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체력은 탐내지 않는다 - 다른 사람 말고 내 몸에 맞는 적정 운동 안내서
이우제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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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허리를 다쳤다. 무너져내린 몸의 기둥.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넌 가엾은 내 허리. 이 기회에 내 몸을 돌아봤다. 어떻게 살아왔나 나는.


운동과 친하지 못했지만 관심은 많았다. 잠깐씩이지만 합기도, 태껸, 복싱을 배워봤고, 한동안 꾸준히 헬스클럽에서 쇠질을 해본 기억도 있다. 되도록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홈트레이닝을 하는 습관을 들였고 요즘엔 요가를 배워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하는 운동을 해도 답답했다. 뻣뻣하기만 하고 똑바로 서있지도 못하는 느낌. 어딘가 비틀어진 것 같은, 자세를 잘 잡지 못하는 몸. 운동할수록 망가지는 것 같은 찝찝함.


표지가 웃겨서. 제목이 그럴싸해서. 두께도 얇겠다 그냥 무심코 집은 책. 그런데 이 작은 책 한 권이 내게 큰 걸 가르쳐줬다. 책 저자는 퍼스널 트레이너에 요가 지도자다. 무엇보다도 '허리 디스크를 앓아본 사람'이라는 이력에 눈이 갔다. 무턱대고 운동 뽐뿌부터 넣는 책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


이 책은 숨 쉬는 법부터 알려준다. '잘 쉬는 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가슴과 배 경계의 가로막이 움직이는 원리를 배우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얄팍하게 숨 쉬고 살았는지 깨달았다. 숨쉬기 다음에는 똑바로 서기. 그다음에는 힘차면서도 편안하게 걷기.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나중에는 케틀 벨 스윙 같은 중량 운동도 소개한다. 하지만 원칙이 있다. 기본이 안 되면 함부로 아무 운동이나 뛰어들면 안 된다는 것. 숨도 잘 못 쉬는 사람이 무거운 걸 들거나 어려운 동작을 취하면 안 된다는 것.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준비 과정 자체가 무척 중요한 운동이라는 것.

저녁에 퇴근하고 간단하게 스트레칭한 다음에 이 책에서 소개한 운동을 했다. 두 발바닥을 바닥에 제대로 딛고, 골반 위치를 잡고, 눈을 감고 가슴-배-허리를 휘감는 호흡을 느꼈다. 한참을 그러고 서있으니, 뿌리 깊은 나무처럼 땅 위에 내 몸이 단단하게 잘 서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에 젖어들었다. 서있는 게 이렇게 든든하면서도 편할 수 있다니. 아. 건강하다는 건 이런 느낌이겠구나.


몸에도 기본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나는 이렇게 내 몸의 기본과 만났다. 책을 펴자마자 '곧 죽어도 운동!'을 외치는 여느 운동 책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숨 잘 쉬고, 튼튼하게 잘 서고, 낭창낭창 걸어 다닐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게, 나처럼 자기 몸을 두고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장 절실한 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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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문 용어사전 - 아날로그부터 디지털까지, 체계적으로 익히다
조용훈 지음 / 월간사진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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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역사를 좋아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다. 어릴 때 티비에서 판관 포청천을 해줬는데 그게 참 재밌었다.

마침 집에 학습 백과가 빼곡히 꽂혀있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몇 시간을 나오지 않고 백과사전을 뒤적이며 중국사 부분에서 포청천과 송나라를 찾아 읽었다. 그렇게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다. 정신 차려보니 역사 교사를 하고 있다.


그때는 그랬다. 유행이었을까? 우리 집에도 친구들 집에도 학습 백과 세트가 꼭 있었다. 빼곡한 2단 편집이지만 흥미로운 내용들이 줄줄이 '올 컬러' 사진과 함께 들어간. 모든 아이들이 부모가 사놓은 학습 백과를 좋아한 건 아니었겠지만, 나는 틈만 나면 두꺼운 사전에 깊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이 들면서 어린이 학습 백과사전을 보지 않게 되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그런 책이 그리웠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에 대한 내용들이 '그런 식으로'-적당히 크고 두꺼운, 못 보던 게 줄줄이 이어지는, 올 컬러 사진이 들어간, 2단 편집의- 투박한 매력을 가진 책.


그런 책이 얼마 전에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펼쳐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사진-를 다룬 내용이 '배부르게' 들어간 사전.


개념과 용어, 기법, 장비의 설명이 끝없이 들어가 있다. 차린 게 많은데 먹을 것도 많다. 책의 글쓴이는 대체로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 사진을 몇 년 찍어오면서도 잘 모르던 플래시 동조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와 리플렉스 카메라에 그렇게 많은 세부 분류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사실 이런저런 사진 책이나 블로그에 흩어져있는 내용들이지만 한 군데에 모아놓고 보니 깊게 읽게 된다. 이런 걸 '편집부'나 '공저'가 아니라 글쓴이 혼자서 모아서 썼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아마도 글쓴이는 이 책을 프로 사진가나 아마추어 사진을 오랫동안 진지하게 찍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것 같다. 사진 작업을 하다가 아직 잘 모르거나 생각이 잘 안 나는 개념을 찾아보는 포켓북 같은 물건이랄까. 그래서 설명 중간중간에 어려운 단어들이 나오지만 보충 설명이 따로 없다. 가나다 순서로 편집해놓아 표제어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찾아보면 되지만, 글쓴이가 보기에 기초적인 내용이라 생각한 것들은 따로 설명을 실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용도로 쓰기에 이 책은 부피가 지나치게 큰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나는 이 책이 이제 막 카메라를 샀거나 이론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초보들에게도 어울릴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어릴 때 즐겁게 읽었던 학습 백과처럼. 앞으로 개정판이 나온다면, 생소한 단어들에 대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문장을 덧붙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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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8-30 0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대한 정보를 책 한 권에 모아서 정리하려면 엄청난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의 유통기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작업도 진행해야돼요. 이런 작업을 개인이 혼자서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합니다. ^^

돌아온탕아 2019-08-30 10:2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혼자서 어떻게 다 정리하고 분류했을까 궁금해요. 한 사람의 열정과 실력이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니체의 인생 강의 -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사는 변신의 삶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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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상황에 빠졌거나, 못된 사람을 겪었거나, 때를 잘 만나지 못했거나. 살다가 쿵 하고 넘어질 때가 있다. 나이 먹고 넘어지면 가볍게 생채기만 나고 끝나지 않는다. 뭔가가 깊게 후벼 파고 지나간 자리는 예전처럼 잘 아물지 않는다.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다시 일어설 때 누군가가 길잡이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게는 이 구절이 이를테면 밤하늘의 북극성 같은 이정표가 되어줬다.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내 정식(定式)은 아모르파티, 운명애다.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토록 다른 것은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p167.


한 번 사는 인생이다. 어찌 보면 엄청난 우연과 행운으로 얻은 삶. 누구의 것도 아니고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나만의 삶.


어떤 일을 겪었든 그것은 이미 일어나버린 사건일 뿐. 지나간 일을 거듭 되새김질하며 시간을 아깝게 흘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 뭐라도 해볼 것인가. 답은 정해져있다.

좋든 나쁘든 기쁘든 슬프든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나무가 자라나듯 물길이 넓어지듯 지금까지의 나를 뛰어넘는 내가 되기. 쓸데없이 심각해져서 어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춤추는 아이처럼 경쾌하게 하루하루 앞으로 내딛기. 무엇보다도, 하루하루 내 삶을 사랑하기.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삶을 또 선택할 것처럼. Amor Fati.


니체는 평생 변방을 맴돌다 외롭게 죽었다고 한다. 그가 처절하게 남긴 외침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고동친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맸던 철학자. 그래서일까? 니체의 철학은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진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 책이 없었다면 니체를 만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권력 의지, 운명애, 영원회귀, 낙타-사자-아이의 변신까지. 니체 사상의 큰 줄기를 친절하게 짚어준다. 글쓴이의 강연을 활자로 옮긴 책이라고 한다.

7년 전이었던가. 호기롭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쳤다가 너무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미치광이가 있나’했다. 그 뒤로 니체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가 우연히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니체에 빠져버렸다. 어렵다는 니체의 철학을 잘 씹어서 먹기 좋게 만들어놓았다. 징검다리 같은 책이랄까? 시간이 난다면 니체의 ‘원전들’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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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텔스바흐 합의와 민주시민교육
심성보.이동기.장은주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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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멋지게 극복했다. 그러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은 ‘국민’은 있으되 ‘시민’을 찾아보기는 힘든 사회라는 사실이 가장 큰 위기 상황이다.


국민은 피동적 존재다. 국가가, 정부가, 권력자가 정해준 정체성을 내면화한 존재다. 반대로 시민은 긍정적 존재다. 시민은 정체성을 스스로 찾는다. 국가나 민족보다 더 보편적이고 중요한 가치, 민주주의가 그들의 나침반이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겨우 정상으로 돌려놓은 이 나라의 미래에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만들어가는 존재가 필요하다. 자기 삶에서 민주적 원칙을 스스로 구현하는 사람, 지배 받는 국민이 아니라 스스로 지배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시민이 될 수는 없다. 시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시민은 ‘형성’되고 ‘교육’되어야 한다. p14.


국민이 만들어지듯 시민도 만들어진다. 대충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라는 공정에 맞춰 대량으로 찍어내는 게 국민이라면, 시민은 조각을 빚듯 정성을 담아 만들어져야 한다. 단 거기에 강압이나 강제가 있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에 맞는 삶의 양식과 사고방식이 몸에 배인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클 수 있게 교육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정치적 견해나 입장의 다양성, 또 그에 따른 ‘갈등’이나 ‘논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아무런 갈등이 없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갈등을 생산적으로 승화시킨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갈등과 논쟁의 여지가 없는 원칙은 오직 ‘갈등과 논쟁이 그 본질을 이룬다.’는 원칙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P26.


다양한 입장이 공존하고 때때로 충돌하는 것. 그러한 충돌을 위험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여길 수 있는 사회. 논쟁과 갈등이 항상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갈 줄 아는 사람. 갈등을 억지로 없애려 하는 게 아니라 갈등 상황을 성숙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내 입장과 상대 입장을 넉넉하게 품는 품성을 키우려 노력하는 사고방식.



민주 시민을 키우려면 교육부터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 교육 목표를 주입이나 교화가 아니라 학생의 자발적 ‘성숙’에 두어야 한다. 학생을 주어진 가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객체가 아니라 자기 가치와 입장을 만들어갈 주체로 봐야한다. 독일에서는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 ‘정치교육’을 발전시켜왔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 연합국은 독일 나치즘이 되살아나지 못하게 막으려고 패전국 독일에 미국식 시민 교육 체계를 이식했다. 독일의 정치교육(즉, 민주시민교육)은 그렇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구 민주주의 정치, 사회 제도를 잘 전달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68혁명의 열기가 독일을 휩쓸면서 정치교육의 흐름도 바뀐다. 사회 비판과 변혁을 강조하는 좌파의 입장과 체제 유지를 원하는 우파의 입장이 정치교육의 역할과 위상을 두고 심하게 충돌하게 된 것이다. 정치교육에서 어떤 것을 다루고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두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독일 교육학자들은 작은 도시 보이텔스바흐에서 양쪽 입장을 절충하는 회의를 열어 크게 세 가지 합의사항을 만들었다.


1. 강압(교화)금지: 학생들에게 특정 견해를 주입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의견을 독립적으로 만들고 스스로 성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2. 논쟁성 원칙: 학문과 정치의 논쟁점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저마다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관점이 다양하게 드러나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

3. 행동지향: 학생들이 특정 정치 상황과 자기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핵심은 두 번째 원칙이다. 정해진 입장을 전달하지 않고 다양한 입장을 보여주고 학생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 좌파든 우파든 특정 이념을 학생에게 주입하거나 교화하지 않는다는 것. 교사는 첫 번째 원칙처럼 특정 입장을 학생에게 주입해서는 안 되고 학생은 세 번째 원칙처럼 판단한 바를 갖고 스스로와 사회를 위해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이 수동적인 국민이 아니라 능동적인 시민 한 명으로 성숙할 수 있게 학교가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보이텔스바흐에서 독일의 교육 전문가들이 합의한 기본 정신이었다.


실제로 보이텔스바흐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사항이나 완결된 학문적 결론을 정해서 발표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교육에서 꼭 지켜야만 하는 최소한의 원칙을 논의했을 뿐이다. 다만 포괄적 수준에서 전체적 흐름만을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세 가지 합의 사항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합의’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교사는 완벽히 중립적이어야만 하는가?’, ‘어디까지 논쟁의 대상으로 다룰 수 있는가? 또는 어디까지 논쟁의 대상으로 허용해야 하는가?’, ‘학생의 정치적 판단과 행동을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 가운데 어느 쪽 비중을 더 두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제기가 대표적이다. 글쓴이들이 이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한 구절을 몇 가지 소개한다.



보이텔스바흐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정치교육의 목적은 ‘정치적 판단 교육’이다. 이런 교육이 가능하려면 교사들 스스로 충분한 논거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판단을 공개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 무엇보다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사고하고, 참여하고, 투쟁하는 성인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은 대화, 책임 있는 실천, 그리고 현재 경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잘 논의된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p147.


즉, “어떤 방식으로든 보편성을 거부하는 문화 입장들, 예컨대 자기 세계관이 우월하다고 맹신해 다른 신념이나 문화 특징을 지닌 사람들을 순전히 그 신념이나 특징 때문에 탄압하거나 심지어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문화 입장들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논쟁성의 경계는 “타자의 신념과 문화 특징을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고 정당하다고 인정할 의지가 있는 그런 문화 입장들만을 교육 대상에서 정당한 것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p99.



한국의 시민 교육은 기형적이다. 헌법에 적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정치교육 금지’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 시민을 기른다면서 정치적 쟁점을 다루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면서 그저 정치 제도의 파편만을 전달하고 있다. 이는 실체를 감추어두고 그림자만 보게 하는 것이다.


학생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려면 교실에서도 정치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이라 교사가 교실에서 ‘정치’라는 단어를 꺼내는 일조차 금기시한다. 그저 시민교육에서 어떤 내용까지 가르치는 게 ‘위험하지 않은지’에 대해 소모적이고 낡은 논쟁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가르칠 내용이 아니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규범을 합의하고 마련하려 한 독일의 사례를 소개하는 이 책이 반갑다. 어떤 내용을 가르칠 것인가를 두고 싸울 게 아니라 학생들이 ‘어떻게 배울 것인가’의 원칙을 먼저 이야기해보는 것. 그런 자리를 만들고 공론화해보는 것. 정답을 바로 정하기보다 의견 차이를 드러낼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광장을 먼저 만들어보는 것. 아직 민주주의를 꽃피워보지도 못했으면서 민주주의라는 말을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처방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이루어진 배경, 과정, 내용, 미래까지 무척 자세하고 충실하게 다루어놓았다. 읽는 내내 먼저 내 수업 시간에 ‘합의’의 발상을 어떻게 적용해볼까를 생각하느라 가슴이 뛰었다. 교사의 위상과 역할을 민주주의 교육과 민주 시민 양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과 결론이 무척 와 닿는다.


다만, 독일과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시민교육의 발전 과정이 어땠는지 자세히 비교하는 글이 하나 들어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군대의 점호를 떠올리게 하는 아침 운동장 조회를 아직도 여러 학교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계속하고 있는 한국이다. 이미 나치즘을 극복하면서 ‘정상을 지향’하던 독일의 20세기 후반과,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극복하지 못해 사회 전체와 학교마저 ‘비정상을 지향’하던 한국의 20세기 후반은 출발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독일과 한국의 현대사를 구체적으로 비교해보고, 독일과 같은 ‘합의’와 ‘논의 과정’이 한국에서도 어떻게 해야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를 전망해보는 꼭지가 하나 들어간다면 좀 더 책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조금 위험한 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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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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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할 일이 많았다.


신기루 같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까워지는 것도, 둘도 없는 사이가 되는 것도, 그러다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되어 제 갈 길을 가는 것도. 시간은 모든 걸 희미하게 흩어버린다.


시간은 지나가도 사람이 있었던 흔적은 남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무엇을 가장 진하게 남길까? 나는 그게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둘 사이에 만들어져서 둘 사이에만 의미를 가졌던 행동들. 어쩌면 이별은 상대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보다도 이제는 의미 없어진 습관을 혼자 끌어안고 버텨야 하는 시간 때문에 더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밤이 되면 나는 여전히 로비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전화가 걸려올 곳은 없었지만, 그것 말고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텔레비전 야구 중계를 켜놓고 보는 척했다. 그리고 나와 텔레비전 사이에 가로놓인 막막한 공간을 응시했다. 나는 그 공간을 둘로 나누고, 나눠진 공간을 또 둘로 나눴다. 그리고 그렇게 몇 번이나 계속하다 마지막에는 손바닥에 올려놓을 정도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p43. <반딧불이>



주인공은 꽤 오랫동안, 하지만 데면데면하게 알고 지냈던 어느 여자―먼저 죽어버린 친구의 애인이었던―와 갑자기 가까워진다. 같이 시간 보내고 같이 걸어 다니다가 어느 날은 하룻밤 자기도 한다. 주인공에게는 매주 토요일 밤마다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이별도 갑자기 찾아왔다. 그녀는 편지 한 통을 짧게 남기고 그의 삶에서 ‘사라져버렸다.’ 그에게 남은 건 토요일 밤마다 전화를 기다리던 습관뿐. 그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의미가 없어져 버린 습관을 끌어안고 반복한다.



어디서 본 듯한, 아니 겪어본 것 같은 이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습관을 붙들고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지. 그렇게 옛 기억을 잠깐 꺼냈다가 바람결에 흘려보낸다. 이런 것도 소설의 미덕이라면 미덕이지 않을까?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하지만 그 무서운 걸 계속해서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게 사람이기도 하다. 그걸 만들고 나누며 좋아했던 그 순간은 진짜였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그런 시간도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우니까. 소설 주인공도 반딧불이를 날려 보내놓고는 아마 다른 빛을 찾아 살아갔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이별의 그림자를 슥 그려냈다. 이 단편을 바탕으로 썼다는 《상실의 시대》에서는 이런 장면을 읽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 쪽이 좀 더 기억에 깊게 남을 것 같다. 물론, 단편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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