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되었습니다 - 모든 미해결 사건이 풀리는 세상,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작
박하익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死刑)이 집행된 이래로 근 15년 동안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제인권기구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지정한 “사실상 사형 폐지국” 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TV에서 부녀자와 어린이를 납치,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뉘우침의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살인범들을 볼 때면 과연 저런 자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계속 살려둬야 하나 하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차라리 저들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成文法)이라고 하는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서처럼 자신이 저지른 죄과 그대로 처벌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 탈리오의 법칙: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을 받는다면 흉악범들에게 더 큰 경종(警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보게 된다. 형 집행도 사법기관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살해한 피해자의 가족들에 의해서 말이다. 사적 복수를 엄금하는 현대 법제도상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다면 살해당한 피해자가 직접 복수를 한다면? 그것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자신을 죽인 사람을 죽음으로 복수한다면? 무슨 “전설의 고향”이나 심령 영화에서나 볼 법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이런 상상을 소설로 엮어낸 책이 있다.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작인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 모든 미해결 사건이 풀리는 세상(노블마인/2012년 4월)>이 바로 그 소설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 돌아오는 일이 몇 년 전부터 발생한다. 정확히 말하면 살해당해 죽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처벌한 뒤 홀연히 사라지는 현상인데, 이들은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지 못했거나, 가해자가 사법 기관에 의해 온당한 처벌을 받지 못한 경우에만 나타난다고 한다. 그들은 오직 가해자만 노렸으며, 신속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원한을 갚은 다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언론에서는 괴이한 이 현상을 RVP(Resurrected Victims Phenomenon, 살인 피해자 환세 현상)이라고 이름 붙였고, 그렇게 살아 돌아온 사람을 "RV(Resurrected Victims, 환세자)“라고 불렀다.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해온 ”서진홍“은 7년 전에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다가 오토바이 소매치기에 의해 칼에 찔려 죽은 어머니가 다시 돌아왔다는 누나의 전화를 받는다. RV의 존재를 모두 허언 잡설로만 여겼던 그에게 어머니가 RV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진홍은 해외 바이어와의 원격 미팅을 취소하고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집에 도착해 보니 어머니가 7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머니는 진홍과 눈이 마주치자 부엌칼을 집어 들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의 가슴에 칼을 내리 꽂았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제지로 위기는 넘겼지만 진홍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분명 7년 전 사건은 자신과 전혀 무관한 사건이었는데도 가해자를 징벌하러 온다는 RV인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까? RV 현상을 전담하는 국정원에서는 진홍과 어머니를 격리 수감하고 그들을 관찰하는데, 국정원 수사관들은 진홍이 7년 전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수령한 보험금으로 회사 위기를 넘겼었다는 사실에 진홍이 청부살인을 사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 그러나 진홍은 절대 그렇지 않다면 강력히 부인한다. 다시 시작된 재수사에 7년 전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체포되고, 어머니는 체포된 범인을 대면하자 놀랄만한 괴력으로 그 범인을 죽여 버린다. 즉 자신을 죽인 가해자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린 것이다. 이미 형벌을 내렸음에도 어머니는 진홍과 눈을 마주하면 진홍을 죽이려고 덤벼들고, 진홍은 RVP를 연구하려고 어머니를 모처로 데려가려는 CIA 요원들을 물리치고 어머니를 구해내어 중국으로 밀항(密航)하려고 시도한다. 과연 다시 살아 돌아온 어머니는 복수가 끝났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진홍을 왜 죽이려고 하는 걸까?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버리고,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충격적이면서도 다소 의외의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자신을 죽인 사람에게 복수를 한다니 얼마나 말도 안되는 그런 상상인가. 그런데 작가는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에 뼈와 살을 단단히 붙여 그럴싸한 한 편의 심령 스릴러 소설 - 이런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을 만들어 냈다. 이 책의 주제는 출판사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자에 대한 단죄(斷罪)와 진정한 교화(敎化), 즉 “완전한 심판” - 진홍의 어머니가 진홍과 자신을 죽인 범인에게 달려들면서 읊조리는 이탈리아어인 “쥬디지오(Giudizo)”라는 단어가 “심판(審判)”이라는 뜻이다 - 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작가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명 무실해져버린 사형제도는 더 이상 범죄에 대한 경종의 효과가 없으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복수한다는 “동해보복형” 식의 형벌에서 단죄의 단초를 끌어내고,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힐 수 는 없지만 충격적이면서도 의외의 마지막 결말을 통해서 범죄자들에 대한 교화의 한 방안을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물론 이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형식의 복수와 결말에서의 교화 방법이 진정으로 옳은 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게 판단할 수 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가 말한 이 방법들은 사법 정의나 인권 등을 떠나서 통쾌한 방법이며, 어느 정도 납득이 갈만한 방법들로는 생각된다.

 

주제는 그렇다 치고 이야기(敍事)로서는 어떨까? 추리소설 작가답게 꽤나 미스터리하고 흥미진진한 구성과 전개에 페이지 넘김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게 만든다. 책 속의 사건은 7 년전에 벌어진 진홍 어머니의 살인사건을 주요 뼈대로 하되 여기에 진홍의 대학시절에 일어났던 집단 성폭행 사건, 그리고 RV 현상을 둘러싼 국정원과 CIA 간의 암투,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밝혀지는 끔찍한 연쇄살인사건 등 여러 사건들이 교차하면서 이야기의 결말을 쉽게 예측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숨가쁘게 전개된다. 주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도 이야기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결말의 반전은 놀랍기는 하지만 다소 의외 - 엄밀히는 작가가 교훈적인 결말로 끝내려고 한 나머지 다소 작위(作爲)적인 결말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 였는데, 이 책의 결말보다는 그냥 미스터리하고 심령적인 현상인 RVP로 끝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말이다.

 

260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 안에 많은 이야기와 묵직한 주제를 알차게 담아낸,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늪처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라는 “서미애” 작가의 추천사 그대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몰입감이 매우 뛰어난 우리 소설이었다. 작가의 장편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찰진 서사가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소설에 후한 평을 주는 평소 습관(?)대로 별점은 다섯개 만점을 준다. 아니 "우리"나 아니냐를 떠나서 여느 외국 소설과 충분히 견줘 볼 수 있을 만큼  재미 면에서 뛰어난 소설이기 때문에 만점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소설이라고 이렇게 별점을 매긴다고 정정하자. 이 책, 출간도 되기 전에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조만간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책 속의 주인공들을 어떤 배우가 맡을 지 상상해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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