악원 오페라 영재수업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예술 쪽에 특히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여고시절 1년 반만에 자퇴를 하고 혼자 공부하며서 1천 권 가까운 책을 읽게 된다. 자퇴를 했던 이유는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으로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어렵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오랫동안 설득한 끝에 홈스쿨링을 하면서 미국 명문대학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책을 읽은 것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앞날을 위해 진지하고 당당하게 부모님을 설득해서 제도권 교육의 틀을 벗어났다는 게 놀라웠다. 그렇게 읽은 1천 권의 독서 목록에는 천재, 천재성, 무의식, 정신분석학, 역사 속 인물들의 전기, 영웅서, 문학소설, 베르사유 궁전과 프랑스 왕정생활 등에 대한 책으로 귀족이자 천재였던 괴테의 18세기 자유 인문 교육에 매료되어 스스로 공부했다는 점이다.

 


 다양한 공부 중에서도 그녀의 언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궁금했다. 그녀는 태어나자 마자 배운 한국어와 영어를 비롯해 초등6학년 때부터 배운 프랑스어롸 중국어, 고교생 때 이탈리아어와 일본어까지 대여섯 개의 언어를 할 줄 안단다. 이 중 영어는 어려서부터 모국어로 느껴질 만큼 익숙하다고 했다. 외국어를 하는 것은 일종의 연기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기도 하지. 그대로 흉내내려는 노력에서 발음도 억양도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테니까.

 


 그 외의 내용은 소더비 경매를 배운다거나 미술 등 예술에 대한 공부와 사교계 이야기도 들어있다. 무척 화려하다고 할까. 어쨌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위해 치열한 노력과 열정을 바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공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뒷받침이 되었던 은혜로운 환경도 그 꿈을 이루는데 한몫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는 제도권 교육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표준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은가. 거기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하지만 조금 다른 길로 가더라도 자신의 꿈과 목표 설정이 확실하다면 어떻게든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는 것. 규칙적이고 정해진 제도권 교육에서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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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01 2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책을 좋아해요ㅋㅋ최근에는 사놓고 읽지 못하고 있지만 벼르고 있는 공부법에 관한 책이 있어요. 의욕이 떨어질때 자극이 많이 되는것 같아요. 일단 이것도 주섬주섬ㅎㅎㅎ

모나리자 2021-03-02 16:14   좋아요 1 | URL
미미님도 그러시군요.ㅎ 가끔 마음이 해이해 질 땐 읽으면 의욕이 막 솟아요. 가끔 요런 책을 읽어주어야 해요. ㅎㅎ

scott 2021-03-02 0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전 여태껏 열일곱살 괴테가 유럽전역을 여행하며 세상공부 하는건 줄 알았는데 ㅋㅋㅋ 열일곱 천재소녀의 이야기였네요 내용을 보니 이비에스 몇부작 다큐에도 나올정도네요 소더비 경매는 방학기간에 몇주짜리 강의가 있어요 짧게는 보름에서 이주정도 길게는 한달에서 두달과정 수업료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도 영국 런던 주요 미술관 샅샅히 돌아댕길수있고(수업임)경매과정 지켜보는 재미도 있어요

모나리자 2021-03-02 16:17   좋아요 1 | URL
아~ 헷갈릴 수도 있겠네요. 꽤 열정적이고 독립적이고 강단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성공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할까요.

소더비 경매 경험자시군요. 스콧님! 지켜보는 재미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많은 책을 통해서 소더비 경매 이야기를 듣게 되네요.ㅎ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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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마라톤이 쉬울까, 소설 쓰기가 쉬울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었다. 33세에 달리기를 시작하여 마라톤, 울트라 마라톤, 트라이애슬론에 참여하며 20078월 이 책의 원고를 탈고한 시점에 25회의 풀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비교적 젊은 시절의 하루키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원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하루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회고록 성격의 글이라고 해서 더욱 의미 있는 이야기였다. 그의 달리기 인생과 문학 이야기가 진솔하고도 유쾌한 필치로 펼쳐진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많은 공부법이나 글쓰기 책에서 하루키의 달리기 이야기를 접하고 기억에 새겼는데 우연히 이 제목을 발견하게 되어 읽게 되었다. 그냥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정도이려니 생각했는데 이토록 스포츠 마니아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맨 처음 말한 것처럼 마라톤과 소설 쓰기 중 어느 것이 쉬울까, 생각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결론은 둘 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에겐.

 


 하루키가 참여했던 각종 마라톤, 트라이애슬론 대회 장면의 분위기는 물론, 그의 심리적 변화나 부담감 등이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어 경기를 가까이서 관전하는 느낌이다. 대회를 위해 열심히 연습했는데 숨이 안 쉬어져서 수영을 못하고 기권하게 된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게 힘든 운동을 왜 하게 되었을까. 달리기를 좋아해서도 그렇지만,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라고 했다. 올림픽에 참여한 메달리스트들도 몇 번의 완주에 그쳤다는 사례를 보면 얼마나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 엿볼 수 있다. 바로 소설 쓰기와 달리기를 동급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떤 고통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중략)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P41)

 

 

 동양인 최초의 세계적인 작가 하루키라도 때때로 비난을 받는 일도 있었겠지. 누구에게나 마음에 들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럴 때마다 하루키는 달리기로 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뛰는 동안에 받은 마음의 상처도 분한 마음도 차차 완화되고 그의 몸은 더욱 단단해졌을 것이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걷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나도 한번 뛰어보고 싶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P115~116)

 

 하루키에게 달린다는 건 바로 생명선이었다. 소설 쓰기란 육체노동 못지않은 고도의 정신노동이라고 한다. 체력이 받쳐주어야 글쓰기의 기나긴 고통을 견딜 수 있다는 건 많은 책으로 접했다. 조금밖에 없는 달려야 하는 이유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단련하는 것, 그것이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원천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야심 찬 계획으로 도전하고도 머지않아 그 의욕이 사라지는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이 문장을 발견하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음악을 좋아하는 하루키답게 열다섯 살 때부터 마니아적으로 모았다는 LP 이야기나 홋카이도 사로마 호수에서 열린 울트라마라톤에서 고통의 과정을 벗어나 몰입에 이르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읽으면서 대 소설가 하루키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된 것 같다. 무언가에 열정을 갖고 몰입한다는 건 참 아름답다는 것도. 앞서 호흡 문제로 수영을 못하고 중단한 적이 있던 하루키는 무라카미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4년 만에 재도전하여 완주의 기쁨을 얻는다. 한번 실패한 일을 뼈에 사무칠 만큼 기억하고 있다가 잘 될 때까지 확실하게 복수를 하는 집요한 성격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작가는 그렇게 되었구나. 작년에 이 책을 구매 했는데 공교롭게도 새해에 읽게 되었다. 진작 읽을 걸 그랬다. 새해에 어떤 계획을 세우고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이 읽는다면 좋은 영감을 받을 수 있겠다.

 


 , 또 하나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얼마나 예찬하던지. 별 감흥 없이 읽었던 내 독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꼭 읽어봐야지, 결심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하루키 특유의 유머가 친근하게 느껴져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그의 문학과 삶이 풍기는 열정적인 여운은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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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 어느 젊은 번역가의 생존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3
김고명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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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을까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이 책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는 12년 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고명 저자가 오늘의 그를 있게 해 준 좋은 습관 20가지를 소개하는 책이다책을 좋아하고 영어 좀 하니까 번역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영문학을 전공하고 혹시 모르는 일에 대비하여 경영학도 전공했다 한다대기업 인턴에서 미끄러진 후 미련 없이 번역가의 길을 선택하여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대표 역서로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등 40여 종의 번역서를 출간했다번역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번역가의 일상 루틴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감으로 읽었다출판사 좋은 습관 연구소’ 에서 펴낸 습관 시리즈’ 중 세 번째 책이었다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저자답게 맛깔스런 글 솜씨와 핵심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멘트 덕분에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를 들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미래의 저에게 보내는 나의 분투기 같은 것입니다.

아니분투기라고 하긴 좀 그렇네요제가 뭔가 남들이 하지 못하는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말씀드렸다시피 이 책에 대단한 건 없습니다그저 좋은 습관일 뿐입니다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찌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그저 좋아하는 것을 좇아 그걸 잘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만들고그냥 조금씩 걸어왔을 뿐.’ (P6- 프롤로그)

 

 어떤 일을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면서도 끝까지 지속하지 못하고 후회하곤 했던 일이 얼마나 많은가그렇기에 그저 좋은 습관일 뿐이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으며 대단한 건 없다고 하는 저자의 말은 따듯한 겸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그러면서 그래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다시 힘을 내서 해볼까 하는 마음이 불끈 솟는다.

 

1. 원서 읽기의 시작은 어린 왕자부터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 시작은 원서 읽기가 아닐까저자는 너희 중에는 나중에 영문과 나왔다는 게 부끄러울 사람도 있을 거야.”(P11)라는 교수님의 일성을 들은 뒤 어린 왕자를 읽기 시작하고 인생 최고의 책이 되었다고 한다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선택했지만 읽기를 마친 후 감동은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고 공익 시절 동안 읽은 서른 권의 책이 번역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했다짧은 분량의 원서를 읽으면서 성취감을 늘리고 많이 읽고 다양한 문장에 노출되는 것이 핵심이다여기에 이어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법좋아하는 분야 덕질 하기집중력을 발휘하는 뽀모도로’ 기법메모 습관미니멀리즘일의 성과를 내기 위한 운동 등 번역에 집중하여 능률을 올리는 방법과 수입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이 좋은 습관 스무 가지는 번역가 지망생이나 번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이기도 하지만 대번역가를 꿈꾸는 미래의 저자를 위한 좋은 습관의 목록들이기도 하다.

 

2. 레벨 정도의 글을 쓰는 방법


원서 읽기도 그렇고 뭐든 꾸준하게 해야 늡니다일주일에 한 번씩 90점짜리 글을 쓰는 것보다 이틀에 한 번씩 50점짜리 글을 쓰는 게 좋아요점수를 합치면 전자는 한 달에 360후자는 750점이죠실제로 실력이 향상되는 것도 그 정도 차이가 납니다매일 써야 감각이 길러져요소설가 김연수스티븐 킹무라카미 하루키가 공통으로 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글이 잘 써지든 안 써지든 무조건 매일 꼬박꼬박 쓰라는 겁니다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그런 말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P25)


 번역가에게 있어 해당 외국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한국어 실력은 더 중요하다고 했다글 솜씨의 레벨을 편의상 1~5로 나누어 볼 때 기본적으로 레벨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글쓰기는 훈련을 통해서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쉽게 알려주어서 좋았다마음에 드는 글을 쓰려는 욕심이 앞서다 보면 이상하게 더 안 써질 때가 있다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글이 써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글이라도 쓰는 횟수를 늘리다보면 언젠가는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있을 거라는 저자의 조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글은 쓴 만큼 늘게 되어 있으며글쓰기는 정직한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글 솜씨를 키우기 위한 방법을 정리하면,


1. 블로그에 쓴다.

2.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쓴다.

3. 최소 열 문장씩 쓴다.

4. 준비 없이부담 없이 편하게 쓴다.(P31)


 번역에 대한 관심으로 카페 회원이 되고 우연히 블로그를 개설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잘 한 일 같다자주 쓰고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쓰는 것이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일이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4. 25분씩 집중하는 뽀모도로 기법 아세요?



그걸 간파한 형님이 제게 가르쳐준 게 지금부터 소개할 뽀모도로 기법입니다사실 소개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 만큼 간단해요. 25분 일하고 5분 쉬는 것을 반복하는 게 다거든요그렇게 네 번을 반복했으면 20~30분씩 길게 쉬어주고요정말 그게 다예요.’(P47)

 

뽀모도로기법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다보통 강의나 학교 수업은 40분 내지 50분에 휴식 시간 10분이다그런데 이 방법은 한 시간을 둘로 나누어 30분씩 사용한다. 25분 집중, 5분 휴식이라는 것이다특히 공부할 때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공부하는 분량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더구나 고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건강상의 문제도 생기기 쉽고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다이 방법을 1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으며총 작업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어서 효과적이라고 한다.

 

7. 중도 포기 없이 꾸준히 운동하는 비법


 운동의 중요성이 번역가에게만 해당 될까공부하는 학생이든 일을 하는 직장인이든 체력이 있어야 오래 버틸 수 있다하지만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겠다고 결심하지만 꾸준히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첫 마음과 달리 한두 번 거르다 보면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그런 우리를 응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벼운 제안을 한다.


1. 번역가로 오래 살려면 주 3일은 운동을 해야 한다.

2. 운동은 가까운 데서 하는 게 최고다.

3. 10분 만 해도 운동한 것으로 치면 운동이 만만해진다.

4. 운동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 덜 지친다.(P84~P85)


 오늘 운동을 빼먹었다고 자책하기 보다는 이만큼이라도 했으니 다음엔 좀 더 하면 되지하고 넘어가면 된다공부든 운동이든 너무 중압감을 가지기보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8. 번역은 연기연기를 위해 필사를 합니다



제가 들었던 조언은 크게 두 가지였어요하나는 한자를 줄여보라는 것한자어는 순우리말보다 딱딱한 느낌이 강합니다그래서 한자어를 의도적으로 줄였어요다른 하나는 한국 소설을 많이 읽어보라는 것이었어요언어의 귀재들이 어떻게 언어를 요리하는지 맛보라는 거였죠그래서 한국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그리고 그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필사를 했습니다김애란 작가의 침이 고인다를 주로 필사했어요남성적인 느낌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러 여성 작가의 책을 선택한 거죠.’(P83)


 번역서들을 읽다보면 매끄럽게 잘 읽히는 책이 있는 반면자꾸만 겉돌아서 이해하기 힘든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저자도 문장이 너무 건조하고 딱딱하게 읽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그래서 한자어를 줄여보거나 한국 소설을 읽고 필사를 한 노력 덕분에 도둑 비서들은 역서 중 가장 많은 서평이 올라온 책이며 호평 일색이라는 평가를 받았단다그 후 번역한 애티커스의 기묘한 실종 사건은 천명관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라는 평가를 들었다는데바로 그 작가의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필사했던 덕분이라고 했다필사를 함으로써 다른 성의 느낌을 살릴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그게 바로 감정이입의 효과인 걸까또 원저자의 성격이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동영상을 시청하기도 하는데 일방적이지만 그렇게 대면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저자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한다이런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아무래도 글 속에서 저자와의 교감하는 부분도 생기고 저자의 분위기나 말투를 잘 살려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번역 원고를 검토하는 방법번역 작품의 내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검색을 하는 방법영단어 암기법편집자와의 관계 등 번역가가 하는 일의 전반적인 내용과 슬럼프를 극복한 사례도 알려 준다인공지능 발달과 4차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번역 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는 얘기가 무성했었다그런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하게 되는지 궁금했는데언급된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아무리 기계 번역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감정적인 부분까지 교감할 수 없기 때문에 큰 걱정은 기우라는 말을 과학 관련 책에서 본 것이 생각났다좋아하는 일이라면 이것저것 재며 망설이기보다는 먼저 발을 들이는 것도 상책이 아닐까 싶다번역가는 못 되더라도 원서를 읽는 것이 만만해 질 수도 있을 테니까.


 각 장마다 번역에 대한 유용한 깨알 팁을 소개하고 있다.


20. 저와 일의 가치를 매일 되새깁니다


 어떤 일에 10년을 바쳤으면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돈과 명예를 먼저 생각한다면 결코 할 수 없다는 번역 일을 이 만큼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어디에 소속된 것도 아닌 프리랜서로서 스스로 시간 관리를 해야 하고 모든 일정을 마감 기한에 맞추어 조절해야 하는 직업이다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나 한 달 넘게 일이 안 들어 와서 막막했던 상황에 부딪히기도 했다그런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1.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2.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3. 내가 빛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P214)

 

 저자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꿋꿋이 살아가기 위해 이 세 가지를 습관적으로 되새긴다고 한다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쉽게 일하고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어려움을 갖고 살아간다일전에 일본문학 번역가 권남희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300여 권이나 역서를 낸 베테랑 번역가라면 부러움의 대상이기만 할 것 같았다하지만 들여다보니 마냥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저자와 닮은 점이 있다면 그 일이 좋아서 하다 보니 30여 년이나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그러니 좋아한다면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믿고 자신의 가치를 믿으라고 조언을 한다여기서 알려주는 좋은 습관 스무 가지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적용하거나 응용할 수 있는 분분이 많았다로망으로 여기던 번역가들의 시간관리나 번역 일의 전반적인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영어책 번역가의 이야기지만 다른 언어에 관심이 있더라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변역가 지망생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게 가능한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또 지금 하는 일에서 성과를 내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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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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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문학을 번역하고 있다는 권남희의 에세이를 만나게 되었다. 프로필 소개를 보고 알았는데 전에 읽었던 <츠바키 문구점>이 그녀가 번역한 작품이라고 해서 반가웠다. 포포가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할머니에게 대필업을 물려받아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웃 사람들과 훈훈한 정을 주고받는 이야기여서 따듯하게 느껴졌었다.


  이 에세이는 그동안 일본문학을 번역하면서 만난 편집자, 일본 작가들의 이야기와 일상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가 많이 들어있다. 웃음도 주었고 때로는 살짝 눈이 젖어드는 뭉클한 감동도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왠지 번역가들은 그 언어권 작가와 친근감이 있는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도 번역가들의 특권이 아닐까. 또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단출한 가족 이야기도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고 약간의 외로움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번역일이라는 게 먼발치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리 낭만적인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녀는 근사한 서재도 없이 거실에서 책상을 두고 일을 한다고 했다. 물론 소박한 공간을 좋아해서 일 것이다. 자신은 번역가라는 호칭보다 번역하는 아줌마로 불리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거의 뿌리 깊은 집순이 라고. 게다가 앞 못 보는 애완견 나무를 돌보아야 해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한글을 독학으로 떼고 만화방을 다녔단다. 역시 어릴 때부터 활자와 친했어. 중학교 때부터 인생의 계획을 세우면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다. 그때부터 번역을 생각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꿈과 계획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밀고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추억하는 부분은 좀 먹먹하기도 했다. 왜 옛날 아버지들은 그렇게 자기밖에 몰랐을까 싶다. 시골에서 목욕탕과 여관을 운영할 정도였으면 집안 살림은 큰 걱정 없이 살았을 것 같다. 그런데 뼛속까지 부지런하고 뼛속까지 구두쇠인 일중독인데다 다혈질 성격 때문에 가족들을 평생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아무리 그렇게 힘들게 했더라도 가족은 가족이다. 이별의 순간이 가까워지면 그냥 그걸로 잊어버리고 안타까운 마음이 되는 건가 보다. 말년에는 와병 환자로 지내던 아버지를 어머니가 돌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가까운 곳에 요양원 입소를 결정했는데 1시간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요양원 들어가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다는데.


  좋아하는 일을 해서 평생 밥 먹고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로망일 것이다. 종일 책과 씨름하면서 번역을 하고... 멋진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일 년에 한번쯤 34일 이내로 일본 여행 정도를 다녀올 수 있다고 해서 마음이 좀 짠해졌다. 왜냐하면 일거리는 계속 대기하고 있을 것이고 마감에 맞추려면 어디 돌아다니는 것은 제한적일 것이다. 그래서 정말 그 일이 좋고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을 감수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나이 50에 국카스텐에 빠져 들다가 그들의 콘서트를 섭렵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단조로운 일상에 가끔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


  예전에 사오정 시리즈가 유행인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로 추억의 사오정을 소환하는데 너무 웃겨서 몇 번을 읽었다. 웃다가 눈물이 나기도. 크게 웃을 일 없는 요즘이라 여기 소개해 본다.

엄마: (여기)공물(곡물) 파는 데는 없심니까?

노인: 동물이요?

엄마: , 공물요.

노인: 무슨 동물이요?

엄마: 공물이 공물이지 무슨 공물이 어데 있심니까.

노인: 동물도 종류가 있지. 뱀 같은 거요?

엄마: 콩 같은 거요.

노인: 곰 같은 걸 왜 여기서 찾아요!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던 그녀가 마스다 미리의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를 번역하면서는 그간의 굳은 마음이 변했단다. 더 늙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일념으로 혼자서 용감하고 씩씩하게 패키지투어를 다닌 이야기란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친구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다. 한번 가보면 정말 반하게 되어있다. 여행이 여행을 부른다. 다시 열심히 일해서 장거리 여행 또 갈 거란다. 목표가 생기면 일도 더 열심히 할 거고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도 할 것이다. 여기에 소개된 책 중 제목만 알고 있던 유명한 작품이 많았다. 카모메 식당은 영화로도 알려져 있던데. 30년 가까이 번역에 시간을 보냈단다. 얼마나 긴 시간인가. 그런데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면 정말 잠깐이다. 오랜 시간 일하면서 다듬어진 언어 속에 땀과 노력, 많은 감정의 숨결이 담긴 그녀의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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