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설계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3년 책읽기의 시작은 “오랜만의 만남”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올해 들어 처음 읽은 “황석영” 소설과 두 번째이자 이 감상글의 대상 소설인 “이인화”의 <지옥설계도(해냄/2012년 11월)> 모두 대학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에 신작 소설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만의 만남이다 보니 처음에는 둘 다 “낯섦”과 “반가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느끼면서 읽기 시작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읽고 나서의 감상은 서로 확연하게 달랐다. “황석영”은 초반 몇 십 페이지 만에 낯섦을 싹 잊고 오래전 그를 만났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금세 책에 몰입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흥미롭고 신선한 소재와 장르소설적인 재미를 한껏 담고 있었음에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낯섦이 가시지 않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설정과 설명에 읽어내기가 영 어려웠던 것이다. 이 책의 어떤 점이 나를 이렇게 곤혹(?)스럽게 했을까?

 

 

백 년 만의 큰 폭우가 내렸다는 7월 어느날, 대구의 시내 한복판에 있는 “리젠트”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살자는 “이유진”이라는 청년으로 등 뒤에서 총을 맞아 살해되었고, 피의자는 “자오얼”이라는 중국인 청년으로 서울역에서 긴급 체포된다. 일반 경찰이 아닌 모 “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수사관 “김호”는 이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데, 살해 현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왜 그런지는 말할 수 없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런 그의 직감은 수사가 진행되면서도 결코 뇌리에서 가시지 않는다. 이렇다 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기관의 상관은 김호에게 살인 사건의 배경에 관한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살자 이유진과 피의자 자오얼은 보통 사람보다 10 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들이고 이들은 “더불어 사는 행성당(공생당)”이라는 비밀 조직원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연쇄 테러가 발생하여 강화인간들이 죽거나 혹은 최면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김호의 딸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또 다른 강화 인간이자 이유진을 사랑했던 여인인 "새라 워튼“이 연쇄 테러 사건의 배후를 밝혀내고, 최면 상태에 빠진 강화 인간들의 의식이 갇혀 있는 가상 세계이자 이유진이 창조해낸 세계이기도 한 ”인페르노 나인“의 설계도를 얻기 위해서였다. 김호는 새라의 요구대로 이유진이 남겼다는 설계도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이유진 살인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 강화 인간들에게 가해진 연쇄 테러의 실체 또한 그 베일을 벗게 된다.

 

 

줄거리는 책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이유진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요약했지만 이야기는 강화인간의 탄생 비화(秘話)와 그들이 조직한 공생당과 각국 첩보기관들 간의 암투와 배신, 그리고 이유진이 만들어 낸 가상 최면의 세계 “인페르노 나인”, 이렇게 세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추리(스릴러)”, “첩보”, “SF", ”판타지“ 등 내가 즐겨 읽는 장르들이 총망라되어 있는데다가,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익히 다루어진 소재 - 영화로도 제작된 “앨런 글린”의 <리미트리스>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 이긴 하지만 “강화 인간”이라는 설정이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어 읽는데 탄력이 붙어 도입부와 중반 초입까지는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갔다. 그런데 중반부터 강화인간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그려지고, 가상 최면 세계인 “인페르노 나인”이 등장하면서는 너무 복잡한 설정과 설명이 이어지면서 처음의 흥미와 재미는 이내 반감되고야 말았다. 즉 강화인간들의 비밀결사조직인 “공생당”이 꾸미고 있다는 전세계적인 음모(陰謀)의 불명확성, 최면술로 사람을 죽이고 코마(koma) 상태에 빠뜨리는 장면들에서의 개연성 부족과 비현실성, MMORPG 게임이나 또는 이차원(異次元)의 판타지 세계를 연상케 하는 가상 세계인 “인페르노(Inferno, 지옥) 나인”과 책의 제목이자 책 후반부에서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열쇠로 등장하는 인페르노 나인의 설계도라는 이야기의 난해함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여러 장르의 장점들만을 끌어다 잘 혼합하려 했던 작가의 시도는 제대로 어우러지지 않고 영 성글게만 느껴졌고, 작가가 하고자 싶었던 이야기였을 인간 사회의 모순과 병폐에 대한 신랄한 비판 또한 텍스트로는 읽어낼 수 있지만 가슴에는 영 공감이 되지 않는 피상적인 주제로만 느껴졌다. 복잡하고 난해하기만 한 설정과 이야기 구조가 소재의 신선함과 흥미로움을 반감시켰고, 그 때문인지 결말에서의 반전 또한 그 충격과 강도가 영 밋밋하게만 느껴졌다.

 

 

서두에서 던진 질문인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 이 책의 요소는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하기만 한 설정과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의 성글기만 한 구성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며, 그 이유도 중견 작가이자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의 글솜씨 탓이 아니라 책의 설정과 구성, 그리고 주제를 올곧이 이해해내지 못한 내 이해력 부족 탓일 것이다, 여기에 유일하게 읽어본 그의 작품인 역사 소설 <영원한 제국>에서의 익숙함을 이 소설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계속 투영하려고 했던 탓일 것이다. 결국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작가에게서 예전 모습들과 익숙함만을 찾으려고 했었지 그의 새롭게 변화된 모습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의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울물소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13년 새해 들어 읽은 첫 번째 책은 시대를 대표하는 중견 작가 중 한 명인 “황석영” 작가의 신작 소설 <여울물 소리(자음과 모음/2012년 11월)>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황석영 작가는 그간 신문 기고(寄稿) 글이나 방송 인터뷰, 시사·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는 만나왔지만 소설 작품으로는 학창시절 필독서(必讀書)였던 장편 소설 <장길산> 이후이니 근 20 여 년 만에 만나는 셈이다. 그의 문학 인생이 지난 2012년 50 주년을 맞이했고 그만큼 많은 소설들을 발표 - 읽지는 않았지만 소설 제목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작품들이 여럿 된다 - 해 왔는데도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게 된 것은 지난 정권 들어 그가 보여준 정치적 행보가 영 마땅치 않아서였기도 했지만 전적으로 편벽(偏僻)한 나의 독서 이력(履歷)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일까? 이 책을 받아 들고서도 금세 책을 열어볼 수 가 없었다. 분명 “그”를 알고 있음에도 처음 만나는 것 마냥 “낯섦”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동안 눈에서 멀리하다가 새해 들어 다시금 집어 든 이 책, 불과 20~30 페이지를 채 읽기도 전에 “낯섦”이 기우(奇遇)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격변기였던 19세기 후반 구한말(舊韓末) 시대를 살아갔던 민초(民草)들의 이야기다.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의 서녀(庶女)인 박연옥은 열여섯 나이에 시골 부자의 후처(後妻)로 시집가게 되지만 어머니의 주점(酒店)에서 알게 되어 하룻밤 정을 나눈 이야기꾼 이신통을 못내 그리워한다. 3년 만에 친정으로 다시 돌아온 연옥은 그리워하던 신통과 재회한다. 천지도 민란에 참여했다가 큰 부상을 당하고 돌아온 신통과 짧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만 신통은 훌쩍 떠나버린다. 잠시 동안의 결혼 생활로 연옥은 아이를 가지지만 사산(死産)되고, 신통의 소식을 전해 들은 연옥은 그를 찾아 나서게 되고, 그 길에서 양반집 서얼(庶孼)로 태어났던 신통의 과거사와 천지도 입도 과정, 현재까지의 행적들을 지인(知人)과 가족들을 통해서 전해 듣게 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지만 연옥의 신통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오랜 수소문 끝에 다시 만난 둘은 이틀 동안의 짧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짧은 만남 이후 연옥은 다시 아이를 가지고 되고,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아 “노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일곱 살이 되었을 무렵 연옥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이번에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유골을 수습하러 길을 떠나게 된 연옥은 유골을 수습하고 고향 길로 돌아오는 길에 묵게 된 집에서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던 여울물 소리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을 이틀 만에 다 읽었다. 낯섦으로 시작했지만 황석영 작가 특유의 입담과 서사(敍事)에 학창시절 읽었던 <장길산>의 향취와 감흥이 고스란히 다시 느껴지면서 낯섦을 금세 잊어버리고 초반부터 책에 빠져 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한 “반동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19세기 격변기의 “임오군란(壬午軍)”과 “동학혁명(東學革命)”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순간들을 관통하며 살아온 신통과 여옥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는 재미가 즐겨 읽는 장르 소설 못지않게 쏠쏠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가 풀어 놓는 구수하고 질펀한 판소리 사설들과 당시 이야기꾼들 - 이들을 “전기수(傳奇叟)” 또는 “강담사(講談師)”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들려 주는 “장끼전”, “콩쥐팥쥐”와 같은 고전 동화들, 그리고 서럽고 애달프기만 하면서도 결코 삶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민초(民草)들의 삶은 그를 왜 민중 소설가라고 부르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우리 고유의 말과 정서의 맛을,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살았던 민중(民衆)들의 삶을 이렇게 구성지고 드라마틱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가 이 시대에 과연 몇이나 될까? 그의 문학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답게 작가로서 그의 문학적 소명(召命)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가 문학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여실히 가늠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이 책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일개 독자인 나로서는 감히 할 능력도 되지 않을 뿐더러 많은 분들이 알차고 좋은 서평들을 올려주셨으니 염치없게도 그분들의 글들로 가름하기로 하고 제목인 “여울물 소리”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받아들임(解釋)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겠다. 앞서 줄거리 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제목인 “여울물 소리”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여옥인 남편인 신통의 유골을 수습하고 신통의 마지막을 돌봐 준 뱃사공의 집에 하룻밤 묵는 장면에서 나온다.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서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P.488)

 

 

어쩌면 책에서 그린 19세기 말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인 임오군란과 동학혁명 등은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그 성공 여부를 떠나 큰 물줄기(大河)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물줄기를 이루게 된 것은 결국 바로 들릴 듯 말 듯 귓가에 맴돌듯이 흐르고 있는 수많은 여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만히 숨죽이고 들어야만 비로소 들리는 물소리들이지만 분명히 흐르고 있으며, 그 물 소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보잘 것 없고 가늘기만 한 물소리이지만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는, 그래서 그 소리에 담고 있는 민중들의 숨소리와 삶을 다시 한번 새겨 들으라는 작가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여울물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어야만 그런 여울물들이 함께 모여 이뤄내는 역사의 큰 물줄기를 제대로 바라보고(直視), 또한 그 의미를 올곧이 가슴에 담을 수 있다(理解)는 뜻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백년 후에는 우리들의 삶 또한 여울물 소리로 기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를 다시 만나 보는 반가운 책읽기였다. 의식적이든 또는 무의식적이든 오랫동안 멀리 했던 “황석영” 이라는 이름 석자가 이 책으로 다시금 화인(火印)처럼 가슴에 각인(刻印)되었다. 이 각인, 오래 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료되었습니다 - 모든 미해결 사건이 풀리는 세상,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작
박하익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死刑)이 집행된 이래로 근 15년 동안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제인권기구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지정한 “사실상 사형 폐지국” 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TV에서 부녀자와 어린이를 납치,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뉘우침의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살인범들을 볼 때면 과연 저런 자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계속 살려둬야 하나 하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차라리 저들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成文法)이라고 하는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서처럼 자신이 저지른 죄과 그대로 처벌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 탈리오의 법칙: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을 받는다면 흉악범들에게 더 큰 경종(警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보게 된다. 형 집행도 사법기관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살해한 피해자의 가족들에 의해서 말이다. 사적 복수를 엄금하는 현대 법제도상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다면 살해당한 피해자가 직접 복수를 한다면? 그것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자신을 죽인 사람을 죽음으로 복수한다면? 무슨 “전설의 고향”이나 심령 영화에서나 볼 법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이런 상상을 소설로 엮어낸 책이 있다.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작인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 모든 미해결 사건이 풀리는 세상(노블마인/2012년 4월)>이 바로 그 소설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 돌아오는 일이 몇 년 전부터 발생한다. 정확히 말하면 살해당해 죽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처벌한 뒤 홀연히 사라지는 현상인데, 이들은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지 못했거나, 가해자가 사법 기관에 의해 온당한 처벌을 받지 못한 경우에만 나타난다고 한다. 그들은 오직 가해자만 노렸으며, 신속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원한을 갚은 다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언론에서는 괴이한 이 현상을 RVP(Resurrected Victims Phenomenon, 살인 피해자 환세 현상)이라고 이름 붙였고, 그렇게 살아 돌아온 사람을 "RV(Resurrected Victims, 환세자)“라고 불렀다.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해온 ”서진홍“은 7년 전에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다가 오토바이 소매치기에 의해 칼에 찔려 죽은 어머니가 다시 돌아왔다는 누나의 전화를 받는다. RV의 존재를 모두 허언 잡설로만 여겼던 그에게 어머니가 RV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진홍은 해외 바이어와의 원격 미팅을 취소하고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집에 도착해 보니 어머니가 7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머니는 진홍과 눈이 마주치자 부엌칼을 집어 들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의 가슴에 칼을 내리 꽂았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제지로 위기는 넘겼지만 진홍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분명 7년 전 사건은 자신과 전혀 무관한 사건이었는데도 가해자를 징벌하러 온다는 RV인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까? RV 현상을 전담하는 국정원에서는 진홍과 어머니를 격리 수감하고 그들을 관찰하는데, 국정원 수사관들은 진홍이 7년 전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수령한 보험금으로 회사 위기를 넘겼었다는 사실에 진홍이 청부살인을 사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 그러나 진홍은 절대 그렇지 않다면 강력히 부인한다. 다시 시작된 재수사에 7년 전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체포되고, 어머니는 체포된 범인을 대면하자 놀랄만한 괴력으로 그 범인을 죽여 버린다. 즉 자신을 죽인 가해자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린 것이다. 이미 형벌을 내렸음에도 어머니는 진홍과 눈을 마주하면 진홍을 죽이려고 덤벼들고, 진홍은 RVP를 연구하려고 어머니를 모처로 데려가려는 CIA 요원들을 물리치고 어머니를 구해내어 중국으로 밀항(密航)하려고 시도한다. 과연 다시 살아 돌아온 어머니는 복수가 끝났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진홍을 왜 죽이려고 하는 걸까?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버리고,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충격적이면서도 다소 의외의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자신을 죽인 사람에게 복수를 한다니 얼마나 말도 안되는 그런 상상인가. 그런데 작가는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에 뼈와 살을 단단히 붙여 그럴싸한 한 편의 심령 스릴러 소설 - 이런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을 만들어 냈다. 이 책의 주제는 출판사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자에 대한 단죄(斷罪)와 진정한 교화(敎化), 즉 “완전한 심판” - 진홍의 어머니가 진홍과 자신을 죽인 범인에게 달려들면서 읊조리는 이탈리아어인 “쥬디지오(Giudizo)”라는 단어가 “심판(審判)”이라는 뜻이다 - 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작가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명 무실해져버린 사형제도는 더 이상 범죄에 대한 경종의 효과가 없으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복수한다는 “동해보복형” 식의 형벌에서 단죄의 단초를 끌어내고,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힐 수 는 없지만 충격적이면서도 의외의 마지막 결말을 통해서 범죄자들에 대한 교화의 한 방안을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물론 이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형식의 복수와 결말에서의 교화 방법이 진정으로 옳은 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게 판단할 수 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가 말한 이 방법들은 사법 정의나 인권 등을 떠나서 통쾌한 방법이며, 어느 정도 납득이 갈만한 방법들로는 생각된다.

 

주제는 그렇다 치고 이야기(敍事)로서는 어떨까? 추리소설 작가답게 꽤나 미스터리하고 흥미진진한 구성과 전개에 페이지 넘김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게 만든다. 책 속의 사건은 7 년전에 벌어진 진홍 어머니의 살인사건을 주요 뼈대로 하되 여기에 진홍의 대학시절에 일어났던 집단 성폭행 사건, 그리고 RV 현상을 둘러싼 국정원과 CIA 간의 암투,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밝혀지는 끔찍한 연쇄살인사건 등 여러 사건들이 교차하면서 이야기의 결말을 쉽게 예측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숨가쁘게 전개된다. 주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도 이야기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결말의 반전은 놀랍기는 하지만 다소 의외 - 엄밀히는 작가가 교훈적인 결말로 끝내려고 한 나머지 다소 작위(作爲)적인 결말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 였는데, 이 책의 결말보다는 그냥 미스터리하고 심령적인 현상인 RVP로 끝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말이다.

 

260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 안에 많은 이야기와 묵직한 주제를 알차게 담아낸,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늪처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라는 “서미애” 작가의 추천사 그대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몰입감이 매우 뛰어난 우리 소설이었다. 작가의 장편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찰진 서사가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소설에 후한 평을 주는 평소 습관(?)대로 별점은 다섯개 만점을 준다. 아니 "우리"나 아니냐를 떠나서 여느 외국 소설과 충분히 견줘 볼 수 있을 만큼  재미 면에서 뛰어난 소설이기 때문에 만점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소설이라고 이렇게 별점을 매긴다고 정정하자. 이 책, 출간도 되기 전에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조만간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책 속의 주인공들을 어떤 배우가 맡을 지 상상해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 01권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 1
조경래 / 휘슬북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몇 몇 감상글에서 밝힌 것처럼 <삼국지(三國志)>는 “내 인생 최고의 책”으로 주저없이 꼽는 책이다. 초등학교 시정 동화작가이신 고(故) 조풍연 선생님의 <소년판 삼국지(전 12권, 계림출판사>로 시작한 내 삼국지 편력(編曆)은 중년(中年)의 나이에 들어선 지금도 그 관심이 식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더 커져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ing)이다. 그렇다 보니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라 불리는 소설(小說) - 국내외 유명 작가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글솜씨로 같지만 “다른” 삼국지를 들려 준다 - 은 물론이고 만화, 드라마, 영화, 게임, 처세술, 심리학, 역사(歷史), 여행기(旅行記) 등등 “삼국지”라는 타이틀이 붙은 “콘텐츠(Contents)"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항상 눈길이 끌리게 된다. 이처럼 수많은 콘텐츠들 중에서 기존 <삼국지>와는 다른 이야기와 결말, 예를 들어 촉한(蜀漢)의 유비(劉備)가 삼국을 통일(統一) 했다든지, 또는 아예 삼국지 시대를 무협(武俠) 시대로 바꾸거나 또는 현대의 인물이 삼국지 시대로 타임슬립(timeslip)해 역사를 바꾼다는 이야기 등등 원전(原典)을 변형시킨 일종의 “대체역사소설(代替歷史小說)”이나 “패스티슈(Pastiche)” - 다른 작가들이 원전에 나오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만든 새로운 소설 - 작품들도 원전과는 다른 이야기와 결말이 주는 색다른 재미 때문에 즐겨 보고 있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소설에서는 중국 작가 “주대황”의 <반삼국지(反三國志)>를, 만화에서는 일본작가 “요시토 야마하라”의 <용랑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내 장르소설 들 중에서도 여럿 작품들 - 읽어본 작품들이 몇 몇 되지만 작품성을 떠나 작품명을 거론하면 공들여 쓴 작가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언급하지 않는다 - 이 있는데, 각 작품마다 색다른 재미는 있지만 “재미”에만 치중하는 장르소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원전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개연성 또한 떨어지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아쉬움을 한방에 날려 버릴 만한 “놀라운” 장르 소설을 만났다. 인터넷 연재 사이트 “조아라”에서 유료 구매 임에도 불구하고 탑(TOP)을 차지할 정도로 경이적인 조회수를 기록했고, 전자책(e-book)으로도 출간되어 전자책 판매 순위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인 “너와같은꿈(필명)”의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조아라/2012년 10월/e-book)>이 바로 그 소설이다.

 

2011년 현재 모 카드회사 SI팀 대리로 재직 중인 34살 노총각 이준경은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사마천”의 <사기(史記)>, <정관정요(貞觀政要)> 등 동양 고전들과 1, 2차 세계대전의 역사나 과거 서양 제국들의 흥망사, 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역사들을 보며 지적 즐거움을 쌓아왔다. 특히 그가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바로 <삼국지>로 “그날”도 자신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인 <정사 삼국지>를 침대에 누워 읽으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다가 깜빡 잠이 든다.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본 순간 그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항시 누워 있던 오피스텔의 그 침대가 아니라 민속촌에서나 볼법한 고풍스러운 방에 비단 이불을 덮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몹시도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그에게 모르던 기억과 지식이 내 머릿속에서 솟아나 정리되면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름은 이준경 그대로인데, 아버지의 이름은 이풍이었다. 그런데 그 시대가 194년, 자신이 읽다 잠든 삼국지의 시대가 아닌가. 즉 삼국지 시대로 타임 슬립한 셈인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기가 막힌 것은 아버지 이풍이 하필이면 황제를 자칭하다 패망해버리는, 삼국지 시대 군주들 중 최악으로 여겨지는 “원술(袁術)” 휘하에서 장수로 재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혼란스러웠지만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에서 살아남기로 한다. 우선 역사에서 원술 휘하에 있다가 “손책(孫策)”에게로 가는 “노숙(魯肅)”을 끌어 들여 “의형(義兄)”을 삼고, 역시 역사에서 원술에게 옥새(玉璽)을 바치고 강동 정벌에 나서는 손책 세력을 “허창(許昌)” 정벌로 목표를 바꿔버리게 하고 대신 아버지 이풍이 군사를 이끌고 손책 대신 강동 정벌에 나서도록 만든다. 즉 삼국지 원 역사를 본격적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 이준경은 삼국지 역사 속에서 원래는 다른 세력에 속했어야 할 유명 재사들과 무장들, 즉 “가후(賈詡)”, “육손(陆逊)”, “허저(許褚)”, “위연(魏延)”, “태사자(太史 慈)” 등을 영입한다. 이렇다 할 무술 실력도 없고 훌륭한 지략도 없는 그가 이런 삼국지 시대의 위인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바로 백성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한 그의 꿈에 모두들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즉 제목대로 삼국지 속 인물들을 그의 꿈에 동참케 하는, 즉 그들이 “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대강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진행되는데 내가 읽은 10권 1부까지의 내용은 아버지 이풍 장군의 강동 정벌은 책사 가후와 육손의 가문인 “육가”가 합류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한편 “조조(曹操)”와 “원소(袁紹)”, 유비는 동맹을 맺고 원술을 공격해오는 데 원술은 손책과 “여포(呂布)와 연합하여 승리를 거둔다. 이준경은 태사자의 요청으로 원소의 아들 ”원담(袁譚)“이 노리고 있는 북해의 “공융(孔融)”을 구하러 가서 공융의 본가인 공부(孔府)와 삼국지 시대 명사(名士)인 “노식(盧植)”이 남긴 비밀 세력, 그리고 여포의 도움으로 해결해낸다. 다시 양주로 돌아온 이준경은 원소의 책사들의 계책에 의해 군수 물자를 착복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쓰고 가택 연금을 당한다. 그런데 이는 계책을 눈치 챈 원술의 책사이자 이준경의 상관인 “한호(韓浩)”가 계책을 역이용하기 위해 꾸며놓은 것이다. 그 덕분에 이준경은 잠시 쉬어가게 되지만 한호의 계책대로 형주의 “유표(劉表)”를 치러간 원술의 군사들이 패하고 원술의 아들 “원요”가 중상(重傷)에 빠지면서 한호의 계책은 물거품이 되고 스스로 실각하게 된다. 원술은 한호가 추천한 이준경에게 1년의 시한을 줄 테니 전권을 가지고 복수를 해내라고 명령하고, 이준경은 한호의 뒤를 이어 총사직에 오른다. 첫 행보로 유표에게 붙잡힌 원요를 구해내고 화친을 위해 형주의 유표를 찾아간 이준경은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지만 원래 삼국지에서 제일가는 책사로 손꼽히는 “방통(龐統)”, “서서(徐庶)”와 공융을 도우러 북해로 가는 중에 인연을 맺은 “제갈량(諸葛亮)” 등과 교류하는 한편, 형주로 남하하는 “이각(李傕)”의 군대를 유비와 연합하여 물리치고 본거지인 수춘또한 조조의 군대를 맞아 열세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도움으로 수성(守成)에 성공한다. 이 모든 것이 가후의 심모원려(深謀遠慮)의 계책에 의한 것으로 각 제후 세력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린 결과를 낳게 한다. 원술은 황실을 위협하던 이각 세력을 물리친 공으로 “초왕(楚王)”의 작위를 하사받고, 이준경 또한 최연소의 나이로 “후(候)”에 오른다. 이준경이 이 시대에 출현하면서 그간의 원 역사는 완전히 뒤틀리게 되고, 이준경의 꿈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현실화되어간다.

 

이 소설의 유명세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 작품들에 대한 실망감이 있던 터라 같은 수준의 글이겠거니 하고 무시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가 가지고 있는 전자책 리더로 읽을거리가 없을까 하고 검색하다가 이 소설의 1권을 무료로 구매할 수 있기에 호기심으로 다운받았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자 이런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1권을 단숨에 읽고 1부 전 10권을 계속 구매해서는 읽어야 될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출퇴근길과 퇴근 후 잠들 때까지, 그리고 주말 시간 내내 이 소설만 붙잡고 읽었으니 일주일 가까이를 이 책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삼국지 콘텐츠들을 접해본 내가 이 소설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삼국지 속 수많은 영웅들을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재현해내고 마치 내가 주인공 이준경이 되어 삼국지 속에 뛰어들어 삼국지 세계를 체험한다는, 일종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주인공 이준경은 현실에서 책장이 닳을 정도로 삼국지 책을 읽었던 것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따라서 삼국지 속 영웅들을 만나게 되면 실제 역사에서의 공적과 소설인 연의에서의 묘사가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특히 소설에서는 왜곡되고 축소된 인물들에 대한 정사를 바탕으로 한 평가와 설정은 새롭고 신선하기까지 한데, 예를 들어 연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원술의 책사 “한호”의 경우 원래 역사에서는 “둔전제(屯田制)”를 제안하고 장로 토벌에서도 큰 공을 세워 조조가 곁에 두고 아꼈을 정도로 책사로서, 행정가로서 유능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책에서는 이준경을 중용(重用)하고 자신의 총사직을 물려줄 정도로 능력 있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방통의 경우 능력은 출중하지만 패기만만하고 허세가 넘치는, 조금은 경박한 인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 또한 연의와 정사를 바탕으로 작가가 새롭게 창조해낸 인물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연의 속에서는 비중이 미미하거나 또는 왜곡된 인물들을 실제 역사에서의 평가를 바탕으로 새롭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해석해서 기존의 삼국지 다른 인물들의 새로운 면면을 알게 해주고, 삼국지 원전에서는 담겨 있지 않은 유명 인사들의 어린 시절과 차츰 능력을 각성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읽는 재미가 꽤나 쏠쏠해서, 역사와 소설을 잘 알고 있는 이준경이 명사들을 만나서 깜짝 놀라고, 자신의 대의와 꿈을 설명하여 그들을 설득해 자신의 세력에 가담시키는 과정이 마치 코에이사의 게임 “삼국지”에서 유명 장수들을 채용하고 뿌듯해하는 것과 같은 즐거움마저 느끼게 한다. 즉 나를 이준경이라는 사람에 투영하여 실제 삼국지 세계를 가상 체험한다는 느낌 - 1인칭 시점 서술도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데 한 몫 한다 - 이라고 할까?

 

그렇다 보니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준경이 만나게 되는 삼국지 인물들이 이번에는 누구일까, 그를 주인공은 어떻게 설득해낼까, 그 인물들은 소설과는 다른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책 읽기를 쉬이 멈추지 못하고 계속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책에는 각 세력들의 유명 책사들이 벌이는 불꽃 튀는 책략 대결들이 펼쳐지는데, 오히려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삼국지연의보다 더 세밀하고 개연성 있게 그려내고 있어 책사들간의 두뇌 싸움이 꽤나 볼 만하다. 여기에 작가가 주인공이 명사들과 나누는 대화들에서 자주 인용하는 중국 고사들과 명언, 시구(詩句), 그리고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은 이 소설이 과연 장르소설이 맞는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역사소설 특유의 재미와 풍미를 마음껏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익숙하지만 전혀 새로운 삼국지를 읽는다는 즐거움과 재미에 10권에 이르는 분량 - 전자책(e-book)이다 보니 종이책과는 분량이 다르겠지만 - 을 지루함 느낄 겨를 없이 단숨에 읽어낼 수 있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소설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없지 않은데 우선 이야기 전개가 느리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이 명사들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이 전체 분량의 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사건들의 전개 또한 너무 상세하게 묘사하다 보니 각 사건들 분량 또한 만만치 않아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느리게 전개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1부 10권 분량을 읽었음에도 어떻게 전개될 지 종잡을 수 없고, 혹여나 결말 부분에서는 이야기와 사건들을 축약해서 서둘러 종료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마저도 들게 만든다. 몇몇 대체역사소설들이 처음에는 거창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후반부들어서는 뭐에 쫓기듯이 서둘러 이야기를 종결시키는, 아니 완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 다행히 이 소설은 연재 사이트인 조아라에서 완결되었다고 한다 -,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맺음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책사들의 지략 대결이 재미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전쟁 장면이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다 보니 - 10권까지 전쟁 장면은 3~4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 삼국지 특유의 호쾌한 전쟁 장면을 기대한 분들이라면 심심(?)하게까지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삼국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만 어필할 수 있다는, 즉 삼국지를 처음 읽는 분들에게는 묘미를 느낄 수 가 없다는 한계성 또한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삼국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글이 너무 장황하고 길어졌지만, 감상을 요약해보자면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그런 아쉬운 점들을 금세 잊게 만들 정도로 많은 장점을 가진, 그간 만나본 삼국지 “오마주” - 또는 “팬픽”, “페스티슈” 등 여러 가지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중에서는 단연 최고로 꼽고 싶은 참 재미있는 책이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장르소설의 한계를 훌쩍 벗어나 정통 역사소설로써도 충분한 재미와 깊이를 느껴볼 수 있는 소설로, 또한 삼국지를 한번 이상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또한 그간의 원전 소설들과는 다른 뭔가 색다르고 재미있는 삼국지를 읽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최고의 읽을 꺼리가 될 수 있는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많은 독자들이 남긴 이 책에 대한 평가나 전자책 판매 목록 상위를 늘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한 평가는 아닌 듯 싶다. 이제 이야기의 반환점인 1부를 끝마쳤다. 검색해보니 2부에서는 좀 더 극적이고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분량이 1부보다도 훨씬 많다고 하니 앞에서 언급한 “용두사미”에 대한 우려는 기우(杞憂)로 끝날 듯 싶다. 2부를 내처 읽고 싶은데, 다만 전자책은 띄엄띄엄 읽는 것보다 한 번에 몰아 읽는 재미가 더 쏠쏠하니 좀 더 출간되기를 - 2부는 아직 1권인 11권 밖에 출간되지 않았다 -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준경이 꾸는 꿈의 완성이, 그리고 같은 꿈을 꾸는 삼국지 속의 영웅들이 펼칠 활약이 어떻게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두운 기억 속으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어두운 기억 속으로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2012년 국감(國監)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8년부터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9만 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하루 평균 52건이 발생한 것으로 지난 2008년 대비하면 37% 늘었다고 한다(뉴시스, 2012.10.17., “[국감]성폭력 하루 평균 52건씩 발생…최다 지역은 '서울'” 기사 발췌). 이러한 성폭력 범죄가 심각한 이유는 신체적 피해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사건 발생 후 피해자가 입게 되는 정신적 피해,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가 치유되기가 무척 힘들어 평생을 고통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해자 본인은 불안과 불면증, 두려움과 공포, 우울과 좌절 등 심리적 피해 때문에 자해나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과 친지들의 고통 또한 결코 작지 않다고 하니, 이처럼 성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 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까지 모두 망쳐버리는, 가장 무섭고 추악한 범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두(書頭)부터 이렇게 성폭력의 폐해와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번에 읽은 소설이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헤인스”의 스릴러 소설 <어두운 기억 속으로(원제 Into the Darkest Corner / 은행나무 / 2012년 9월)>이 바로 그 작품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클럽을 즐겨 다니며 자유 분망한 연애를 즐기는 20대 미모의 젊은 여성 “캐서린 베일리”는 2003년 10월말에 미소가 대단히 매력적인 멋진 남자 “리 앤서니 브라이트만”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멋진 남자인 리는 그런데 뭔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다. 일 때문에 며칠씩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갑자기 캐서린의 집에 나타나 사랑을 나누고는 다시 훌쩍 떠나기가 일수다. 특히 그녀가 없는 사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이것저것 헤집어 놓는 그 때문에 캐서린은 불안감마저 들게 된다. 그런데 멋지고 매력적인 이 남자가 어느 때부터인가 그녀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지만 그녀의 친구들은 오히려 그 남자의 말만 믿고는 그녀를 나무라기까지 한다. 결국 헤어지기로, 아니 그에게서 탈출하기로 맘을 먹지만 쉽지가 않고 결국 사귄지 7개월 여 만 인 2004년 6월 어느 날 그는 그녀를 죽음 직전까지 이를 정도로 심한 폭력을 가하고, 다행히 이웃집 여인의 신고로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그는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7년 10월, 캐서린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문과 집단속을 해야 할 정도로 지독한 공황장애와 스트레스 장애를 앓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의 아파트에 “스튜어트”라는 정신과 의사가 이사 온다. 캐서린은 낯선 남자인 그를 경계하지만 스튜어트는 그녀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 그녀를 돕고자 나선다. 스튜어트 덕분에 정신과 상담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조금씩 치유되는 그녀에게 리가 출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캐서린은 사건 이후 세 번이나 이사를 했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 밖에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리가 결국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런 그녀를 스튜어트가 다독거려 보지만 캐서린의 불안감과 공포는 갈수록 커져간다. 그러던 중 그녀는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낯선 시선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단속하고 점검했던 집에 침입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것도 바로 그녀만이 알아 볼 수 있는 그런 신호들 말이다. 그녀를 공황장애에 빠뜨렸던 그 남자, 리가 찾아온 것이다!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요약했지만 이야기는 사건이 발생했던 2004년의 캐서린과 사건 발생 3년 후인 2008년 현재의 캐서린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두 시간대의 여인이 동일 인물인 줄 모르고 읽다가 중반 이후에서야 과거와 현재 시점의 여인이 같은 여인인 줄 알게 되었다. 2004년에는 “캐서린”, 2008년에는 “캐시”로 서로 다른 이름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두 페이지 분량으로 교차되는 시점 묘사가 책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고, 2004년의 캐서린과 리의 연애과정, 2008년의 캐시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과정이 너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조금은 지루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반 이후 2004년의 리가 조금씩 그 폭력성을 드러내고, 2008년의 캐시가 리의 출소를 앞두고 불안해하는 과정이 그려지면서 지루함은 자취를 감춰 버리고 슬슬 몰입감이 높아져갔다. 특히 리가 캐서린을 폭행하는 장면들은 출판사 소개글에서 어느 여성 독자가 “읽기 괴롭지만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라고 평을 남겨놓은 것처럼 너무나도 자세한 묘사 때문에 나또한 글 읽기가 불편할 정도여서 가급적 폭행 장면은 간략하게 읽고 2008년 현재 상황 위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두 시점의 갈등이 폭발하는 과정, 즉 리가 캐서린을 끔찍하게 폭행했던 그 날과 출소한 리가 캐시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을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갈등 - 이라는 말보다는 사건이라는 표현이 정확 하겠다 - 이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안심하게 될 무렵 마지막 페이지에서의 반전(反轉), 즉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결말은 다시금 소름이 돋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반전의 충격은 잠시일 뿐 금세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왜냐하면 주인공인 캐서린이 자신의 공황장애와 함께 리의 위협을 훌륭하게 극복해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위험이 또다시 닥치더라도 그녀는 다시 한번 잘 극복하고 이겨낼 것이라는 주인공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섬뜩할 수 도 있는 마지막 결말에서 왠지 모를 감동까지 느꼈다면 너무 과장된 감상일까? 이처럼 치밀하고 세세한 스토리 전개, 절로 감정이입이 될 정도로 현실감 있고 사실성 있게 그려낸 주인공 캐서린의 심리 묘사, 또한 초중반까지는 로맨스 소설처럼 전개되다가 중반 이후부터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릴러 소설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종반에서 리가 캐서린에게 접근해나가는 과정은 페이지 넘김 속도가 절로 빨라질 정도로 여느 소설 못지않게 강력한 스릴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잦은 시점 변화와 초중반의 지루함, 지나치게 사실적인 폭력 장면의 묘사는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방해 요인이기도 했다. 즉 이 책의 재미와 메시지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들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서두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성폭력의 끔찍함과 무서움,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그저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딸과 누이, 아내가 겪게 될지도 모를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하루 평균 52 건이나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아니 신고되지 않은 사건들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이 발생하고 있을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 때문에 작가의 메시지가 그 어떤 책들보다 더 강렬하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느끼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 불편할 거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거나 시작했다면 결코 멈추지 말고 끝까지 읽어야 하는, 아니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책이다. 여느 소설들보다 재미있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 어떤 스릴러 소설보다 불편하고, 메시지와 여운이 강렬한 책 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그리고 다른 스릴러 소설들과 차별화된 긴장감과 스릴을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기대 이상의 그 무언가를 맛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