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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기억 속으로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2012년 국감(國監)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8년부터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9만 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하루 평균 52건이 발생한 것으로 지난 2008년 대비하면 37% 늘었다고 한다(뉴시스, 2012.10.17., “[국감]성폭력 하루 평균 52건씩 발생…최다 지역은 '서울'” 기사 발췌). 이러한 성폭력 범죄가 심각한 이유는 신체적 피해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사건 발생 후 피해자가 입게 되는 정신적 피해,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가 치유되기가 무척 힘들어 평생을 고통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해자 본인은 불안과 불면증, 두려움과 공포, 우울과 좌절 등 심리적 피해 때문에 자해나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과 친지들의 고통 또한 결코 작지 않다고 하니, 이처럼 성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 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까지 모두 망쳐버리는, 가장 무섭고 추악한 범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두(書頭)부터 이렇게 성폭력의 폐해와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번에 읽은 소설이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헤인스”의 스릴러 소설 <어두운 기억 속으로(원제 Into the Darkest Corner / 은행나무 / 2012년 9월)>이 바로 그 작품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클럽을 즐겨 다니며 자유 분망한 연애를 즐기는 20대 미모의 젊은 여성 “캐서린 베일리”는 2003년 10월말에 미소가 대단히 매력적인 멋진 남자 “리 앤서니 브라이트만”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멋진 남자인 리는 그런데 뭔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다. 일 때문에 며칠씩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갑자기 캐서린의 집에 나타나 사랑을 나누고는 다시 훌쩍 떠나기가 일수다. 특히 그녀가 없는 사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이것저것 헤집어 놓는 그 때문에 캐서린은 불안감마저 들게 된다. 그런데 멋지고 매력적인 이 남자가 어느 때부터인가 그녀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지만 그녀의 친구들은 오히려 그 남자의 말만 믿고는 그녀를 나무라기까지 한다. 결국 헤어지기로, 아니 그에게서 탈출하기로 맘을 먹지만 쉽지가 않고 결국 사귄지 7개월 여 만 인 2004년 6월 어느 날 그는 그녀를 죽음 직전까지 이를 정도로 심한 폭력을 가하고, 다행히 이웃집 여인의 신고로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그는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7년 10월, 캐서린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문과 집단속을 해야 할 정도로 지독한 공황장애와 스트레스 장애를 앓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의 아파트에 “스튜어트”라는 정신과 의사가 이사 온다. 캐서린은 낯선 남자인 그를 경계하지만 스튜어트는 그녀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 그녀를 돕고자 나선다. 스튜어트 덕분에 정신과 상담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조금씩 치유되는 그녀에게 리가 출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캐서린은 사건 이후 세 번이나 이사를 했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 밖에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리가 결국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런 그녀를 스튜어트가 다독거려 보지만 캐서린의 불안감과 공포는 갈수록 커져간다. 그러던 중 그녀는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낯선 시선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단속하고 점검했던 집에 침입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것도 바로 그녀만이 알아 볼 수 있는 그런 신호들 말이다. 그녀를 공황장애에 빠뜨렸던 그 남자, 리가 찾아온 것이다!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요약했지만 이야기는 사건이 발생했던 2004년의 캐서린과 사건 발생 3년 후인 2008년 현재의 캐서린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두 시간대의 여인이 동일 인물인 줄 모르고 읽다가 중반 이후에서야 과거와 현재 시점의 여인이 같은 여인인 줄 알게 되었다. 2004년에는 “캐서린”, 2008년에는 “캐시”로 서로 다른 이름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두 페이지 분량으로 교차되는 시점 묘사가 책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고, 2004년의 캐서린과 리의 연애과정, 2008년의 캐시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과정이 너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조금은 지루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반 이후 2004년의 리가 조금씩 그 폭력성을 드러내고, 2008년의 캐시가 리의 출소를 앞두고 불안해하는 과정이 그려지면서 지루함은 자취를 감춰 버리고 슬슬 몰입감이 높아져갔다. 특히 리가 캐서린을 폭행하는 장면들은 출판사 소개글에서 어느 여성 독자가 “읽기 괴롭지만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라고 평을 남겨놓은 것처럼 너무나도 자세한 묘사 때문에 나또한 글 읽기가 불편할 정도여서 가급적 폭행 장면은 간략하게 읽고 2008년 현재 상황 위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두 시점의 갈등이 폭발하는 과정, 즉 리가 캐서린을 끔찍하게 폭행했던 그 날과 출소한 리가 캐시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을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갈등 - 이라는 말보다는 사건이라는 표현이 정확 하겠다 - 이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안심하게 될 무렵 마지막 페이지에서의 반전(反轉), 즉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결말은 다시금 소름이 돋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반전의 충격은 잠시일 뿐 금세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왜냐하면 주인공인 캐서린이 자신의 공황장애와 함께 리의 위협을 훌륭하게 극복해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위험이 또다시 닥치더라도 그녀는 다시 한번 잘 극복하고 이겨낼 것이라는 주인공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섬뜩할 수 도 있는 마지막 결말에서 왠지 모를 감동까지 느꼈다면 너무 과장된 감상일까? 이처럼 치밀하고 세세한 스토리 전개, 절로 감정이입이 될 정도로 현실감 있고 사실성 있게 그려낸 주인공 캐서린의 심리 묘사, 또한 초중반까지는 로맨스 소설처럼 전개되다가 중반 이후부터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릴러 소설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종반에서 리가 캐서린에게 접근해나가는 과정은 페이지 넘김 속도가 절로 빨라질 정도로 여느 소설 못지않게 강력한 스릴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잦은 시점 변화와 초중반의 지루함, 지나치게 사실적인 폭력 장면의 묘사는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방해 요인이기도 했다. 즉 이 책의 재미와 메시지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들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서두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성폭력의 끔찍함과 무서움,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그저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딸과 누이, 아내가 겪게 될지도 모를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하루 평균 52 건이나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아니 신고되지 않은 사건들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이 발생하고 있을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 때문에 작가의 메시지가 그 어떤 책들보다 더 강렬하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느끼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 불편할 거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거나 시작했다면 결코 멈추지 말고 끝까지 읽어야 하는, 아니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책이다. 여느 소설들보다 재미있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 어떤 스릴러 소설보다 불편하고, 메시지와 여운이 강렬한 책 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그리고 다른 스릴러 소설들과 차별화된 긴장감과 스릴을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기대 이상의 그 무언가를 맛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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